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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혐오 사회에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 <퍼레이드> [No.227]

글 |여태은(뉴욕 통신원) 사진 |Sara Krulwich, Joan Marcus, Joan Marcus ⓒ Sara Krulwich, ⓒ Joan Marcus 2023-08-24 609

ⓒ Sara Krulwich

 

 

올해 토니 어워즈에서 베스트 리바이벌 뮤지컬상을 받은 <퍼레이드>는 1910년대 미국 남부 조지아에서 반유대주의로 인해 벌어진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퍼레이드>는 혐오와 차별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보여주는 한편, 절망 속에서도 희망과 긍지를 놓지 않았던 사람들을 통해 큰 울림을 전한다.

 

 

반유대주의가 빚은 비극

 

<퍼레이드>는 1913년 조지아주의 한 연필 공장에서 일하던 유대인 리오 프랭크가 십 대 소녀를 강간・살해한 혐의로 재판받던 중 납치・살해당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유대계 미국인 리오 프랭크는 연필 공장 관리자로 휴일도 없이 일하며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좀처럼 조지아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의 아내 루실도 타향살이로 인한 외로움과 일에만 몰두하는 남편 때문에 조금씩 지쳐가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은 리오를 공장 직원 메리 페이건의 강간・살해 사건 용의자로 체포한다. 공장 경비원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뉴트 리가 메리의 시신을 발견하고 리오에게 연락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용의자로 지목된 것이다. 어린 소녀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은 지역 사회를 금세 분노로 들끓게 한다. 최대한 빨리 사태를 수습하려는 주지사 존 슬레이튼은 지역 검사 휴 도어시에게 사건 수사를 맡긴다. 차기 주지사 자리를 노리는 휴 도어시는 이 사건을 정치적 입지를 다질 기회로 여기고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여기에 극단적인 반유대주의 출판업자 톰 왓슨과 특종에 눈이 먼 신문 기자 브릿 크레이그는 사람들을 선동해 리오를 범인으로 몰아가기 시작한다. 


재판이 시작되지만 상황은 리오에게 점점 더 불리해진다. 공장 청소부 짐 콘리는 과거 범죄 기록을 지워준다는 검사와 거래를 하고 리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다. 리오의 무죄를 입증해 줄 것으로 예상했던 다른 증인들도 검사의 사주를 받아 거짓 증언을 이어간다. 리오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지만, 결국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리오는 포기하지 않고 항소를 준비하고, 루실은 주지사를 찾아가 사건의 재수사를 요청한다. 주지사 존 슬레이튼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릴 것을 우려해 재수사를 망설이지만, 루실의 간곡한 부탁과 양심의 가책에 못 이겨 결국 재수사에 나선다. 존과 루실은 증인들을 만나 검사의 사주로 거짓 증언을 했다는 진실을 밝혀낸다. 그 결과, 항소심에서 리오는 종신형으로 감형된다. 이에 톰 왓슨이 이끄는 극단주의 우익 세력과 휴 도어시는 시민들을 자극해 폭동을 일으킨다. 분노에 눈먼 몇몇 극단주의자들이 리오를 납치해 폭행하며 죄를 인정하라고 강요하지만, 리오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죽음을 택한다. 

 

 

초연 25년 만에 다시 브로드웨이로


1998년 초연한 <퍼레이드>는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당시 같은 기간 공연된 밥 포시의 <포시>, 메튜 본의 <백조의 호수>, 1946년 브로드웨이 히트작의 리바이벌인 <애니여 총을 잡아라>, 만화 『피너츠』를 원작으로 한 <넌 좋은 사람이야 찰리 브라운> 등의 작품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다. 1999년 토니 어워즈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극본상과 음악상을 받는 데 만족해야 했다. <퍼레이드>의 극작가 알프레드 유리는 1950년대 애틀랜타를 배경으로 유대인 노부인 데이지와 흑인 운전사의 우정을 그린 연극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로 1987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를 시작으로 20세기 초중반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유대인을 주인공으로 한 ‘애틀랜타 3부작’을 선보였다. 두 번째 작품은 1930년대 애틀랜타의 유대인 상류층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 <발리후의 마지막 밤>으로, 1997년 토니 어워즈 연극 부문 작품상을 받았다. 애틀랜타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바로 <퍼레이드>다. 알프레드 유리는 연출가 해롤드 프린스와 함께 작품을 기획하고, 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과 함께 <퍼레이드>를 완성했다.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은 국내에서도 공연된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참여한 작곡가 겸 작사가다. <퍼레이드>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토니 어워즈 음악상을,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로 드라마 데스크 음악상을 받았다. 


