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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프리다> 김히어라 - Viva La Vida! [No.227]

글 |최영현 사진 |김현성 Stylist | 허선영 Hair | 도희(PRANCE) Make-up | 예지(PRANCE) 2023-08-23 894

 

 

꼬박 십여 년 동안 섰던 무대를 잠시 떠났던 김히어라가 돌아온다. 신비로운 얼굴과 목소리로 상대를 매혹하는 배우 김히어라가 이번에 맡은 역할은 프리다 칼로.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예술로 승화하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삶을 사랑했던 프리다를 연기하기 위해 김히어라가 집중한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안에 있는 프리다를 찾는 일이다.

 

 

"오랜만에 관객을 만난다는 설렘과 기대가 커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이후 히어라 씨의 차기 행보에 관심이 높아졌어요. 이런 상황에서 비슷한 시기에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와 뮤지컬 <프리다>로 관객을 만나는 소감이 어때요?

솔직히 평소와 다를 게 없어요. <더 글로리>로 대중적인 사랑과 관심을 받게 되어서 감사해요. 하지만 그건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더 글로리>의 작가님, 연출님을 비롯한 모든 관계자와 함께했던 배우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마음이 들뜨거나 흔들릴 이유가 없었어요. 평소와 다름없이 촬영하고, 연습하고 있어요.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는 촬영을 마친 지 좀 됐어요. 드라마는 촬영을 마친 후 연출님과 스태프들이 후속 작업으로 완성하는 부분이 많아요. 시청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완성되었을지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중이에요. <프리다>는 오랜만에 참여하는 뮤지컬이라 설렘이 크고요.

 

<유진과 유진> 이후 딱 2년 만에 <프리다>로 무대에 복귀하게 됐어요. 게다가 데뷔 후 처음으로 원톱 주연에 캐스팅되었고요. 설렘보다는 부담이나 걱정이 더 클 거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걱정이 앞섰어요.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것도, <프리다>의 프리다 역할을 맡겠다고 결심하는 것도 쉽지 않았거든요. 초연을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프리다가 굉장히 어려운 역할이에요. 무대를 2년이나 쉬었는데 작품에서 요구하는 노래, 연기, 춤을 부족함 없이 잘해낼 자신이 없더라고요. 공연은 하고 싶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서 망설였어요. 하지만 주변에서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 주신 덕분에 출연을 결심하게 됐어요. 오랜만에 연습실에 가니까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던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연습할수록 조금씩 부담감이 생기고 있지만 아직은 오랜만에 관객을 만난다는 설렘과 기대가 더 커요.

 

<프리다> 외에도 출연 제안을 많이 받았을 텐데 그중에서 <프리다>를 선택한 이유는 뭐예요?

계속해서 공연을 하고 싶었지만 드라마 촬영 스케줄 때문에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었어요. 원래 스케줄이었다면 올해도 무대에 서긴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데 거짓말처럼 몇 달 치 스케줄이 갑자기 변경되는 바람에 여유가 생겼죠. 이때 딱 공연하면 좋겠다 생각하던 차에 (김)소향 언니를 만났어요. 평소에 소향 언니랑 자주 만나는데 그날도 언니랑 커피를 마시다가 스케줄이 비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랬더니 언니가 “너 <프리다> 해라!” 하더라고요. (웃음) 사실 언니가 <프리다> 초연할 때 저한테 프리다를 하면 잘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저에게 프리다는 어려운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흘려들었는데 언니는 내내 마음에 두고 있었나 봐요. 언니가 재연 때 같이 해보자고 하고 싶었는데 제 일정이 빡빡한 걸 아니까 말을 못 꺼내고 있었대요. 때마침 제작사에서도 프리다 역할의 배우를 추가로 찾는 중이어서 이래저래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프리다>를 할 운명이었나 싶어요. 

 

<프리다>에 히어라 씨를 캐스팅하는 데 김소향 배우가 큰 역할을 했군요!

워낙 프리다 칼로를 존경하는 데다가 <프리다>라는 작품도 좋아해서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어요. 그런데 결정적으로 그 마음에 불을 댕긴 건 소향 언니였어요. 소향 언니한테 정말 고마운 게 저의 어떤 한 면만 보고 <프리다>를 함께 하자고 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저와 함께 공연해 본 동료이자 <프리다>에 이미 참여해 본 선배로서 배우 김히어라가 왜 <프리다>를 해야 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너의 장점은 이건데 그 장점이 <프리다>라는 작품을 만나면 이렇게 저렇게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고요. 김히어라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배우인지 모르면 할 수 없는 말들이었어요. 언니가 평소에 얼마나 저에게 마음을 쓰고 있는지 느껴져서 뭉클하더라고요. 언니 말을 들을수록 <프리다>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오랜만의 무대도, 역할도 부담스러워서 선뜻 결심이 안 섰는데, 언니가 옆에서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계속해서 심어줬어요. 결국 소향 언니 덕분에 마음이 기울었죠.

