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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STAGE DESIGN]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현실과 환상이 만나는 곳 [No.225]

글 |이솔희 사진 |쇼노트 2023-07-05 1,079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이하 <더 테일>)는 최초의 뱀파이어 소설로 평가받는 『뱀파이어』가 진짜 저자 존 윌리엄 폴리도리가 아닌 영국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작가 조지 고든 바이런의 이름으로 발표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뮤지컬이다. 1819년 4월 1일 만우절의 밤, 바이런이 존의 하숙집을 찾아오며 시작된 극은 과거와 현재, 소설과 현실을 넘나들며 진행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이야기 속 배경은 어떻게 하나의 무대 위에 구현될 수 있었을까?

 


빛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

 

<더 테일>의 무대는 2013년 <가모메>, 2016년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와 <불역쾌재>로 동아연극상 시청각디자인상을 받은 박상봉 무대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 제작사 쇼노트와는 연극 <알앤제이>로 처음 인연을 맺고, 올해 국내 초연을 올린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무대를 맡기도 했다. 화려하고 재현적인 무대보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무대를 선호하는 박상봉 무대디자이너는 주로 연극계에서 활동해 왔다. 그런 그가 <더 테일>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이 작품이 무대 전환 없이 단 두 명의 배우가 이끌어가는 ‘연극 같은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배경은 기본적으로 19세기 영국, 의사이자 작가인 존의 하숙집이다. 하지만 존과 바이런은 이곳에서 한때 작가와 주치의로서 유럽 전역을 함께 여행했던 과거를 떠올리기도 하고, 바이런을 모델로 한 뱀파이어 캐릭터 루스벤이 등장하는 소설의 일부 대목을 재현하기도 한다. 기억과 환상이 중첩된 공간을 세트 전환 없이 표현하기 위해 박상봉 무대디자이너가 찾은 해법은 바로 빛이다. 그는 하수에 빛이 통과하는 거대한 광창을 만들었다. “무대에 빛 길을 크게 열어주면 조명으로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판단했어요. 연극 무대에서 오랫동안 함께 호흡을 맞춰온 최보윤 조명디자이너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죠.” 


박상봉 무대디자이너는 최보윤 조명디자이너와 머리를 맞대고 조명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다. “무대 뒤쪽에 또 다른 창문이 존재하는데, 광창과 이 창문 사이에 가벽을 세워 두 영역에 각각 다른 빛깔의 조명을 비추어도 서로 영향을 받지 않게 만들었어요.” 이러한 긴밀한 협업의 결과로 멋진 엔딩 장면이 탄생했다. 밤이 지나고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 존이 서 있는 하수에는 광창을 통해 따스한 햇빛이 쏟아지지만 루스벤이 서 있는 반대편에는 여전히 푸르스름한 어둠이 드리워져 현실과 환상이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나를 비추는 거울

 

<더 테일>에서 조명이 유독 극적인 효과를 낳는 또 다른 비결은 바닥에 있다. 주로 가구를 만들 때 사용하는 하이그로시 소재를 바닥에 깔았는데, 광택이 나는 새까만 바닥이 광창을 통해 떨어지는 빛을 거울처럼 반사하면서 조명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전에 SF 연극 <나는 살인자입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에서 무한한 우주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하이그로시 소재의 바닥을 사용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더 테일>처럼 사실적이고 클래식한 세트와 하이그로시 소재의 바닥을 조합하는 건 저로서도 실험적인 시도였죠.” 


하이그로시 소재의 바닥은 빛을 반사할 뿐 아니라 무대 위에 놓인 모든 것을 거울처럼 비춰 바닥에 뒤집힌 상을 만든다. 소설 『뱀파이어』 속 등장인물에게 실제 존과 바이런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거울은 자신을 타자화하여 보여주는 도구이고, 거울 속 세계는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현실과 단절되어 있어요. 이처럼 거울이라는 오브제가 미술·철학사에서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이 작품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이 밖에도 무대에는 실제 거울이 여러 개 놓여 있다. 그중 하나는 책장 옆에 눈에 띄지 않게 자리 잡은 화장대 거울이다. 화장대는 일반적으로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있을 법하지 않은 가구이지만, 존이 섬세하고 아름다움에 민감한 남성이라는 점을 고려해 배치했다. 존이 소설 속에서 자신을 어떤 캐릭터에 투영했는지 알고 나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극장의 특성을 고려한 디자인

 

박상봉 무대디자이너가 디자인 작업에 앞서 첫 번째로 하는 일은 극장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극장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게 무대디자이너가 해야 할 일이죠. 만약 <더 테일>이 다른 극장에서 공연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무대가 나왔을 거예요.” <더 테일>이 공연하는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2관의 장점은 소극장치고 하수 공간이 넉넉하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장점을 살려 멀리서 조명을 쏘아야 하는 광창을 하수에 만들었다. 극장 층고가 낮다는 단점은 천장을 지붕 모양 구조물로 가려 보완했다. “층고가 낮으면 천장에 설치된 조명기가 작동하는 모습이 객석에서 눈에 잘 띄어요. 지붕의 골조는 조명기를 감추고 공간을 밀도 있게 감싸 관객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죠.”


박상봉 무대디자이너의 기존 무대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더 테일>의 디테일하고 밀도 높은 무대를 오히려 낯설게 느낄지도 모른다. 박상봉 무대디자이너 역시 “그동안 안 했을 뿐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임했다”라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멋있어 보이기 위한 무대는 경계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후배에게 자주 하는 조언이 스스로 왜 만드는지 모르는 건 만들지 말라는 거예요. 이 공연이 어떤 공간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고민 없이 무턱대고 무대에 이것저것 집어넣으면 극의 흐름을 방해할 뿐이에요. 디테일이 많든 적든 그것이 의도하는 바가 분명해야 해요.” 한편으로 그는 ‘이것이 정답’이라는 식으로 무대의 의미를 단정 짓는 것에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무대에 대한 해석은 관객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게 그의 신조다. “무대를 디자인한 건 저이지만 그걸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연출가와 배우에게 달려 있어요. 나아가 그 결과물에 대한 해석은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공연을 완성하는 건 결국 관객이니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5호 2023년 6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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