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댄싱> 춤에 보내는 찬사 [No.224]

글 |오한솔(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Julieta Cervantes 2023-06-07 1,351

<댄싱>
춤에 보내는 찬사

 

삐딱하게 눌러쓴 중절모, 모자챙을 집은 엄지와 검지. 번갈아 가며 뒤로 돌아가는 어깨, 미세하게 씰룩거리는 골반. 그리고 허리춤에서 손바닥을 쫙 펼치는 재즈 핸드. 우리에게는 <시카고>로 익숙한 안무가 겸 연출가 밥 포시의 특징적인 안무들이다. 이른바 ‘포시 스타일’이라는 독특한 안무를 만들어낸 안무가이자 동시에 혁신적인 연출가였던 밥 포시의 마지막 브로드웨이 흥행작 <댄싱>이 초연 45년 만에 브로드웨이 무대로 돌아왔다. 

 

 

안무가 밥 포시의 마지막 흥행작


1927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밥 포시는 열세 살 때부터 전문 댄서 활동을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댄서로 데뷔했고, 이후 뮤지컬 영화의 명가 MGM 영화사와 계약해 영화에도 출연했다.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활약하던 밥 포시는 댄서에서 안무가로, 또 연출가로 점점 더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토니 어워즈에서만 안무상을 여덟 차례 수상한 밥 포시는 20세기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춤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연출가로도 명성을 날렸는데, 1973년에는 뮤지컬 <피핀>으로 토니 어워즈 연출상과 안무상을, 영화 <카바레>로 아카데미 어워즈에서 감독상을, 텔레비전용 콘서트 영화 로 에미 어워즈 작품상, 감독상, 안무상을 받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토니상, 아카데미상, 에미상을 같은 해에 받은 사람은 밥 포시가 유일하다. 

 

1978년 3월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댄싱>은 밥 포시의 마지막 브로드웨이 흥행작이다. 밥 포시는 1975년 개막한 <시카고>를 준비하던 중 건강상의 부침을 겪으며 죽을 고비를 넘겼고, 다른 창작자와 오랜 시간 협업이 필요한 뮤지컬 작업 방식에 부담을 느꼈다. 마침 춤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뮤지컬을 만들고 싶었던 밥 포시는 제작부터 연출, 안무, 구성을 도맡아 <댄싱>을 완성했다. <댄싱>은 이렇다 할 플롯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춤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1920~30년대 유행가와 1970년대 대중가요, 그리고 클래식 등 대중에게 친숙한 음악을 사용하고, 자신의 안무가 ‘포시 스타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탭 댄스부터 발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움직임을 엮었다. 안무가 상당히 고난도인데, 보통 언더스터디를 맡은 댄서가 한 역할을 익히는 데 며칠 정도 걸렸던 것에 비해 <댄싱>은 한 달이나 소요될 정도였다. 고난도 안무 때문에 댄서들의 체력 부담과 부상 위험도 컸다. 하지만 <댄싱>은 앙상블에 머물렀던 댄서들에게 브로드웨이 무대에 주연으로 설 기회를 제공했다. 뮤지컬에서 안무가 보조적이고 장식적인 역할에 머무르던 시절, <댄싱>을 바라보는 평단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초연 당시 뉴욕타임스는 “케이크의 프로스팅이 독립 선언을 해서 자기주장을 하는 것 같다”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댄싱>은 흥행에 성공해 브로드웨이에서 4년간 공연을 이어갔고, 밥 포시에게 일곱 번째 토니 어워즈 안무상을 안겨주었다. 

 

 

