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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뜨거운 것이 좋아> 흑백 영화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No.221]

글 |여태은(뉴욕통신원) 사진 | 2023-03-09 1,128

<뜨거운 것이 좋아>
흑백 영화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1959년에 개봉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는 마릴린 먼로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1950년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장 남자를 소재로 젠더 이슈를 다뤘던 영화는 관객과 평단의 호평 속에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은 <뜨거운 것이 좋아>는 미국영화연구소가 미국 영화 역사 100년을 기념해 선정한 100대 영화 중 한 작품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Matthew Murphy

 

재즈 뮤지션들의 좌충우돌 도망기


재즈 사운드로 막을 여는 <뜨거운 것이 좋아>는 대공황 시대에 금주령이 내려진 1936년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다. 색소폰 연주자인 조와 베이시스트 제리는 연주뿐만 아니라 탭 댄스 실력까지 갖춘 다재다능한 예술가이지만, 제리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불평등한 대우에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수동적인 성격의 제리와 달리, 입심 좋고 자신만만한 성격의 조는 제리와 함께 화려한 탭 댄스를 선보이며 클럽에서 공연할 기회를 얻어낸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들이 공연할 클럽은 악명 높은 마피아 보스가 운영하는 곳이었고, 아무것도 모른 채 클럽에 출근한 조와 제리는 살인 사건 현장을 목격하고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마피아를 따돌리기 위해 여장을 한 조와 제리는 얼떨결에 밴드의 전국 투어에 합류하게 된다. 문제는 이 밴드의 멤버 전원이 여성이라는 것인데, 마피아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두 사람은 여자인 척하며 밴드와 함께 서부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탄다. 조와 제리는 밴드와 이동하다가 멕시코로 넘어가는 계획을 세운다. 조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은 조세핀으로, 제리는 제럴딘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늘 조의 지시를 따르던 제리는 밴드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제럴딘이 아닌, 자신이 지은 이름 다프네로 자기를 소개한다. 이 작은 변화를 시작으로 제리는 점점 더 주도적이고 자신감 있게 변한다. 조는 밴드의 리드 보컬이자 영화배우 지망생인 슈가에게 첫눈에 반하고, 조세핀으로서 슈가의 고민을 들어주며 깊은 우정을 나눈다. 조세핀, 다프네, 슈가는 ‘팁 탭 트리오’를 결성해 밴드와 함께 인기를 얻으며 성황리에 투어를 이어간다. 

 

밴드 투어 공연이 멕시코 근처에서 열리게 되자 조와 제리는 계획대로 멕시코로 떠나려 하지만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조는 슈가가 눈에 밟히고, 제리는 자신의 또 다른 페르소나 다프네를 버리지 못해 망설인다. 고민 끝에 떠나기로 결심한 조는 남자의 모습으로 슈가와 마주친다. 매번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했던 조는 이번에도 자신을 독일계 시나리오 작가라고 속이고, 슈가와 대화를 나누며 밤을 지새운다. 같은 시각, 다프네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백만장자 호텔 주인 오즈굿과 시간을 보내던 제리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 주는 오즈굿에게 마음을 열고 다프네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조에게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도망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제리의 진심 어린 고백에 마음이 움직인 조는 슈가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떠나려 하지만, 결국 이들을 찾아낸 마피아 갱단과 그들을 뒤쫓는 경찰들과의 추격전에 휩쓸린다. 마피아와 경찰 그리고 밴드 멤버들이 얽히고설킨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 조와 슈가는 에이전트와 배우로서 함께 할리우드에 진출할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성별과 상관없이 서로에게 완벽한 짝임을 깨달은 다프네와 오즈굿이 결혼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댄스와 코미디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는 1972년 <슈가>라는 제목의 뮤지컬로 각색되어 공연된 적이 있다. 하지만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뜨거운 것이 좋아>는 <슈가>와는 별개의 작품으로, <헤어스프레이> <캐치 미 이프 유 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만든 작곡가 마크 샤이먼과 작사가 스콧 위트먼 콤비의 신작이다. 2021년 시카고에서 공연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되었다가 2022년 12월 브로드웨이 슈베르트 시어터에서 정식 개막했다. 


