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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정직하게 쌓아 올린 시간 <일라이> 배나라 [No.221]

글 |최영현 사진 |맹민화 2023-03-09 815

정직하게 쌓아 올린 시간
<일라이> 배나라

 

2019년 <그리스>의 소니 역할로 관객에게 이름을 알린 배나라는 창작뮤지컬과 라이선스 뮤지컬, 대극장과 소극장을 오가며 바쁘게 활동 중이다. 2013년 앙상블로 시작해 차근차근 뮤지컬배우의 기본기를 다져온 그가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2023년 새해를 신작 <일라이>로 시작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배나라를 만났다. 

 

 

진실에 대한 질문

 

지난 1월에 장지후, 임준혁 배우와 함께 콘서트 <3gether : 친해지길바래>를 올렸어요. 
링크아트센터에서 개관 기념 콘서트를 해보자고 제안해 주셨어요. 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한 적은 많지만 제 이름을 걸고 콘서트를 해본 적은 없어서 재미있을 것 같았죠. 함께 출연한 장지후, 임준혁 배우는 평소 제가 좋아하는 형들이기도 하고, 마음도 잘 맞아서 공연을 잘 마무리한 것 같아요. 이번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콘서트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공연할 때는 내가 아닌 작품 속 인물을 이야기하지만, 콘서트는 제 이야기를 하면서 관객과 소통하는 거잖아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토크 콘서트를 해보고 싶어요. 

 

2021년부터 쉼 없이 활동 중인데 건강은 잘 챙기고 있나요?
솔직히 욕심 같아서는 더 바쁘게 활동하고 싶지만 배나라라는 그릇이 담을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요.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게 저는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나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한번은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무대에서 일시적인 공황 상태에 빠진 적이 있어요. 배우는 무대에서 감정을 다루는 사람인데 감정 조절이 안 되니까 너무 무섭더라고요. 그 이후로 쉬는 날은 무조건 저를 위한 시간을 갖고 긴장을 풀려고 해요. 짧더라도 푹 쉬고 무대에 돌아오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기더라고요.

 

새해 첫 작품은 <일라이>예요. 고등학생 역할은 <그리스> 이후에 오랜만이죠?
2020년에 <배니싱>에 출연하고 있을 때 뉴프로덕션의 이성진 대표님이 학원물을 준비 중인데 같이 해보자고 하셨어요. 작품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셨는데, 갑자기 이때가 아니면 학원물을 못 해볼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보다 나이를 더 먹으면 교복을 입을 자신도 없고요. (웃음) 작년부터 창작자들과 배우들이 모여서 3~4차례 사전 리딩을 하고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거쳐서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창작 초기 단계부터 참여한 만큼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를 것 같아요.
작품에 임할 때 느끼는 책임감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작품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작품에 참여한 시간이 길다 보니 애정이 더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애정을 갖고 보면 좋은 점만 보이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최대한 관객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작품을 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러니까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거기에 맞춰서 연기적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게 많아졌어요. 일라이라는 역할은 어떻게 연기할 것인지 고민하다 보면 끝이 없어요. 요즘은 작가님이 생각하는 인물의 방향성과 제가 생각하는 인물의 접점을 찾아서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어요.

 

<일라이>는 어떤 작품이에요? 객관적으로요!
명문 학교 브릭스턴 아카데미에 전학생이 오면서 학생들 사이에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무엇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작품이죠. 제가 맡은 일라이는 브릭스턴 재단의 이사장 아들이에요. 겉보기엔 부족한 것 하나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결핍이 있어요. 너무 많은 걸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공허함을 느낀다고 할까요. 가진 게 별로 없는 저로서는 이해하긴 어렵지만. (웃음) 요즘 연습하면서 일라이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어요. 원하는 것이 없어 자칫 무매력으로 보일 수 있는데 내면의 결핍을 잘 살리면 흥미로운 인물이 탄생할 것 같아요.

 

<일라이>에는 일라이 외에 또 어떤 학생들이 등장해요?
전학생 소피, 일라이의 가장 친한 친구 리온, 브릭스턴 아카데미에서도 손꼽히는 엘리트인 앨리스, 율리아, 저스틴이 등장해요. 이야기의 중심에는 주인공인 일라이가 있지만, 주인공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돋보이는 게 이 작품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각 인물이 가진 사연도 흥미롭고, 인물 간의 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관객들이 보시기에 재미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작품 제목이 본인이 맡은 캐릭터 이름이에요. 부담스럽지 않나요? 작품을 대표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잖아요.
저는 제 이름이 제목이니까 기분이 좋던걸요? (웃음) 일라이는 작품에서 유일하게 진실에 대해 말하는 인물이에요. 하지만 진실이라고 해서 모두가 믿어주는 것은 아니에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진실도 다르고요. 이런 것들이 작품 안에서는 일라이를 통해서 보여요. 그래서 제목이 <일라이>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작품의 제목이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작품의 주제라고 생각해서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그럼 이 질문을 안 할 수 없네요. 배나라가 생각하는 진실은 무엇인가요?
거짓이 아닌 사실. 누구에게 사실대로 말하라고 하면 거짓말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진실은 거짓말과 함께할 수 없어요. 진실과 사실 사이에 거짓말이 존재할 순 있겠지만요. 그래서 진실이란 거짓이 없는 사실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꾸준히 정직하게

 