초연 45년 만에 성사된 리바이벌 무대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댄싱>은 초연 이후 무려 45년 만에 성사된 리바이벌 공연이다. <댄싱>의 초연에 참여했던 배우이자 <아이다> <위키드>의 안무가로 잘 알려진 웨인 시렌토가 리바이벌 공연의 총지휘를 맡았다. <댄싱>은 지난해 여름 샌디에이고의 올드 글로브 시어터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마치고, 지난 3월 19일 브로드웨이의 뮤직 박스 시어터에서 개막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리바이벌 공연의 안무는 초연 안무와 차이가 있다. 초연의 시청각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리바이벌 공연의 안무는 초연에 출연했던 웨인 시렌토의 기억, 당시 스윙이었던 댄서 크리스틴 콜비 자크의 메모, 그리고 투어 공연 영상을 참고해 재구성했다. 또 초연의 3막 구조를 2막으로 바꾸고, 초연 당시 삭제되었던 ‘빅 시티 마임Big City Mime’ 장면과 밥 포시의 마지막 뮤지컬 <빅딜>의 장면을 추가했다. <댄싱>에는 총 16명의 댄서가 출연하는데, 초연에 비해 다양한 인종, 성별, 연령, 체격의 댄서들을 캐스팅한 것이 눈에 띈다. 리바이벌 공연은 안무뿐만 아니라 의상도 눈여겨볼 만하다. 무용 의상 전문 디자이너 리드 바템과 해리엇 정이 기능적인 편의를 살리면서 댄서 각자의 개성을 잘 담아낸 다양한 의상을 선보인다.

 

객석에 들어서면 영화 촬영장에서 사용할 법한 조명 타워가 곳곳에 놓인 빈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영화와 무대를 오가며 활동했던 밥 포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무대다. 객석 등이 어두워지면 무대 뒤 벽이 양옆으로 갈라지면서 밥 포시를 연상시키는 차림새의 댄서가 등장해 관객에게 이 작품은 플롯이 없는 뮤지컬이며, 오늘 밤 춤을 아주 많이 감상하게 될 것이라고 소개한다. 이어 정적인 음악에 맞춰 댄서들이 하나둘씩 등장해 무대를 채우면, 한바탕 신나는 춤판을 예고하듯 강력한 비트의 ‘크런치 그래놀라 스위트Crunchy Granola Suite’에 맞춘 안무로 장면이 전환된다. 이어지는 ‘퍼커션Percussion’ 장면에서는 리듬의 변주 위에 다양한 움직임을 선보인다. 장면 첫머리에 한 댄서가 “댄서들은 악기에 맞춰 춤추는 것도 좋아하지만, 댄서들 자체도 악기”라고 직접 소개하듯, 댄서들은 박자와 완벽한 싱크로를 자랑하는 동작을 선보인다. 무릎을 꿇은 여성 트리오의 정적인 춤, 복싱 동작을 응용한 남성 트리오의 파워풀하고 유쾌한 안무, 맘보 스텝을 밟으며 무대를 좌우로 쉼 없이 교차하는 댄서들의 움직임에 유머, 박진감, 섹시함을 담아내는 밥 포시의 안무에 감탄하게 된다.


1막 중반에 삽입된 ‘빅 시티 마임’은 극 중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한다. 뉴욕을 연상시키는 빅 시티에 처음 온 어리숙한 청년이 매춘부와 포주들에게 이끌려 도시의 매운맛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다. 트라이아웃 공연 이후 삭제되어 초연에서는 볼 수 없던 장면이지만 웨인 시렌토가 밥 포시의 시나리오에 밥 포시의 안무를 엮어 새롭게 만들었다. 무대 뒷면의 LED 화면을 가득 채우는 네온사인은 각종 퇴폐업소와 매춘이 성행했던 70년대 후반 타임스퀘어 분위기를 재현한다. ‘빅 시티 마임’ 장면에는 포시가 연출과 안무를 맡았던 뮤지컬과 영화의 레퍼런스가 총망라되어, 어느 작품에서 유래한 안무인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스위트 채리티>의 명장면 ‘빅 스펜더Big Spender’와 ‘부자의 허영심Rich Man’s Frug’, 의자를 이용한 안무가 돋보이는 <카바레>의 ‘나의 주님Mein Herr’, 밥 포시가 출연했던 영화 <마이 시스터 에일린>의 뒷골목 댄스와 <어린 왕자>의 스네이크 댄스 등이 연이어 등장한다. 하지만 오리지널 안무를 온전히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음악에 맞춰 선보이거나 하이라이트만 짤막하게 선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댄서 피터 존 처신이 연기하는 촌뜨기 젊은이는 뉴욕에서 안무가로 성장하는 젊은 밥 포시에 대한 은유로 보이는데, 이러한 은유는 1막의 피날레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빅 시티 마임’ 장면의 마지막에 도시의 위험한 유혹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젊은이가 무대에 홀로 남는다. 어둑한 무대 위에 모자를 비뚜름하게 눌러쓰고 담배를 문 댄서의 실루엣은 혼자 연습실에서 작업하던 밥 포시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정적 속에서 몇 가지 춤 동작을 펼쳐 보이면, 영화 <벨 오브 뉴욕>에서 프레드 아스테어가 춤에 대한 애정을 노래한 ‘나는 춤추는 사람이 되고 싶어I Wanna Be a Dancin’ Man’의 음악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한다. 젊은 댄서가 무대 밖으로 퇴장하고, 마치 그가 구상했던 안무가 무대에서 실현되듯 무대 뒤편에서 앙상블이 천천히 등장한다. “나 춤추는 사람이 되고 싶어 / 할 수 있는 동안은 / 시간의 모래 위에 내 발자취를 남길 거야 / 돈 한 푼 남기지 못하더라도.” 나직하게 노래를 부르며 댄서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는 이 장면은, 밥 포시라는 춤꾼이 자신의 우상 프레드 아스테어와 춤이라는 장르에 바치는 찬가다. 시간의 흐름 속에 덧없이 사라지게 되더라도 계속해서 춤을 추겠노라는 댄서들의 다짐은 영화 속 프레드 아스테어가 홀로 펼치는 무대와는 또 다른 감동을 전한다. 

