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해서
배우 김수로가 공연 프로듀서로 나섰다. 첫 프로듀싱 작품인 연극 <발칙한 로맨스>를 시작으로 곧 뮤지컬 <커피프린스 1호점>의 개막을 앞두고 있으며, 벌써 다음 작품 <블랙 메리포핀스>의 캐스팅 작업까지 완료해 놓은 상태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열심히 하게 만드는 걸까? 오래도록 무대 위에서 행복하고 싶다는 한 사람, 프로듀서 김수로의 이야기.
<밑바닥에서>로 9년 만에 무대에 복귀하면서 두 편의 연극에 출연하더니 급기야 공연 프로듀서로 나섰다. 프로듀서는 언제부터 생각해 온 계획인가.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배우 생활을 무대에서 시작했으니까. 해외에 나가서도 좋은 공연은 놓치지 않고 보려고 하는 편인데, 관객들이 울고 웃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만든 작품이 아닌데도 나도 모르게 감정이 벅차 오를 때가 있다. 내가 저 작품을 만든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좋은 작품을 만든 저 제작자는 자신의 꿈을 이뤘구나, 부럽기도 하고 그만큼 더 욕심이 생겼다. 어떻게 하면 좋은 공연을 올릴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 프로듀싱 연극 <발칙한 로맨스>는 <달콤한 원나잇>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된 적이 있는 작품이다. 오랫동안 프로듀서를 꿈꿔 왔는데 이왕이면 신작으로 데뷔하고 싶은 욕심은 없었나? 새로운 창작물로 ‘짠’ 하고 나타나는 것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작품으로 시작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달콤한 원나잇>의 연출가가 내 대학 동기다. 이 친구가 나한테 네가 프로듀서를 맡아서 이름을 걸고 한번 해보자고 하더라. <달콤한 원나잇> 관객 반응이 좋았고, 좀더 다듬어지면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연출에게 한 달의 시간을 주면서 작품을 수정해 보라고 했는데 만들어 온 결과물을 보니 오케이, 이 정도면 되겠다 싶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장르, 뜻이 맞는 연출가와 제작사, 조합이 잘 맞아서 프로듀서로 나서게 된 거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즐겁게 작업하면 큰 시너지 효과가 생길 테니까.
<달콤한 원나잇>을 <발칙한 로맨스>로 바꾸면서 가장 달라져야 하는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했나? 러닝타임. 공연 시간을 10~15분 정도 무조건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후반부로 가면서 감동을 주려다보니 이야기가 늘어지는 감이 없지 않았다. 감초 역할을 하는 호텔 직원들 등장 신도 줄일 필요가 있었고. 연출에게 속도감 있게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감동을 주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내 기대의 90 퍼센트 이상을 만들어냈다.
<발칙한 로맨스>는 타이밍 싸움인 코미디 연극, 말하자면 배우 김수로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상황이나 대사가 있을 것 같은데. 프로레슬러 신이나 다람쥐 신, 그 외에도 많은 거 같다. 특히 다람쥐 신이 재미있지 않나? 프로레슬러 신은 못생긴 여자라는 설정만 있었는데, 상황은 내가 집어넣은 거다. 재미있을 만한 요소를 여러 가지로 많이 고민했다. 그렇다고 난 연출을 하고 싶진 않다. 연출 쪽보다는, 말하자면 부동산 중개를 잘하는 거지. 하하. 나는 프로듀서가 더 잘 맞는다.
그런데 사실 김수로라는 이름만 빌려주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거다. 실제로 작업에 어느 정도 참여하나. 판을 만드는 데 50퍼센트, 팀을 꾸리는 일에 70퍼센트, 창작 작업에도 50퍼센트 이상 관여한다. 아직은 시작 단계고 나 혼자 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그들과 같이 고민한다. 간혹 잘 맞지 않더라도 지금은 함께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양보하는 편이고. 앞으로는 지금까지 해온 것을 바탕으로 더 많은 부분을 담당하게 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발칙한 로맨스>는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프로듀서로서 순조로운 출발을 한 셈이다. 첫 작품을 통해 깨달은 점이나 확신하게 된 점이 있나? 기대 이상으로 외부의 평가가 좋아서 오히려 충격적이었다. 솔직히 말해 저속하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관객들의 반응을 보니 내 생각을 앞지른 작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들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배우에 기대는 작품이 아닌 작품 자체가 힘을 가진 공연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작 <발칙한 로맨스>가 어느 정도 틀이 짜인 작품에 참여한 경우라면,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새롭게 판을 만든 경우다. 이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고 나서 가장 먼저 어떤 작업을 했나? 일단 대학로에 어떤 좋은 배우들이 있나 알아보러 다녔다. 직접 공연도 다 봤다. 또 좋은 연출가, 좋은 작가는 누가 있나, 그걸 알아보러 다녔다. 팀을 잘 꾸리면 투자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니까.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이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게 되면서 모든 게 순차적으로 결정됐다는 사실이다. 초반에는 제작사나 창작 팀이 교체되는 등 제작에 들어가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제작자가 확실한 결정을 내리고 나서부터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김수로 프로젝트 2탄으로 준비한 작품이 뮤지컬이라는 점이 의외다. 뮤지컬에는 관심이 있었나. 뮤지컬은 출연 제의가 들어오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춤은 배워 놨는데 무대 노래가 안 돼서 못했지만 노래를 배워서 언젠가 해보고 싶다. 지금까지 무대에서 고민 많이 했으니까, 관객과 하나가 돼서 한번 놀아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 내가 뮤지컬을 만들어서 직접 출연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 거고…. 아, 이건 톱 시크릿인데, 기존 배우들을 대상으로 하는 트레이닝센터를 만들었다. 오는 3월에 시작한다. 나도 거기서 노래를 배워볼 생각이다. 돈만 내면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입학 원서를 내서 선발하는 센터다. 지금은 3개월 과정이지만 2학기부터는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이다.
