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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새롭게 써 내려갈 이야기 - <인사이드 윌리엄> 이아름솔 [No.229]

글 |이솔희 사진 |맹민화 2023-10-20 2,116

 

<인사이드 윌리엄>은 셰익스피어 작품 속 주인공들이 원고를 빠져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써 내려간다는 유쾌한 상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이아름솔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나서는 줄리엣을 연기한다. 오랜 시간 갈고닦은 실력을 발판 삼아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10년 차 배우, 이아름솔이 써 내려갈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작고 반짝이는 순간을 찾아 

2021년 <하데스타운>으로 이름을 알린 후 2022년 <실비아, 살다> 초연을 시작으로 최근 <프리다> <인사이드 윌리엄>까지 쉴 틈 없이 무대에 섰어요. 누구보다 바쁘게 1년을 보낸 소감이 어때요?
진심으로, 정말 행복했어요. 쉬는 날 없이 일하는 날이 오다니!(웃음) <하데스타운>에 출연하기 전에는 1년에 많아야 한두 작품을 소화했으니 공연하는 날보다 쉬는 날이 많을 때도 있었거든요. 부지런히 일하는 동료 배우들을 보면서 ‘나도 쉬지 않고 일하고 싶다’고 바란 적이 있는데 그게 현실이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그래서 몸은 피곤할지언정 누구보다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늘어난 것도 감사해요. 아무 조건 없이 시간과 마음을 들여서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 응원 덕분에 더욱 행복한 나날이에요.

 

<프리다>와 <인사이드 윌리엄> 두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어요.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을 다룬 <프리다>에서 죽음을 의인화한 데스티노 역을 맡았죠? 
설정상 ‘죽음’이지만 프리다에게 ‘그래도 너는 살아야 해’라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냥 무서운 존재나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데스티노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때로는 매혹적으로, 때로는 장난스럽게, 때로는 능청맞게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앞으로 공연이 2주 정도 남았는데, 마지막까지 데스티노의 다채로운 면을 잘 표현하고 싶어요. 

 

<인사이드 윌리엄>에서는 원고 밖으로 나와 진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당차고 쾌활한 줄리엣을 연기해요. 성격이 다른 두 인물을 동시에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었나요? 
<인사이드 윌리엄> 연습 초반에는 부담감이 컸어요. 줄리엣은 데스티노와 겹치는 모습이 거의 없어서 두 인물을 번갈아 가며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했죠. 그런데 <프리다> 공연과 <인사이드 윌리엄> 연습을 거듭할수록 두 인물이 정반대여서 오히려 어려움 없이 각 캐릭터를 소화하겠다 싶더라고요. 두 인물의 감정이 극과 극이다 보니, 제 안에 있는 모든 감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래서 두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는 지금은 모든 감정이 자연스럽게 순환되고 있다고 느껴요. 

 

<인사이드 윌리엄>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어요? 
2021년 <인사이드 윌리엄> 초연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제작사인 연극열전이 작품을 고르는 안목에 대한 믿음도 있었고요. 그래서 연극열전으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는 이미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 상태였죠. (웃음) 처음에는 셰익스피어 역을 제안하셨어요.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작품의 중심이 되는 역할이자 농익은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역할이라 제가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 판단하고 아쉽지만 고사했어요. 그랬더니 얼마 후에 다시 ‘그럼 줄리엣은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줄리엣의 입장에서 대본을 한 번 더 읽었는데, 줄리엣의 대사 한 문장이 유독 제 마음을 건드리더라고요. “그냥 나의 이야기요. 줄리엣의 이야기.”라는 대사였어요. 『로미오와 줄리엣』 속 줄리엣이 아닌 그냥 나로서 살고 싶다는 의미인데 그 대사의 첫인상이 굉장히 강렬해서 참여하게 됐어요. 

 

<인사이드 윌리엄> 속 줄리엣은 우리가 생각하는 줄리엣과 다르잖아요. 색다른 줄리엣을 연기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가장 이아름솔다운 줄리엣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을 가장 먼저 했어요. 그래서 저의 이상향을 인물에 녹여내고자 했죠. 용기 있고, 당차고, 모험심과 도전 의식이 있는 그런 인물이요. 어린 시절의 저는 무슨 일이든 ‘일단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과감하게 도전하는 아이였거든요. 그런데 30대가 된 후에는 새로운 일을 할 때 겁부터 먹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린 시절의 도전 의식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줄리엣을 만나면서 저도 다시 과감하게 도전하고, 부딪쳐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인사이드 윌리엄>은 타인이 써주는 결말이 아닌 스스로가 원하는 결말을 찾아 나서는 인물을 통해 관객에게 위로를 안겨줘요. 아름솔 씨에게 가장 마음 깊이 다가온 장면이 있다면요?
줄리엣이 공연 후반부에 부르는 노래 중 ‘그렇게 오늘을’이라는 곡이 있는데 연습 중에 이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펑펑 흘린 적이 있어요. “내가 선택한 삶이 매일매일의 반복이라 해도 그 반복 속에서 작고 반짝이는 순간들을 찾으며 그렇게 오늘을 살아볼게.”라는 가사를 부르는데 그동안 살아온 삶과 작별하고 다가올 새로운 삶을 멋지게 살아갈 줄리엣의 모습이 눈앞에 보여서 울컥했어요. 그다음 장면에서는 줄리엣과 햄릿이 자신들의 이름을 직접 정해보자는 대화를 나누는데, 줄리엣은 “난 그냥 조금 더 이름 없이 살아볼래.”라고 말해요. 그렇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줄리엣의 선택이 마음에 계속 남았어요. 

