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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지금 여기, 희망이 시작되는 곳…뮤지컬 <여기, 피화당>

글 |이솔희 사진 |홍컴퍼니 2024-02-29 1,422

 

피화당. 깊고 어두운 동굴에 몸을 숨긴 세 여성은 그곳의 이름을 피화당이라 짓는다. 화를 피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사람들 눈에 띄어 목숨을 잃느니 차라리 산짐승에게 죽는 편이 낫다고 씁쓸히 자조할 만큼 그들에게 삶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정절을 잃었다는 이유로 손가락질받고 시댁에서 버려진 가은비와 매화, 그리고 계화. 피화당에 모여 사는 이 세 사람의 유일한 버팀목은 글이다. 가은비는 대중이 좋아하는 사랑 이야기를 쓰고, 매화는 이 글을 저잣거리에 팔아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백성보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사대부를 비판하는 글을 써달라 부탁하는 선비 후량을 만나고, 세 사람은 자신의 울분과 희망을 담은 글을 쓴 뒤 이 글에 ‘박씨전’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뮤지컬 <여기,피화당>은 작자 미상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웅 소설 ‘박씨전’의 작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으로, 제8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라흐 헤스트>로 극본상을 받은 김한솔 작가의 작품이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는 고전 소설 ‘박씨전’은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여성 박씨가 오랑캐를 물리치는 모습을 통해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서민들을 위로하고 남성 양반 중심 사회의 어리석음을 꼬집은 글이다. <여기, 피화당>은 ‘박씨전’을 극중극으로 펼쳐내 소설이 지닌 메시지를 현재의 관객에게 다시금 전달하는 것은 물론, 희망과 용기, 연대라는 작품의 키워드에 힘을 싣는다. 

 

 

‘피화당’은 ‘박씨전’에서 남편 이시백에게 천대받던 박씨가 홀로 외로움을 견디던 장소였다. 그러나 <여기, 피화당>은 피화당을 세 여성이 함께 지내는 공간으로 설정하고, 그 안에서 서로 의지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내 여성 연대의 의미를 강조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가은비, 매화, 계화가 함께 ‘박씨전’을 완성하는 넘버인 ‘박씨전 세 번째 이야기: 이야기 속의 나, 우리’ 장면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인다. 번갈아 가며 붓을 잡아 글을 써내려 가는 세 사람의 모습을 통해 ‘박씨전’이 단지 가은비 혼자 쓴 글이 아니라 세 여성이 힘을 합쳐 쓴 글임을, 더 나아가 핍박받았던 당대 모든 여성의 바람과 염원이 담긴 글임을 보여준다. 동굴 속에 숨어 살아야 하는 현실과 달리, 오랑캐와 맞서 싸우며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박씨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이야기 속의 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세 사람의 울부짖음은 고통스럽지만, 그 안에는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삶의 의지가 담겨 있다. 

 

세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 비록 아무도 자신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이야기만은 널리 퍼져 후대가 그들의 사연을 기억해 줄 것이라는 희망. 수백 년 전 수 없이 많은 여성이 품었던 그 간절한 희망은 지금 여기의 무대 위에서 찬란하게 피어나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또 다른 희망의 씨앗을 심는다. <여기, 피화당>은 4월 14일까지 대학로 플러스씨어터에서 공연된다.

 


 

 

공연 예매는? 예스24 티켓에서! http://ticket.yes24.com/perf/48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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