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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식스 더 뮤지컬> 젊은 뮤지컬의 오래된 미래 [No.224]

글 |정수연(공연 평론가) 사진 |아이엠컬처 2023-05-30 750

<식스 더 뮤지컬>
젊은 뮤지컬의 오래된 미래

 

 

‘덕후’의 힘


<식스 더 뮤지컬>(이하 <식스>)은 탄생 과정부터 흥미롭다. 이 작품은 영문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대학생 토비 말로우와 루시 모스가 의기투합해 열흘 남짓한 시간에 대본, 음악, 안무까지 뚝딱뚝딱 만들고, 같은 학교 친구들을 배우로 캐스팅해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자기들끼리 연기하고 연주하며 신나게 공연하면서 시작되었다. 열흘? 둘 다 대본과 음악을? 아마추어끼리? 이들은 아직도 20대다. 여러모로 놀랍다. 

 

공연의 역사에도 이런 예가 있다. 일례로 연출가의 등장이 그렇다. 근대적 개념의 연출은 연극을 너무나 좋아한 앙드레 앙투안이라는 평범한 회사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자기가 보고 싶은 연극을 만들기 위해 아마추어 배우들을 데려다가 조명도 설치하기 어려운 좁은 창고에서 옹색하게 소품을 늘어놓고 직접 공연했던 것이 리얼리즘 연출의 시작이었으니까. ‘제4의 벽’은 관객과 무대가 너무 가까운 바람에 “우리 사이에 투명한 벽이 있다고 치자고요”라며 일종의 양해를 구한 것이 연극 미학으로 승화된 경우다. 연극사의 한 페이지에는 ‘연출의 시작!’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매겨져 있지만 사실은 아마추어의 즐거운 궁여지책이었던 셈이다. 

 

 

앙드레 앙투안의 연극은 당대의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으면서 극장의 규모를 늘릴 만큼 성공을 거뒀다. <식스>도 마찬가지다. 웨스트엔드에 진출하고 또 브로드웨이까지 가서 토니상도 받았으니 말 그대로 만화 같은 성공 스토리를 쓴 것이다. 이 성공 신화를 가능하게 한 힘은 무엇일까. 천재성? 부인할 수 없다. 뮤지컬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창작의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첫 작품을 이렇게 써내다니 놀라운 재능임이 맞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천재성보다 돋보이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놀이성이다. 

 

이들이 작품을 만든 열흘은 천재를 사로잡은 영감의 시간이기보다는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너무너무 재밌게 논 시간에 가까워 보인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천재보다 ‘덕후’라는 이름이 훨씬 잘 어울리는바, 이 작품은 뮤지컬과 팝을 좋아하는 덕후의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헨리 8세의 여섯 왕비로 이루어진 걸 그룹이라니. 우리 시대 최고의 여성 팝 스타들의 콘셉트를 각각의 왕비들에게 부여하고 거기에 맞게 음악을 만들어 신나게 노래하는 에너지 덕에 관객도 덩달아 같이 노는 기분이다. 

 

이런 유연함과 가벼움은 다른 작품을 의식하거나 기존의 경향을 살필 필요 없는 아마추어만의 자유로움에서 비롯된 결과일 거다. 아마추어라는 말이 ‘사랑’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해 보면, 이 작품에 흘러넘치는 흥겨움은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에 다름 아니다. 능숙해지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많이 깎여나가는 작품은 최종적으로 세련될 수는 있겠지만, 재미로 따지자면 거칠더라도 눈치 보지 않고 자기들이 사랑하는 일을 즐겁게 해낸 결과물이 훨씬 매력적이다. 

 

 

익숙한 새로움


영국 뮤지컬의 역사에서 이런 시도는 낯설지 않다. <록키호러쇼>를 떠올려보시라. 타임슬립, 양성애, 외계인 등 온갖 기괴한 이야기로 장르를 파괴한 엉뚱한 록 뮤지컬을 만들었을 때 리처드 오브라이언은 20대의 초짜 작가였다. <록키호러쇼>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라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지금까지 공연장이 관객들의 훌륭한 놀이터가 되는 것은 애초에 이 작품이 그의 놀이 정신으로 가득한 결과물이기 때문일 거다. 비단 영국이 아니더라도 이야기와 음악 모두를 자기의 언어로 구현할 수 있는 20대의 창작자들이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낸 예는 드물지 않다. <렌트>도 그런 작품이다.

