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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팝 음악으로 새롭게 쓰는 동화 -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 [No.228]

글 |여태은(뉴욕 통신원) 사진 |Sara Krulwich, Matthew Murphy 2023-10-18 1,193

팝 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로 만들어진 주크박스 뮤지컬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은 페미니즘이라는 렌즈를 통해 동화를 다시 보고 동화 속 인물과 설정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하여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여성성’이라는 환상에 반기를 들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동화의 체제를 전복한다. 

 

 

ⓒ Sara Krulwich

 

 

동화 속 공주들의 반란


객석 통로로 걸어 들어온 소녀가 무대에서 동화책을 읽기 시작하면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의 막이 오른다. 동화 속 공주들은 소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골라 주길 바라지만 행운의 주인공은 단 한 명뿐이다. 소녀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고르자 동화 나라 사람들은 내레이터의 진두지휘 아래 동화 속 장면을 연기한다. 소녀가 챠밍 왕자와 신데렐라가 재회하는 장면에서 잠들고 바쁘게 돌아가던 동화 나라의 하루도 마무리된다. 하지만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신데렐라만은 예외다. 챠밍 왕자는 신데렐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마술쇼까지 보여주지만, 정작 그녀의 고민은 공감하지 못한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구심에 답답한 신데렐라 앞에 오리지널 요정 대모The O.F.G가 나타난다. 요정 대모는 신데렐라가 가진 의구심을 해결해 줄 책이라며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를 건네주고 사라진다. 신데렐라가 책에 푹 빠져든 그때, 계모와 이복 언니들이 나타나 책을 빼앗아 무도회장으로 떠난다. ‘두루마리 독서 클럽’에서 동화 속 공주들과 함께 책을 읽고 싶었던 신데렐라는 책을 돌려받으려고 가장 친구인 백설 공주와 함께 무도회가 열리는 챠밍 왕자의 성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신데렐라는 백설 공주의 왕자님과 자신의 챠밍 왕자가 동일 인물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한다. 설상가상으로 챠밍 왕자가 모든 동화 속의 왕자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는 진실도 알게 된다. 신데렐라는 내레이터에게 왜 자신과 공주들을 속였냐고 묻지만, 내레이터는 목소리를 낮추고 얌전하고 예쁘게 말하라고 다그칠 뿐이다. 동화 나라의 진실에 실망한 신데렐라와 공주들 앞에 요정 대모가 다시 나타나 베티 프리단의 책을 나눠준다. 공주들과 책의 메시지를 나눈 신데렐라는 더 나은 대우를 요구하며 파업을 하자고 설득한다. 


신데렐라의 계모는 이 틈에 동화 속 공주들을 없애고 자기 딸들을 공주로 만들기 위해 내레이터를 부추긴다. 하지만 계모의 계략에 자극받은 내레이터가 공주들뿐만 아니라 계모의 딸까지 사라지게 만든다. 신데렐라는 공주들을 사라지게 만들고, 동화를 읽는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며 자책한다. 이때 소녀가 나타나 성장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고, 성장하면서 작아진 신발은 새 신발로 바꾸면 된다며 신데렐라를 위로한다. 소녀의 위로에 힘을 얻은 신데렐라는 동화처럼 챠밍 왕자와 결혼하든지 아니면 사라질지 결정하라고 윽박지르는 내레이터 앞에서 유리 구두를 깨버린다. 이로써 모두를 사라지게 한 내레이터의 마법이 풀리고 공주들과 이복 언니들이 돌아온다. 새롭게 쓰인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더 좋다는 소녀의 말에 내레이터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공주들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써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신데렐라는 우리 이야기는 스스로 써 내려 가겠다고 선언하고, 등장인물 모두가 깃털 펜을 든 채 막이 내린다.

