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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지금 여기 우리 <빠리빵집> 고훈정·김건우 [No.224]

글 | 최영현, 안세영 사진 |김현성 Stylist | 최혜련 Hair/Make-up | RUE710, 김남선 2023-06-07 4,237

지금 여기 우리
<빠리빵집> 고훈정·김건우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열아홉 성우가 자기 또래의 부모님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빠리빵집>은 늘 가까이 있어서 소중함을 잊기 쉬운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작품 <빠리빵집>을 통해 자신들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는 배우들이 있다. 드라마틱한 인물을 선보여 왔던 고훈정과 뮤지컬 무대에 처음 도전하는 김건우다. 


변함없는 꿈을 향해
고훈정

 

 

따뜻한 이끌림

<킹아더> 이후 거의 1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왔어요. 그동안 뭘 하며 지냈어요? 개인적인 휴식의 시간을 가졌나요?
공연을 쉬었다 뿐이지 평소보다 더 바쁘게 보냈어요. 개인적인 일도 하고, 친구 (김)찬호랑 콘서트도 하고요. 휴식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에서 얻는 활력이 있잖아요. 저에게 지난 1년은 그런 활력을 충전하는 시간이었어요. 그중에서도 콘서트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찬호랑 둘이 기획부터 공연장 섭외까지 직접 다 진행했거든요. 매주 만나서 콘서트를 준비하다 보니 두세 달이 금방 지나가더라고요.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쓰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찬호랑 언젠가 시간이 허락하면 콘서트 말고 공연도 올려보자 그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선택한 작품이 <빠리빵집>이에요. 지금까지 참여했던 작품과 결이 많이 달라서 의외였어요. 어떻게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제작 피디님이 이런 작품이 있는데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셨어요.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처음이라 고민을 좀 하다가 대본을 받아서 읽어봤는데, 감정이 이입되는 순간이 정말 많았어요. 특히 성우가 과거로 돌아가서 엄마를 만나는 장면에서는 가슴 한구석이 찡해지더라고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눈물도 좀 나고. (웃음) 저에게 가족은 늘 소중한 존재지만, 나이가 들수록 소중함도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빠리빵집>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닿았나 봐요. 따뜻한 마음으로 공연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보시는 분들도 마음 따뜻해질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서 출연을 결심했어요. 

 

<빠리빵집>도 그렇고, 창작 초연 작업에 자주 참여하는 것 같아요. 창작 초연 작업을 선호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무대에서는 정해진 약속대로 연기를 하잖아요. 그 약속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특히 창작 초연 작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연습하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수많은 시도 중에 좋은 것만 고르고 골라서 작품을 완성하는 기쁨도 커요. 솔직히 예전에는 연습의 즐거움을 잘 몰랐어요. 하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연습실에서 동료 배우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한 장면, 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재미를 알게 됐어요. 그래서 창작 초연 작업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아요. 

 

연습실에서 조금씩 완성되고 있는 <빠리빵집>은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 주세요.
쉽게 말하면 판타지를 가미한 따뜻한 가족 이야기예요. 주인공은 파티셰가 되고 싶은 고등학생 성우예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둘이 사는데 아버지와 사이가 그리 좋진 않아요. 성우는 파리로 유학을 가고 싶은데 아버지가 반대하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성우가 빠리빵집이라는 곳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부모님이 고등학생이던 과거로 돌아가게 돼요. 거기서 이런저런 사건을 겪고 자신을 돌아보고, 또 아버지와의 관계도 돌아본다는 이야기예요. 저는 성우의 아버지 영준을 맡았어요. 학창 시절에 시인을 꿈꿨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해 지금은 공무원이 된 인물이에요.

 

굉장히 극적인 인물을 연기한 적이 많아서 영준처럼 평범한 인물을 연기하는 게 오히려 도전일 수 있겠어요. 
영준처럼 평범한 인물을 연기하는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특별할 건 없어요. <호프>의 원고지 K든 <개와 고양이의 시간>의 고양이 플루토든 <빠리빵집>의 영준이든 새로운 인물을 연기하는 건 늘 도전이에요. 대신 그런 건 있어요. <빠리빵집>은 자극적인 사건이 없는 일상을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고민이 ‘나’로부터 출발하게 되더라고요.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먼저 생각해 보고, 그다음에 제 생각과 경험을 영준의 캐릭터와 상황에 적용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고훈정과 영준의 경계가 모호해지더라고요. 무대에서 영준이 아니라 고훈정이 보이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연습하는 모습을 녹화해서 모니터하거나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의 피드백을 받아보면서 인물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러면 영준은 지금까지 맡았던 인물 중에 고훈정을 가장 많이 닮은 인물이겠네요?
연습하다 보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저 자신을 인물에 많이 반영하려고 해요. 그런 면에서 영준을 연기하는 게 재미있으면서도 어려워요. 앞서 말한 대로 극 중 인물과 나 자신의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하니까요. 보통 새로운 인물을 만들 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데,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서 그런지 영준이라는 인물은 굉장히 편하게 만들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연기할 수 있을지 행복한 고민을 많이 해요.