<퍼레이드>의 리바이벌 프로덕션은 매년 고전 뮤지컬의 리바이벌 공연을 제작하는 뉴욕 시티 센터 시어터에서 지난 2022년 11월 갈라 콘서트 형식으로 먼저 소개되었다. 이후 <퍼레이드>는 2023년 2월부터 버나드 B. 제이콥스 시어터에서 프리뷰 공연을 시작하고, 3월 정식 개막했다. 평단의 좋은 평가에 힘입어 <퍼레이드>는 일찌감치 유력한 토니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고, 올해 토니 어워즈에서 베스트 리바이벌 뮤지컬상과 연출상을 거머쥐었다.

 

 

ⓒ Joan Marcus

 

 

차별과 갈등을 드러낸 연출과 무대


<퍼레이드>의 배경은 1913년이지만, 첫 장면은 1860년대 남북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전쟁에 참여하는 젊은 남부군 병사가 연인과 이별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50년 후 그가 참전 용사로 메모리얼 데이의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모습이 오프닝곡 안에서 쭉 이어진다. 이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는 남부군의 메모리얼 데이 퍼레이드 행진곡 ‘The Old Red Hills of Home(고향의 오래된 붉은 언덕)’이다. 남북전쟁에 참전하는 청년의 투지를 담은 이 노래를 백인들은 벅찬 감동에 휩싸여 열창하는 동안, 흑인들은 텅 빈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물고 서 있다. 남북전쟁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남부와 북부의 긴장과 인종 간의 갈등을 표현한 것이다. 


<퍼레이드> 리바이벌 프로덕션의 연출은 마이클 아덴이 맡았다. 그는 데프 웨스트 시어터의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원스 온 디스 아일랜드>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프로덕션에서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연출로 호평받은 바 있다. 마이클 아덴의 연출력은 <퍼레이드>에서도 빛났다. 재판 중에 나오는 ‘Come Up to My Office(내 방으로 와)’는 리오가 검사에게 매수된 증인들의 거짓 증언을 재연하며 부르는 곡이다. 이 노래에서 리오는 메리와 다른 소녀들을 말로 유혹하며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조종한다. 또 짐 콘리가 리오를 범인으로 지목하며 부르는 ‘That's What He Said(그가 한 말)’도 리오가 함께 부르는 것으로 연출해 거짓 증언이 당시 사람들의 판단을 어떻게 흐리게 했는지 가늠케 한다. 


<퍼레이드>는 거짓 선동에 진실이 가려지는 상황을 비판하는가 하면, 여전히 계속되는 인종 차별의 문제도 짚는다. 주지사의 흑인 시종들이 부르는 ‘A Rumblin' and a Rollin(우르릉 와르릉)’에서 메리 페이건이 흑인이었다면 이 사건이 이만큼 주목받았을지, 또 리오 프랭크가 흑인이었대도 곧바로 사형당하지 않고 항소할 수 있었을지 자조한다. 또 주지사가 검사 휴 도어시의 사주를 받아 리오를 범인으로 지목한 짐 콘리에게 찾아가 거짓 증언을 번복하라고 부탁하지만 그는 거부한다. 짐 콘리는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하는 대신 다른 죄수들과 함께 ‘Blues: Feel the Rain Fall(블루스: 내리는 비를 느껴 봐)’를 부르며 폭력으로 얼룩진 밑바닥 인생의 처절함을 블루스 사운드에 녹여낸다. 


<퍼레이드>의 무대는 낮은 연단을 쌓고, 그 중앙에 다시 높은 연단을 쌓은 형태다. 전체적으로 정치인들이 연설하는 연단을 연상시킨다. 중앙 연단은 리오와 메리의 집, 메리가 탄 트롤리버스, 재판이 진행되는 법원, 리오가 갇힌 감옥, 주지사의 저택 등 다양한 장소로 활용된다. 중앙 연단의 앞면에는 사건 발생 시간, 재판 시간 등 무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시간과 장소를 자막처럼 표시하여 관객이 시간과 장소 변화를 쉽게 알아챌 수 있게 했다. 무대 뒤는 프로젝션을 이용해 공간의 배경 이미지를 투사하는 한편, 주요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실제 인물의 사진 자료와 이름을 노출한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신문에 보도된 내용도 이미지 자료로 보여준다. 관객이 이야기 속에 빠져들 때쯤 등장하는 실제 역사 자료는 이 작품이 사실에 기반했다는 점, 실존하는 인물의 비극이었다는 점을 환기한다. 실제 리오 프랭크 사건은 재수사를 통해 무죄가 입증되지만, 그가 뒤집어쓴 모든 혐의는 1986년 조지아주 사면 및 가석방 위원회에 회부된 후 지금까지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다. 

