최승연 뮤지컬 평론가가 매월 주목할 만한 뮤지컬계 이슈를 심도 있게 들여다봅니다. 최승연 평론가의 칼럼은 매월 셋째 주 더뮤지컬 웹사이트를 통해 연재됩니다.
지난 2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2023년 총결산이 발표되자 ‘영화계의 총매출액을 넘어선’ 공연계의 활황이 여러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 이는 KOPIS 기준으로 데이터 수집이 이루어진 2019년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사건이었다. 2023년 영화계 총매출액 1조2천614억 원을 근소하게 넘긴 1조2천697억 원이라는 수치는 여러 해석을 낳았다. 가장 상식적인 수준에서 영화계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오지 못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해석이 반복되었으며, 이에 반해 공연은 대중음악과 뮤지컬이 전체 공연시장의 45.4%와 36.2%를 차지하며 쌍끌이 흥행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것들
하지만 보도 속 수치가 말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이번 KOPIS 결산에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2023년 1월부터 공연예술 분야에 새로 포함시킨 ‘대중예술’ 영역, 즉 대중음악, 대중무용, 서커스/마술이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만약 이 세 장르를 제외한다면 총매출액은 6천489억 원으로 줄어든다. 물론 이는 전년 대비 15.5%가 증가한 수치이고 뮤지컬은 4천590억 원으로 8%의 성장을 보이며 부동의 1위를 차지했지만, 이 수치가 전년도에 비해 크게 드라마틱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뮤지컬로만 관점을 좁히면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2023년 공연예술 전체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작품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서울)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서울)은 2023년 7월부터 11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샤롯데씨어터에서 VIP석 19만 원, R석 16만 원으로 공연되었다. 따라서 <오페라의 유령>의 흥행은 매출의 중요 변수인 공연 기간, 극장 규모, 티켓 가격이 전부 맥시멈으로 세팅된 상태에서 도출된 결과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훌륭한 기획으로 공연된 <오페라의 유령>이기 때문에 이뤄낸 성과라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현 상황이 향후 뮤지컬 업계에 미칠 파장을 생각해 보면, 좀 더 세심한 관점이 필요하다.
뮤지컬 티켓 가격 이슈와 그 영향
현재 티켓 가격 이슈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한국 뮤지컬 티켓 가격은 2018년에 대극장 기준 VIP석 15만 원으로 상향 유지되다가 2022년 16만 원에서 2023년 19만 원까지 또다시 상향 조정되었다. 대학로 공연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600석 정원 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을 보려면 VIP석 기준 8만8천 원을 내야 한다. 이는 팬들의 관극 패턴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동안 ‘N차 관극’으로 한국 뮤지컬 시장을 지탱해 온 충성도 높은 팬들이 작품당 ‘머스트 씨(MUST SEE)’ 회차를 선택하여 관극을 줄이며 공연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코어 관객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관람 패턴 변화는 배우의 티켓 파워를 한층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 현상은 특정 배우 중심의 시장 특성을 더 강화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 기존 배우 풀을 좁히고 지금보다 더 신인 등용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대극장은 오디션을 통한 캐스팅 대신 이미 팬덤을 소유하고 있는 타 장르 아티스트들을 더욱 흡수할 것이며 중소극장에서는 기존 배우들의 여러 작품 동시 출연이 더욱 불가피해질 것이다. 혹자는 배우가 최전방에 놓이는 소비자 맞춤형 공연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출연할 수 있는 배우가 소수 인원으로 고착되어 캐스팅에 난항을 겪는다면? 티켓을 잘 파는 소수의 배우가 겹치기 혹은 그 이상의 동시 출연을 하는 것으로 시장이 유지된다면? 아마 시장은 금방 노쇠해지고 관객은 공연이 지겨워질 것이다. 배우 역시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르기 전에 바로 다음 공연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지쳐갈 수 있다.
문제는 이 현상이 그럴 법한 미래에 대한 가정이 아니라, 현재 관찰되는 징후라는 점이다.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은 특정 배우만의 이슈가 아니라 현재 업계 전체의 이슈로 다뤄질 수 있을 만큼 보편화되어 있다. 대학로 뮤지컬들은 배우들의 겹치기 (혹은 그 이상의) 출연이 아니면 공연을 유지하기 어려워 보이며, 배우들 역시 겹치기 출연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겹치기 출연은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에 원인을 둔다. 배우에게는 바로 다음 작품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며, 제작사는 반드시 ‘그 배우’를 캐스팅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보통 업계에서는 전체 티켓의 70퍼센트가 소진되는 순간부터 ‘괜찮은 흥행’이라고 판단하는데, 제작사에게 ‘그 배우’는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관객이 ‘감안하고 떠안아야’ 할 필요는 없다. 캐스팅도, 기획도, 넘버와 서사의 ‘느낌’도, 공연의 결도 비슷비슷한 소위 ‘양산형’ 공연, 캐스팅이 쿼드러플까지 확장되는 공연들이 너무나 많다. 배우들이 이리저리 불려다니듯 공연하는 모양새를 언제나 행복한 눈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제작사는 어떨까? 티켓 가격 이슈에 누구보다도 민감한 주체는 제작사다. 제작사가 티켓 가격을 올리는 데에는 특히 인건비와 제작비의 전반적인 상승이 최종 가격에 반영되었을 것이라 판단된다. 물가 상승률에 따라 티켓 가격을 올려야 하지만 1~2만 원의 상승조차 업계의 흐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제작사들 역시 쉽게 결정하고 실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배우 캐스팅 역시 마찬가지다. 티켓 가격을 올린 만큼 관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배우들을 나름의 시선으로 발굴하고 캐스팅한 결과가 ‘쿼드러플’로 나타난 것일 수 있다.
새로운 기획이 필요하다
따라서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티켓 가격은 향후 계속 오를 전망이고 이대로 간다면 관객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쌓일 것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온 관객들은 공연 퀄리티에 예민해져 조금의 실수에도 문제를 제기할 것이며 나름의 기준을 정해 일부 환불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관객과 제작사 사이의 팽팽한 ‘대결’ 구도가 업계의 분위기와 뮤지컬 신의 활력을 갉아먹을 것이라는 전망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만약 이런 태도를 보이는 팬들을 그저 ‘광신자’의 관점으로만 대한다면 상황은 해결될 수 없다(‘팬(fan)’은 광신자(fanatic)라는 단어에서 파생한 것으로 1884년 야구 행사 기획자인 테드 설리번이 만든 것이다).
팬들은 ‘지각된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다.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 가치에 기꺼이 돈과 열정과 체력을 쏟아붓는 사람들이다. 진심으로 뮤지컬을 사랑하는 팬들은 배우를 넘어서 작품에 대한 애호로, 때로는 뮤지컬 신에 대한 애정으로 N차 관극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한 공연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캐스트 조합을 모두 소비하며 작품을 음미하고 해석하며 즐거워한다. 따라서 팬들이 ‘지각된 가치’에 의해 폭넓은 소비가 가능하도록 프로덕션별 전체 예산을 유지하는 선에서 탄력적 가격(flexible price) 도입이 적극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과감한 학생 할인이나 당일 취소표 할인 티켓 제도, 혹은 배우 회차별 티켓 차등 정책도 가능하다. 냉정한 제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오히려 신인 배우 등용에 부담을 낮추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세심한 관객 분석에 따른 다양한 부대 서비스와 공연 맞춤형 MD 사업 다각화가 모색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AI를 적극 도입하여 이 모든 상황에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에 선행하는 것은 결국 작품이다. 그리고 한 편의 공연에 최선을 다하는 모두의 마인드다. 본질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여 신의 활황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