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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새 시대를 열 왕자들이 온다 <정년이> 이소연·조유아 [No.222]

글 |김주연(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표기식 2023-04-05 2,011

새 시대를 열 왕자들이 온다 
<정년이> 이소연·조유아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의 희곡부터 전래 동화와 창작극까지! 동서양 고전과 현대극을 아우르며 창극의 소재에 한계가 없다는 걸 증명해 온 국립창극단이 올해 야심 차게 준비한 신작은 화제의 동명 웹툰을 바탕으로 한 <정년이>다. 소리와 연기가 어우러지는 국극을 소재로 하는 데다 최고의 배우를 꿈꾸는 여성 소리꾼들의 패기와 열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창극단과 찰떡궁합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초연 무대를 앞두고 한창 연습 중인 두 주역 배우에게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기 웹툰, 창극 무대에 서다
 
캐스팅 발표를 하기 전에 공연이 조기 매진되었고 이어 추가로 오픈한 공연의 티켓도 매진이라고 들었어요. 창극단 공연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이 정도 반응은 처음인 듯한데 기분이 어떤가요?
조유아   저희도 표를 못 구해서 지인들에게 공연을 못 보여주는 상황이에요. (웃음) 기분이 좋으면서 당황스럽기도 해요. 무엇보다 예상 밖의 큰 관심에 살짝 부담을 느끼고 있어요. 
이소연  원작의 팬이 워낙 많은 데다가 그림으로만 보던 인물들이 직접 소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많은 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조금 걱정스럽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정년이>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여성 국극단과 여성 소리꾼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에요. 처음 웹툰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이소연  캐릭터가 한 명 한 명 생생하게 표현되어서 다양한 인물 군상을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이야기에도 공감되는 지점이 많았고요. 저도 소리만 하다가 창극 무대를 꿈꾸며 연기를 배우고 연습하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웹툰을 보는 내내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재미있게 읽었어요. 
조유아   목포 소녀 정년이처럼 저도 진도에서 태어나고 목포에서 공부했어요. 그러다가 “창극단 무대에 서야 쓰겠다” 싶어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거든요. 그런 점이 저와 비슷해서 정년이에게 많이 공감됐어요. 그리고 주인공이 시종일관 사투리를 쓰는 작품이 흔치 않은데, 전라도 사투리로 이야기하는 정년이가 친근하게 느껴졌고요.
 
창극단에서 웹툰을 무대화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죠. 소설이나 연극, 기존의 판소리를 원작으로 한 작품과 또 다른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이소연  소설과 연극은 글로 되어 있으니 인물과 장면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상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웹툰은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장르라 원작을 무대에서 어떻게 그려내고, 새롭게 풀어가야 할지 계속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웹툰이 가진 흐름이 있고 창극 <정년이>의 연극적인 흐름이 있는데, 이 두 흐름의 간극을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해요.
조유아   요즘은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많잖아요. 저도 그런 작품을 볼 때는 자연스럽게 웹툰의 장면을 떠올리면서 보게 되거든요. 그런 면에서 원작을 본 관객은 원작과 무대를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웹툰을 보면서 상상한 인물과 무대 위 배우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웹툰에는 인물의 표정이나 행동이 이미 시각화되어 있어요. 이점이 연습할 때 도움이 되나요?
이소연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이나 표정이 원작과 비슷할 때는 조금 안심이 돼요. 하지만 때로는 원작과 너무 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신경이 쓰이죠.
조유아   원작이 만화다 보니 인물의 질감도 다르잖아요. 조금 과장되게 연기하는 게 맞는 건가 싶다가도 또 너무 과장하면 이질감이 들 것 같기도 하고, 그 중간을 찾는 게 어려워요.
이소연  맞아요. 원작을 보신 분과 안 보신 분 모두를 생각해서 연기의 톤을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요. 
 
총 137회 분량의 웹툰을 두 시간가량의 공연으로 만들다 보면 원작과 달라지는 부분도 있을 텐데요, 어떤 점이 가장 많이 바뀌었나요?
이소연  시간 제약이 있기 때문에 원작의 모든 에피소드를 다루지 못하고 몇몇 주요 사건 위주로 각색했어요. 개인적으로 서로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의지하는 정년이와 영서의 라이벌 관계가 원작에 비해 덜 드러나는 점이 아쉬워요. 하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이야기를 완결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대신 두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둘의 관계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더 집중해서 연기하려 해요. 
조유아   원작에 비해 이야기가 급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각 장면이 빠른 호흡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공연을 보면서도 마치 웹툰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소리꾼이 만난 소리꾼
 
두 분 모두 작품의 주인공인 정년이를 맡았어요. 정년이는 어떤 점이 인상적인 인물인가요?
조유아   정년이의 순박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랑 정말 비슷한 점이 많아요. 목포에서 살다가 창극단 무대를 꿈꾸며 서울에 올라온 것도 그렇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힘든 적이 있었던 것도 그래요. 정년이가 겪었던 일들이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남 같지 않았어요. 
이소연  정년이는 꿈을 향해 대담하게 나가는 당돌한 모습이 매력적이에요. 그런 점이 부럽기도 하고요. 저는 정년이가 무대를 그만둘지 말지 고민할 때 가장 공감됐어요. 이전에 저도 창극을 그만둘까 고민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내가 무대를 떠나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극 중에 정년이가 한번 무대에 눈뜨고 나니 이젠 이거 없이 못 살겠다고 하는 말이 구구절절 마음에 와닿았어요. 
 
