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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ALON] 배우 류정한·프로듀서 엄홍현 [No.102]

글 |배경희 사진 |심주호 장소협찬 | 큰대문집 (02-762-6981) 2012-03-26 7,702

 

더 완전해질 수 있도록 

 

프로듀서의 1년간의 끈질긴 프러포즈 끝에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 ‘느긋하고 점잖은’ 배우 류정한과 ‘뜨겁고 솔직한’ 프로듀서 엄홍현의 성향은 극과 극이었지만 배우 류정한은 상대를 통해 마음을 나누는 법을 알게 됐고, 엄홍현 프로듀서는 좀 더 단단해지는 법을 알게 됐다. 불완전한 두 자아가 만나 더 완전해질 수 있도록 상대를 채워주는 것, 우리는 이런 사이를 두고 완벽한 파트너라 부르는 게 아닐까.

 

 

첫만남


엄홍현  3년쯤 됐나? 스위스에서 <몬테크리스토>를 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 혼자 가상 캐스팅을 해봤어. 그때 딱 떠오른 사람이 정한 선배야. <스위니 토드>나 <지킬 앤 하이드>에서 형이 연기했던 인물도 좋았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복수를 하려다 결국 모든 걸 용서하는, 사십대가 돼야 진짜를 보여줄 수 있는 역이잖아. 그래서 이 역은 류정한이라는 배우가 하면 참 좋겠다, 하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내가 프러포즈를 했는데 형이 싫다고 했지. (웃음)


류정한  대본을 받았을 때 작품은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작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거든. 어렸을 때는 나만 내 역할을 잘하면 된다는 생각에 제작자가 어떻든 또 스태프가 어떻든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했어. 그런데 연륜이 쌓이고, 뮤지컬은 공동체 작업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함께하는 팀을 따지게 돼. 엄홍현이라는 프로듀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으니까 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나도 네 첫인상이 좋았던 건 아니지만, 넌 “류정한 꼭 써야 해?” 이런 말까지 했다면서. (일동 웃음)


엄홍현  첫 미팅에서 선배가 <몬테크리스토>에 대한 자기의 감상을 쭉 말하고 나서 작품을 어떻게 만들 거냐고 묻는데, 어휴, 이 사람하고는 쉽게 같이 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 그런데 사람이 적당히 재야지! 안 할 거면 빨리 안 한다고 거절해줘야 나도 대책을 세울 텐데, 번번이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고 돌아가니까 나도 화가 나는 거야. 사실 처음에는 오해를 많이 했지. 그런데 우리가 계약하고 나서 한잔하게 됐을 때, 선배가 관객은 배우의 선택을 신뢰하기 때문에 작품을 고르는 데 지나치게 신중해진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솔직히 속으로 좀 놀랐어.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뮤지컬 배우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겠더라고.


류정한  나는 너를 보면서 제작자에게 솔직함이라는 걸 처음 느꼈어. “류정한 씨가 이 역할을 꼭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할 거예요, 말 거예요?” 라고 말하는 제작자는 엄 대표 외에 또 없을 거다. 이 친구가 지금 나를 도발하려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니까. (일동 웃음) 내가 신인 배우도 아니고 보통은 그렇게 물어보지 않잖아. 이 친구는 정말 솔직한 건지, 아니면 가식인 건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두세 번 만나면서 그게 네 성격이라는 걸 알게 됐지. 나하고 성향은 정말 안 맞지만, 너의 그런 솔직함에 호감을 느꼈던 것 같아. 


엄홍현  우리가 처음에 성격이 좀 안 맞았지.

 

류정한   그래서 이런 시너지 효과를 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내가 이 작품을 하게 되더라도 이 친구하고는 일적으로만 만나겠구나 싶었는데, 완전히 역전이 된 거지. 우리가 처음부터 잘 맞았다면 오히려 지금 같은 파트너십이 생기지 않았을 거야. 인간관계라는 게, 서로에 대한 편견을 하나씩 깨가면서 관계가 견고해지는 경우가 많잖아. 그런 관계가 더 오래가는 법이고. 

 

 

내 인생의 선배


엄홍현  내가 선배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많이 구하잖아. “이 작품의 문제는 뭐라고 생각해?” 또는 “스태프에게는 어떻게 해야 해?” 이런 식으로. 사실 프로듀서가 배우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건 창피한 일이거든. 그럼에도 선배는 프로듀서 마인드를 가지고 내 고민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주어서 고마워. 그럴 때는 형을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고, 인생의 선배라고 생각해. 내 프로듀서 힘 100퍼센트 중 30퍼센트는 선배 힘이야.(웃음)


류정한  하하. 그런데 나도 프로듀서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어. 우리가 또래라서 말이 통하는 것도 있지만, 이상하게 네가 물어보면 이야기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사실 내가 하는 말들이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고, 100퍼센트 맞는 말도 아닐 거야. 홍현이 너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만큼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솔직한데, 그게 네 장점이라고 생각해. 상대방 이야기를 듣고 네가 잘 걸러서 판단할 줄 알지. 다만 한 가지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출발 선상에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고 그럴수록 소문이 많은 법이라 네가 거기에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어. 이 시간들을 잘 버텨내면 10년 후 프로듀서로서의 네 위치는 많이 달라져 있을 거야.