 

 

Matthew Murphy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음악과 동화의 만남


작품의 제목이자 공연의 막을 여는 오프닝곡의 제목인 ‘Once Upon A One More Time’은 1998년 발표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데뷔곡 ‘...Baby One More Time’에 동화 첫머리에 자주 등장하는 ‘옛날 옛적에’라는 뜻의 ‘Once Upon a Time’을 섞어 만들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점과 작품의 배경이 동화 나라라는 점을 잘 살린 제목이다. 


주크박스 뮤지컬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의 여정은 작품의 리드 프로듀서인 제임스 L. 네더랜더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추진하며 시작됐다. 제임스 L. 네더랜더는 앞서 두 차례 주크박스 뮤지컬을 제작한 경험이 있었다. 하나는 싱어송라이터 빌리 조엘의 음악으로 만든 <무빙 아웃>이고, 다른 하나는 쿠바 출신의 부부 음악가 글로리아 에스테만과 에밀리오 에스테만의 이야기를 그린 <온 유어 핏>다. 두 작품을 성공적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린 제임스 L. 네더랜드는 다음 프로젝트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선택했고, 직접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만나 주크박스 뮤지컬 제작 계획을 전달했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가수의 개인적인 삶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의 제작진과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이와 같은 관행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동화 속 공주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베어 더 뮤지컬>의 작가 존 하트미어가 합류하면서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의 작품 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의 주인공은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아니고 그녀의 삶을 모티프로 삼지 않았지만 작품 속은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많다. 스타덤에 올라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자유롭지 못했던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동화 속 공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스스로 자신을 얽매고 있던 속박을 벗어던지는 신데렐라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2008년부터 아버지가 신청한 성년후견인 제도에 묶여 자기 의사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녀는 2014년부터 꾸준히 성년후견인 제도가 부당하다며 아버지의 후견인 권한을 중단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고, 마침내 2022년 성년후견인 제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은 이미 원곡자에게 음악 저작권을 획득했지만,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킨 아티스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따로 계약을 맺었다. 이는 성년후견인 제도가 종료된 직후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직접 맺은 계약 중 하나였다.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은 2019년 초연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초연을 연기했다. 이후 2021년 워싱턴 D.C에서 초연 공연을 올린 후 2023년 6월 브로드웨이 마퀴스 시어터에서 정식 개막했다. 

 

 

ⓒ Matthew Murphy

 

 

눈을 사로잡는 독창적인 안무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에는 'Lucky' 'Oops!...I Did It Again' 'Toxic' 등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대표곡 20여 곡이 등장한다. 극에서 노래를 사용한 타이밍이나 편곡은 호불호가 나뉘지만, 안무만큼은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 대부분이 댄스곡이기에 공연 내내 파워풀한 안무를 감상할 수 있다. 안무는 기존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는 보기 힘든 힙합 댄스, 브레이크 댄스, 아크로바틱 댄스 등을 주로 활용했다. 오리지널 안무를 활용한 'Oops!...I Did It Again'을 제외한 작품 속 모든 안무는 키오니 마드리드와 마리 마드리드 부부의 솜씨다. 이들은 저스틴 비버, 빌리 아일리시, BTS 등과 함께 작업한 안무가로, 현란한 손동작이 돋보이는 안무로 유명하다. 이러한 안무 스타일은 작품 속에도 확인할 수 있다. 동작과 동선을 크게 사용하는 일반적인 뮤지컬 안무와 달리,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의 안무는 손과 팔을 이용한 섬세하고 현란한 안무가 단연 돋보인다. 마드리드 부부는 안무와 함께 연출도 겸했다. 이들은 영국 공연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종종 영화 연출도 겸하고 있는 연출가 데이비드 르보의 도움을 받았지만, 뛰어난 안무와 달리 연출은 다소 반복되는 패턴을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게다가 극 중 신데렐라가 의구심을 가졌던 동화 나라의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내 이야기는 내가 써 나갈 거야”라는 개인의 결심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단순한 이야기 전개가 작품에 흠으로 남았다.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은 무대는 최근 웨스트엔트와 브로드웨이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제이미Everybody’s Talking About Jamie> <세일즈맨의 죽음> 등을 작업한 무대 디자이너 안나 플라이슐르와 <퍼레이드>에서 실존 인물들의 사진과 실제 자료를 기반으로 한 영상을 선보인 영상 디자이너 스벤 오텔이 참여했다. 무대 뒤에 LED 스크린을 설치해 다양한 장면을 구현하는데, 스벤 오텔은 다양한 영상 효과로 동화 나라의 아기자기한 모습부터 어두운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계모와 내레이터가 공주들을 사라지게 하는 장면은 영상과 함께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배우들의 몸짓이 더해져 기괴하고 섬뜩하게 완성되어 시종일관 가벼웠던 작품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반전시키며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의상 사용도 흥미롭다. 작품 속에는 동화 속의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데 의상만 보고 어떤 동화에 나오는 누구인지 추측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의 의상은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의상 디자이너 로렌 엘스타인의 작품이다. 1막에서 평범한 공주 옷을 입은 공주들은 새로운 진실을 깨닫고 2막에서 파격적인 의상으로 갈아입는다. 그중에서도 1막 후반에 신데렐라가 무대 중앙에서 의상을 갈아입는 순간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 퀵 체인지는 ‘Piece of Me’ 넘버에서 눈 깜짝할 새에 이루어진다. 청소 중에 입고 있던 옷을 찢어 던지는 순간 반짝이는 비즈로 장식한 하늘색 바디 수트가 드러나는데, 마치 히어로 영화의 변신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 Matthew Murphy