 

평소 존경하는 인물로 프리다 칼로를 자주 언급했어요. 언제 처음 프리다 칼로를 알게 됐어요? 

이십 대 초반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낙서하듯이 그림을 그리다가 이십 대 초반에 <라카지> 포스터를 따라 그리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일기 쓰듯 그림을 그리다 보니 제 그림에는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데 친구가 꼭 프리다 칼로 그림 같다는 거예요. 그때까지 저는 프리다 칼로를 알기는커녕 미술관에도 한 번 가본 적이 없었어요. 친구의 말을 듣고 프리다 칼로가 누군지 찾아보았어요. 마침 몇 달 후에 프리다 칼로 전시회가 열려서 난생처음 미술관에 갔죠. 그리고 엄청 충격을 받고 돌아왔어요. 

 

뭐가 그렇게 충격적이었어요? 

우선 사람들이 그렇게 그림에 관심이 있는지 몰랐어요. 저는 그림을 혼자 보거나 가까운 지인들한테만 보여주는 정도였는데,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그림을 본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어요. 그 전시회에 두 번 갔었는데, 첫날은 관람객만 구경했어요. 전시장을 두리번거리는데 한 남자 관람객이 그림 앞에서 한참을 떠나지 못하는 게 눈에 띄었어요. 문득 저 사람은 그림에서 뭘 보는 걸까, 뭘 느끼는 걸까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림 앞에 서서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잘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프리다 칼로의 그림 해설을 찾아서 읽어보고 다시 전시회에 갔어요. 그랬더니 조금 알 것 같더라고요.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림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고 느낀다는 게 신기했어요. 그 후로 그림을 그릴 때 낙서처럼 이것저것 그리는 게 아니라 담고 싶은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그리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부지런히 전시회를 찾아다니면서 그림 공부도 했고요. 

 

프리다 칼로 덕분에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배우게 된 셈이네요. 실제로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본 소감은 어땠어요? 

처음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봤을 때는 무척 마음이 아팠어요.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아픔을 그림 속에 그대로 담아냈잖아요. 남편 디에고 리베라에게 받은 상처부터 아이를 잃은 슬픔까지. 다른 사람에게 쉽게 꺼내 보이기 힘들었을 내밀한 속내도 프리다 칼로는 그림으로 풀어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프리다 칼로의 솔직할 수 있는 용기가 존경스럽더라고요. 저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지만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사적인 이야기는 남들이 알아차릴 수 없도록 꼭꼭 숨겨둬요. 제 그림 중에 ‘겁’이라는 그림이 있는데, 누가 내 비밀을 볼까 무서워서 사선을 거미줄처럼 그린 그림이에요. 그런데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 거침이 없어요. 프리다 칼로는 존경할 점이 아주 많지만, 그림으로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했던 점이 가장 존경스러워요. 그런 프리다 칼로에게 영감과 자극을 받고 계속해서 저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릴 용기를 얻는 것 같아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오마주한 작품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이기도 했죠?

프리다 칼로에 대한 존경심으로 오마주를 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제 부족함 때문이었어요. 첫 번째 전시회를 준비하는데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걸 완성도 있는 그림으로 그리기가 어려웠어요. 머릿속에 있는 것을 어떻게 하면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마침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게 다 있어서 오마주하게 된 거죠. 

 

 

 

 

"이전의 저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릴 자신이 있어요"

 

보통 배우들이 무대에서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때는 먼저 어떤 인물인지 공부하는 시간을 갖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히어라 씨는 이미 프리다 칼로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서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었겠네요. 

작품 준비를 위해서 이전에 공부했던 자료들을 들춰보면서 프리다 칼로에 대해서 복기하고 있어요. 예전에 공부할 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프리다 칼로가 남긴 글을 꼼꼼히 보고 있어요.

 

혹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나요?

생각보다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프리다 칼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만의 착각이었어요. 프리다 칼로가 삶의 굴곡이 많았던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외로움을 많이 탔던 사람인지 몰랐어요. 지금까지 제가 그림이나 책으로 접해서 알고 있던 프리다 칼로는 어떤 식으로든 외로움을 이겨낸 후의 프리다 칼로였어요.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도 프리다 칼로에게서 보고 싶은 것만 본 건 아닌가 반성했어요.

 

이번에 <프리다>에서 새롭게 경험하는 게 많더라고요.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것도 처음이에요. 혹시 허구의 인물을 연기할 때와 비교해서 인물에 접근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까요?