고교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어요?
낙천적인 성격에 친구들과 잘 지내는 학생이었어요. 좀 까불거리기도 하고. 하하하.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실용음악을 전공한다, 가수 데뷔 준비한다 그러면서 야간 자율 학습도 빼먹고 머리도 기르고 다녔어요. 오해는 마세요! 막무가내로 그런 건 아니고 당시 저의 소속사에서 학교로 공문을 보내줬거든요. 대신 학교는 열심히 다니라는 어머니 말씀에 따라 꼬박꼬박 출석했죠. (웃음) 

 

소속사까지 있었다고 하는 걸 보니 본격적으로 가수가 되려고 했었나 봐요. 
어렸을 때 형 옆에서 노래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노래에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형이 음악 CD를 정말 많이 사서 들었어요. 본격적으로 노래를 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였어요. 친구랑 듀엣으로 장기 자랑 연습을 하다가 목이 쉰 거예요. 장기 자랑 날 어쩔 수 없이 노래 앞 소절의 낮은음 부분만 불렀는데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더 연습해서 내년에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면서 노래를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수를 꿈꿨고요. 어릴 때 대전에 살았는데 서울 가서 오디션도 보고, 지방 기획사 오디션도 보다가 운 좋게 대전의 기획사에 합격했어요. 지방 기획사는 그런 마인드가 있어요. 인재를 발굴하여 서울로 올라가자! (웃음) 서울로 가는 인재가 되기 위해 열심히 했죠. 같은 소속사에 있던 친구 중에 정말 데뷔한 친구도 있어요.

 

그런데 가수가 아닌 뮤지컬배우가 되기로 마음을 바꾼 계기가 있나요?
가수를 준비하면서 저는 연예인이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걸 깨달았어요. 고3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실용 음악학원 보컬 선생님이 “나라야, 뮤지컬 안 해볼래?” 하시는 거예요. 뮤지컬이 뭔지 잘 몰랐지만 가수는 무대에 5분밖에 안 서는데, 뮤지컬배우는 2시간씩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더라고요. 노래도 더 많이 부를 수 있고요. 그즈음의 대전에 있는 청소년 뮤지컬단에 들어가게 됐어요. 어쩌다 보니 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고요. 그러니까 정말 재능이 있나 싶더라고요. 뮤지컬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합격했던 대학을 포기하고 재수를 했어요. 처음 뮤지컬을 권해주신 선생님을 찾아가서 입시 준비를 시작했죠. 

 

가수를 준비하다가 대뜸 뮤지컬배우를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반대하진 않았어요?
막내여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형한테는 많이 간섭하셨는데, 저한테는 공부하라는 말도 안 하셨어요. 형이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한 덕분에 저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자랐죠. 뮤지컬배우를 한다고 했을 때도 크게 반대는 안 하셨어요. 제대했을 때쯤이었나 아버지가 저를 부르시더니 “네가 하고 싶은 일 끝까지 도전해 봐. 응원할게.”라고 해주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했어요. 어머니는 제가 처음 뮤지컬배우를 한다고 했을 때부터 아버지 몰래 학원비를 보태주셨고요. (웃음)

 

배우로 데뷔하면서 서른 살을 마지노선으로 잡았다고 들었어요. 그때까지 배역을 맡지 못하면 다른 일을 하겠다고 했다면서요? 
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 엄기준 배우가 뮤지컬배우로 자리 잡기 전에 앙상블로 경력을 쌓았다면서 앙상블은 꼭 경험해 보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나도 최소 5년간 앙상블을 하고 배역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어떤 일이든 목표가 없으면 해이해지기 쉽잖아요. 그래서 5년 단위로 계획을 나누고 정말 독하게 살았어요. 데뷔 후 5년 동안은 앙상블 오디션만 봤어요. 앙상블을 하면서 뮤지컬배우로서 기반을 잘 다져놓고 싶어서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슈퍼 앙상블’이 되려고 엄청 노력했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까 배역을 맡아도 잘하겠다는 말을 들었죠. 그 말이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것 같아요. 

 

결국 스물아홉 살 때 <그리스>의 소니 역할로 첫 배역을 맡았어요. 
<그리스> 오디션에 이미 배역을 맡아본 친구들이 많이 왔어요. 당시 저는 앙상블 경험만 있었고요. 제가 심사 위원이라면 저보다는 배역 경험이 있는 배우를 선택할 것 같았어요. 요령 안 피우고 차근차근 실력을 쌓다 보면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너무 순진했나 싶더라고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 오디션을 보고 딱 한 번 올 기회를 기다렸어요. 그리고 꿈만 같은 기회가 찾아왔죠!

 

꿈꾸고 계획했던 대로 서른 살 전후로 이름을 알리는 배우가 됐어요. 그리고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았죠. 뮤지컬배우로 살아온 10년은 어땠나요?
개구리가 점프하기 전에 몸을 웅크리고 준비하잖아요. 지난 10년은 뮤지컬배우로서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10년 동안 요령 피우지 않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왔어요. 그래야만 저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정직하게 뮤지컬배우의 길을 걷고 싶어요. 막 데뷔했을 때 10년은 참 길게만 느껴졌는데 벌써 10년이 지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데뷔 10주년을 맞이했더니 다시 한번 저를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스스로도 앞으로의 10년이 궁금해져요. 올해는 <일라이>를 시작으로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해보려고요. 지금까지 도약을 준비했으니 이제는 뛰어올라야죠.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1호 2023년 2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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