보통 창극은 원 캐스트로 공연하기 때문에 <정년이>처럼 더블 캐스팅을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더블 캐스팅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이소연  저는 오히려 부담이 덜해서 좋아요. 맡은 배역에 대해 함께 의견을 나누고 고민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서 의지되고요. 
조유아  저는 반대예요. 창극단의 간판 스타인 소연 언니와 같은 역할을 맡아서 엄청 부담돼요. (웃음) 하지만 언니와 함께 연습하는 게 즐겁고, 언니를 보고 배우는 것도 많아서 좋아요. 이번 작품을 잘 마무리하면 배우로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상대가 연기하는 정년이에 대해 짧게 소개해 주세요. 
이소연  유아는 정말 정년이 같아요. 오디션 전부터 유아가 정년이를 맡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예요. 당당하고 자기 꿈을 이뤄가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정년이와 닮았어요. 연습할 때 굳이 연기를 하지 않아도 유아 자체가 정년이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조유아   소연 언니는 하얀 도화지처럼 어떤 인물이든 그 모습 그대로 그려내요. 박남옥을 맡으면 박남옥으로 무대에 서고, 춘향을 맡으면 바로 춘향이가 돼버려요. 정년이도 마찬가지예요. 언니의 섬세한 캐릭터 분석과 자연스러운 연기가 정말 부러워요. 연습실에서 언니를 보고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워요. 
 
연습 중에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조유아   여성 배우가 남성 역할을 맡는 장면이 있는데 여자들끼리 모여서 남자 역할을 연습할 때 진짜 재미있어요. 동작 하나하나에 “멋있다!”고 환호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남자처럼 보일지 고민하기도 하고요. (웃음) 극 중 연습 장면이 많아서 무대를 꿈꾸던 연습생 시절도 많이 떠올라요.
이소연  국극단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연습하고 공연하는 과정 자체가 진짜 국극 한 편을 무대에 올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리고 저도 유아처럼 예전 추억이 많이 떠올라요. 정년이의 첫 번째 팬인 부용이가 처음 대기실을 찾아오는 장면을 연습할 때, 저에게 처음 팬이 생겼던 날이 생생하게 떠오르더라고요. 연습하면서 잊고 있던 소중한 기억이 되살아나서 감회가 새로워요. 
 
소리꾼으로서 역할이나 상황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특히 공감하는 대사나 장면은 무엇인가요?
조유아 아무래도 무대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공감돼요. 중학생 때 아버지께서 판소리를 못 하게 하신 적이 있어요. 소리꾼의 길이 힘든 걸 아시고 더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말리셨어요. 그때 제가 아버지께 “나는 이거 안 하고 살긴 글렀다”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정년이가 이걸 한번 안 이상 모르는 삶으로 돌아갈 순 없다고 하는 대사가 제 마음처럼 느껴졌어요.
이소연 정년이가 공연이 끝나고 박수 소리가 들리면 캄캄했던 시야가 환해지면서 모든 사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는 대사를 해요. 이 대사는 무대에 서본 사람이라면 100퍼센트 공감할 거예요. 커튼콜 때 객석을 바라보면 기분이 묘해요. 무대에서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그걸 지켜본 관객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사라지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이 쑥 들어오는 기분이 들거든요. 정년이의 대사가 커튼콜 때 배우의 마음을 절묘하게 표현한 거 같아서 특히 기억에 남아요.
 
 
극 중에 <춘향전>이나 <심청전>의 일부가 인용되는데, 창극 배우로서 소리를 하는 것과 극 중 국극 배우 정년이로서 소리를 할 때 차이가 있나요? 
이소연  정년이가 방자를 연기하는데, 창극의 방자랑 국극의 방자는 달라요. 이미 알고 있는 소리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어요. 작품의 배경인 1950년대 당시에 불렀던 소리와 음의 구성이 지금과 달라서 새롭게 배우고 재현하는 게 재미있어요.
조유아  맞아요. 당시 음반을 들어보면 발성이나 떨림 처리가 지금과 상당히 달라요.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그 시대의 느낌과 분위기를 살려 소리나 연기를 해야겠더라고요. 
 
‘왕자가 사라진 시대의 왕자’, ‘이 시대의 왕자’란 말이 극 중에 자주 등장해요. 당시 관객들은 왜 그렇게 왕자를 연기하는 여성 소리꾼에게 열광했을까요?
조유아 여성 소리꾼이 관객들의 목소리를 대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제약이 많은 시대이다 보니 무대 위의 남역 배우들을 통해 대리만족하고 아쉬움을 풀었던 것 같아요.
이소연 저는 왕이 아니라 왕자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이미 권력을 가진 왕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여는 왕자에게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어쩌면 그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정년이>를 통해 여성 국극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거나 흥미롭게 다가온 지점이 있었나요?
이소연 작품을 준비하면서 국극 특강도 받고 실제 국극 배우님에게 그분들의 삶과 무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으면서 당대에 국극의 의미에 대해 배웠어요. 이전에도 국극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 다시 들여다보니 요즘 관객에게도 꽤 매력적인 장르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정년이>를 계기로 다시 한번 여성 국극이 부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언젠가는 여성 국극이 소재인 작품 말고 진짜 여성 국극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2호 2023년 3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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