차이가 있지만 그게 제가 연기하는 인물이 실존 인물이냐 아니냐 때문에 생기는 차이는 아니에요. <프리다>는 프리다 칼로의 삶을 사실적으로 구현하지 않아요. 프리다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환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쇼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는 작품이에요. 그러다 보니 프리다를 재현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요. 그보다는 내 안에서 프리다를 찾고, 내 목소리로 프리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게 중요하죠. 평소에는 연기할 인물에 이입해서 일부러 행동이나 목소리 톤을 바꾸는 편인데, 이번에는 김히어라로서 프리다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 중이에요. 어려운 작업이지만 이렇게 인물에 접근한 적이 없어서 꽤 재미있어요.

 

평소 작품에 참여할 때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고 했는데, 혹시 질문도 좀 달라졌을까요?

저뿐만 아니라 아마 대부분의 배우가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살 거예요. 그런데 <프리다>는 실존 인물을 다룬 작품이라 그런지 ‘왜’보다 ‘어떻게’라는 질문을 달고 살아요. 프리다는 어떻게 이걸 감당했을까. 프리다가 느꼈던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요즘은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죠.

 

그럼 지금까지 <프리다>를 연습하면서 가장 답을 찾기 어려웠던 질문은 뭐였어요?

디에고 리베라요. 프리다는 천하의 바람둥이 디에고를 어떻게 저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었을까. 디에고가 어디 보통 남자인가요? 프리다에게 엄청난 상처를 남겼잖아요. 프리다 칼로의 삶의 다른 부분은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프리다가 자기 자신보다 디에고를 더 사랑했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더라고요. 마음에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안고 런스루 연습을 하는데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디에고가 프리다한테 “넌 다리 따위 없어도 돼. 날개가 돋을 테니.”라는 말을 하는데, 문득 프리다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 유일한 사람이 디에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시 대본을 찬찬히 읽어보니 그제야 프리다를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디에고가 보이더라고요. 디에고도 정말 끔찍이 프리다를 사랑했구나 싶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디에고의 행동이 모두 용서되는 것도 아니고 용서해 주고 싶지도 않지만 마음 한편에 풀리지 않던 숙제가 조금은 풀린 기분이에요.

 

대본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상대 배역과 호흡을 맞출 때 비로소 보이는 경우가 있죠. 그래서 연습이 중요한 것 같아요. <프리다> 연습실 분위기는 어때요?

너무 좋아요. 진짜로. 지금까지 창작뮤지컬은 초연부터 참여한 작품이 대부분이었어요. 초연을 준비할 땐 동선이나 안무 등을 연습 과정에서 서로 맞춰보면서 만들어가는 게 많잖아요. 그런데 <프리다>는 재연에 참여하는 거라 이전에 만들어진 것을 익히는 게 먼저였어요. 초연 때 모두가 열심히 만들었을 거라는 걸 알지만 재연에 참여하는 입장에서 좀 이해가 안 되거나 아쉬운 부분도 있었어요. 다행히 모두 의견을 편하게 나누는 분위기라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물어볼 수 있었죠. 굉장히 사소한 의견이라도 잘 들어주시고 되도록 제 의견을 반영해 주려고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리고 서로 장단점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연습하다 보니, 각 배우의 장점이 잘 드러날 수 있는 쪽으로 연기의 가닥이 잡히더라고요. 초연과 비교해서 많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이번 재연에서는 배우마다 조금씩 다른 <프리다>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히어라 씨가 생각하는 세 프리다의 특징은 뭐예요?

우선 소향 언니는 사랑 그 자체예요. 언니는 사랑으로 모든 걸 품어내요. 심지어 죽음조차도요. 소향 언니의 프리다를 보고 있으면 프리다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이 그가 삶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보일 정도예요. 초연부터 참여했기 때문에 프리다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도 언니의 장점이죠. 알리 언니는 워낙 파워풀한 보컬로 잘 알려져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혁명가였던 프리다와 아주 잘 어울려요. 단단하고 강인한 느낌이죠. 그리고 셋 중에 유일하게 아이가 있어서 어머니로서 프리다가 느꼈을 감정을 더 잘 표현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뭘까요? (웃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거칠고 날것의 느낌이 강한 것 같아요. 언니들은 프리다의 여러 감정을 성숙하게 다스려요. 하지만 저는 인생의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감정을 다스리기보단 자꾸 이겨내려 애쓰게 돼요. 며칠 전에 레플레하 역을 맡은 리사 언니가 저의 프리다는 안쓰럽다고 하더라고요. 깡마른 애가 다가오지 말라고 악을 쓰면서도 정작 밀어내지는 못한다면서요. 제가 의도적으로 연기한 건 아니지만 어쩌면 지금의 저라서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프리다가 보이는 건 아닐까 싶어요.