꿈을 향한 발걸음

 

<빠리빵집>에서는 성우의 아버지로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 고등학생 영준을 연기하죠. 열아홉 살의 고훈정은 어떤 아들이었어요?
어떤 아들이었는지는 부모님께 여쭤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애물단지였겠죠, 뭐. 예체능과 전혀 무관한 집안에서 갑자기 음악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니까요. (웃음) 그런데 제가 가진 끼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더라고요. 할머니와 아버지가 노래를 정말 잘하시거든요. 할머니는 고등학생 때 선생님들이 성악을 해보라고 추천할 정도로 노래를 잘하셨대요. 워낙 옛날이라 집안의 반대로 포기하셨지만요. 그런 걸 보면 제가 가진 예술적인 기질은 집안 내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음악 하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때 제 꿈은 종합 예술인이었어요. 하하하. 그 당시 가장 심취했던 건 음악이었지만 예술의 범주에 포함되는 건 다 좋아했어요. 앞으로 뭐가 되겠다 혹은 뭘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늘 종합 예술인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부해서 대학에 가라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나는 예술인이고, 이렇게 예술혼이 불타고 있는데 예술 관련 전공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웃음) 지금의 저라면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하든 예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거예요. 근데 그때는 예술에 꽂혀서 아무것도 안 보였던 거죠. 

 

고등학생이 스스로를 종합 예술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예사롭지 않네요. (웃음) 그럼 언제부터 예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거예요?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타고난 게 아닐까 생각해요. 어릴 때 집에 전축 하나가 있었는데 그게 망가질 때까지 노래를 계속 들었어요. 어린아이가 그렇게까지 노래를 좋아하는 건 타고났다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거 같아요. 본격적으로 노래에 관심을 갖고 부르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발라드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를 만큼 명곡이 쏟아져 나올 때였는데, 그 어린 나이에도 발라드의 멜로디나 가사가 너무 좋더라고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노래를 외워서 곧잘 부르곤 했어요. 심지어 소풍 장기 자랑 시간에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열창했어요. “사랑해선 안 될 게 너무 많아, 그래서 더욱 슬퍼지는 것 같아” 동요를 부를 나이에 가요를 불러서 선생님이 무척 기겁했던 기억이 나요. (웃음)

 

극 중 영준과 달리 한 번도 꿈을 포기한 적이 없다고 들었어요. 어떤 순간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종합 예술인이라는 꿈은 한 번도 포기한 적 없지만 어쩔 수 없이 하고 싶은 걸 포기해야 하는 순간은 늘 있죠. 선택의 갈림길에서 모든 걸 선택할 순 없으니까요. 그때마다 꿈을 포기한 게 아니라 꿈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때 꿈과는 무관한 PC방 아르바이트를 하고 회사에 다닐 때도 있었지만 종합 예술인이라는 꿈은 변함없었어요. 최근에 들은 말 중에 배우 김혜수 씨가 “모든 상황이 나한테 죽을 때까지 불리하지만은 않다”라고 한 말이 참 좋더라고요. 살아가는 동안 상황이 나에게 늘 유리할 수 없지만, 반대로 늘 불리할 수도 없어요. 당장 꿈이나 목표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어요. 비록 지금은 원하지 않는 길을 가더라도 앞으로 제 길로 돌아올 수 있고, 아니면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도 있어요. 꿈이라는 말에 갇혀서 자신의 가능성을 닫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한 번도 뮤지컬배우나 가수의 꿈을 꿔본 적이 없어요. 종합 예술인이라는 꿈을 좇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아직 종합 예술인의 꿈도 다 이룬 게 아니에요. 갈 길이 멀어요. 삶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는 걸 아니까 조바심 내지 않고 천천히 꿈을 향해 가보려고요. 

