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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쏟아지는 질문 속에서...<3일간의 비> 김주헌 [No.227]

글 |최영현 사진 |표기식 2023-08-25 666

연극 <3일간의 비>는 1990년대와 1960년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일기장에서 발견된 짧은 문구 속에 숨겨진 진실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매체와 무대를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 중인 배우 김주헌이 아들 워커와 아버지 네드를 연기한다.
대본을 끈질기게 파고들며 숱한 질문 속에 하나의 답을 찾아낸 김주헌을 만났다.

 

 

 

 

스스로 만족할 만한 배우

 

<낭만닥터 김사부3>가 얼마 전에 종영했어요. 시즌2에 이어 시즌3까지 참여하며 큰 사랑을 받았는데 드라마를 마친 소감이 어때요? 이 드라마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은 터라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낭만닥터 김사부>는 시즌1부터 좋아하던 작품이에요. 스토리도 좋은 데다가 존경하는 선배님들이 출연하는 작품이라 금세 팬이 됐죠. 그런 작품에 두 시즌 연속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저는 이 작품에서 ‘박민국’이라는 아주 큰 선물을 받았어요. 박민국은 시즌2에서 김사부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빌런 아닌 빌런 역할을 담당했어요. 열등감도 크고 성격적인 결함도 있는 인물이었는데, 시즌3에서는 김사부와 돌담병원 사람들 덕분에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고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요. 배우로서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을 두 시즌에 걸쳐 연기할 수 있었던 건 제게는 정말 큰 행운이었어요.

 

워낙 인기 있는 드라마라 시즌4를 기다리는 팬들도 많아요. 시즌4를 기대해도 좋을까요?

시즌1부터 시즌3까지 다음 시즌이 확정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시즌2를 마치고 모두 시즌3가 제작되길 희망했지만 작가님조차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론 시즌3가 방송되었잖아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작품의 팬으로서 꼭 시즌4를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시즌4에 참여해서 의료 현장에서 발로 뛰는 의사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시즌3에서는 병원장으로서 대외적인 업무를 도맡다 보니 의료 현장과 약간 멀어져서 아쉬웠거든요.

 

지난해 하반기부터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중인데 체력 관리는 잘하고 있나요?

확실히 예전보다는 힘이 들어요. (웃음) 촬영 현장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니까 힘든 줄 모르다가 집에 오면 녹초가 될 때가 있어요. 다행히 삼십 대 초반부터 운동을 습관으로 만들어놔서 견딜만해요. 아마 운동을 안 했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거예요.

 

휴식이 필요한 타이밍은 아닌가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하. 작품이 끝나면 항상 쉬어야지 생각해요. 그런데 쉬려고 결심하는 순간 정말 귀신같이 작품 제안이 들어와요. 그때 딱 참아야 쉴 수 있는데 그걸 못 참아요. 저는 연기 욕심이 진짜 많거든요. 여전히 맡고 싶은 역할도 많고요. 그러니까 새로운 작품, 새로운 역할을 지나치지 못하겠더라고요.

 

쉬는 시간이 아까울 만큼 연기 욕심이 큰가 봐요.

데뷔 이후 줄곧 저의 꿈은 연기 잘하는 멋진 배우가 되는 거예요. 나이가 들수록 멋진 배우의 기준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연기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어요. 배우로서 꾸준히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연기에 대한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일이든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야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으니까요.

 

멋진 배우의 기준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어렸을 땐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배우, 성공한 배우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죠. 남의 시선도 중요했으니까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면서 성공의 기준이 좀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성공의 기준이 외부에 있었는데, 지금은 제 안에 있어요. 요즘 저에게 멋진 배우란 나 스스로가 만족하는 배우와 일맥상통해요. 내 눈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결점과 부족함이 다 보이는데 남들 눈에 멋진 배우로 보이는 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나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멋진 배우가 된다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멋진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출연작을 가만히 살펴보면 아무리 못해도 1년에 한 번은 꼭 연극 무대에 서더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역시 연기 욕심 때문인가요?

욕심이라면 욕심이죠. (웃음) 매체 활동을 하면서 연극 무대에 꾸준히 서는 건 연기의 밸런스 때문이에요. 매체와 연극 중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배우로서 제 존재가 위태로워지는 기분이거든요. 외줄 타기랑 비슷해요. 외줄을 타다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바로 떨어지잖아요. 저는 매체와 연극 사이에서 외줄을 타는 셈이에요. 둘 사이에 균형을 잡기 위해서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꼭 무대에 서려고 해요. 그래야 배우로서 균형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배우로서 연극 무대의 매력이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제작 환경이 다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르죠. 그만큼 각기 다른 매력과 장점이 있어요. 연극은 집중도가 높은 게 특징이에요. 완성된 대본을 두고 일정 기간 연습하면서 인물이나 이야기 속으로 아주 깊게 파고들어 가요. 매체와 연극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연습 기간의 유무인 것 같아요.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매일 배우들이 얼굴을 맞댄 채 끊임없이 대화하고 연습하면서 작품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 발견하는 시간이 참 귀해요. 그래서 연극을 할 때는 웬만해서는 다른 일정 없이 연극에만 매진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독백! 제가 연극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독백이에요. 긴 호흡의 대사를 배우가 온전히 가져갈 수 있다는 게 정말 매력적이죠.

