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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뮤지컬 VS 뮤지컬영화① - 뮤지컬영화의 발자취 [No.221]

글 |안세영 사진 | 2023-03-09 958

뮤지컬영화의 발자취

 

노래와 춤이 극의 흐름을 주도하고 인물의 정서를 대변하는 뮤지컬과 실감 나고 사실적인 표현이 중요한 영화의 만남. 어쩌면 뮤지컬영화는 태생적으로 잘 만들기 어려운 까다로운 장르인지도 모른다. 성공의 열쇠를 찾기 위해서는 이 기묘한 장르의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뮤지컬영화는 어떻게 탄생했고 또 어떻게 발전되어 왔을까?

 

<사운드 오브 뮤직>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영화


뮤지컬영화의 역사는 유성 영화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최초의 유성 영화 <재즈 싱어>(1927)는 주인공이 노래하는 장면에서 실제로 녹음한 노랫소리를 들려주었다. 연주 음악과 자막으로만 이루어진 무성 영화에 익숙했던 관객은 열광했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유성 영화 시대가 열렸고, 영화사는 경쟁적으로 브로드웨이 작곡가와 보드빌 스타를 영입해 노래와 춤을 중심으로 한 영화를 제작하였다. 초기 뮤지컬영화는 스타를 꿈꾸는 주인공을 내세워 쇼 비즈니스계 사람들의 사랑과 열망을 그린 ‘백스테이지 뮤지컬’이 주류를 이루었다. 뮤지컬영화의 시초라고 평가받는 <브로드웨이 멜로디>(1929) <42번가>(1933) 모두 전형적인 백스테이지 뮤지컬이다. 화려한 쇼와 행복한 결말을 특징으로 하는 당시 뮤지컬영화는 대공황기에 실의에 빠진 대중에게 희망과 위로를 안겨주었다. 디즈니가 선보인 최초의 풀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 또한 뮤지컬영화의 형식을 취했다. 디즈니는 이를 시작으로 <피노키오>(1940) <피터팬>(1953) 등의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연달아 내놓았다. 


초기 뮤지컬영화의 발전에 공헌한 인물로는 안무가 버스비 버클리가 있다. 그는 <42번가> <풋라이트 퍼레이드>(1933) 등에서 원을 그리며 춤추는 여성 무용수들을 부감으로 촬영하여 기하학적 미장센을 보여줬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스타는 <톱 햇>(1935) <스윙 타임>(1936) <밴드 왜건>(1953)에 출연한 전설적인 춤꾼 프레드 아스테어다. 그는 자신의 춤을 롱 테이크로 촬영할 것을 고집했는데, 그렇게 탄생한 댄스 시퀀스는 현란한 촬영 기법이나 편집의 도움 없이도 명장면으로 완성됐다. 2016년을 휩쓴 뮤지컬영화 <라라랜드>에서 남녀 주인공이 탭 댄스와 왈츠를 추는 장면이 바로 아스테어와 그의 파트너들의 춤을 오마주한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1939) <스타 탄생>(1954)의 주인공 주디 갈란드 또한 뛰어난 노래 실력을 뽐내며 수많은 뮤지컬영화에 출연했다.


1950년대에는 텔레비전 보급으로 영화 시장이 침체되었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황금기를 맞았다. 영화사는 TV에 빼앗긴 관객을 되찾기 위해 히트 뮤지컬을 영화화했고, 뮤지컬 황금기를 이끌었던 리처드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2세 콤비의 작품 <오클라호마!>(1955) <왕과 나>(1956) <남태평양>(1958)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이 줄줄이 영화화되었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콤비는 뚜렷한 기승전결을 갖춘 북뮤지컬Book Musical의 양식을 확립했는데, 이에 따라 뮤지컬영화에서도 단순한 쇼를 벗어나 노래와 드라마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작품들이 등장하였다. <사랑은 비를 타고>(1952) <아가씨와 건달들>(1955) <마이 페어 레이디>(1964) 등 지금까지도 잘 알려진 인기 뮤지컬영화들이 이때 만들어진다. 프랑스 감독 자끄 드미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와 다른 송스루 형식의 뮤지컬영화 <쉘부르의 우산>(1964)을 선보였고, 이 작품 역시 큰 사랑을 받았다. 이민자 갈등이라는 사회 문제를 다루고 주인공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는 로맨틱 코미디가 주류를 이루던 뮤지컬영화 사이에서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1960년대 뮤지컬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는 줄리 앤드류스다. 브로드웨이에서 <마이 페어 레이디> 주연을 맡았던 그는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디즈니의 야심작 <메리 포핀스>(1964)의 타이틀 롤로 발탁되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이후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의 주연을 맡아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가수 바바라 스트라이샌드도 <퍼니 걸>(1968)로 영화에 데뷔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후 다양한 뮤지컬영화에 출연했다. 