 

‘종합 예술인’처럼 원대한 꿈을 꾸는 것도 도움이 되겠어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마지막으로 <빠리빵집>을 보러 올 관객 여러분께 한마디 부탁해요. 
많은 사람이 모여서 공연을 만들고, 무대에 올리는 건 결국 관객에게 보이기 위해서예요. 관객이 없다면,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을 거예요. 관객 여러분 덕분에 공연할 수 있어서 감사해요.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예요. 관객에게 우리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준비 중이니까, 부디 우리의 공연이 보시기에 흡족하시길 바라요.

 

 


배우로 숙성되는 시간
김건우

 

처음의 설렘과 떨림

 

인기 드라마 <더 글로리>의 손명오 역을 맡아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시점에 뮤지컬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왜 무대에 관심을 갖게 된 거예요? 
그동안 매체 연기를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무대에 대한 열망이 있었어요. 드라마나 영화는 촬영 전까지 배우 혼자 열심히 배역을 연구한 다음 카메라 앞에서 준비한 연기를 선보이고 나면 그걸로 끝이거든요. 반면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는 여러 배우가 하나의 팀을 이뤄 긴 시간 연습실과 무대에서 살을 맞대고 시간을 보내잖아요. 그러면서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합을 맞춰나가는데, 그런 밀도 높은 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무대에 오른 뒤에도 상대 배우와의 호흡에 따라, 관객의 반응에 따라 매일 조금씩 연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고요. 

 

<빠리빵집>이라는 작품은 어떤 점 때문에 선택했어요?
<빠리빵집>은 파티셰를 꿈꾸는 열아홉 살의 성우가 오래된 빵집에서 일하다가 자기와 같은 열아홉 살 시절 부모님을 만나는 이야기예요. 과거로 돌아간 성우는 부모님의 친구가 되어 사랑에 서툰 두 사람을 이어주기 위해 애쓰죠. 전작 <더 글로리>를 비롯해 지금까지 주로 악역이나 센 이미지의 역할을 연기해 왔던지라 정반대의 매력을 지닌 따뜻한 가족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어요.

 

이번에는 꿈 많은 십대 고등학생 역할을 맡아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성우를 연기하면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싶어요?

일단 고등학생이라고 해서 꼭 어리게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성우는 엄마 미연과 아빠 영준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부모님의 진심을 잘 이해하는 아들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래서 연습할 때 제가 등장하는 장면이 아니더라도 미연과 영준 역할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보고 있어요. 

 

<빠리빵집>은 성우가 부모님의 과거를 지켜보며 멀게만 느껴졌던 아빠와 가까워지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성우가 아빠 영준에게 마음을 여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현재 시점에서 성우가 바라보는 아빠는 딱딱하고 고지식한 어른이에요. 한 마디로 ‘꼰대’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면서 그런 아빠에게도 시인을 꿈꾸었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시절이 있었다는 걸 알게 돼요. 어찌 보면 지금의 자신보다 더 큰 열정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 가정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꿈을 포기해야 했던 거죠. 미처 몰랐던 아빠의 인간적인 모습을 마주하면서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작품 속에서 특히 마음을 울린 대사나 가사가 있나요?
성우가 아빠를 생각하며 부르는 솔로곡 ‘몰랐어’에 이런 가사가 나와요. “난 몰랐어,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었단 걸.” 그 부분을 노래할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현재 시점의 아빠는 잘 웃지도 않는 사람인데, 고등학생 시절의 영준은 성우 앞에서 해맑게 웃어 보이거든요. 아빠의 그런 모습을 모르고 살았다는 슬픔과 이제 알게 됐다는 기쁨이 교차하면서 복잡한 감정이 드는 대목이에요. 

 

뮤지컬은 같은 역할에 여러 명의 배우를 캐스팅하곤 하잖아요. 성우의 아빠 영준 역에도 세 명의 배우가 캐스팅되었는데, 배우마다 따로 합을 맞추는 게 어렵지 않아요?
전혀요. 오히려 재미있어요. 연기라는 게 배우가 지닌 개성이 인물에 스며들어 표현되는 거다 보니 세 명의 형이 연기하는 영준이 천차만별이더라고요. 꼭 세 명의 다른 영준과 함께 연기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어요. 그중에서도 오늘 함께 표지 촬영을 한 훈정 형은 성우의 아빠로 등장하는 현재 시점과 고등학생으로 등장하는 과거 시점을 연기할 때의 모습이 유독 다르게 느껴지는 편이에요. 저보다 형이 더 고등학생 연기를 잘하시던데요. (웃음) 오히려 제가 성우를 너무 나이 들어 보이게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될 정도예요. 

