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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저 불빛을 향하여 <비스티> 정민·정동화 [No.224]

글 |안세영 사진 |조현설 2023-06-07 2,344

저 불빛을 향하여
<비스티> 정민·정동화

 

<비스티>는 청담동 호스트바 ‘개츠비’에서 일하는 선수들이 각자의 욕망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2014년 초연한 작품이 네 번째 시즌을 맞기까지 여러 배우가 개츠비를 거쳐갔지만, 정민과 정동화의 이름은 한 번도 출연진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에이스 김주노 역의 정민과 그런 주노를 붙잡아 두려는 마담 이재현 역의 정동화. 극 중 주노와 재현이 그러하듯, 개츠비를 가장 오래 지켜온 멤버가 된 두 배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함께 쌓은 역사

<비스티>에서는 주노가 재현을 형이라고 부르는데, 무대 아래서 동화 씨가 정민 씨를 형이라고 부르는 걸 들으니 기분이 묘하네요. (웃음) 연기할 때 역전된 형, 동생 관계 때문에 어색하진 않았어요?
정민
동화하고는 2007년 <알타보이즈>에서 같은 역할로 처음 만났어요. <비스티>로 다시 만났을 땐 이미 잘 아는 사이여서 그런지 극 중에서 동화가 저를 동생으로 대해도 이상하지 않던데요. 
정동화 형이 워낙 잘 받아줘서 저도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초연 때부터 함께 의견을 나누며 캐릭터를 만들어서 어색함을 못 느낀 것 같기도 하고요.
정민 그것도 그래. 지난 시즌에 주노를 연기했던 (박)규원이가 이번 시즌에 재현으로 돌아오는데, 연습 중에 규원이가 저한테 욕을 하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배우들이 안절부절못하더라고요. 자기들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나? (웃음)

 

초연 당시 각자의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가장 큰 숙제는 무엇이었나요?
정민 저는 주노가 개츠비의 에이스라고 해서 남다르게 보이길 바라지 않았어요. 오히려 평범해 보이길 바랐죠. <비스티>는 호스트바라는 특이한 장소를 배경으로 삼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제가 연기하는 주노는 지향점이 없는 삶을 대변해요. 많은 사람이 입버릇처럼 “내일부터 운동할 거야”라고 말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관성에 따라 살아가잖아요. 주노도 그래요. 어린 시절의 꿈을 되찾겠다고 말하지만 매일 똑같은 삶을 살아가죠. 하지만 이런 삶조차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에이스의 삶으로 여겨진다는 점이 현실과 닮아 있다고 생각해요.
정동화 형의 주노는 절대 평범해 보이지 않아. 팔등신이 등장하는데 어떻게 평범해 보여? 저는 재현의 카리스마를 표현하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재현은 개츠비의 마담으로서 나머지 인물을 휘어잡고 끌고 가야 하는 역할인데, 그전까지 이렇게 강렬한 악역을 연기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저한테는 큰 도전이었죠. 제가 몸집이 크거나 성격이 거친 편도 아니고, 실제로 나이가 어리기도 했으니까요. 초연 때는 무조건 세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시즌을 거듭하면서 저만의 색깔을 찾았어요. 어울리지도 않는 마초 흉내를 낼 게 아니라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가자, 대신 그 안에 숨은 날카로움을 표현하자고 생각했죠. 

 

연기를 위해 원작 영화 <비스티 보이즈> 외에 또 참고한 영화가 있나요? 
정동화
<대부>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저수지의 개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비열한 거리> 등등 누아르 영화는 다 찾아봤어요. 그 중에서도 <신세계>의 마지막 장면은 재현과 주노의 관계를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영화는 범죄 조직의 실세인 정청과 조직원인 척하며 잠입 수사 중인 경찰 이자성이 친형제 같은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하나의 장면으로 설명해요. 단둘이서 여러 명의 적을 무찌르고 “야한 영화나 보러 가자” 하고 호쾌하게 떠나는 장면으로요. 개츠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재현과 주노 사이에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죽음의 문턱에서 함께 힘을 합쳐 헤쳐 나온 기억이 있으니까 지금처럼 끈끈한 관계가 만들어진 거죠.
정민 저는 주노와 재현의 과거를 상상하면 <태양은 없다>가 떠올라요. 생계를 위해 흥신소에서 일하면서도 권투를 포기하지 못하는 복서 도철과 돈을 위해 못 할 짓이 없는 흥신소 직원 홍기의 우정이 주노와 재현을 닮았거든요. 주노와 재현도 <태양은 없다>에 나오는 두 친구처럼 방황하다가 개츠비를 열면서 <신세계>로 넘어간 거 아닐까요? (웃음)