68혁명이 세계 젊은이들에게 저항과 해방의 메시지를 전파한 뒤 찾아온 1970년대에는 더욱 파격적인 작품들이 등장한다. 가난한 유대인 가족의 애환을 그린 <지붕 위의 바이올린>(1971), 1930년대 나치 집권기 베를린의 카바레를 배경으로 한 <카바레>(1972), 성서 속 예수와 유다를 인간적으로 재해석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1973), 대표적인 컬트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1975), 히피 청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헤어>(1979)가 이 시기에 탄생했다. 존 트라볼타가 십대 반항아를 연기한 청춘 로맨스 영화 <그리스>(1978)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에는 뮤지컬영화가 침체기를 맞았다. 그나마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페임>(1980), 명랑한 고아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1982), 코러스 단원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린 <코러스 라인>(1985), 식인 식물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그린 <리틀 숍 오브 호러스>(1989)가 뮤지컬영화의 명맥을 이어갔다. 1990년대에도 우디 앨런 감독의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1996),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동명 뮤지컬을 영화화한 <에비타>(1996) 외에는 이렇다 할 뮤지컬영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디즈니의 뮤지컬 애니메이션 <인어공주>(1989)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 <라이온 킹>(1994) 등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디즈니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팀 버튼이 제작한 스톱모션 뮤지컬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의 악몽>(1993)도 이때 등장했다.

 

<시카고>

 

21세기 뮤지컬영화


2000년대에 들어서 뮤지컬영화는 다시 활력을 되찾는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오리지널 뮤지컬영화 <어둠 속의 댄서>(2000)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차지하고, 뮤지컬 원작자인 존 카메론 미첼이 감독·각본·출연을 도맡은 <헤드윅>(2001)이 선댄스영화제 최우수감독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1899년 파리 물랑루즈의 화려한 쇼와 20세기 후반 팝 음악이 어우러져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오리지널 뮤지컬영화 <물랑 루즈>(2001), 무대 연출가 출신 롭 마샬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 <시카고>(2002)가 흥행하면서 뮤지컬영화의 부활을 알렸다. <시카고>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6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어서 팝스타 비욘세와 제니퍼 허드슨이 가창력을 뽐낸 <드림걸즈>(2006), 팀 버튼 감독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매력을 살린 <스위니 토드>(2007), 밝고 명랑한 뮤지컬 코미디 <헤어스프레이>(2007), 아름다운 그리스 풍경을 담은 <맘마미아!>(2008)도 호응을 얻었다. 2006년 방영한 TV용 오리지널 뮤지컬영화 <하이스쿨 뮤지컬>은 디즈니 채널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이 밖에도 많은 뮤지컬이 영화로 옮겨졌는데 모두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오페라의 유령>(2004) <렌트> (2005) <프로듀서스>(2005) <나인>(2009) <페임>(2009)은 연출과 각색 등에서 아쉬운 평가를 받았다. 뮤지컬 <라이온 킹>의 연출가로 유명한 줄리 테이머는 비틀즈의 노래를 활용한 오리지널 뮤지컬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07)를 선보였으나, 흥행 성적은 저조했다. 


