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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셕트> 컨트리 음악과 만난 뮤지컬 코미디 [No.225]

글 |여태은(뉴욕 통신원) 사진 |Mathew Murphy, Evan Zimmerman 2023-06-12 2,448

<셕트>
컨트리 음악과 만난 뮤지컬 코미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약 18개월간 문을 닫았던 브로드웨이가 2021년부터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펴더니 지난봄부터 신작과 리바이벌 뮤지컬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뮤지컬 홍수 속에서 <셕트>는 올해 토니 어워즈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8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4월 네덜란더 시어터에서 정식 개막한 <셕트>는 샛노란 옥수수를 내세운 포스터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제목에 쓰인 단어 ‘Shuck’은 껍질을 깐다는 뜻과 동시에 남을 속인다는 뜻도 있다. 옥수수를 재배하는 시골 마을 사람들이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가는 이 작품의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는 제목이다.

 

시골 마을에서 펼쳐진 사기극


옥수수 재배로 먹고사는 가상의 마을 콥 카운티는 언젠가부터 시들어가는 옥수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마을 사람 중 누구도 원인을 알지 못해 속만 썩는 가운데, 결혼을 앞둔 여자 주인공 메이지가 대도시로 나가 도움을 청하자는 의견을 낸다. 하지만 바깥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살아온 마을 사람들은 메이지의 편을 들지 않는다. 결국 메이지는 이대로 떠나면 끝이라는 약혼자 보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혼자 길을 나선다. 휴양 도시 탬파에 도착한 메이지는 ‘콘 닥터Corn Doctor’라는 간판을 단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만난 남자 골디에게 도움을 청한다. 골디는 사실 옥수수Corn 전문가가 아니라 티눈Corn 전문의를 사칭해 노인을 등쳐 먹는 사기꾼인데, 이를 꿈에도 모르는 메이지는 골디의 화려한 언변에 넘어가 그가 옥수수를 살려줄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빚쟁이에게 쫓기는 골디가 메이지와 옥수수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오로지 메이지가 특이한 원석으로 만든 팔찌를 차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지가 사는 지역에서는 흔한 돌덩이일 뿐이지만, 보석상에서 이 원석이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팔릴 거라는 말을 들은 골디는 메이지를 따라 콥 카운티로 향한다.


메이지의 약혼자였던 보와 그의 형 피넛, 그리고 메이지의 사촌 룰루는 외부인이 옥수수를 살려낼 리 없다며 골디의 정체를 의심하고, 골디를 두둔하는 메이지와 다툰다. 궁지에 빠진 골디는 콥 카운티에 깔린 원석이 토양 환경을 바꿔 옥수수가 시드는 거라 둘러대고, 마을 사람들이 원석을 파내면 자신이 그것을 마을 밖에 내다버리겠다고 설득한다. 한편 우연히 자기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골디를 본 메이지는 이를 청혼으로 착각하여 결혼을 승낙한다. 이후 원석을 파내는 작업과 결혼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하지만 메이지와 골디는 각각 보와 룰루의 도움을 받아 결혼 서약서를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진짜 사랑하는 상대는 따로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 이들은 결혼식 전날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데, 술에 취한 골디가 자신이 사기꾼임을 고백하는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모두가 충격에 휩싸인 것도 잠시, 죽어가던 옥수수가 살아나기 시작한다. 골디가 임기응변으로 지어낸 거짓말이 정말로 옥수수를 살리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보는 옥수수를 살린 건 골디의 거짓말이 아니라 마을 밖으로 나가 도움을 청한 메이지의 용기라고 말해 다시 메이지의 마음을 얻고, 골디와 룰루도 서로를 향한 끌림을 확인하며 한바탕 소동이 마무리된다.