 

끈끈했던 재현과 주노의 사이가 틀어진 이유는 주노의 첫사랑이었던 지원이 재현의 ‘와이프’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암시가 나오잖아요. 재현과 주노에게 지원은 어떤 존재인가요?
정동화 주노를 개츠비에 붙잡아 두기 위한 마지막 끈이죠. 재현에게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정민 주노에게 지원은 살아갈 힘을 주는 존재예요. 하지만 배우로서 저는 주노와 지원의 관계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연기하지는 않아요. 주노는 타임머신을 타고 지원과 함께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데, 지원이는 지금도 만나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점이 모순적이라고 느꼈어요. 실은 지원이를 되찾는 것보다 순수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인 것 같아요. 지원이만 있으면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싶은 거죠. 

 

주노는 개츠비를 “못 떠나는 게 아니라 안 떠나는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잖아요. 그 말에 숨은 의미가 뭘까요?
정민 실제로는 떠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게 아닐까요? 이 작품의 핵심은 ‘아무리 노력해도 지상으로 올라갈 수 없는 이들의 삶’을 보여주는 거예요. 선수들 모두 자기만의 이상을 추구하며 개츠비를 벗어나려 하지만, 그래 봐야 갈 수 있는 곳은 겨우 지하 1층이라는 거죠. 마담은 이미 그 과정을 충분히 겪어본 인물로 설정되어 있어요. 그리고 마담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주노 또한 마담이 아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은 이미 그들의 끝이 해피 엔딩이 아니리라는 걸 예감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 결말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죠. 꼭 지원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런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균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재현은 왜 주노를 감시하기 위해 제삼자인 승우를 끌어들이는 위험한 선택을 한 걸까요?
정동화 제가 생각하는 재현은 아주 집요한 친구예요. 사람이 무언가에 꽂히면 시야가 좁아지고 판단력이 흐려지잖아요. 재현도 주노와의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판단력이 흐려졌어요. 주노를 붙잡아 두기 위해 굳이 지원을 볼모로 삼거나 승우를 감시자로 끌어들일 필요가 없었는데, 재현의 집요함이 오히려 더 큰 균열을 불러일으킨 거죠. 자기 딴에는 해결책이라고 생각한 게 긁어 부스럼이었던 거예요. 재현의 강한 자기애 밑에는 낮은 자존감이 숨어 있어요. 자존감이 낮으니까 선수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자기가 무시당했다고 느끼고 시비를 거는 거죠. 결국 배신당하고 죽음을 맞는 순간에야 자신이 문제의 원인이었음을 깨닫는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가르쳐준 비밀

 

극 중 재현은 주노에게 둘만 아는 추억 얘기를 꺼내곤 하죠. 두 분은 지금까지 <비스티>의 모든 시즌 공연에 참여했는데, 그 가운데 잊지 못할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정동화 2017년 공연 때였을 거예요. 극 중에 골프채를 든 민혁과 술병을 든 재현이 대치하는 장면이 있는데, 한 번은 술병이 골프채에 부딪혀 박살이 났어요. 그렇다고 재현이 주춤할 순 없으니까 깨진 술병을 그대로 들고 “어떡하냐, 네가 죽겠다” 하고 민혁을 위협했죠. 마침 민혁이 재현의 기에 눌리는 대목이었는데, 민혁이가 진심으로 무서워하며 도망가더라고요. 그때 그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아 있어요. 문제는 그 다음이었죠. 이어지는 장면에서 저와 민혁 역의 배우가 유리 조각이 흩어진 바닥을 뒹굴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중간에 승우 역의 배우가 등장해서 “누가 이런 거야?” 하고 바닥 청소를 한 뒤 다시 공연을 이어갔죠. 
정민 2020년에 나랑 공연할 때도 술병 깨진 거 기억나? 마지막에 재현이 죽는 장면을 연기할 때 혹시라도 바닥에 유리 조각이 남아있을까 봐 조심했잖아. (김)종구 형과 공연할 때도 소품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이 있어요. 극 중에서 주노와 재현이 마주보고 대립할 때 정적을 뚫고 핸드폰 진동음이 울리는 장면이 있어요. 그럼 재현이 전화를 받고 “옆 박스에서 지원 요청 들어왔어”라고 대사를 쳐야 하는데, 종구 형이 전화를 안 받는 거예요. 그 순간 딱 알겠더라고요. 핸드폰을 두고 나왔구나! 근데 신기하게도 머릿속에 어떻게 대처해야겠다는 계획이 쫙 떠올랐어요. 사실 거기서 꼭 전화를 받지 않아도 흐름상 큰 문제는 없거든요. 다행히 종구 형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곧 대사를 이어가더라고요. 공연을 오래 하다 보니 웬만한 사고에는 당황하지 않게 됐어요.