 

배우에게는 한 작품 한 작품이 성장의 기회나 다름없죠. 이번 <프리다>를 통해 도전하는 게 많은데 작품을 마치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처음으로 무대에서 원톱 주인공을 맡았기 때문에 작품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면서 이끌어가는 방법을 많이 배울 것 같아요.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프리다 역할에 요구되는 연기, 노래, 춤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게 많아요. 예를 들어 노래만 하더라도 소화해야 하는 노래가 많고, 노래하는 톤도 많이 바꿔야 해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더 잘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이전의 저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릴 자신이 있어요. 연습하면서 저의 한계가 넓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예요. 배우로서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저한테 쉬지 않고 일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봐요. 저도 연습 시작 전에는 체력적으로 부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배우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니까 오히려 힘이 생기더라고요. 매일 연습하면서 나는 이런 걸 잘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혹은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요. 지금의 성장을 바탕으로 앞으로 뮤지컬이든 드라마든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충분히 잘 살았다'라는 말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프리다 칼로는 전차 사고와 디에고 리베라로 인해 삶이 완전히 바뀌었잖아요. 혹시 히어라 씨에게도 그런 삶의 터닝 포인트가 있었나요? 

프리다 칼로만큼 대단한 터닝 포인트는 아니지만 제 나름대로 터닝 포닝트는 있었어요. 스물다섯 살 때쯤이었나. 그 당시 집안 형편이 갑자기 안 좋아졌는데 오디션을 보는 족족 떨어져서 한 10개월 정도 일이 없었을 때였어요. 생계도 문제였지만 자존감이 바닥을 쳤어요. 그런데 언니가 임신을 한 거예요. 조카가 태어나는 게 기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무섭더라고요. 제 기억 속 이모나 고모는 만날 때마다 맛있는 것도 사주고 나한테 참 잘해줬는데, 나는 내 조카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굉장히 막막한 기분이었어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옷 장사를 했어요. 사실 그것도 조카 옷을 싸게 살 궁리를 하다가 도매로 옷을 사서 장사를 해볼까 하면서 시작한 건데, 그게 저한테는 터닝 포인트였어요.

 

들은 적이 있어요. 당시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꽤 장사가 잘 됐다고요.

제가 직접 옷을 입고 패밀리룩 콘셉트로 옷을 팔았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비로소 마음에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단지 형편이 나아져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배우가 아닌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생긴 여유였어요. 그전에는 배우가 아니면 안 되는 줄로만 알았어요. 그래서 오디션에 계속 떨어져서 배우를 못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서 벗어나질 못했어요. 어떻게든 무대에 서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니까 오디션에서 잔뜩 긴장해서 제 실력도 못 보여주고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더라고요. 그런데 배우가 아니어도 다른 걸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니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됐어요. 떨어져도 괜찮아. 조금 돌아가면 뭐 어때. 다른 일을 하면서 또 오디션을 보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고 오디션을 보러 가서 당당하게 행동했어요. 먼저 씩씩하게 인사하고, 노래를 불렀는데 분위기가 안 좋으면 다시 해보겠다고 말하고. (웃음) 배우에 대한 태도, 나아가서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뀐 후 신기하게 배우로서 일도 잘 풀리더라고요. 배우는 다음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늘 불안한 직업이에요. 요즘도 불안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이전의 경험 덕분에 쉽게 극복이 되더라고요. 불안한 건 당연한 거야. 걱정하지마. 너는 뭐든 할 수 있어. 이렇게 나를 다독이죠.

 

만약 배우가 아니라면 뭘 하고 있을 것 같아요? <프리다>에서 평행우주 속 다른 프리다인 메모리아가 등장하는 것처럼 김히어라의 메모리아가 있다면요. 

배우와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배우는 내가 얼마큼 해낼 수 있는지 매번 증명하고,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반대로 상대를 보고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직업이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여행 작가 같은 직업이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또 그것을 저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거죠. 지금처럼 그림을 그려도 좋을 것 같고, 글을 써도 좋을 것 같네요. 

 

김히어라의 메모리아는 김히어라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걱정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너의 삶을 충분히 살았으면 좋겠어. 이 말은 평소 저에게 자주 하는 말이에요. 저는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게 정말 많은데,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져서 자꾸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앞으로는 조금 더 용기를 내서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해보려고요. 그래서 프리다 칼로가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그림에 ‘인생이여 만세Viva La Vida’라고 남겼던 것처럼, 저에게 ‘충분히 잘 살았다’라는 말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7호 2023년 8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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