 

 

뮤지컬 음악으로 거듭난 컨트리 음악


<셕트>는 컨트리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 코미디로, 컨트리 음악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TV 버라이어티 쇼 <히호(Hee Haw)>의 영향을 받았다. <히호>는 1969년 시작해 1993년 시즌25를 마지막으로 종영한 인기 프로그램이다. 당대 컨트리 음악 스타를 비롯해 배우, 스포츠 스타, 정치인까지 다양한 유명 인사가 이 쇼에 게스트로 출연해 공연과 코미디를 선보였다. 컨트리 음악 버전의 <세러데이 나잇 라이브>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미국인에게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추억의 쇼다. 


<오클라호마!>(1943) <애니여, 총을 잡아라(Annie Get Your Gun)>(1946) <빅 리버>(1985)와 같은 전례가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브로드웨이에서 컨트리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 코미디는 찾아보기 힘들다. <셕트>가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데에는 그래미 어워즈 수상자인 컨트리 음악 듀오 브랜디 클라크와 쉐인 매커낼리의 공이 크다. 작품을 여는 첫 곡부터 예사롭지 않다. 오프닝곡 ‘옥수수Corn’는 이 작품의 핵심 소재인 옥수수에 대한 찬가다. 옥수수의 역사와 우수성을 온갖 언어유희와 농담을 곁들여 설명하는 이 곡은 관객이 작품의 배경과 분위기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2막을 여는 곡 ‘예수를 사랑해We Love Jesus’ 또한 컨트리 음악 특유의 신명 나는 멜로디로 관객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주인공 메이지의 솔로곡 ‘벽Walls’, ‘세상 물정에 밝은 여자Woman of the World’, ‘아마도 사랑은Maybe Love’은 기성곡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귀에 쏙 들어온다. 보의 솔로곡 ‘누군가는Somebody Will’, ‘괜찮아OK’ 또한 멜로디가 아름답고 중독성 있다. <셕트>의 작사·작곡을 맡은 클라크와 매커낼리는 이 작품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하자마자 토니 어워즈 작곡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관객의 허를 찌르는 코미디


<셕트>의 극본을 쓴 로버트 혼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13> <투씨>의 극본을 썼고, <투씨>로 토니 어워즈 극본상을 받은 바 있다. 또한 <디자이닝 위민>을 포함한 여러 시트콤과 코미디 영화 대본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셕트>는 시트콤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아재 개그’ 스타일의 엉뚱한 말장난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보의 형 피넛은 시트콤에 곧잘 등장하는 괴짜 캐릭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비슷한 개그 코드가 반복되다 보니 뒤로 갈수록 웃음이 반감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큰 웃음을 유발하는 인물은 두 명의 해설자다. 그레이 핸슨과 애쉴리 디 켈리가 맡은 두 해설자는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언어유희로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를 이어나간다. 일반적으로 무대 위 해설자는 극에서 한 발짝 떨어져 건조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과 달리 <셕트>의 두 해설자는 때때로 직접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 극 중 인물을 연기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깜짝 놀랄 반전이 숨겨져 있는데, 그건 바로 두 해설자가 각각 메이지와 보, 룰루와 골디의 손주라는 사실이다. 필자는 <셕트>의 드레스 리허설을 본 후 정식 개막한 작품을 다시 관람했는데, 두 번째로 공연을 보고 나서야 두 해설자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어린아이가 소꿉놀이를 하거나 동화책을 읽으며 노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하는 두 해설자는 이야기 안팎을 오가며 즐거워하고, 가끔은 먼발치에서 메이지, 보, 룰루, 골디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두 해설자의 활약은 골디가 폭력배와 보석상으로부터 전화를 받는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폭력배는 골디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이 사고로 죽어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하고, 보석상은 콥 카운티에서 나온 원석이 알고 보니 거래 가치가 없는 돌덩이일 뿐이라는 말을 전한다. 여기서 두 해설자는 중절모와 안경을 번갈아 써서 폭력배와 보석상을 연기한다. 골디는 두 대의 전화기를 붙들고 정신없이 통화를 이어가다가 결국 빚쟁이가 자신을 잡으러 오고, 콥 카운티의 원석이 엄청난 부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오해를 하게 된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이 장면에서 배우들은 완벽한 합으로 코미디를 완성한다. <헤어스프레이> <캐치 미 이프 유 캔>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수많은 연극과 뮤지컬을 연출한 잭 오브라이언의 내공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감성과 주체적 여성상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셕트>의 무대는 아날로그 정취로 가득하다. 2층 구조의 무대는 낡은 목조 헛간을 형상화했다. 프로젝션 영상은 사용하지 않고, 이동식 플랫폼을 룰루의 위스키 양조장, 골디의 픽업 트럭, 메이지와 룰루가 화해하는 장소인 현관 계단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한다. <웨이트리스> <민 걸즈> <더 프롬> <뜨거운 것이 좋아> 등 최근 몇 년간 브로드웨이 뮤지컬 코미디 무대를 도맡아 온 무대디자이너 스캇 패스트의 작품이다.