 

 

열연을 펼친 배우들


억울하게 누명을 쓴 리오 프랭크는 <디어 에반 핸슨> 이후 오랜만에 브로드웨이 무대로 돌아온 벤 플랫이 맡았다. 벤 플랫은 마치 맞춤옷을 입은 듯 리오 프랭크를 연기하며 눈길을 끌었다. 리오 프랭크는 삶이 무너진 와중에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결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인물이다. 혐오와 폭행으로 얼룩진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 법정에서 부르는 ‘It's Hard to Speak My Heart(내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워)’에서는 절절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무대 중앙 연단과 연결된 계단의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자신이 차가워 보였을지는 몰라도 그런 짓을 할 사람은 아니라며 법정에 모인 모두에게, 특히 아내 루실에게 간절히 호소한다. 결국 교수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1막이 끝나고 리오는 인터미션 내내 중앙 연단에 배치된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유죄 선고를 받고 허무함에 휩싸인 리오의 모습이 소란스러운 극장과 대비되어 더욱 처연하게 보였다. 


리오 프랭크의 부인 루실 역에는 미카엘라 다이아몬드가 캐스팅됐다. 2018년 <더 셰어 쇼>에서 어린 셰어 역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미카엘라 다이아몬드는 <퍼레이드>로 두 번째 브로드웨이 무대에 선다. 루실은 극적인 변화가 두드러지는 인물이다. 1막 초반 남편 리오만 바라보고 고향을 떠나온 루실은 ‘What Am I Waiting For?(난 뭘 기다리나)’를 부르며 타향살이에 지친 인물로서 연약하고 두려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강인한 인물로 변해간다. 누명을 쓴 리오에게 득달같이 달려드는 기자를 향해 ‘You Don't Know This Man(넌 이 사람을 몰라)’을 부르며 꾸짖는가 하면, 리오를 구하기 위해 주지사를 직접 설득해 재수사를 끌어낸다. 미카엘라 다이아몬드는 짧은 경력이 무색하게 뛰어난 노래와 연기로 루실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호평받았다. 


인물에 완전히 동화된 두 사람의 연기는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2막에 재수사가 결정되었을 때 함께 부르는 ‘This Is Not Over Yet(아직 끝나지 않았어)’과 인생의 가장 어두운 순간 자신의 곁을 지켜준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All the Wasted Time(낭비했던 모든 시간)’에서 보여준 두 사람의 열연과 열창은 토니상을 받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도 뛰어났다. 

 

 

ⓒ Joan Marcus

 


여전히 계속되는 혐오의 역사


<퍼레이드> 프리뷰 공연 첫날, 반유대주의자와 네오 나치가 극장 밖에서 시위를 벌였다. 네오 나치는 자신들을 나치의 계승자로 지칭하며 외국인과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반유대주의, 인종주의 극우 집단이다. <퍼레이드>가 반유대주의자에 의해 살해당한 유대인의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에 시위의 타깃이 된 것이다. 이들은 공연 시작 전 사람들에게 인쇄물을 나눠주면서 “리오 프랭크는 아동 성애자였다” “아동 성애자를 찬양하러 300불이나 냈냐”라고 외치며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을 희롱했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시위를 이어갔다. 이 사건은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유대계 구성원의 비율이 높은 브로드웨이 커뮤니티는 큰 충격을 받았다.

 

<퍼레이드>의 제작자와 주연 배우들은 공식 성명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극우 집단의 시위로 인하여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욱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1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혐오로 타인을 짓밟는 집단에 던지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 말이다. 공연 첫날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이 “왜 이 작품이 다시 무대에 오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된 셈이다. 과거의 이야기로 현재 관객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퍼레이드>는 예정대로 반년간의 공연을 마치고 8월 6일 막을 내린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7호 2023년 8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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