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아트센터 서울 이현정 센터장
문화 향유의 공간을 향해
세계적인 공연계 거장들의 작품과 동시대를 대표하는 공연을 통해 탄탄한 관객층을 확보해 온 LG아트센터가 22년간의 역삼동 시절을 마무리하고 마곡에 새 둥지를 틀었다. 두 달간의 개관 공연으로 한창 집들이 중인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이현정 센터장을 만났다. 이현정 센터장은 1996년 당시 역삼 LG아트센터 개관준비팀에 사원으로 입사해 공연기획팀 팀장과 공연사업국장을 거쳐 2021년 12월 센터장으로 임명되었다. 연간 시즌제와 패키지 티켓 도입, 초대권 없는 극장 등 획기적인 극장 운영으로 주목받았으며, 평사원에서 센터장까지 오르며 LG아트센터 22년의 역사를 함께한 극장의 산증인이다.
힘차게 출발한 LG아트센터 서울
새로운 터전에서 문을 연 LG아트센터 서울에서는 개관 페스티벌이 한창입니다. 현재까지 극장 내부의 중간 평가는 어떤가요?
개관을 앞두고 가장 우려했던 점은 아무래도 접근성이었어요. 기존의 역삼 극장과 비교했을 때 관객들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해 심리적 거리감이 있을 것 같았죠. 그런데 다행히도 개관 프로그램을 보러 이곳을 찾은 관객들 대다수가 생각보다 가깝고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지하철역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 예전보다 접근성이 더 좋아졌다고 해주셔서 일단 한시름 놓았어요. 그리고 예매율도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벌써 대여섯 개 이상의 공연이 매진을 기록했고요.
기존의 LG아트센터 레퍼토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이번 개관 페스티벌 프로그램의 결이 조금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아요. 개관 페스티벌을 프로그래밍하면서 중점에 둔 점은 무엇이었는지요?
개관 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극장 오픈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자리이다 보니 공연장의 다양한 공간과 기능을 소개하고 활용할 수 있게 여러 장르로 라인업을 짰어요. 또 극장의 색깔을 선명히 드러내기보다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관객들이 한 번쯤 극장에 올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죠. 피아니스트 조성진이나 안무가 아크람 칸의 무대처럼 기존의 색깔을 보여주는 무대도 있지만, 박정현 콘서트, 이은결의 마술쇼, 체험형 공연인 다크필드처럼 기존의 프로그램과는 결이 다른 무대도 있어서 그동안 LG아트센터를 찾지 않던 새로운 관객층이 극장을 찾아올 수 있도록 했어요.
개관 페스티벌이 끝나고 내년부터 시작되는 프로그램의 색깔은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개관 페스티벌보다는 극장의 방향성이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나보실 수 있을 거예요. 대극장은 해외 유명 발레단과 현대무용단의 초청 공연, 극장이 제작에 참여한 대형 연극을 준비 중이고, 소극장에서는 다양한 예술가와 협업한 작품들을 소개할 계획이에요. 기존의 시즌 프로그램인 ‘콤파스CoMPAS’는 계속 유지되지만, 새로운 지역에서 더 큰 극장을 운영하게 되면서 관객 개발도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에 대중이 쉽게 볼 수 있는 공연들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에요.
프로그램 운영 방식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 예정인지요?
역삼동 시절에는 천 석 규모의 극장 하나뿐이었어요. 하지만 이곳 마곡은 극장 공간도 큰 데다가 이곳을 찾는 관객들의 취향도 훨씬 넓어지다 보니 프로그램도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기획 공연인 콤파스를 비롯하여, 예술가와의 협업 프로덕션 ‘크리에이터스 박스CREATOR's BOX’, 극장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장소 특정형 프로그램 ‘보이드VOID’, 클럽 문화와 공연 문화를 접목한 ‘클럽 아르크Club ARC’ 등 극장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하되, 여기에 넣지 못하는 공연들, 예를 들어 가족 공연이나 엔터테인먼트 공연도 소화하면서 프로그램과 장르, 관객층을 더욱 다양하게 확보하려고 해요.
마곡으로 극장을 옮기면서 공식 명칭이 ‘LG아트센터 서울’로 바뀌어요. ‘LG’라는 브랜드를 지닌 민간 극장으로서의 색깔과 ‘서울’이란 이름이 갖는 공공성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궁금합니다.