의상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경력을 쌓다가 <셕트>로 처음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의상디자이너 틸리 그라임스가 맡았다. 콥 카운티 마을 사람들은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 청 재킷, 조끼를 입는데, 실제로 미국 농장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옷차림이다. 주인공 메이지는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의상을 바꿔 입는 인물이다. 마을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바깥세상을 경험하고 인식의 변화를 겪기 때문이다. 탬파를 방문한 이후 메이지는 과감한 네온 컬러에 목 라인이 깊게 팬 상의를 입는다.


<셕트>의 중심에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두 여성 메이지와 룰루가 있다. 이들에게 반감을 품었던 남성들이 점차 이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해피 엔딩이 찾아온다. 메이지 역의 캐롤라인 이너비클러는 이 작품을 통해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는데, 남부식 억양과 컨트리 음악을 야무지게 소화했다. 룰루 역의 알렉스 뉴웰은 2017년 <원스 온 디스 아일랜드>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이며 화려하게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배우다. 그는 룰루의 솔로곡 ‘독립적인 나Independently Owned’를 멋지게 소화해 박수를 받았다. 콥 카운티에서 위스키 양조장을 운영하는 룰루가 당당하게 자기 인생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담은 이 곡은 골디가 룰루에게 홀딱 반하는 계기가 된다.

 

 

토니 어워즈의 성별 이분법에 맞서


<셕트>는 브로드웨이에서 10년 넘게 공연 중인 뮤지컬 코미디 <북 오브 몰몬>을 대체할 만한 작품이라는 긍정적인 평가 속에 순항 중이다. 6월 11일 열리는 제76회 토니 어워즈에서는 작품상, 극본상, 작곡상, 연출상, 조연상, 무대 디자인상, 음향 디자인상, 편곡상 후보에 올라 수상 결과에 기대가 모인다. <셕트>의 수상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가 또 있다. 룰루 역으로 조연상 후보에 오른 알렉스 뉴웰이 배우를 남녀로 나누어 시상하는 토니 어워즈의 방식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젠더 논컨포밍Gender Nonconforming(생물학적 성별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으로 소개하는 뉴웰은 ‘Actor’는 성별 구분 없이 배우라는 직업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왜 남성 배우는 ‘Actor’로, 여성 배우는 ‘Actress’로 구분해 시상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Actor’로서 수상 후보에 오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그는 뮤지컬 남우 조연상Best Performance by an Actor in a Featured Role in a Musical에 피넛 역의 케빈 카훈과 나란히 후보로 올랐다. 토니 어워즈의 성별 이분법에 저항한 배우는 뉴웰만이 아니다. <앤 줄리엣>에 출연 중인 논바이너리Non-binary(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서 벗어난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 배우 저스틴 데이비드 설리번은 아예 토니 어워즈 수상 후보에 오르기를 거부했다. 토니 어워즈가 다양한 성 정체성을 포용하는 시상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과연 뉴웰이 조연상을 차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5호 2023년 6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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