<뜨거운 것이 좋아>는 재즈가 대중음악으로 통용되었던 1930년대를 배경으로 재즈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재즈를 기반으로 한 음악이 돋보인다. 공연은 여성 밴드 단장인 스윗 수의 ‘What Are You Thirsty For?(무엇에 갈증을 느끼나요?)’로 막을 여는데, ‘Zee Bap(지 뱁)’, ‘Some Like It Hot(뜨거운 것이 좋아)’ 등 재즈 창법이 돋보이는 곡들이 이어진다. 흥겨운 재즈 음악은 듣기 좋았지만, 뮤지컬 넘버로서 인상을 남긴 곡은 아쉽게도 다프네가 부르는 ‘You Could've Knocked Me Over With a Feather(나 너무 놀랐어)’ 단 한 곡이었다. 제리는 이 노래에서 다프네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멋진 부분이며 자신은 정말 다프네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조와 제리가 멕시코로 떠날지 말지를 두고 다툴 때 제리는 “사랑과 존경을 담아 불러준다면 나는 제리든 다프네든 상관없어.”라고 말한다. 겉모습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을 바라봐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제리의 이 대사는 관객에게 공감을 끌어낸다. 제리 역할을 맡은 J. 해리슨 지의 감정 연기와 노래가 일품이었던 장면이다. 반면,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조는 ‘He Lied When He Said Hello(만날 때마다 거짓말)’를 부르며 시나리오 작가, 여성 밴드 멤버 그리고 진짜 조 사이를 오가며 거짓말로 꾸며진 삶을 사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임기응변으로 남들을 속이는 데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조가 갑자기 마음이 변한다는 점이 설득력이 떨어져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관객에게 설득하는 데에 아쉬움을 남겼지만,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춤과 코미디는 이 작품의 강점이다. 1막 초반 제리가 흑인이라 같이 공연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조와 제리는 둘을 같이 고용해야 ‘팁 탭 듀오’ 공연을 할 수 있다고 설득하는 뮤지컬 넘버 ‘You Can't Have Me - If You Don't Have Him(우리는 세트 상품이야)’에서 화려한 탭 댄스를 선보인다. 멋진 퍼포먼스로 극 중 클럽 관계자는 물론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 이 장면은 이후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으로 재연된다. 바로 슈가가 합류하여 팁 탭 트리오로 춤추는 장면이다. 수트를 입는 대신 여장을 하고 춤추는 조와 제리의 모습은 앞 장면과 대비되어 웃음을 준다. 공연 중에는 비슷한 춤과 동선을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선보이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1막 초반의 추격 장면과 2막 마지막의 추격 장면이다. 1막 초반 마피아의 살인 사건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조와 제리가 도망칠 때 ‘Vamp!(빵!)’이라는 빠른 노래와 함께 긴장감 넘치는 추격 장면과 여장 남자로 변신하는 장면이 동시에 펼쳐진다. 눈 깜짝할 새에 여장을 마친 조와 제리가 갑자기 여성 밴드 투어에 합류하는 데에 의아함이 생기는 것도 잠시, 조와 제리가 사고를 내 투어에 참여하기로 한 연주자들이 클럽에 오지 못해 그들의 대타로 밴드에 들어가게 된 상황을 몇 줄의 대사로 재치 있게 설명한다. 공연 내내 마피아에게 쫓기는 조와 제리에게 언젠가 큰일이 닥치고 말 것이라는 암시가 계속되다가 마침내 극 마지막에  사건이 터진다. 


조와 제리를 쫓던 마피아와 마피아를 쫓던 경찰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마피아와 경찰의 추격전이 벌어지고, 그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도망치는 조와 제리, 그리고 밴드 멤버들이 추격전에 휩쓸려 아수라장이 펼쳐진다. 이 장면은 탭 댄스 리듬을 바탕으로 한 노래 ‘Tip Tap Trouble(팁 탭 트러블)’에 맞춰 1막의 ‘Vamp!’ 장면보다 더 많은 사람이 추격과 변신을 벌이는 모습으로 연출된다. 무려 10여 분 동안 모든 배우가 바퀴 달린 문을 활용해 추격을 펼치는데, 가히 환상의 호흡이라고 할 만큼 놀라운 합을 보여준다. 음악에 맞춰 문을 열고 돌리면서 각 캐릭터의 이름을 박자에 맞춰 외치는 모습은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도 신나게 연출되었다. 치밀하게 계산된 동선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정신없는 와중에도 웃음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북 오브 몰몬> <알라딘> <썸씽로튼> <민 걸즈> <프롬> 등으로 브로드웨이의 대표적인 뮤지컬 코미디 연출가로 자리 잡은 케이시 니콜라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순간이다.