배우 트레이닝센터 설립이라니. 최종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 건가? 내가 뭐가 되려고 이러는 걸까?(웃음) 연극하고 뮤지컬을 제작하다 보니 배우를 키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사실 이 센터를 만든 의도는 내가 트레이닝하기 위해서다. 프로 배우가 되고 나면 마땅히 공부할 곳이 없다. 나는 연극 배우들 하고 10년 넘게 스터디를 해본 경험이 있는데 그게 연기하는 데 참 많은 도움이 됐다. 그래서 언젠간 이런 스터디 학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우들끼리 같이 공부해 나가는 학교.
오디션에도 직접 참여한다고 들었다. 배우를 볼 때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나? 훈련이 잘된 배우인가 아닌가를 본다. 얼마큼 제대로 트레이닝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선천적인 재능을 믿고 연기하는 배우는 후천적으로 노력하는 배우에게 결국 뒤처지게 돼있다.
연기는 10퍼센트의 타고난 재능과 90퍼센트의 노력으로 완성된다는 그런 이야기인가? 두 가지를 정확한 퍼센트로 나눌 수는 없지만, 후천적인 노력이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알고 있나? 내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인데, 토끼가 경주에서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거북이를 경쟁 상대로 놓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거북이가 이길 수밖에 없는 건 경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 달렸기 때문이다. 배우는, 이 작품에서 내가 누구보다 잘 나와야겠다가 아니라 내 연기의 완성만을 향해 달려가면 된다. 프로듀서는, 지금 공연 중인 그 어떤 작품보다 객석 점유율이 높은 공연을 만들겠다가 아니라 관객에게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면 된다. 그게 결국 이기는 방법이다.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이자 프로듀서라서 좋은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스태프를 구성하고 배우를 캐스팅하는 데 비교적 수월하다. 연극의 경우 기본은 안다고 생각하는데, 뮤지컬은 음악적 재능이나 감각적인 면이 부족해서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음악감독에게 의지하면서 많이 배우는 중이다.
프로듀서에게 필요한 자질은 뭐라고 생각하나? 폭넓은 인간 관계, 작품 해석 능력, 대중적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시각.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대중의 취향이다. 어느 정도 감이 있다고 생각하나? 솔직히 모르겠다. 그건 장담할 게 못된다. 난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거다. 결과는 하늘의 뜻에 맡긴다.
그렇다면 프로듀서의 중요한 역할은 뭘까? 돈을 잘 구해 오는 거?(웃음)
하하. 혹시 투자자를 설득하는 김수로만의 방법이 있나? 김수로라는 나의 이름을 건다. 사실, 프로듀서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는 힘들다. 한 10년 정도 해보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난 이제 배우는 단계인데 어떻게 한마디로 정의하나. 그건 건방진 거다.
배우라는 직업의 힘든 점은 항상 타인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거기에 프로듀서라는 직책을 하나 더 더한 것은 공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스스로 공연이라는 장르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 물론 공연이라는 장르를 사랑한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뭐랄까, 감동에 대한 허기를 느낄 때가 있다. 무언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고 싶은 거다. 좋은 공연을 보는 것만으로 기쁘지만, 내가 무대 위에서 저 공연에 속해 있을 때가 훨씬 행복하다. 그런데 내가 배우로 무대에 서는 것은 언젠가 한계가 올 수도 있다. 프로듀서라면 더 오래도록 무대 위에서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꿈을 꾸면서 프로듀서를 하는 것 같다.
혹시 내 인생의 연극이라 할 만한 작품이 있나? 내 인생 최고의 연극은 정의신 작가의 <야끼니꾸 드래곤>이다. 그 작품에서는 연극의 장인 정신이 보였다. 연극이란 이런 거다, 라는 정의를 내려준 것 같고. 나의 궁극적인 목표도 그런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거다. <발칙한 로맨스>나 <커피프린스 1호점>은 <야끼니꾸 드래곤>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렇게 유쾌하고 트렌디한 작품을 해봐야 정석 같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2호 2012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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