서울시 측으로부터 가급적 다양한 작품을 통해 서울 시민들이 공연 문화를 즐기게 해주고 시민을 위한 예술교육 활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었어요. 이에 따라 우리 극장은 강서 지역 청소년을 대상으로 무료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공연 티켓의 일부를 지역아동센터나 소방서 등에 나누는 등 극장 운영 방향에서도 공공성을 고려하고 있어요. 공공성을 확대하고자 근처 식물원과 연계하여 공공 조형물을 만들거나 축제를 함께하는 방식도 고민 중이에요. 다만 공연 콘텐츠와 프로그램은 민간극장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여 관객 지향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우수 창작물을 엄선해 소개할 계획입니다.
역삼 시절과 차별되는, 마곡 시대 LG아트센터 서울의 키워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확장성, 다양성, 협업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확장성은 공간의 확장, 프로그래밍의 확장, 그리고 관객 저변의 확장을 두루 의미해요. 역삼 LG아트센터가 오로지 공연을 보기 위해 찾는 목적 지향적 극장이었다면, 마곡 LG아트센터에는 공연 외에도 즐길 거리가 많아요. 극장 근처 식물원이나 미술관에 들를 수도 있고,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감상할 수도 있죠. 다양한 기호를 가진 사람들이 와서 여러 가지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보니 자연스레 다양성이 화두로 떠올랐어요. 마지막으로 블랙박스 무대가 새로 생기면서 예술가들과의 협업이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죠. 블랙박스 무대의 경우, 저희가 전체를 프로그래밍하는 대신 다양한 아이디어를 지닌 창작자들이 자발적으로 들어와서 작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뒤 다각도의 협업 체제를 이어갈 예정이에요.
다양한 관객과 공연을 아우르는 극장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역삼 시절을 마무리하게 되어 아쉬움도 많으셨을 텐데요. 팬데믹을 거치면서 공연과 극장에 대한 관점에도 변화가 생겼을 듯합니다.
공연장이 팬데믹에 취약한 공간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죠. 하지만 온라인 공연이 활성화되면서 또 다른 차원의 콘텐츠와 새로운 관객층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어요. 당시 여러 온라인 공연 레퍼토리를 접하면서 콘텐츠 자체의 품질뿐만 아니라 그것을 온라인 공연 형식에 잘 담아낼 수 있는 기술력과 결과물의 퀄리티도 중요하다는 것도 절감했어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공연장은 어떤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관객이 극장에 찾아오고 싶게 만들 수 있을지 다각적인 고민도 했어요.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이번에 출시한 LG아트센터 서울의 시그니처 향입니다.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 중이에요.
LG아트센터 서울은 개관 전부터 안도 다다오의 건축으로 주목받았죠. 실제로 와보니 확실히 극장이라는 기능을 넘어 고유의 공간감이 느껴져요. 수많은 건축가 중 안도 다다오에게 설계를 맡긴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는지요?
건축가는 그룹에서 심사숙고해 선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외관이 화려한 극장보다는 자연과 인간, 예술이 서로 공존하는 콘셉트를 잘 구현할 수 있는 건축물을 원했고, 그런 면에서 기능을 중시하면서도 주위 환경과 조화를 추구하는 안도 다다오의 스타일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극장 내부는 전문 컨설팅 업체에 맡겨서 설계하고 그 외의 공간을 안도 다다오가 맡았어요. 시그니처 공간인 튜브에서 볼 수 있듯 안도 다다오는 서로 다른 차원들이 만나고 교류하고 연결되는 지점을 공간적으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어 극장을 설계했어요.
LG아트센터 서울의 무대는 ‘LG 시그니처 홀’과 ‘U+ 스테이지’로 이뤄져 있어요. 이 중 LG 시그니처 홀은 1,355석 규모의 무대인데, 주로 어떤 공연이 올라갈 예정인지요?
클래식, 발레, 연극, 오페라, 서커스 등 모든 장르를 무대에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요. 처음에는 공간이 넓어서 ‘연극은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극장이 완성된 뒤 들어와 보니 무대와 객석 간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지 않더라고요. 오케스트라 피트를 무대로 쓰는 경우, 무대와 객석 첫 번째 열의 거리가 역삼 때보다도 짧아요. 그래서 연극도 충분히 공연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해요. LG 시그니처 홀 본무대는 역삼의 1.8배, 후무대까지 하면 2.5배 커져서 앞으로는 무대 크기 때문에 못 하는 공연은 없을 것 같아요. 전에는 초청하지 못했던 풀 스케일 규모의 오케스트라나 클래식 발레, 오페라 등의 공연이 가능해졌죠. 다만 그에 비해 객석 수가 많지 않아서 어떻게 운영할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U+ 스테이지는 가변형 블랙박스 형식의 소극장이에요. 역삼 시절 제작 공연 및 소극장 공연에 대한 아쉬움이 여기서 풀릴 것 같아요.