 

<뜨거운 것이 좋아>에는 최근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빠질 수 없는 영상이나 턴테이블 무대가 등장하지 않는다. 무대는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하좌우로 열리고 닫히면서 재즈 클럽, 호텔, 멕시코 국경의 레스토랑 등으로 변한다. 예를 들어 여장을 한 조와 제리가 슈가와 기차 화장실 칸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이 끝나면, 화장실 칸이 둘로 나뉘어 무대 좌우로 사라지고 무대 뒤 세트가 앞으로 나오면서 밴드 연주가 시작되는 식이다. 배우들의 다양한 동선으로 꽉 채워진 극에서 빠르게 장면을 전환해야 하는 숙제는 <북 오브 몰몬>으로 토니상을 받은 무대 디자이너 스캇 패스크가 맡아 완벽하게 해결했다. 또 조와 제리가 빠른 속도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또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돕는 의상은 <리걸리 블론드> <킹키부츠> <민 걸즈>의 의상 디자인을 맡았던 그렉 반스의 솜씨다.

 

©Marc J. Franklin

 

현시대를 반영한 각색


<뜨거운 것이 좋아>는 현시대에 맞는 각색을 통해 오늘날의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의 작가이자 연극 <상속>으로 드라마 데스크상과 토니상을 받은 작가 매튜 로페즈, 심야 토크쇼 <세스 마이어스 쇼>에서 두각을 나타낸 코미디언이자 작가 앰버 러핀이 공동으로 대본을 썼다. 극장에 오는 관객들에게 필요한 것은 ‘웃음’이라 생각한 두 사람은 공연을 보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삶이 조금 즐거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각색했다고 말했다. 두 작가의 의도대로 <뜨거운 것이 좋아>는 유쾌한 분위기 속에 웃을 수 있는 장면이 이어진다. 하지만 뮤지컬로 각색하면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60여 년 동안 달라진 시대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백인 일색이었던 캐릭터를 흑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으로 바꾸고 성 정체성과 함께 인종 정체성에 대한 이슈를 돌아보게 했다. 영화에서 마릴린 먼로가 맡았던 슈가 역은 <식스>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흑인 배우 아드리아나 힉스가 맡았다. 제리 역도 흑인 배우로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 두각을 나타낸 J. 해리슨 지가 연기한다. 밴드 단장 스윗 수 역의 나타샤 이베트 윌리엄스 또한 흑인 중년 여성이고, 백만장자 호텔 주인 오스굿은 남미계 배우 케빈 델 아귈라가 호연했다. 

 

<뜨거운 것이 좋아>의 주요 소재는 여장 남자인데, 브로드웨이에서 여장 남자 캐릭터가 좋은 평가를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뜨거운 것이 좋아>보다 먼저 여장 남자를 소재로 한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투씨>와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캐릭터 사용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두 작품이 가장 많이 지적받은 부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장을 이용하는 이성애자 남성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었다. 원작 영화가 만들어졌을 당시와 현재의 젠더 감수성의 차이가 캐릭터에 대한 평가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뜨거운 것이 좋아>의 조도 처음에는 마피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여장을 하지만, 이후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혹은 좋아하는 여자의 환심을 사는 데 여장을 이용한다. 하지만 <뜨거운 것이 좋아>는 또 다른 여장 남자 캐릭터 제리를 통해 비판적인 시각을 영리하게 피해 간다. 제리는 여장을 함으로써 흑인으로 억압받아 온 자신의 삶을 벗어나 진정한 정체성을 찾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오스굿은 조와 제리가 남자인 것을 문제로 삼지 않고, 오히려 다프네로 변장한 제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뜨거운 것이 좋아>는 제리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진지하게 보여주는 한편, 편견 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오스굿을 통해서는 넓은 마음과 넘치는 사랑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요즘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여장 남자 캐릭터를 풀어낸 것이다.

 

오래전 원작을 뮤지컬화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낡은 관습을 그대로 답습해 아쉬움을 남긴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뜨거운 것이 좋아>는 웃음과 감동, 시대에 걸맞은 캐릭터로 오늘날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제 막 브로드웨이에서 항해를 시작한 <뜨거운 것이 좋아>가 긴 항해 끝에 성공적인 무비컬의 사례로 남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1호 2023년 2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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