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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거미 여인의 키스> 최재웅, 박은태 [No.90]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11-03-30 8,615


<거미 여인의 키스>가 관객들의 반응을 얻으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다.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 잘나가는 연출가, 연기 잘하는 배우들. 그들이 이 작품으로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전에 최재웅과 박은태를 카메라 앞에 세웠다.

 

 

“이리나의 촉촉이 젖은 두 눈은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상한 빛을 띠고 있었어.
사랑을 이룰 수 없어 슬프지만,
사랑을 느끼게 해준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
그녀는 사그라드는 촛불처럼 조용히 두 눈을 감아”

 


이 남자의 눈빛 최재웅

“그동안 해왔던 역으로 보면 몰리나인데(웃음), 이번마저도 그런 역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헤드윅>, <쓰릴 미>에이어 몰리나까지하면….”

 

최재웅은 발렌틴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다소 장난스럽게 이야기했지만, 게이 감성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바로 최재웅이다. 명랑하고 쾌활한 것과는 거리가 먼, ‘호들갑’이라는 단어는 모르고 살 것 같은 사람. 어둡고, 불안하고(그가 트렌스젠더나 게이 역이 어울리는 이유는 그의 이런 타고난 분위기 때문이다), 삶에 쓸데없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사람. 그를 묘사하는 데 ‘명확’ 같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캐릭터에 대해 집요하게 분석하고, 명쾌한 해답을 내리는 데서 연기의 즐거움을 느끼는 배우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가 <거미 여인의 키스>에 매력을 느낀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이 작품은 숨어있는 게 되게 많아요. 단순하게 몰리나 같은 사람을 싫어하는 애가 마지막에는 몰리나를 좋아하게 되는구나, 라고 하면 쉬워요. 근데 그렇지가 않죠. 표면적으로 발렌틴은 감옥 밖으로 나가야 하고, 몰리나를 싫어하다가 몰리나를 인정하는 것까지 가야하고, 여자 친구 마르타, 동료들과의 관계 등 서브 텍스트가 많으니까 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작품이고. 그래서 재밌어요.” 최재웅이 그린 발렌틴은 어떤 사람이었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글쎄요. 정하지 않아요, 전. 그냥 했어요. 텍스트에 보이는 대로.” 그러고 나서 잠시 사이를 두고 이렇게 덧붙였다. “오히려 정하고 하면 더 힘들어져요. 배우 각자의 성향이 있고. 상대가 대사를 했을 때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서 확 달라지는 건데.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무섭게 해도 상대방이 안 무서워하면 무서운 캐릭터가 아니잖아요. 캐릭터는 상대방이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스스로 그리는 게 아니라.” 애초에 그에게 거창한 연기론 같은 걸 기대한 게 잘못이었다. 그는 ‘상황’에 충실한 타입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발렌틴은 몰리나를 사랑했다는 거야, 안 했다는 거야, 같은 이야기는 사람을 힘 빠지게 해요.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사랑했느냐가 아니라, 사람이 변해가는 과정이에요. 몰리나를 경멸하던 놈이 얘한테 살짝 흔들린다거나, 그렇게 투쟁을 중요시하는 놈이 몰리나의 말을 듣고 투쟁에 대해 한번이라도 다시 생각한다거나. 그런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게 목표고요.” 마지막으로 <거미 여인의 키스>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관객들을 위해 최재웅의 다음 말로 마무리한다. “마누엘 푸익이 그 하고많은 장소 중에서 감옥을 택한 것과, 몇 만 가지 직업 중에서 혁명가하고 게이를 선택한 이유, 또 그 둘을 그 좁은 공간에 가둬 놓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럼 이건 답이 명확해지죠.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던 두 사람이 서를 이해하게 되고, 두 사람이 변해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손을 잡았다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두 사람의 정사 신이 중요한 장면이고요.”


이 남자의 진심 박은태

 

박은태가 <거미 여인의 키스>에서 ‘몰리나’를 연기한다는 소식은 여러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정작 자신은 작품에 대해 잘 모르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대답은 명쾌했다. “이지나 선생님하고 작품을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비록 최재웅이 받았던 것에 비하면 1억분의 1에 불과한 강도였지만, 이지나 연출의 하드 트레이닝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강했고, 그 결과 이번에 제대로 환골탈태했다며 박은태가 웃는다. 처음 해보는 연극, 게다가 제일 치열하다는 2인극, 게이-좀 더 정확히 말해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하는-라는 역할. 정확한 이해가 서지 않으면 좀체 행동하지 않는 그에게 <거미 여인의 키스>는 쉽지 않았을 작품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여자라고 믿는 그 마음에 어떻게 가 닿았을까? “그런 개념을 없애려고 해요. 몰리나가 남자고, 내가 남자라는 개념을 지우려고 하죠. 그냥…, 나는 슬프다. 이 사람하고 헤어지는 게 슬프고…, 그 감정에만 빠져 있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여기서부턴 모두 ‘몰리나’에 대한 이야기다. “발렌틴은 몰리나의 이상형이에요. 그녀가 꿈꿔오던 진정한 남자죠. 그런데 이상형이라고 해도 첫눈에 완전히 반해서 ‘아, 내 사랑…!’ 이렇게 되진 않는 것처럼 몰리나도 발렌틴에게 차근차근 빠져요.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가장 크게 흔들렸을 때요? 몰리나가 여자로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엄마거든요. 자기를 품어 줄 수 있는, 커다란 울타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발렌틴을 모성애로 감싸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부터 연민에서 사랑으로 가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요. 발렌틴이 힘들어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몰리나는 자기가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요. 왜냐면, 똑똑한 여자거든요. 그리고 게이는 핍박 받는 존재잖아요. 그러니까 눈치가 빨랐을 거예요. 어떻게 삶을 헤쳐 나가야 되는지도 잘 알았을 테고. 그래서 발렌틴이 사회 혁명을 이야기할 때도 어렴풋이나마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어요. 어떤 각오를 해야 되는지 알면서도 하는 거죠. 정상적인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몰리나에게 두 사람의 섹스는 중요한 의미지만, 그래서 그런 결심을 하는건 아니에요. 그 전에 이미 목숨을 걸었어요. 섹스를 통해 확인하는 것뿐이죠. 발렌틴의 부탁을 계속 거절하는 이유는, 저보다도 발렌틴이 위험할까봐 그런 거예요. 그가 위험해지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럼 해줄게, 이렇게 되는 거죠.” 박은태는 인터뷰 내내 조금 상기된 채 이야기했는데, 특히 극 중에 등장하는 표범 여인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흥분했다. 그 의미에 대해 파고들자면 A4용지 다섯 장으로도 부족할 거라면서. 그 모습을 봤다면 그가 대사 한 줄 한 줄 얼마나 철저히 고민하고, 또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을지 짐작이 갈 텐데. 그러니 결론은, 무대에서 직접 확인해보라는 말씀. M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0호 2011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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