U+ 스테이지는 어느 장르에나, 어느 예술가에게나 열려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에요. 무대와 객석 모두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변형할 수 있어서 창작자들이 원하는 공간을 얼마든지 구성하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요. 특히 60개의 스피커를 360도로 구비해서 이머시브 사운드가 가능하고, 조명 등을 설치하는 천장의 그리드가 고정이 아닌 와이어라서 언제든지 셋업이 가능해요. U+ 스테이지를 참신한 아이디어로 활용할 수 있는 아티스트들이 이곳을 더 멋지고 신나는 공간으로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공연 외에 ‘건축학교’와 ‘음악이야기’ ‘몸으로 예술놀이’ 등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하는 것도 눈에 띕니다.
극장 3층에 워크숍 진행이 가능한 공간과 클래스룸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요. 이곳은 주로 교육용으로 활용할 예정이에요. 최근 우리 극장은 국립현대무용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 정림건축문화재단과 MOU를 맺었어요. 전문적인 지식과 커리큘럼을 갖춘 단체들과 함께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려 해요. 이를 통해 잠재적인 관객층을 개발하는 한편, 공공성을 지닌 프로그램을 확장하는 것이 목표예요.
강서 지역의 유일한 대극장이자 지역 문화 허브로서 LG아트센터 서울이 지향하는 비전이 있나요?
LG아트센터 서울이 강서 지역의 유일한 대극장이라고 해도 지역성에 방점을 찍고 있지는 않아요. 저희는 강서의 랜드마크가 아니라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려고 합니다. 예전 역삼 시절에도 좋은 공연이 있으면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분이 극장을 찾아주셨어요. 이곳에서도 좋은 공연과 콘텐츠를 마련한다면 어디서든 관객들이 와주실 거라 믿어요. 다만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하다 보면 아무래도 지역 주민들의 향유 기회가 높아질 테니, 그런 면에서 지역 예술 커뮤니티로서 할 일이 있을 거라 기대해요.
역삼 시절 LG아트센터는 기획공연뿐만 아니라 뮤지컬 공연장으로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마곡에서도 뮤지컬을 계속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뮤지컬은 시장 자체가 크고 수요도 많기 때문에 저희에게도 중요한 장르 중 하나예요. 이곳에서도 여름과 겨울 시즌에는 뮤지컬 대관 공연을 하고 봄가을은 기획 공연을 하는 큰 틀은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뮤지컬은 워낙 프로덕션 규모가 커서 직접 제작이나 투자를 맡기는 어렵겠지만, 대관만 담당했던 역삼 시절과 달리 기획과 대관을 같은 팀에서 진행할 예정이라 이전보다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할 것 같아요.
12월이면 LG아트센터 서울의 센터장으로 취임한 지 딱 1년이 됩니다. 지난 1년을 보내면서 느낀 감회와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려요.
작년 12월 1일자로 발령받고, 3월에 마곡으로 들어왔어요. 처음 3~4개월은 극장 이사 준비로 정신이 없었고, 이사 온 뒤로는 오픈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죠. 정말 숨 가쁘게 1년을 보내온 것 같아요. 20년 넘게 한 조직에 몸담으면서 승진한 것이라 개인적으로 큰 변화를 느낀 건 없었지만,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또 공연계에서는 신입 사원에서 시작해 대표가 된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제가 정말 잘해야 저와 같은 사례가 또 나오겠다는 책임감도 느껴요. 물론 뿌듯함과 성취감도 있죠. 저 자신이 지난 20년간 LG아트센터에서 즐겁게 일한 것처럼 앞으로는 제 후배들이 이곳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면서 많은 걸 배우고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이 시대에 ‘극장’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저도 계속 고민하며 답을 찾고 있는 질문이에요. 저는 여전히 극장은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나 놀라움을 줄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에서는 ‘마술’과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기술과 장치들이 발달하다 보니 마술을 영상으로 보면 사실 별 감흥이 안 느껴져요. 하지만 현장에서 보는 마술은 여전히 가슴 뛸 만큼 설레고 놀랍거든요. 그렇게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놀라움을 경험할 수 있는 창의적인 공간이 바로 극장이라고 생각하고, 관객들에게 그런 경험을 줄 수 있도록 더 고민하려고 합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9호 2022년 12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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