2010년대에는 <레미제라블>과 <라라랜드>가 뮤지컬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톰 후퍼 감독의 <레미제라블>(2012)은 배우들의 생생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의 노래를 동시 녹음하는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또한 노래하는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클로즈업으로 담아내 기존 뮤지컬영화와 다른 접근법을 보여주었다. 데미언 샤젤 감독의 오리지널 뮤지컬영화 <라라랜드>(2016)는 여러 고전 뮤지컬영화를 오마주하여 향수를 자극하는 낭만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철저한 리허설을 통해 한 번도 끊지 않고 롱 테이크로 촬영한 마법 같은 댄스 시퀀스가 감탄을 자아낸다. 이 작품은 골든 글로브에서 뮤지컬·코미디 작품상을 포함해 7관왕에 오르며 역대 최다 부문 수상작이 되었고, 아카데미에서도 6관왕에 올랐다. 이 밖에도 스티븐 손드하임의 동명 뮤지컬을 롭 마샬 감독이 영화화한 <숲속으로>(2014), 프릭쇼의 창시자 바넘을 주인공으로 한 오리지널 뮤지컬영화 <위대한 쇼맨>(2017)이 개봉했다. 디즈니는 기존 애니메이션을 실사 뮤지컬영화로 옮긴 <미녀와 야수>(2017) <알라딘>(2019)을 선보였다.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해 원작 애니메이션의 명장면을 그대로 재현하는 동시에, 달라진 시대에 맞춰 여성 캐릭터의 주체적 면모가 드러나도록 각색해 흥행에 성공했다. 

 

<레미제라블>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인기도 남달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3)은 주제가 ‘Let It Go’가 인기를 끌며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켰고,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차지했다. 이 작품에는 뮤지컬 <애비뉴Q> <북 오브 몰몬>을 탄생시킨 부부 작곡가 로버트 로페즈와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즈가 참여했는데, 이후 로페즈 부부가 작곡한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2017) 또한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았다. 사실적인 CG로 재탄생한 디즈니의 <라이온 킹>(2019)은 동물 캐릭터의 밋밋한 감정 표현 때문에 혹평을 받았으나 흥행에는 성공했다. 2010년대 말에는 <메리 포핀스 리턴즈>(2018) <맘마미아!2>(2018) <겨울왕국2>(2019) 등 인기 뮤지컬영화의 후속편이 선보이기도 했다.


2020년대에도 뮤지컬영화는 활발히 제작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흥행작은 나오지 않았다. 2019년 연말 개봉한 톰 후퍼 감독의 신작 <캣츠>(2019)는 인간도 고양이도 아닌 기괴한 모습의 배우들을 등장시켜 ‘희대의 망작’으로 전락했다. 인간이 고양이를 연기한다는 무대적 상상력을 무리하게 영상으로 옮긴 결과다. 이어서 <인 더 하이츠>(2021) <제이미>(2021) <디어 에반 핸슨>(2021) 등 인기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 줄줄이 등장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프랑스 감독 레오 카락스의 오리지널 뮤지컬영화 <아네트>(2021)는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지만 흥행과는 거리가 먼 예술 영화였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021)와 조 라이트 감독의 <시라노>(2021)는 유명 영화 감독이 내놓은 첫 뮤지컬영화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각각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화한 두 작품은 평단의 호평을 받고 각종 영화제 수상 후보에도 올랐으나, 손익분기점에 한참 못 미치는 저조한 흥행 성적표를 받았다. 흥행 실패 요인으로는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가 젊은 관객의 공감을 사기 힘든 점, 기억하기 쉽고 중독성 강한 주제가가 없다는 점이 꼽힌다. 2010년대에 성공한 뮤지컬영화들이 메릴 스트립, 아만다 사이프리드, 엠마 왓슨, 조니 뎁, 휴 잭맨 등 유명 할리우드 스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반면 2020년대 뮤지컬영화에는 그만한 스타 배우가 없다는 것도 약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극장을 찾는 관객 수만으로 흥행 여부를 따지기 힘들어졌다. 2020년대에 찾아온 팬데믹과 함께 OTT 플랫폼을 통해 개봉하는 뮤지컬영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OTT 플랫폼 넷플릭스는 자사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뮤지컬영화 제작에도 앞장섰다. <더 프롬>(2020)은 브로드웨이 스타들이 졸업 파티에 함께 가고픈 레즈비언 커플을 도와주는 이야기로, 원작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에서 10개월간 짧게 공연되었지만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가 인기를 얻으며 미국 투어 공연에 나섰다. <렌트>의 작곡가 조나단 라슨이 남긴 동명 뮤지컬을 영화화한 <틱, 틱… 붐!>(2021)도 호평을 받았다. <해밀턴>의 극작·작곡가이자 배우인 린 마누엘 미란다의 감독 데뷔작으로, 자전적 픽션이었던 원작을 조나단 라슨의 전기 영화로 절묘하게 각색해 찬사를 받았다. 이 밖에도 동명 뮤지컬이 원작인 <13>(2022) <마틸다>(2022)가 넷플릭스에 의해 뮤지컬영화로 제작되었다.


