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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REATIVE MINDS] <레드슈즈> 김채린 작가·류찬 작곡가 [NO.128]

글 |이민선 사진 |심주호 2014-05-07 6,127
새로운 스타일의 무대를 꿈꾸며
과거 무용을 했고 소설가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해온 김채린 작가와, 학창 시절 오케스트라 및 밴드 활동 등으로 음악에 대한 애정을 이어오다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창작과에 진학한 류찬 작곡가에게 무대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한번 신으면 춤추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동화 속 ‘빨간 구두’의 이미지를 차용해 무용극을 만들어보려는 시도가 뮤지컬 <레드슈즈>로 거듭났다. 
※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는 신인 창작자들에게 작품 개발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선보이는 프로그램입니다.





<작품 소개>
근대 문물이 유입되던 시기의 경성,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와 예술에 눈뜨기 시작한다. 무용 공연인 <레드슈즈>의 주인공인 혜인은 현대적인 춤으로 대중들의 스타가 되었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의 춤이 정치적으로만 이용되는 데 괴로워하고 있다. 낮은 신분의 조선인이지만 자수성가하여 조선총독부 부장의 위치에 오른 마모루는 혜인과 서로 마음을 나누고 있지만, 그녀의 진보적인 생각에 동조할 수는 없다. 마음껏 예술의 꿈을 펼치고 싶은 혜인은 <레드슈즈>에서 벗어나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혜인을 동경하고 마모루에게 호감을 느꼈던 신입 무용수 자경이 우연히 이를 지켜보게 된다. 혜인이 떠난 후 <레드슈즈>의 주인공은 자경의 몫이 된다. 자경 역시 혜인처럼 점점 더 큰 꿈을 꾸게 되지만, 그녀의 발은 <레드슈즈>에만 묶여 있다. 혼란의 시대, 세 남녀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쓰러져간다.






글을 쓰고 곡을 만드는 일은 과거에도 했겠지만, 뮤지컬 작업은 처음이다. 무대에 오른 걸 본 소감은? 
류찬    상상만 했던 것들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져서 정말 좋았다. 연출가와 음악감독 등 다른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하면서, 그동안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가능성이 열려서 재밌었다. 부딪치는 부분도 있었지만 시너지 효과가 났다. 음악은 사실 내가 해보고 싶은 대로 썼다. 그런데 공연을 위해 악기 편성에 대해 물어오니 답이 없더라. 어떤 곡에선 금관 편성에 트럼펫 세 대가 팡파르를 울리고 어디선 팀파니를 치고,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을 하며 작곡했지만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잖나. 되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 손을 떠나 변희석 음악감독이 편곡하면서 바로 해결됐다. 내가 생각했던 사운드와는 다른데도, 현실적으로 드럼과 일렉 기타, 키보드, 베이스 등 6인조 밴드로 정말 멋있게 편곡된 거다.

음악이 오케스트라 편성에 어울리는 웅장한, 굉장히 ‘뮤지컬 음악스럽다’고 느꼈다.
류찬    내가 멜로디가 기가 막힌 아리아를 잘 쓰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공들여서 화성을 쌓고 여러 파트들이 엮이는 합창곡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앙상블을 보여주는 곡에 더 애착이 간다.
김채린    리딩 공연 후 관객 리뷰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도 오프닝 곡인 ‘꿈꾸는 도시’였다. 이번 뮤지컬 작업에서,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다함께 협업하는 경험 자체가 특별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내 것과 다른 점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둘 다더라. 그런데 첫 대본과 리딩 때 대본은 되게 많이 바뀌었는데, 하나도 안 바뀐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류찬    난 그래서 작가가 되게 센 사람이란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다른 분들의 조언에 따라 많은 부분이 잘려나가고 또 새로 들어왔는데, 리딩 공연을 보니까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모든 배우들이 소리 높여 외치고 있더라. 그런 데서 작가의 저력을 느꼈다. 그렇게 많이 바꿨는데 애초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바뀌지 않고, 저렇게 선명하게 들리다니!

그렇다면 굉장히 발전적으로 수정된 것 아닌가? 작가가 애초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뭔가?
김채린    프로파간다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순수 예술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현실 안에서 누구도 성공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들이 몰락해 가는가, 이 부분은 바꾸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나머지는 어떻게 달라지든 문제되지 않았다. 등장인물과 배경, 비극적인 구성 등은 같다. 처음엔 훨씬 더 어두운 비극이었던 터라 수정을 거치며 좀 더 밝은 부분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뮤지컬 장르에선 드라마가 너무 무거우면 안 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무거운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걸 어떤 방식으로 끌고 가느냐는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수정했다.

