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라이선스 공연으로 일본 관객을 만났다. 일본 엔터테인먼트사 토호 주식회사가 먼저 라이선스 공연을 제안하여 성사된 이번 공연은 서울예술단의 첫 번째 해외 라이선스 공연이자 공공 단체에서 IP를 수출한 최초의 사례다.
국경을 뛰어넘는 보편적 메세지
2018년 초연한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창작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신분이 철저하게 구분된 가상의 계급 사회를 배경으로, 최상위층 엘리트 고등학생 다윈이 30년 전 살인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과 토호 주식회사의 만남은 2019년 한국에서 열린 아란 케이의 자선 콘서트에서 시작됐다. 일본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의 재일 한국인 배우 아란 케이가 한일 문화 교류 및 한국 유학생 지원을 목적으로 기획한 공연이었다. 당시 콘서트에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출연진 박은석, 최우혁, 최인형이 게스트로 참여해 뮤지컬 넘버를 불렀고, 이날 콘서트를 관람한 일본 공연 관계자가 작품을 토호 주식회사에 소개했다. 토호 주식회사는 이 작품이 계층별로 대립하고 갈등을 빚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현시대의 어두운 면모를 날카롭게 그린다는 점에 매료되었다. 또한 국경을 뛰어넘어 보편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선과 악, 정의와 계급에 대한 이야기가 일본 관객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3대에 걸친 복잡한 스토리를 속도감 있게 풀어낸 대본과 묵직한 멜로디의 뮤지컬 넘버에도 매력을 느꼈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일본 뮤지컬 시장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토호 주식회사는 라이선스 공연을 추진했다.
적절한 현지화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일본 초연은 지난 6월 도쿄 히비야의 시어터 크리에에서 개막했다. 시어터 크리에는 토호 주식회사의 대표 공연장으로, 611석 규모의 중극장이다. <렌트> <저지 보이즈> 등 다수의 작품이 이곳에서 초연을 올렸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6월 7일부터 25일까지 이곳에서 공연한 뒤,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효교현립 예술문화센터 한큐중홀로 자리를 옮겨 공연을 이어간다.
일본 초연의 연출은 스에미츠 켄이치가 맡았다. 스에미츠 켄이치는 연출가이자 작가, 배우로 활동하는 예술가다.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 연극 <트럼프>로 이름을 알렸으며, 동명 애니메이션을 무대화한 뮤지컬 <귀멸의 칼날>의 연출 및 각본을 맡기도 했다. 국내에는 그의 연극 <이퀄>이 연극과 뮤지컬로 소개된 바 있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일본 공연은 원작의 대본과 음악만 사용하는 스몰 라이선스 형태로 진행됐다. 서울예술단 측은 “창작 콘텐츠 IP를 수출하는 경우, 해외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현지화해서 공연을 제작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라고 스몰 라이선스 형식으로 계약을 체결한 이유를 전했다.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일본 관객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연출가 스에미츠 켄이치가 일본의 정서에 맞게 대사를 추가하고, 음악을 편곡하는 등 여러 부분에서 변화를 줬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세 부자와 얽힌 죄의 역사를 한층 친절하게 풀어냈다. 일례로, 한국 공연은 다윈의 할아버지인 러너 영을 어린 러너와 현재의 러너로 분리해 각각 다른 배우가 연기한다. 러너라는 인물이 지닌 비밀을 극적으로 그려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공연에서는 해당 역할을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해 캐릭터의 전사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이야기 전개 측면에서는 스포일러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극 중 캐릭터 간의 관계성을 조금 더 쉽게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이다.
한국 공연과 가장 크게 구별되는 점은 무대 연출에 영상과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한국 공연은 무대 양쪽에 2층 철골 구조물을 설치해 장면에 어울리는 공간을 시시각각 구현해 냈으며, 낮은 조도의 조명을 사용해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했다. 반면 일본 공연은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되는 프라임 스쿨은 물론 니스의 어린 시절, 하위 지구의 폭동 등 대부분의 장면에 영상을 사용해 공간의 변화를 뚜렷하게 표현했다. 의상에도 변화를 줬다. 한국 공연이 각진 화이트 재킷에 볼로타이를 매치한 교복을 통해 질서를 중시하는 명문 학교 프라임 스쿨의 엄격한 이미지를 표현했다면, 일본 공연은 부드러운 형태의 재킷과 스카프로 상류층의 여유로운 느낌을 강조했다. 다윈 역할에 실제 10대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대형 연예 기획사인 ‘쟈니스 사무소’ 소속인 오오히가시 리츠키와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활약하는 와타나베 아오가 더블 캐스팅돼 무대에 올랐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6호 2023년 7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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