2023년에도 다수의 뮤지컬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5월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가 실사 뮤지컬영화로 거듭난다. 뮤지컬영화의 거장 롭 마샬이 메가폰을 잡고 알란 멘켄과 린 마누엘 미란다가 공동 작곡한 신곡이 추가된다. 12월 개봉하는 오리지널 뮤지컬영화 <웡카>는 로알드 달의 동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이다. 티모시 샬라메가 초콜릿 공장을 세우기 전의 젊은 윌리 웡카를 연기한다. 동명 뮤지컬을 영화화한 <컬러 퍼플>도 오는 12월 개봉할 예정이다. 

 

<인생은 아름다워>

 

한국 뮤지컬영화


할리우드 뮤지컬영화는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맘마미아!>(2008)는 450만, <레미제라블>(2012)은 590만, <라라랜드>(2016)는 370만, <미녀와 야수>(2017)는 510만 관객을 동원했고, <알라딘>(2019)은 무려 1,250만 명이 관람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할리우드와 다르게 자국 뮤지컬영화가 발전하지 못했을까? 뮤지컬영화의 완성도는 극의 흐름을 깨지 않고 노래와 춤이 이어지도록 만드는 연출력에 달려 있다. 이러한 연출은 전문적인 기술과 노하우를 요하는데, 뮤지컬의 역사가 짧은 국내에서는 영화와 뮤지컬을 두루 이해하는 인력을 찾기 힘들다. 영화화할 만한 완성도 높고 인지도 있는 창작뮤지컬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동안 한국 뮤지컬 시장은 라이선스 뮤지컬 위주로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인기 있는 창작뮤지컬은 대체로 외국을 배경으로 하고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삼거나, 판타지적 요소가 두드러져 영화화가 어렵다.


물론 한국에도 뮤지컬영화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푸른 언덕>(1949)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도 음악 영화가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대체로 음악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장면을 만들었으며, 실제 가수가 직접 출연하거나 배우들의 노래를 대신 불렀다. 혹자는 <아이 러브 마마>(1975)를 한국 최초의 뮤지컬영화로 꼽는다. 이 작품은 홀로된 어머니를 재혼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음악가 집안 세 자매의 이야기로, 세 자매의 쇼가 성공을 거두고 어머니가 재혼하며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당시로서는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으나 아쉽게도 흥행에는 참패했다.