그 무거움을 덜어내기 위한 장치로 코믹한 캐릭터들을 등장시켰나?
김채린    주변 인물들의 빛과 그림자 중 밝은 면을 더 강화한다든가, 가벼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을 늘린다든가 했다. 극의 흐름에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풍자적인 모습도 보여주려고 했다. 그게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가 워낙 어둡다보니, 코믹한 장면에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엄청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막상 리딩 공연을 올리고 보니 너무 쉽게 해결되는 거다.
류찬    배우가 너무 잘 살려줬다. ‘이걸 쓸까 말까’ 우리가 왜 그렇게 고민했나 싶을 정도로. (웃음) <레드슈즈>를 본 모든 분들이 배우 임철수를 언급했을 정도니까. 그가 맡은 순덕이라는 캐릭터는 원래 여자였다. 합창곡을 부르려면 최소한 남자 셋 여자 셋, 여섯 명의 배우가 필요했는데, 당시에 남자 배우가 하나 부족했다.
김채린    그래서 내가 ‘이 캐릭터를 남자가 연기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말은 내가 꺼냈지만 암묵적으로 다들 그렇게 했으면 하는 분위기였다. (웃음) 결과적으로 캐릭터가 더욱 생동감 있고 좋아졌다. 여자가 했다면 그저 그렇거나 오히려 진지했을 대사가 남자가 하니까 더욱 재밌어졌다.
류찬    ‘마모루 상에게는 귀족적인 냄새가 나요’ 같은 대사를 여자가 했다면, 마모루는 누구나 좋아하는 캐릭터라 생각하는 데 그쳤을 텐데, 임철수가 말하면서 웃음이 터졌고 극의 무거움을 더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2막에서 쇼스타퍼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썼던 순덕의 솔로 ‘덧없는 세상’도 그 덕에 더없이 효과적이었고.





처음 이 대본은 무용극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김채린    내가 개인적으로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걸 좋아한다. 텅 빈 무대 위의 동그라미 하나, 또는 암전 속의 음악만으로도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하기에 <레드슈즈>는 사건이 많고 극적인데?
김채린    처음에는 구성이 훨씬 단순했고, 음악의 도움으로 상징적인 작품을 만들어 보려 했다. 하지만 뮤지컬은 좀 더 구체적인 플롯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듣고 이야기를 더 많이 넣게 됐다.

하이라이트 시연에 가까운 리딩 공연이었다. 드라마를 축소해 보여주다 보니 생략된 장면이 많은 듯했다. 캐릭터 간의 관계 설정이나 갈등에 대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류찬    그건 연출적 전략이기도 하다. 무용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고, 그것이 캐릭터 설명 및 드라마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번에 무용을 보여줄 수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독회 중심이고, 그것까지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많은 욕심을 냈다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어서, 김달중 연출이 오히려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고, 우리 모두 그에 수긍했다. 우리는 중간 중간의 드라마를 모두 알고 있어서 이해가 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불친절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김채린    심지어 마지막에 누가 죽는지도 정확하게 안 보이니. (웃음)
류찬    ‘우와! 되게 궁금하다’와 ‘이게 대체 뭐야?’로 나뉘는 관객 반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

춤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무용수인 두 여주인공의 존재감도 약해 보였다.
김채린    무용 장면이 빠진 것에 더해, 리딩 공연에서 시각적 연출을 보여주지 못해서 더욱 그럴 것이다. 1막에서 혜인이 죽고 나면 2막에서 혜인은 유령으로 늘 자경의 뒤에 등장한다. 자경이 거울 속 자신을 보는데 혜인이 오버랩 된다든지, 대사나 노래가 아닌 시각적인 연출과 상징으로 드라마를 드러내는 부분이 많다. 리딩 공연의 한계로 그걸 구현하지 못했다.

리딩 공연은 대본과 음악 중심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인데, <레드슈즈>의 경우 무용과 시각적 연출을 염두에 둔 작품이라 독회만으로는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김채린    무대 장르가 매력적인 이유는 장애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애가 말 그대로 장애가 아니라, 그걸 극복한 상상력 넘치는 무대 미술의 원동력이 된다. <레드슈즈>에서 무용이 중요한 요소이지만, 무대 위에서 실제로 무용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무용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시각적 연출이 들어간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무용은 이렇다’ 또는 ‘무용을 소화할 배우가 없다’고 말하는데, 난 춤 실력이 뛰어난 배우가 멋지게 피루엣을 보여주는 장면을 원한 게 아니다. 간단히 손만 올리더라도 춤을 춘다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면 무척 훌륭할 것 같다. 난 낙관적인 성격이라, 그렇게 잘 될 것만 같다.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8호 2014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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