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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LOSE UP] <웨이스티드> 브론테 남매의 삶의 조각들 [No.220]

글 |안세영 사진 |이참슬 2023-01-11 476

<웨이스티드> 
브론테 남매의 삶의 조각들

 

『제인 에어』의 작가 샬롯 브론테, 『폭풍의 언덕』의 작가 에밀리 브론테, 『아그네스 그레이』의 작가 앤 브론테, 그리고 비교적 덜 알려진 그들의 남자 형제 브랜웰 브론테까지. <웨이스티드>는 ‘록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작품답게 브론테 남매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는 일대기를 세세하게 들여다본다. 뮤지컬 속에 이들의 실제 삶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살펴보자.

 

 

값비싼 종이


<웨이스티드>의 무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소품은 집안 곳곳에 널려 있는 책이다. 브론테 남매는 가난하지만 학식 있는 성공회 목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책을 벗삼아 자란다. 어린 남매들은 책을 읽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들이 즐겨 읽던 『블랙우드 에든버러 매거진』을 본떠 작은 잡지를 만들며 창작에 대한 열망을 키워나간다. 하지만 풍족하지 못한 집안 형편 탓에 종이를 마음껏 사용하지 못하고, 종이 위의 여백이 사라질 때까지 글을 쓰고 또 쓴다.


실제로 19세기 후반 값싼 목재 펄프가 등장하기 전까지 종잇값은 매우 비쌌고, 당연히 책값 또한 비쌌다. 게다가 1840년대에 종이를 표지에 풀칠해 붙이는 떡제본이 발명되기 전까지 책은 낱장을 일일이 손으로 꿰매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귀한 물건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난한 노동 계급은 성직자가 부유한 후원자의 지원을 받아 나누어 주는 성서를 제외하고는 책을 소유하기 어려웠다. 브론테 일가의 장서 또한 대부분 목사관의 후원자나 친구들이 보내준 선물, 아니면 아버지가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 상으로 받은 것이었다. 나머지는 낡은 중고책이었다. 일찍 사망한 어머니가 남긴 책들은 좌초된 배에서 건져 올린 것으로 책장마다 소금기와 바닷물 냄새가 남아 있었다.


이렇듯 종이가 귀하다 보니 당시엔 쓰임을 다한 책조차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폭풍의 언덕』 도입부에는 캐서린이 어린 시절 남긴 낙서 가득한 책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실제로 브론테가 아이들은 책을 공책처럼 사용했다. 인쇄된 책의 여백에 빽빽하게 글을 써넣고, 책장을 한 장씩 뜯어내 성냥갑만큼 작은 책을 만들었다. 이 밖에도 벽지 샘플, 소포 포장지, 사탕 포장지, 광고지, 신문 등 온갖 종류의 종이 쪼가리를 실로 꿰어 작은 책의 표지로 활용했다. 종이는 음식을 담는 포장지나 접시 대용으로도 재사용되었다. 뮤지컬에도 샬롯이 습작을 하던 종이를 버터통 안에 대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샬롯은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출판사에 보낸 원고가 읽히기도 전에 버터통 포장지로 전락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반려견 키퍼


<웨이스티드>에는 브론테 남매 말고도 이들과 함께 사는 또 다른 가족이 등장한다. 바로 에밀리가 키우는 개 키퍼다. 키퍼는 브랜웰 역을 맡은 배우가 손으로 개 모양을 만든 뒤 짖는 소리를 내서 연기한다. 타인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는 에밀리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친밀감을 드러내는 노래 ‘소울메이트’를 그 누구도 아닌 키퍼 앞에서 부른다.


키퍼는 1838년 에밀리가 선물로 받은 개였는데, 성격이 사나워 다루기 힘들고 종종 침대를 더럽혀 가정부의 미움을 샀다. 이러다가 개가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에밀리는 어떻게든 키퍼를 길들이기로 결심했다. 에밀리는 가정부와 샬롯이 지켜보는 가운데 침대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키퍼를 억지로 끌어냈고, 물려고 덤벼드는 개의 눈가를 때려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직접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이 사건 이후 키퍼는 오직 에밀리에게만 충성했다. 에밀리도 자신처럼 거칠고 억센 천성을 지닌 이 동물에게 끌렸다.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에밀리는 “미쳐 날뛰며 사자처럼 울부짖는” 키퍼를 자랑스러워했다. 에밀리가 황야로 산책을 나갈 때도, 카펫 위에서 책을 읽을 때도 키퍼는 늘 그의 곁을 지켰다. 샬롯의 소설 『셜리』에 나오는 주인공 셜리와 사자처럼 큰 개 타르타르의 관계는 바로 에밀리와 키퍼를 모델로 삼은 것이다. 


혹자는 에밀리의 소설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 히스클리프 또한 키퍼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으리라 짐작한다. 워더링 하이츠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자란 고아 히스클리프는 사납고 무자비한 야수 같은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캐서린에게만큼은 무조건적인 충성과 사랑을 바친다. 캐서린이 죽자 그는 무덤 위에 몸을 던지며 ‘주인에게 충실한 개처럼’ 죽고 싶어 한다. 실제로 키퍼는 주인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샬롯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키퍼는 에밀리의 임종을 지켰으며 지하 무덤에서 열린 장례식에도 동행했다. 그리고 에밀리가 죽고 나서도 오랫동안 그의 침실을 매일 찾아갔다.

 

머리카락 목걸이


1848년부터 남매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해 9월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던 브랜웰이 결핵에 걸려 사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12월에 에밀리 또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5월에는 앤마저 투병 끝에 사망했다. 뮤지컬에서 이들의 죽음은 샬롯이 동생들의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것으로 표현된다. 샬롯은 이 머리카락을 로켓 목걸이에 담아 간직한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이처럼 사랑했던 고인의 머리카락으로 장신구를 만드는 일이 흔했다. 머리카락 장신구를 만드는 전문 제조업자가 존재했고, 여성들은 직접 머리카락을 꼬아 장신구를 만들기도 했다. 1850년경에는 머리카락을 보관할 수 있도록 한쪽 면이 유리로 된 로켓 장신구가 대량 생산되어 보급되었다. 훗날 사진이 고인에 대한 애도의 기념품을 대체할 때까지 머리카락 장신구의 인기는 계속되었다. 브론테 자매의 소설 속에도 종종 머리카락 장신구가 등장한다. 샬롯의 소설 『빌레트』에는 비망록 사이에 죽은 친구의 땋은 머리 타래를 끼워두는 루시, 아버지와 남편의 머리칼을 넣어 만든 로켓을 몸에 걸고 있는 폴리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는 죽은 캐서린의 목에 걸린 로켓 목걸이에서 남편 린턴의 머리카락을 빼내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집어넣기도 한다. 


실제로 샬롯이 남긴 유품 중에는 에밀리와 앤의 머리카락을 꼬아 만든 자수정 목걸이와 앤의 머리칼이 담긴 로켓 브로치가 있다. 샬롯은 이 장신구를 착용하며 죽은 동생들과 이어져 있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1855년 샬롯이 죽은 뒤 그의 머리카락 또한 하녀와 남편, 친구들에 의해 소중히 간직되었다. 브론테 일가와 관련된 50여 종에 달하는 머리 타래와 머리카락 장신구는 현재 유럽과 미국 각지의 도서관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0호 2023년 1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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