 

그런데 <식스>의 놀이성에는 <록키호러쇼> 같은 뮤지컬뿐 아니라, 영국의 문화적 전통과 계보가 맞닿아 있는 부분이 또 있다. 이미 자기네들의 역사 속에서 이름과 가십으로만 남아 있는 여성들을 소재로 삼은 것부터 영국적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역시 영국의 문학적 전통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뮤지컬보다 콘서트에 가까울 만큼 트렌디한 공연인데도 이 작품의 바탕에는 여성의 문학적 말하기의 전통이 배어 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헨리 8세의 여섯 왕비인데, 이 여성들의 서사는 잘 짜인 드라마의 형식이 아니라 관객 앞에서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즉, 이야기 속의 인물이면서도 동시에 그들 스스로가 이야기꾼이 되는 형식인 거다. 이것은 19세기 여성 작가들이 많이 구현했던 서술 방식이었다. <폭풍의 언덕>에서 가정부 넬리는 세입자 록우드에게 저택의 주인 히스클리프의 오래된 사연을 들려주고, <프랑켄슈타인>의 선원은 고향에 있는 누나에게 자신이 구조한 사람이 죽어가면서 들려준 기괴한 이야기를 편지에 써서 전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사연을 듣게 되는 구술적 특징은 19세기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여성 서사의 말하기 방식이다.

 

이런 형식에서 강조점은 내용보다, 내용을 주고받는 소통의 생생함에 찍힌다. 함께 모여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이야기는 서로의 경험을 교환하는 자리가 된다는 것, 19세기의 여성 작가들은 이런 이야기의 힘에 매료됐더랬다. 그들의 소설이 전형적인 소설과는 달리 구술적인 면모가 도드라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시콜콜 일상과 마음의 작은 풍경까지도 이야기의 재료로 삼을 수 있었던 용기는 그 힘을 믿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작품이 내세운 콘서트 형식은 흥겨운 쇼이면서 동시에 여성으로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말하기의 장이기도 하다. 여섯 왕비는 각자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관객 앞에서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차분히 이야기한다. 그들은 역사 속 캐릭터를 재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객 앞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사람으로 서 있는 거다.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소통의 교감을 나누기. 가장 신나는 형식 안에 가장 여성적인 소통의 전통이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경험을 나누는 자리 


그렇다면 헨리 8세의 여섯 왕비가 함께 모여 나누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그들이 각자 풀어놓는 이야기는 폭력과 죽음의 경험이다. 몇십 년을 같이 살았어도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이혼당한 여자가 있고, 뜨거운 고백에 속아 모든 것을 다 얻은 줄 알았다가 금세 식어버린 열정에 삶이 망가진 여자가 있다. 자식 낳고 이제 좀 살 만하니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여자, 생긴 게 맘에 안 든다고 모욕당하고 무시당한 여자, 어리고 가진 것 없는 여자는 맘대로 취급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착취당한 여자도 있다. 남편보다 더 오래 살아서 자기의 이름을 책으로 남긴 여자가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익숙하게 들리는 까닭은 이것이 비단 역사 속 특별히 불행했던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들이 겪었던 폭력과 죽음은 여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경험이기에 그렇다. 사는 동안에 서로 만날 수 없었지만, 같은 질감의 삶을 살았던 이들이 상상의 극장에 함께 모여 나누는 이야기는 그래서 불행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왕비로서 그들은 공존할 수 없지만 여성으로서는 각자의 불행도 서로의 경험으로 함께 나누는 동료가 될 수 있다는 것, 이 작품의 발랄한 상상력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절대 무게를 잡지 않는다. 불행을 이야기하는 제일 좋은 방식은? 눈물도 고백도 아닌, 배틀이다! 걸 그룹의 리드보컬을 정하기 위해 선택한 게임의 방식이 불행 배틀인 거다. 슬픔이나 연민이 자리 잡을 틈 없이 벌써 승부욕으로 달아오른다. 여섯 명 모두 한판 제대로 붙어볼 만큼 그들이 겪었던 수난이 만만치 않은 덕이다. 이들은 앞다투어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자기의 정체성을 왕비가 아니라 여성으로 선명하게 던져놓는다. 만약 이런 이야기를 각 잡고 진지하게 했다면 이 작품은 에든버러의 한구석에서 그 운을 다했을 거다. 