2002년에는 <미스터 레이디>가 뮤지컬영화를 표방하며 제작에 들어갔다. 악덕 사채업자로부터 클럽을 지키려는 게이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작품으로, 국민 배우 안성기가 앵벌이 두목으로, 가수 소찬휘가 트랜스젠더로 등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투자 자본을 확보하지 못하고 제작비 부족으로 촬영이 중단되었다. 국내에서 뮤지컬영화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 작품은 2006년 개봉한 <구미호 가족>과 <삼거리극장>이다. <구미호 가족>은 서커스단을 이끄는 구미호 가족, <삼거리극장>은 오래된 영화관에서 밤마다 공연을 펼치는 유령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두 작품은 <구미호 가족> 20만 명, <삼거리극장> 1만 7천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이유는 두 작품 모두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대중의 취향과 동떨어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다만 저예산 영화 <삼거리극장>의 경우 <록키 호러 픽쳐 쇼>를 오마주한 독특한 미장센과 비교적 잘 갖춰진 뮤지컬 형식이 소수 마니아에게 인정받았다. 감독 전계수는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뮤지컬영화의 잇따른 흥행 참패로 한국 영화계는 뮤지컬영화와 더욱 멀어졌다. 심지어 기존 뮤지컬을 영화화할 때도 뮤지컬영화의 형식을 피했다. <김종욱 찾기>(2010)는 동명 창작뮤지컬이 원작이지만 일반적인 극영화로 옮겨졌다. <멋진 인생>(2011)은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실제 뮤지컬 출연진이 영화에 출연했으나 영화 중간에 공연 장면이 삽입될 뿐 뮤지컬영화를 표방하지는 않았다. <마차 타고 고래고래>(2017)는 2015년 초연한 창작뮤지컬 <고래고래>와 동시에 기획된 영화로, 뮤지컬과 영화에 공통된 음악을 사용하고 일부 공통된 배우를 캐스팅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등장인물이 버스킹 공연을 할 때만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음악 영화다. <스윙키즈>(2018)는 창작뮤지컬 <로기수>를 각색한 작품이지만 뮤지컬 넘버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등장인물이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오르는 장면에서 탭 댄스를 선보일 뿐이다. 뮤지컬영화가 약세를 보인 가운데서도 소소한 시도는 이어졌다. 충무아트센터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충무로 뮤지컬 영화제 탤런트 M&M’을 통해, 서울예술단은 2020년부터 ‘웹뮤지컬 창작콘텐츠 공모’를 통해 단편 뮤지컬영화 제작을 지원했다. 독립 영화계에서는 저예산 뮤지컬영화 <어게인>(2020) <이별식당>(2020)이 등장하기도 했다.


2022년에는 한국에 뮤지컬영화가 연달아 탄생했다. 8월에는 창작뮤지컬 <투란도트>를 영화화한 <투란도트 어둠의 왕국>이 개봉했다. 2011년 대구에서 초연한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동명 오페라를 심해 왕국을 배경으로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로케이션 촬영과 CG로 판타지를 극대화했으며, 뮤지컬배우 배다해, 민우혁, 양서윤 등이 출연하여 노래와 연기를 소화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 1천 명의 관객만을 동원하며 주목받지 못했다. 9월에는 국내 최초 주크박스 뮤지컬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개봉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가 남편과 함께 첫사랑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1970~2000년대 대중가요와 엮었다. 주연 배우 류승룡, 염정아는 1년간의 트레이닝을 거쳐 직접 노래와 춤을 소화했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신파 서사와 구시대적 캐릭터가 엇갈린 평가를 낳으며 손익분기점 220만에 못 미치는 117만 관객 수를 기록했다. 뮤지컬 시퀀스에서 놀랄 만한 연출력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뮤지컬영화의 양식에 충실하고, 대중가요를 적재적소에 녹여낸 것만으로도 뮤지컬영화 불모지인 한국에서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고 말할 수 있다. 12월 개봉한 <영웅>은 국내 최초로 창작뮤지컬을 뮤지컬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개봉일은 <투란도트 어둠의 왕국>이 앞서나, 먼저 촬영에 들어간 것은 <영웅>이다.) <해운대> <국제시장>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윤제균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2009년 초연부터 원작 뮤지컬에 출연해 온 배우 정성화가 주인공 안중근 의사를 연기했다. 개봉 이후 출연진의 연기와 노래는 호평을 받았지만, 윤제균 감독 특유의 웃음과 신파가 어우러진 각색에는 호불호가 갈렸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노래를 동시 녹음하는 시도와 공들인 촬영으로 여느 뮤지컬영화보다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영웅>은 350만 관객을 동원해야 손익분기점을 넘기는데 1월 말인 현재까지 295만 관객을 동원했다. <인생은 아름다워>와 <영웅>의 도전은 국내 뮤지컬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참고할 만한 전례가 쌓이고 전문적인 노하우를 갖춘 인력이 늘어나면 언젠가 한국에도 뮤지컬영화 장르가 자리 잡을 날이 오리라 기대해 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1호 2023년 2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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