 

그동안 드라마나 방송을 통해 노래 실력을 보여줬는데, 뮤지컬 넘버를 불러본 소감은 어때요? 
솔직히 아직은 많이 떨려요. 연기는 하면 할수록 농익기 마련인데, 노래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배우면 배울수록 더 어렵게 느껴져요. 그래서 연습 외에도 따로 시간을 내서 노래 레슨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충분히 시행착오를 겪어둬야 나중에 무대에서 자신 있게 노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려고요.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해법을 찾아야죠. 오늘도 이 인터뷰만 마치고 바로 노래 레슨을 받으러 갈 거예요. 

 


과거가 만든 현재

 

건우 씨의 학창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밴드부 보컬로 오래 활동했다면서요?
중학교에 갔더니 밴드부가 있길래 ‘한번 해볼까’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오디션을 봤어요. 결과적으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6년간 밴드부 활동을 했죠. 그렇다고 제가 가창력을 타고났다거나 진지하게 가수를 꿈꾸었던 건 아니고요, 그냥 어릴 때부터 음악을 진짜 사랑했어요. 어디를 가든 음악 감상에 필요한 물건을 빼놓지 않고 챙겨 다닐 정도로요.

 

그럼 배우라는 꿈을 갖게 된 건 언제부터예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저랑 가장 친한 친구가 연기를 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어요. 배우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라서 대체 연기 학원에서 뭘 배우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오감을 여는 수업을 한대요. 여기저기 걸어 다니면서 물체를 만지고 냄새를 맡는다나? 그 말을 듣고 확신했어요. 아, 이 친구가 사기를 당하고 있구나. (웃음) 그래서 연기 학원에 따라갔는데, 저한테도 대사를 주며 한번 읽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시간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결국 저도 친구들 따라 학원에 등록했어요. (웃음) 그 길로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죠.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도 그 꿈을 지지해 주었나요? 
배우로서 저의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첫 번째 관문이 대학 입시였는데, 제가 삼수 끝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갔어요. 처음에 삼수를 하겠다고 했을 때는 아버지가 반대하셨어요. 지금까지 떨어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며 다른 진로를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셔서 힘들었어요. 

 

하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원 전체 수석을 했다는 전설의 일화가 있잖아요!
그때는 아버지도 진짜 좋아하셨죠. 물론 지금도 제가 배우로 활동하는 걸 누구보다 좋아하시고요. 사실 대학 시절 저는 ‘아싸(아웃사이더)’였어요. 배우란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에서 연기를 해야 100%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학교의 규율이나 수직적인 선후배 관계가 꼭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규율을 어기지는 않았지만 자유로운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그동안 배우의 길을 걸으면서 ‘이게 내 길이 맞나’ 하는 의문이 생겼던 적은 없어요?
<더 글로리>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어요. 여러 오디션에서 계속 고배를 마셨거든요. 이상하게도 매번 높은 관문까지 가서 떨어지는 일이 반복됐어요.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자꾸 떨어지니까 연기를 그만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창 힘들었던 시기에는 목에 사원증을 건 회사원들이 다 같이 커피를 사러 나온 모습을 부럽게 쳐다보곤 했어요. 배우는 계속 누군가로부터 선택을 받아야만 하는 직업이라서 매일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하며 안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그럼에도 연기라는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가 뭔가요?
첫째는 제가 연기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분명히 어딘가 내가 쓰일 곳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나에게는 보여줄 게 많다는 생각이 저를 버티게 해줬어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빠리빵집>에 나오는 성우의 솔로곡 중에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이라는 노래가 있잖아요.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저는 굳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아요.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기보다는 지금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타입이거든요. 거꾸로 먼 미래를 상상하며 살아가는 타입도 아니에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지금을 잘 살아내는 거예요. 과거를 바꾸려 애쓰고, 멀리 있는 꿈만 쳐다보았던 성우도 마지막에는 현재의 소중함을 되새기잖아요. 저도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처음 도전하는 뮤지컬에서 제가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해 내는 것, 그게 지금 저의 가장 큰 목표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4호 2023년 5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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