 

왕비들은 팝스타의 콘셉트를 빌려 자기의 이야기를 멋지게 풀어내지만 팝 스타들도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순탄치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끝없는 다이어트에, 착취하는 가족에, 결혼과 이혼의 구설에, 예술적 성취보다 외모와 패션으로 평가되는, 관심이라는 미명에 계속 먹잇감이 돼버리는 그네들의 삶도 왕비들의 비참한 화려함과 다를 바는 없다. 역사 속 왕비들의 이야기가 삶의 유형 여섯 가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여성이라는 보편성 안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들과 우리가 함께 엮이기 때문이다. 

 

형식은 불행 배틀이지만 이 배틀의 진짜 의미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데 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고통을 안고 살았음을 서로의 공통분모로 발견하게 될 때, 그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모으는 힘은 고통의 이유(헨리 8세!)에서 함께 고통을 나누는 이해와 공감으로 바뀐다. 더 이상 헨리 8세에 매인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를 새롭게 발견하는 새로운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헨리 8세보다 오래 산 덕분에 자기 이름으로 책을 펴낸 최초의 영국 여성이 된 마지막 왕비 파가 다섯 명의 왕비에게 하는 말, 우리끼리 불행의 크기로 싸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이 말은 사실 이 작품의 작가들이 또 다른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나의 삶은 사라진 적이 없다, 그러니 이제 ‘누구의 나’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자! 최종적인 결론으로 보기에는 너무 흔하고 뻔한 말이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은 씩씩하게 이 말을 밀고 나간다. 

 

 

극장의 이유


이런 결론은 언뜻 싱거워 보이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도발적인 에너지에 비해 너무 교훈적이고 예측 가능한 결론이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유독 20대 젊은 창작자들의 결론이 갑작스럽거나 뻔해지는 건 비단 이 작품만의 예는 아니다. <렌트>에서는 죽어가던 미미가 로저의 노래를 듣고 다시 살아나고, <록키호러쇼>는 그 야단법석을 치른 후에 인간을 향한 연민의 마음을 품는다. 내용이나 형식은 새로운 도발로 가득한데 막상 마무리는 지극히 이상적이고 상식적인 결론을 가져다 놓는 것이다. 

 

극작의 논리로 보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보이겠지만 이런 결론은 이들이 작품을 통해서 정말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나의 노래가 누군가에게 다시 살 이유가 될 수 있다면, 넓은 지구에 벌레같이 작은 존재인 우리 서로 행복합시다, 이런 말을 건네기 위해 작품은 진지하게 또는 난리를 치면서 끝까지 달린다. 이들 젊은 작품에는 자기 말하기가 있다. 논리적이지 않든 뻔하게 보이든 상관하지 않고 직관적일 만큼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태도는 아마추어다운 자신감이자 작품을 만든 선명한 이유일 것이다.

 

2017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 미투 이후 여성의 자기 말하기에 대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상식적인 결론에는 피해자다움을 증명하라는 세상의 요구를 향해 그건 너희의 논리지 우리의 관심은 아니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러기에 이 공연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임이 없다. 이런 이야기할 거 아니면 왜 공연을 만들었겠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에너지를 표현하는 데 한국 배우들은 제 옷을 입은 듯 폭발적이다. 때때로 들려야 할 말이 과한 억양의 말하기로 날아가 버리는 아쉬움이 있어서 차라리 자막으로 읽는 게 더 나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콘서트의 콘셉트에 집중하다 보면 그것도 크게 생각할 건 아니다 싶다. 말의 물성과 의미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이 작품의 재치를 제대로 즐기기엔 애초에 여러 걸림돌이 있다는 사실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무엇보다 80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에 자기네들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관객들도 그걸 즐기도록 하는 공연은 오랜만에 반가웠다. 극장이 즐거운 곳임을 새삼 떠올린 것도 이 공연 덕분이다. 재미있는 뮤지컬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할 때 이 공연에서 제일 부러운 건 덕후답게 노는 즐거움이다. 전통의 맥락과 당대의 의식이 자연스레 섞이는 건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고 볼만하다. 아마추어의 과감함과 덕후의 노는 즐거움이 우리의 뮤지컬에도 흔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작품이 부럽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4호 2023년 5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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