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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STAGE DESIGN] <비스티> 화려한 비극의 이면 [No.226]

글 |이솔희 사진 |안지윤 2023-07-25 2,094

<비스티>는 청담동의 유명 호스트바 ‘개츠비’에서 일하는 인물들이 각자의 욕망을 향해 돌진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질투와 탐욕, 위선과 배신이 들끓는 ‘개츠비’는 무대 위에 어떻게 구현되었을까? 2014년 초연부터 함께한 김종석 무대디자이너와 공연 전 소품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파는 연출부에게 <비스티> 무대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화려하고 날카로운 비극

청담동에 위치한 유흥 시설이라는 ‘개츠비’의 공간적 특징을 살리기 위해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무대를 구성했다. 여기에 무대 전체를 아우르는 기하학적인 패턴이 날카로운 느낌을 더한다. 이는 1920년대에 유행한 ‘아르 데코’ 예술 양식을 반영한 것이다. 아르 데코란 대칭적인 형태와 기하학적인 모티프를 이용해 호화롭고 정교한 이미지를 구현하는 디자인 양식이다. 아르 데코 양식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은 1층 무대의 벽면이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타이틀 시퀀스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것으로, 레이저 커팅을 활용해 복잡한 직선형 패턴을 섬세하게 구현했다. “아르 데코 스타일의 무대가 <비스티>의 화려하고 날카로운 분위기와 훌륭하게 어우러지는 것은 물론, 결말이 지닌 비극성과도 잘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했어요.” <비스티>는 원색의 조명을 적재적소에 사용해 ‘개츠비’의 허울뿐인 화려함을 강조한다. 이에 무대 곳곳에 반투명한 소재의 창문을 설치해 조명 효과를 극대화했다. 앞서 언급한 아르 데코 스타일의 벽면에도 리어 스크린(투사막) 소재를 부착해 조명이 더욱 잘 표현될 수 있도록 했다. <비스티> 무대에서 유독 흥미로운 부분은 무대 상수에 위치한 ‘페트병 벽’이다. 투명한 페트병의 바닥면이 보이도록 배치한 후 차곡차곡 쌓아 벽면을 채운 모양새인데, 이 역시 조명 연출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김종석 디자이너가 고안한 아이디어다. “유리블록으로 시공하고 싶었지만 작업 공정상의 문제로 인해 불가능했습니다. 고민 끝에 페트병의 밑면이 보이도록 쌓아 올리면 유리블록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백 개의 페트병을 규칙적인 형태로 쌓는 데도 요령이 필요했다. 수차례의 실험을 거쳐 페트병 여러 개를 투명 테이프로 고정해 쌓아 올리는 방법을 택했다.

 

 

<비스티>의 매력은 같은 역할이라도 배우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캐릭터를 풀어낸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관성의 법칙’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개츠비의 ‘마담’ 재현 역할을 맡은 배우(김종구, 정동화, 박규원)에 따라 사용하는 소품이 다르다. 대표적으로, 김종구가 애용하는 소품은 식빵이다. 식빵은 그의 간식거리이자 상대방을 위협하는 무기(?)로 사용되는데, 매 공연 전 새 제품을 준비한다. 아무 식빵이나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종구는 여러 베이커리 브랜드의 식빵을 직접 먹어본 후, 빵을 먹으면서 연기할 때 불편함이 가장 적었던 T사의 식빵을 최종 선택했다. 이번 시즌 새롭게 재현 역에 발탁된 박규원은 안개꽃 다발을 소품으로 활용한다. 안개꽃은 꽃 시장에서 대량 구매한 후 약 10일간 말려 사용한다. 꽃을 말리는 시간이 짧으면 꽃잎이 잘 흩날리지 않을뿐더러 줄기가 뻣뻣해 배우들에게 상처를 입히기 쉽고, 너무 오래 말리면 가벼운 충격에도 꽃잎이 쉽게 부서지기 때문이다. 정동화의 아이템은 신문지다. 앞선 소품에 비해 구매와 보관이 용이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공연 중 배우가 신문에 적힌 내용을 읽는 경우가 있어 연출부에서 공연 전 미리 기사 내용을 훑어본 후 무대 소품으로 사용한다.

 

 

<비스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품은 지폐다. 공연에 사용되는 지폐는 1만 원권 1000장, 5만 원권 1000장, 10만 원 수표 400장으로 총 2400장이다. 화폐 모조품을 만들 때는 사전에 한국은행에 화폐 모조품 이용 승인을 받아야 하고, 실제 지폐보다 큰 크기로 제작해야 하며, 모조품에 작품명, 담당자 이름을 기재하여 인쇄해야 하는 등 이용 규정이 까다롭다. 그래서 ‘마담’들이 공연 중 쉴 새 없이 공중으로 흩뿌리는 지폐에는 소품 담당자의 개인 정보가 깨알 같이 적혀 있다. 또한 사용을 마친 모조품은 무조건 폐기해야 하기 때문에 매 시즌 새롭게 인쇄한다.

 

 

본 공연이 끝난 후 에필로그 장면에는 재현의 생일을 맞아 행복한 한때를 즐기는 인물들의 과거 회상이 펼쳐진다. 이때 주노는 재현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초코파이 케이크를 들고 등장한다. 초코파이가 높게 쌓여 있는 모양의 이 소품은 초를 꽂는 맨 윗부분의 초코파이를 제외하면 전부 모형이다. 또, 총 세 가지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있어 배우들이 직접 원하는 모양을 고를 수 있다.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케이크 위에 장식용 스프링클을 뿌린 듯 군데군데 떨어진 형형색색의 촛농이 사실감을 더한다.

 

 

연출부는 소품이 파손될 경우를 대비해서 여분을 미리 구비해 둔다. 생일 파티용 고깔모자나 쇼핑백, 이력서 등 종이류는 쉽게 구겨지기 때문에 빠른 주기로 교체된다. 무대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도 파손 위험이 큰 대도구다. 배우들이 공연 중 몇 번이고 오르내리는 것은 물론, 그 위에서 몸싸움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들의 안전을 위해 테이블 위에 일반 아크릴이 아닌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의 투명 보호판을 덧대었다. 폴리카보네이트는 내충격성이 높아 방탄유리의 소재로도 사용되는 고기능성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쉽게 깨지지 않는다. 위스키병이나 술잔 같은 유리 소품도 많이 사용되는데, 의외로 이러한 종류의 소품이 파손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그중에서도 무대 뒤편에 진열되어 있는 술병은 본드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파손될 우려가 거의 없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6호 2023년 7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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