 

<비스티>는 모든 인물이 ‘어두운 내 삶을 환하게 밝혀줄’ 불빛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노래하면서 시작하잖아요. 두 분에게 있어 그 불빛은 무엇인가요?
정민
저는 어릴 때부터 뚜렷한 꿈이 없었어요. 그런 제 자신이 늘 불만스러웠죠. 그래서 옆 사람이 뭘 한다고 하면 “나도!” 하고 따라했어요. 그게 취미가 되고, 전공이 되고, 일이 되어 지금 이렇게 뮤지컬배우의 삶을 살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는 매 순간 내 옆에 있어준 사람들이 바로 불빛이에요. 지금은 함께 공연하는 동료 배우들이 제 불빛이죠.
정동화 저는 원래 가수를 꿈꾸다가 <레 미제라블> 10주년 콘서트 영상을 보고 뮤지컬배우로 꿈이 바뀌었어요. 그 영상에 나왔던 마이클 볼 같은 배우가 되는 게 저의 목표였죠. 한동안은 그 목표만을 향해 달렸어요. 어떻게 하면 무대 위에서 더 돋보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하면서요. 하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깨달았고, 작품의 방향성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죠. 지금은 관객분들이 저의 불빛이에요.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 때마다 작품을 사랑해 주시고 또 저를 응원해 주시는 관객분들 덕분에 나아갈 힘을 얻으니까요.

 

‘마담은 알아’라는 노래에서 재현은 선수들의 아주 작은 생각까지도 훤히 들여다보인다고 노래하죠. 경력이 쌓이면서 후배 배우를 바라볼 때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정민
방금 전에 동화가 얘기한 내용이 배우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이에요. 어릴 때는 내가 돋보이는 게 제일 중요하다가, 어느 시점에는 상대 배우와 호흡을 주고받는 재미에 빠지고, 또 어느 시점에는 객석 반응에 온 신경이 쏠리기도 하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시야가 넓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같은 과정을 겪고 있는 후배를 보면 응원해 주고 싶어요. 그 마음을 잘 아니까 때로는 더 나은 방향이 있다는 걸 알아도 후배의 의견에 따르곤 해요.
정동화 동감이에요. 저는 후배들에게 섣불리 조언하지 않으려고 해요. 저 역시 과거에 선배들이 제가 고민하는 것에 대한 답을 알려줬을 때 그 답이 와닿지 않았거든요. 결국 조언도 당사자가 그 답을 들을 준비가 됐을 때 해줘야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상대 배우가 어떤 요구를 하든 받아줄 수 있을 만큼 경험치가 쌓이기도 했고요.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맞춰나가다 보면 또 제가 생각지 못한 결과물이 나오더라고요.


<비스티>를 포함해 두 분이 함께 출연한 공연을 시즌별로 계산하면 총 15편에 달하더라고요. 오랫동안 함께해 온 동료 배우로서 서로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정민 저는 연기할 때 카운터펀치(권투에서 상대 선수가 공격해 오는 순간 되받아치는 기술)를 추구하는 스타일이에요. 근데 그 카운터펀치를 치려면 상대가 먼저 나한테 자극을 줘야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함께 공연해 본 배우 중에 동화가 1등이에요. 동화가 리드를 잘해주기 때문에 저도 거기에 맞춰 카운터펀치를 날릴 수 있죠. 
정동화 영광입니다. 저는 형의 평정심이 부러워요. 전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예민한 성격이거든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무대에 오르기 전에 모든 걸 꼼꼼하게 계획하고, 관객 반응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근데 형은 무대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편안해 보여서 부러워요. 형이 심리적으로 동요하거나 무너지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정민 그래서 ‘한량’이란 소리 많이 들어요. (웃음) 전 오히려 동화의 철저한 자기 관리 능력이 부러운 걸요. 배우마다 타고난 성향이 다르지만 다들 자기 방식대로 최선을 다하는 거지, 어떤 게 정답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각자 장단점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배역을 맡아도 다른 캐릭터가 나오는 거잖아요. 그게 공연이 재미있는 이유죠. 이번 시즌에도 새로 들어온 배우들과 함께 관객분들이 사랑했던 개츠비를 다시 잘 꾸려보겠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4호 2023년 5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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