 

 

페미니즘으로 다시 보는 동화


극 중 요정 대모가 공주들에게 전하는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는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사회가 ‘여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여성들을 억압하는지 밝혀내며 직장에서의 성차별 폐지와 임신중단권 운동,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 운동, 여성의 권리 향상 운동 등을 펼친 2세대 페미니즘을 촉발했다. 이 책이 극 중 공주들의 삶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처럼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은 페미니즘의 렌즈로 동화를 새롭게 보는 것은 물론 여성들이 받고 있는 부당한 처우를 환기한다.


신데렐라는 챠밍 왕자에게 자신들의 역할과 존재에 대해 깊은 고민을 나누자며 함께 책을 읽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챠밍 왕자는 자신은 책을 읽으려고 돈을 받는 게 아니라며 한사코 거절한다. 이 장면은 돈 한 푼 받지 않은 채 동화 속 주인공 역할에 충실한 신데렐라와 달리 챠밍 왕자는 돈을 받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면서 노동 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여성의 모습을 암시한다. 또 독서 클럽에서 공주들이 나누는 대화는 동화의 문제점을 제기함과 동시에 현시대와 동떨어진 설정을 꼬집는다. 공주들은 인어공주가 왕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을 과연 로맨틱하다고 할 수 있는지, 왜 공주들은 당연히 백인이라고 단정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극 중에서 백설 공주와 라푼젤은 흑인 배우가 연기한다) 그리고 챠밍 왕자가 다른 동화의 왕자 역할을 겸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신데렐라가 내레이터에게 설명을 요구하자 내레이터는 오히려 히스테리를 부리지 말고 예쁘게 말하라며 다그친다. 내레이터의 말은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모습이자, 모든 여성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잔소리다. 이런 장면에서 여성 관객들은 환호를 쏟아내며 호응했다. 


극 중 내레이터는 동화를 가리켜 ‘아이들의 북극성(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길잡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은 우리가 읽었던 동화가 삶의 길잡이가 될 만한가를 되묻는다. 작품은 결국 사회가 원하는 여성의 틀에 갇히지 말고, 자신 내면의 소리를 따라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원스 어폰 어 원 모어 타임>는 독특한 소재와 구성에도 불구하고 연출이나 극작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겼지만, 여성들이 직접 자기 인생을 개척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더 나아가 다음 세대 여성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8호 2023년 9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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