 

 

아쉬움이 남는 2막


2막을 여는 스윙 재즈곡 ‘싱 싱 싱Sing, Sing, Sing’의 무대는 반짝임으로 가득하다. 막이 오르면 무대 위에 번쩍이는 드럼 세트와 포시의 자전적 영화 <올 댓 재즈All That Jazz>의 엔딩 장면을 오마주한 듯 테이블과 마네킹이 드러난다. 뒷벽에는 반짝이 커튼이 영상으로 재생되고, 1920년대 재즈 시대를 상징하는 샴페인 골드 색깔의 반짝이 의상을 입은 여성 댄서들과 슈트 차림의 남성 댄서들이 어깨를 흔드는 춤인 쉬미와 화려한 킥과 점프 동작을 선보인다. 무대를 꽉 채우는 브라스 사운드는 댄서들의 에너지와 어우러져 객석까지 들썩이게 만든다. 이처럼 경쾌하고 파워풀하게 시작한 2막은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 2막의 중반부를 장식하는 ‘아메리카America’ 장면은 어색한 느낌이다.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곡들로 구성된 이 장면은 초연 때는 3막 끝에 배치되어 있었다. <댄싱>이 초연한 1978년 당시만 해도 미국 건국 200주년 기념식을 치른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때라 행진곡풍의 음악과 그에 맞춘 안무는 작품의 엔딩을 장식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이번 리바이벌 공연에서는 작품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이 장면의 일부 곡을 삭제하고 2막 중반부에 위치시키는 바람에 전체 흐름과 겉돈다. 2막 엔딩 장면도 마찬가지다. 리바이벌 공연에 새롭게 삽입된 2막 엔딩은 밥 포시의 마지막 브로드웨이 뮤지컬 <빅딜>에서 발췌한 곡들로 채워졌다. 이탈리아 영화 <빅 딜 온 마돈나 스트리트>를 원작으로 한 <빅딜>은 <댄싱>과 마찬가지로 누구와의 협업도 없이 온전히 밥 포시가 혼자 연출, 안무, 대본을 맡아 완성했다. 하지만 <댄싱>과 달리 혹평 속에 69회 공연 만에 막을 내렸다. 이번 리바이벌 공연에 <빅딜>의 일부를 끼워 넣은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포시의 작업을 새롭게 조명하겠다는 의지로 보이지만, ‘아메리카’와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는 작품의 흐름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댄싱>은 플롯 없는 뮤지컬을 표방하는데, <빅딜>의 장면을 선보이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리바이벌 공연에서 새롭게 추가된 장면들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생기가 넘치는 댄서들의 퍼포먼스는 관객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여느 공연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현장감과 활기가 <댄싱>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사실은 커튼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밥 포시가 말했듯 ‘춤추는 즐거움’이 작품의 목적이자 메시지라면, 객석에서 일제히 터져 나오는 관객들의 갈채와 함성은 이번 리바이벌도 그 목적을 꽤 성공적으로 달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4호 2023년 4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