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더스 까라마조프> 도스토옙스키
작가 그 이상의 위대한 인간 탐구자
푸시킨, 고골,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모두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금자탑을 쌓은 작가들이다. 어느 하나 대단하지 않은 작가가 없지만,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현대의 많은 지성은 단호하게 인류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로 도스토옙스키를 꼽았다. 러시아 문학을 넘어 철학과 심리학, 정치와 종교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흔적과 깊은 영향을 남긴 거장의 삶과 작품 세계를 간략히 돌아본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운하를 따라 걷다 보면, 사람들이 한 손에 책을 쥔 채 허름한 거리와 골목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이들이 열심히 지도를 따라 걷고 있는 곳은 바로 소설 『죄와 벌』에 등장하는 살인 루트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도스토옙스키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썼던 책상, 그가 세상을 떠난 순간에 멈춰 있는 시계, 늘 꽃과 화환이 끊이지 않는 그의 묘지 등을 성지처럼 찾아다니며 위대한 작가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끼려 애쓴다. 도대체 도스토옙스키란 작가는 누구고 어떤 작품을 썼기에, 끊임없이 추종자들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삶
도스토옙스키는 문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들을 남긴 대문호지만 그의 삶은 가난, 도박, 빚, 간질, 체포, 유배 등 문제적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다. 모스크바 빈민 병원 군의관의 아들로 태어나 작가로 죽을 때까지 도스토옙스키는 언제나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갔으며 화려하고 귀족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 때문에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고통받는 인간의 삶과 구원의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날카로운 시선과 치열한 고민을 이어갈 수 있었다. 파란만장했던 도스토옙스키의 삶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꼽는다면, 진보적인 독서 모임으로 인해 사형 선고를 받은 사건을 들어야 할 것이다. 스물여덟의 청년 도스토옙스키가 처형대 앞에 서서 마지막으로 고해성사를 하고 총이 발사되기를 기다리던 순간, 황제의 극적인 사면 선고가 내려졌다. 삶과 죽음이 갈렸던 그 1초의 순간은 도스토옙스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각인되었고, 그 때문인지 그의 소설에는 유난히 찰나와 영원에 대한 성찰이 자주 등장한다. 평생 빚과 도박, 원고에 대한 채무로 허덕이며 살았던 도스토옙스키를 구원한 이는 속기사로 채용되었던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였다. 뛰어난 속기사였던 안나는 마감을 코앞에 둔 그가 구술로 불러주는 소설을 원고로 완성하는 데 지대한 도움을 주었으며, 결혼 후에는 그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집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내조했다. 말년에 안나와의 결혼으로 삶의 행복을 찾은 도스토옙스키는 연달아 걸작을 써낸 뒤 최후의 대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부를 완성하고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지만, 그의 장례식에는 유례없이 많은 민중이 모여 위대한 작가의 마지막 길을 장대하게 배웅했다.
인간에 대한 뜨겁고 치열한 탐구
도스토옙스키는 작가가 되기도 전에 인간 탐구를 자신의 평생 과업으로 천명했고, 문학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정신 깊숙이 파고들어 가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갔다. 그의 작품들은 그 자체로 인간 영혼에 대한 가장 섬세하고 치열한 탐구이자 기록이었고, 그에게는 ‘인간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그가 바라보는 인간은 선과 악의 이중성을 지닌 불합리한 존재들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결코 어떤 인물도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형상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들은 무한히 선을 추구하면서도 악을 행하고, 악을 저지르면서도 인간적인 나약함을 지녔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많은 결점과 부덕을 지니고 있고, 때로는 혐오스럽기까지도 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영혼의 조각을 지니고 있다. 한 명 한 명 생생한 개성과 몇 겹의 복잡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는 그의 인물들은 그 자체로 도스토옙스키의 치열한 인간 탐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세계 문학사를 빛낸 4대 장편
평생 단편과 중편, 장편에 이르기까지 수십 편의 소설을 남겼지만, 도스토옙스키 하면 떠오르는 가장 중요한 작품은 역시 그의 4대 장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죄와 벌』은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이다. 범죄 스릴러를 방불케 하는 밀도 있는 사건 전개는 독자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며, 긴 방황 끝에 소냐의 도움으로 마침내 구원에 이르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속죄 과정은 그 자체로 장엄한 감동을 준다. 『백치』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중 가장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로 손꼽힌다. ‘신성한 바보’의 모티브를 구현하는 주인공 므이슈킨의 사랑과 파멸은 읽을 때보다도 읽고 난 뒤 진한 여운을 남긴다. 한 마을을 배경으로 무정부주의자들의 범죄와 비극을 그린 『악령』은 정치적이고 묵시론적인 소설로 어렵다는 평을 듣지만, 동시에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가장 예언자적인 소설로 많은 마니아층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도스토옙스키 최고의 걸작은 그의 마지막 장편이자 미완성 작품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국내 최고의 도스토옙스키 연구자 석영중이 지적하듯, 도스토옙스키의 인간 연구와 구원에의 희망은 이 작품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한 권의 소설에 도스토옙스키가 쓰고자 했던 모든 것, 예술가이자 종교 사상가로서의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탐욕스러운 홀아비 표도르와 다혈질의 첫째 드미트리, 지적이고 차가운 이반과 순수한 막내 알료샤에 이르기까지, 카라마조프가의 아버지와 아들들을 통해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온갖 더럽고 추악한 면을 드러내는 동시에 또한 가장 장엄한 인간 찬가를 들려준다. 러시아 문학, 나아가 세계 문학사를 빛낸 네 편의 소설만으로도 도스토옙스키라는 이름은 두고두고 기억되기에 충분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4호 2023년 5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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