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라는 직업을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어요.”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이 순간의 무대에 집중하고 싶다고, 한 인물로서 돋보이려고 욕심을 부리기보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오롯이 해내고 싶다고, 그리하여 무대 위에서 거짓 없이 진실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하는 배우. 2021년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모두의 주목 속에 데뷔한 후에도 들뜨지 않고 묵묵히 경험치를 쌓아 올리고 있는 배우 황휘다.
어렸을 때부터 유독 남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것을 좋아했던 황휘는 진로를 고민하다가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사람들에게 웃음은 물론 기쁨, 슬픔,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뮤지컬배우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연기와 노래, 춤까지 한 번에 소화해야 하는 뮤지컬배우는 황휘에게 그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뮤지컬배우의 길로 이끌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큰 욕심 없이 지원한 뮤지컬과에 덜컥 합격해 버린 것이다. 뮤지컬과 입학 후에도 뮤지컬은 그저 딴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해 연기 연습에만 집중하던 그는 ‘졸업 전에 한 번은 뮤지컬 무대에 서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졸업 공연으로 뮤지컬에 참여했는데, 이 경험이 황휘에게 뮤지컬의 재미를 알려주었다. “음악으로 인물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뮤지컬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본격적으로 꾸게 된 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의 데뷔작은 2021년 공연된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다. 조정석, 김무열, 강하늘 등 많은 스타가 거쳐 간 작품이자 국내에서 10년 만에 공연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은 이 작품에서 황휘는 1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멜키어 역에 발탁됐다. 멜키어 역에 신인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 퍼지자 단숨에 그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데뷔와 동시에 쏟아지는 관심에 우쭐할 법도 한데, 그때 황휘는 그저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단다. “원래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은 편이라 처음 오디션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오히려 덤덤했어요.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고, 처음으로 뮤지컬 무대에 선다는 사실이 체감될수록 기쁘면서도 불안해지더라고요. ‘내가 이 작품에 누가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때문에요. 그래서 제 머릿속에는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어떻게든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지난 2년간 그는 총 다섯 편의 뮤지컬로 관객을 만났다. 데뷔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수많은 캐스팅 제안이 들어온 것에 비하면 출연작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이는 황휘가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한 증거다. “무리해서 작품을 소화하기보다 우선 배우로서 방향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조금 느릴지언정 오래오래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작품을 마치고 나면 그 작품에서 배운 점을 곱씹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어요. 그런 시간을 통해 배우로서 조금씩 성장한 것 같아요.” 황휘가 이번에 만난 작품은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네 남매가 잃어버린 기억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 <블랙메리포핀스>다. 황휘는 2021년에 이어 다시 한번 네 남매의 둘째이자 예민한 성정을 지닌 화가 헤르만을 연기한다. “지난 시즌에 참여했을 때는 <스프링 어웨이크닝> 공연을 마친 직후인 데다가 연습 기간도 짧아서 마음에 여유가 없었어요. 헤르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늘 남아있었는데, 이렇게 <블랙메리포핀스>를 다시 만나게 돼서 정말 행복해요.” 지난 2년간 <쓰릴 미>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 등의 작품으로 실력을 쌓아 올린 황휘가 이번 시즌에 보여줄 헤르만은 어떤 모습일까? “과거와 현재,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작품이잖아요. 계속해서 변하는 시간과 의식의 흐름 속에서도 헤르만의 내면이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표현하는 게 제 목표예요. 또 한스, 안나, 요나스, 메리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진실하게 반응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황휘. 그 길 위에서 그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가 발견한 해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무대 위의 시간만큼 무대 아래의 시간도 잘 돌보려고 해요. 맛있는 것도 챙겨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고, 날씨 좋은 날에는 자전거도 타고…. 이런 사소한 것들이 저를 행복하게 만들더라고요. 얼마 전에 문득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게 뭘까?’ 고민한 적이 있는데, 사랑과 낭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삶을 충분히 사랑하고, 하루하루를 낭만적인 일들로 채우면 행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믿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8호 2023년 10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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