 

 

 


질문을 던지는 연극

 

이번에 참여하는 <3일간의 비>는 어떤 작품인가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도망치듯 사라졌던 아들 워커가 유산을 상속받으러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워커가 건축가였던 아버지가 예전에 쓰던 작업실에서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어요. <3일간의 비>를 처음 접했을 때 구성이 흥미로웠어요. 1막에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자녀 세대의 이야기가, 2막은 1960년대를 살았던 부모 세대의 이야기가 펼쳐져요. 이야기가 시간 역순으로 구성되는 바람에 인과 관계도 역전되는 게 재미있어요. 자녀 세대가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원인이 부모 세대의 이야기에서 드러나요. 제목인 ‘3일간의 비’는 워커가 아버지의 일기장에서 발견한 메모에서 따온 거예요. 워커는 일기장을 통해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추측해 보지만 2막에서 드러나는 아버지의 행적은 워커의 추측을 완전히 비껴가요. 이런 의외성이 <3일간의 비>의 매력이죠. 

 

이 작품은 구조뿐만 아니라 배역도 흥미로워요. 세 배우가 출연하는데 모두 1인 2역을 소화하죠? 각기 다른 인물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요.

1막에서는 자녀 세대를, 2막에서는 부모 세대를 연기해요. 저는 1막에서는 워커를, 2막에서는 네드를 연기하는데, 네드는 워커의 아버지예요. 두 인물은 성격이나 서사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연기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어요. 저는 보통 인물을 만들 때 먼저 이 인물이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정해요. 쉽게 말해 워커는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니까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만드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인물의 개성도 쉽게 드러낼 수 있는 데다가 연기의 정당성이 생겨요. 예를 들어 이 친구는 세상을 삐딱하게 보니까 삐딱하게 행동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거든요. 대본을 분석한 후에 저의 상상력을 덧붙여 만드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상상력이 풍부할수록 더 흥미로운 인물이 만들어져요. 그다음에는 인물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하기 위해서 인물에 어울리는 이미지나 음악을 찾아요. 워커는 영화 <아이다호>의 리버 피닉스를 참고했어요. 고독하고 쓸쓸한 이미지가 딱 맞아떨어졌거든요.

 

대본을 읽어봤는데 만만치 않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굉장히 철학적인 작품이거든요. 그리고 작품 속에 숨겨진 메타포가 정말 많아요. 예를 들어 극 중에서 동화 『공주와 완두콩』이 언급되는데, 동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동화의 작가인 안데르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야만 작품의 내용과 연결되는 지점을 찾을 수 있어요. 그 밖에 니체나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도 녹아 있고요. 그래서 본격적인 연습이 들어가기 전에 3주 동안 대본 분석만 했어요. (웃음) 번역 대본을 보다가 아리송한 게 있으면 다시 영문 대본까지 들춰봤어요. 그런데 결론은 ‘정답은 없다’예요. 작가 역시 이 작품은 만드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겨두었거든요. 물론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연출가와 배우들이 어떤 방향은 잡고 가겠지만, 관객이 다양한 방향으로 작품을 본다면 좋을 것 같아요.

 

배경지식을 알고 간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시대적인 배경인 1960년대와 1990년대 미국 사회를 알고 보면 작품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더 볼 수 있겠죠. 하지만 <3일간의 비>는 연극이잖아요. 사실이나 정답을 제시하는 작품이 아니라 생각거리를 던지는 작품이에요. 관객이 작품 속의 메타포를 일일이 분석하며 볼 필요는 없어요. 그저 극장에 와서 연극을 보면 돼요. 공부는 배우의 몫이에요. 배우는 이 대사가 어디서 비롯되어 있는지 알아야만 인물의 행동이나 감정에 설득력이 생기거든요. 그래야 배우의 연기를 보고 관객이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인물의 감정을 얼마나 노출하는 게 좋을지 고민 중이에요. 2막까지 쭉 이어서 연기를 해보니 어떤 장면은 너무 감정을 드러내면 관객의 생각을 방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습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뭐예요?

열심히 작품 분석을 했기 때문에 인물들의 감정이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는지 머리로는 이해했어요. 그런데 막상 연기하면 딱 한 군데가 잘 안 풀리는 거예요. 개막은 다가오는데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야단났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함께 공연하는 (박)정복이와 예전에 <거미여인의 키스>를 할 때도 상당히 애를 먹었던 장면이 하나 있었는데 개막 직전에 기적처럼 풀린 적이 있어요. 이번에도 그때의 기적이 다시 찾아와 주길 간절히 바랐는데, 다행히 며칠 전에 딱 풀려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근데 매 공연마다 원하는 대로 풀릴지 미지수예요. 공연은 다른 배우들과 앙상블이 중요하기 때문에 저 혼자 잘한다고 해서 좋은 공연이 나오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도 한 번 매듭을 풀어봤으니까 남은 기간 동료들과 연습을 통해 더 확실하게 감정을 정리하고 장면을 완성하려고요.

 

<3일간의 비>를 만나러 올 관객 여러분께 한마디 부탁드려요.

초연 때는 조금 더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각색을 많이 했는데 이번 재연은 각색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원작에 가까워졌어요. <3일간의 비>는 쉬운 작품은 아니지만 그래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무대 위에 어떤 사람, 어떤 삶을 통해서 무언가를 얻어 가잖아요. 그게 때로는 기쁨일 수도 있고, 슬픔일 수도 있죠. <3일간의 비>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에요. 어쩌면 그 질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조금 넓어질지도 몰라요. 극장에 오셔서 작품 속에 숨겨진 질문과 답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7호 2023년 8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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