 

엄홍현 와, 선배 정말 많이 변했다. 옛날 같았으면 나를 만나주지도 않았을 텐데. 하하.

 

류정한  그래, 많이 변했지. 네 말대로 뭐든지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 내가 프로듀서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도 얼마 안 됐으니까. 어릴 때는 배우니까 공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프로듀서의 입장을 고려해 볼 여유가 없었거든. 가령 예전엔 “이게 왜 안 돼?” 하고 짜증을 냈다면 지금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야. 배우들하고도 어떻게 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잠시 생각하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주위를 좀 더 살피게 된다고 할까. 그래서 네게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나중에 우리가 누가 봐도 수긍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게 되면 그때는 진짜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일 좀 하자. 뮤지컬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서 사회에 환원한다든지, 방법은 많잖아. 아무튼 무언가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엄홍현  좋아. 우리 5년 후에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작품 하나 만들어 보자! (일동 웃음) 그런데 선배는 언제부터 그런 데 관심을 갖게 된 거야?

 

류정한  그게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보니까 내 기분이 좋아. 교회에서 작은 봉사를 하고 있는데…, 사실 그것도 하기 싫은 걸 어머니 때문에 억지로 시작한 거야.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학비를 조금 보태주는 정도라서 봉사라고 하기도 좀 그렇지만. 그런데 어느새 그 친구들이 대학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거나, 가끔씩 그 아이들에게 편지를 받게 되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 그래서 우리도 뮤지컬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거지.


엄홍현  동의하는 바야. 우리가 정말 기막힌 타이밍에 만났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내가 라이선스 권을 가지고 있는 미공개작이 여러 편 있잖아. 거기에 선배가 어울리는 작품이 너무 많아! (일동 웃음) 


류정한  엄 대표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뮤지컬을 많이 가지고 있긴 하지. (웃음) 제작자는 무엇보다 좋은 작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봐. 배우가 아무리 프로듀서를 욕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이면 결국 할 수밖에 없거든. 좋은 작품일수록 역량 있는 배우들이 와서 오디션을 볼 테고, 설령 부족한 점이 있는 작품이라 해도 좋은 배우들이 빈틈을 채워서 공연을 빛나게 할 수 있어. 엄 대표는 유럽 뮤지컬이 들어올 타이밍에 여러 유럽 뮤지컬을 국내에 소개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잖아. 프로듀서로서 좋은 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그런 커리어를 바탕으로 멋진 창작뮤지컬을 만들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어.

 

엄홍현  안 그래도 지금 세 편의 창작뮤지컬을 준비 중이야. 그중 하나가 해외 시장 진출을 겨냥하는 작품인데, 해외 스태프로 크리에이티브 팀을 꾸려서 내후년 개막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어. 그 작품으로 선배하고 전 세계를 다녀야지. (일동 웃음)

 

류정한  하하. 허 참! 그건 처음 듣는 소리네. 하지만 이건 분명히 하자. 우리가 아무리 더 친해진다고 하더라도 내가 별로인 작품에 출연할 일은 없을 거야.

 

 

엄홍현 알아. 형이 그 말 하니까 갑자기 <엘리자벳> 미팅 때가 생각난다. <엘리자벳>은 여배우가 주인공인 작품이고, 토드는 비중이 큰 역이 아니라서 형이 한다고 할지 확신이 없었거든. 그때 형이 그랬잖아. “난 작품이 좋으면 한다.” 훌륭한 작품이라고 판단되면 비중에 상관없이 할 거라고. 난 그 말이 참 멋있었어. 내가 준비하고 있는 창작도 선배가 하고 싶어할 거야. 확신해. (웃음)


류정한  그런데 넌 무슨 복을 받아서 <엘리자벳> 캐스팅을 이렇게 했니? 얼마 전에 (이)태원 선배가 “이런 배우들이 다시 모일 수 있는 날이 올까?” 라고 하셨잖아. 나도 정말 이런 배우들과 다시 한 무대에 서게 될까 싶어. 같이 공연하는 사람들이 진짜 잘하는 사람들이라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할까. 상대 배우가 훌륭하게 에너지를 주고 가야 다음 신에 나오는 배우가 그 기운을 받아서 가는 건데, 지금은 모든 배역의 배우들이 에너지를 주는 배우들이니까 같이 공연하는 입장에서 행복해. 앙상블도 너무 잘하지. 나는 솔직히 말해서 (박)은태하고 (전)동석이 보면…,

 

엄홍현  무섭지? (웃음)

 

류정한  무섭기도 하고, 깜짝깜짝 놀라. 두 사람은 내가 갖고 싶은 소리를 가지고 있어. 게다가 이 친구들은 마음도 뜨겁고 진정성이 있잖아. 같이 공연하다 보면 쟤들은 정말 타고 났나보다 부러울 때가 있어. 저런 건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후배들이 그런 자극을 주니까 고맙지.