 

 

 

 

흔들림 없는 발걸음 

결국 <인사이드 윌리엄>은 내 삶의 중심에는 내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작품이잖아요. 아름솔 씨는 삶의 중심에 자기 자신이 있나요?
그러려고 노력 중이에요. 저도 줄리엣처럼 내가 나로서 올곧게 서있는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리 타인에게 인정받더라도 내가 인생의 주체가 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전히 제 삶에 대해 고민이 많고, 제 선택을 후회할 때도 있지만 그런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성장한다고 믿어요. 그렇게 성장하다 보면 언젠가 제 삶의 중심에 제가 굳건하게 서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아름솔 씨의 삶을 한 편의 이야기로 써 내려갈 수 있다면, 어떤 내용을 담고 싶어요?
질문을 듣자마자 모든 것이 풍족한 상태에서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가 먼저 떠올랐어요. (웃음) 그런데 저는 인간은 고난과 시련 없이 성장할 수 없다고 믿거든요. 그러니까 이겨낼 수 있는 정도의 적당한 시련은 등장해야 할 것 같아요. 건강한 자아를 가진 주인공이 시련을 이겨내고 성장해서 행복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2014년 <셜록홈즈2: 블러디 게임>으로 데뷔했으니 곧 데뷔 10주년이에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나는 운이 되게 좋았구나. (웃음) 실제로 얼마 전에 친구한테도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좋은 작품을 만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회사를 만났으니까요.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니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이때 이 작품을 하지 않았다면? 이 작품에서 이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때 이 오디션을 보지 못했다면? 그런 가정을 거듭하다 보니 ‘무대에 꾸준히 설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운이 좋았기 때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데뷔 이후로 꾸준히 활동했지만 이름을 알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잖아요. 배우 생활을 하면서 흔들리는 순간은 없었어요? 
흔들렸다기보다는 그냥… 조금 힘든 정도였던 것 같아요. ‘무대에 서고 싶은데 기회가 없어서 힘드네’ 정도의 마음이었지,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마음이 흔들렸던 적은 없어요. 처음 뮤지컬을 보고 뮤지컬배우를 꿈꾼 이후로 다른 삶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제가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기도 하고요. (웃음)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요즘은 그저 계속해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그렇게 흔들림 없이 뮤지컬배우의 길을 걸어왔다니. 처음 무대를 꿈꾸게 된 계기가 궁금해지는데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제 진로에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어떤 일을 하고 싶어?”라고 계속 물어봐 주셨고요. 그래서 저도 스스로에게 ‘난 뭐가 하고 싶지? 뭘 좋아하지?’라는 질문을 자주 했어요.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알타 보이즈>를 보고 처음으로 뮤지컬배우를 꿈꾸게 됐어요. 그길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뮤지컬을 가르치는 ‘SK해피뮤지컬스쿨’에 들어갔죠. 그 이후로도 꾸준하게 노래와 연기를 연습하는 등 뮤지컬배우가 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어요. 대학을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고요. 

 

<인사이드 윌리엄> 속 햄릿의 대사를 빌려 질문할게요. 아름솔 씨는 뭘 할 때 행복해요?
무대에 서있는 모든 순간이 행복해요. 무대는 제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거든요. 그런데 요즘 작품을 연이어 하면서 체력적으로 지치니까 덩달아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럴 때 ‘너 지금 행복하니?’라고 스스로 물어보면서 저 자신을 다독여 주려고 해요. 유독 힘들 때는 팬들이 보내준 편지를 잔뜩 꺼내놓고 읽어봐요. 제 공연 덕분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오히려 제가 그분들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거든요. 그렇게 애정이 가득 담긴 편지를 읽다 보면 저절로 행복해져요. 

 

아름솔 씨는 이제 앞으로 달려갈 일만 남았잖아요. 배우로서 어떤 목표가 있나요? 
무대 위에서 온전히 한 인물로 살아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무대에서 살아있다는 게 굉장히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배우에게는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캐릭터로서 내가 누구이고 여기가 어디인지,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이해해야 무대 위에서 살아있을 수 있어요. 

 

배우가 아닌 인간으로서, 가까운 미래에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요.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그게 뭐든 간에 주변에 많이 나누고 싶어요. 사실 이런 꿈을 꾸게 된 데는 팬들의 영향이 커요. 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닮고 싶더라고요. 얼마 전에 제 생일을 맞아 팬들이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감동받았어요. 저도 사랑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받은 사랑을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8호 2023년 10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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