 

엄홍현  이건 처음 공개하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좋은 배우들을 한 데 모을 수 있었던 데는 정한 선배의 공이 컸어. 무슨 말인가 하면, 선배를 영순위로 캐스팅해 놓고 “정한 선배가 하는데 너도 해야지?” 하는 전략을 폈거든. (일동 웃음) 이 조합의 30퍼센트는 선배 공이라고 할 수 있어. 화려한 캐스팅 때문에 내가 개런티를 많이 줬다는 오해가 있는데, 난 계약서를 공개하고 싶은 심정이야. 형도 알겠지만 난 절대 개런티를 많이 주지 않았거든. 가령 A 프로덕션에서 100만 원을 받는 배우였다면, 나도 똑같이 100만 원을 주지 110만 원을 주진 않아. 단, 앙상블은 좀 더 줬어. 내 철칙 중의 하나가 나하고 같이 작품 하는 동안 스태프나 배우들이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게 하는 거야.

 

류정한  그래, 난 정확히 말하면 깎였잖아. (일동 웃음) 배우들은 어떻게 설득한 거니?

 

엄홍현  난 솔직히 이야기해. 우리 제작비가 이만큼인데, 이 금액을 주면 답이 안 나오니 개런티 좀 낮춰달라고 말했어. 대신 내가 이 돈 허투루 안 쓰고 작품에 투자하겠다고. 형한테도 그랬잖아. 형이 개런티를 제일 많이 양보해 준 배우고. 내가 우리 기록에 남을 작품 한번 해보자고 말은 했지만, 개런티를 낮추면서 배우들이 참여해 줘서 난 정말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류정한 너도 알다시피 내가 <엘리자벳>에 들어가기 전 지난 6개월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잖아. (웃음) 영화를 찍기로 했다가 촬영이 계속 미뤄졌는데, 15년 정도 이 일을 하면서 계획 없이 쉬게 된 건 처음이어서 어디 가서 이야기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거든. 영화 쪽에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걸 몰랐어. 당연히 우리 공연처럼 며칠부터 연습하고 며칠부터 공연에 들어가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영화 찍는다는 기사는 이미 다 나갔는데 촬영일은 계속 미뤄지지. 주위에서는 내 눈치만 보고 있는데, 나는 뭐라고 얘기도 못하겠고. 내가 말은 안 했지만 그때 너나 (신)성록이가 참 많은 위로가 됐어. 다른 생각 안하게끔 옆에서 도와줬잖아. 영화를 못하게 되면서, 네가 가르쳐 준 골프를 정신없이 쳤지. (일동 웃음) 네 덕분에 위기를 잘 넘겼다고 생각해.

 

엄홍현  형, 난 좋은 공기 마시면서 머리 좀 식히라는 거였지, 그렇게 골프만 치라는 건 아니었어. 언제부턴가 전화만 하면 골프장에 가있대. (웃음) 나도 고마운 거 있어. 영화 촬영이 계속 미뤄지다 2월에 들어가는 걸로 최종 결정이 됐잖아. 그런데 <엘리자벳>도 2월에 올라가는 거였고. 내 마음은 당연히 <엘리자벳>에 출연해 줬으면 했지만, 내가 뭐라고 못하겠더라. “형이 선택하세요” 하고 형에게 넘겼더니 영화사에 전화를 걸어서 “내가 뮤지컬 배우지, 영화배우냐, 지금 이걸 나한테 제안이라고 한 거냐. 이 촬영이 5월에 들어가든, 10월에 들어가든 난 안 하겠다” 라고 딱 한마디로 거절하는데…, 난 속으로 아싸! 쾌재를 외쳤지. (일동 웃음)

 

류정한  <엘리자벳>을 하기로 계약된 상태이기도 했고, 정말 내가 뮤지컬 배우지 영화배우가 아니잖아. 내가 영화를 찍어서 부귀영화를 누릴 것도 아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난 6개월이 굉장히 힘들었지만 그로 인해 주위 사람들의 고마움을 알게 됐고, 전화위복이 된 것 같아. 요즘엔 역시 <엘리자벳> 하길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은 모든 게 행복해졌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2호 2012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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