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뮤지컬
2022년 1월부터 11월까지 라이선스 뮤지컬 20편, 창작뮤지컬 84편이 관객에게 웃음과 감동을 안겨줬다. 그중에서 눈여겨볼 만한 네 작품을 모았다.
창작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 배우>
4월 1일~5월 15일 국립정동극장
최영현
한정석 작가와 이선영 작곡가 콤비는 단 두 작품으로 관객에게 믿음을 심어줬다. 색다른 소재에서 이야기를 찾아내고 드라마와 음악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 선보일 것이라는 믿음. 이것이 이들의 차기작을 기대하는 이유다. 4년 만의 신작 <쇼맨>은 그러한 믿음과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쇼맨>은 전작과 달리 진중한 어조로 ‘주체성’이라는 묵직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뚝심과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는 세련된 음악의 조합은 여전히 일품이었다. 한정석, 이선영 콤비는 <쇼맨>을 통해 창작자로서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다만, 닮은 듯 다른 네불라와 수아의 이야기가 작가의 의도만큼 잘 엮이지 않은 점은 아쉽다.
안세영
한정석 작가와 이선영 작곡가는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쇼맨>은 정반대의 인물이 만나 소통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두 콤비의 전작 <여신님이 보고 계셔> <레드북>과 맥을 같이하지만, 분위기는 훨씬 현실적이고 무겁다. 젊은 시절 독재자의 대역 배우로 일한 노인 네불라와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속물 청년 수아. 작품은 관객의 호감을 사기 힘든 문제적 인물들을 과감하게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음, 두 인물이 서로를 거울삼아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관객 자신도 돌아보게 만든다. 이때 코러스를 활용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인물을 바라보게 만드는 음악이 무척 인상적이다. 인기 요소를 답습한 비슷비슷한 뮤지컬 속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창작자의 고유한 관점이 드러나는 이 작품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실비아, 살다>
7월 12일~8월 28일 대학로 TOM 2관
안세영
<실비아, 살다>는 올해 실존 여성 예술가를 조명한 여러 창작뮤지컬 가운데서도 가장 분명하게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주었다. 작품은 실비아 플라스가 가부장제를 대변하는 아빠를 사랑했던 자신을 직시하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풀어낸다. 이는 단순히 차별에 맞선 멋진 여성상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욱 내밀한 차원에서 공감과 성찰을 이끌어낸다. 일반적으로 주인공의 절절한 독창이 터져 나올 법한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홀린 듯 타자기를 두드리는 실비아의 모습과 무대 뒤편에 자막으로 뜨는 그의 시에 온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돌리는 배짱 또한 놀랍다. 무대 위에서 잘 쌓인 서사를 통해 한 예술가의 작품을 다시 마주했을 때 관객이 새삼스러운 감동을 느낄 수 있음을 증명한 장면이다.
이솔희
실비아 플라스가 형식과 운율이 아닌 자신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 시를 썼듯이, <실비아, 살다> 역시 오롯이 인물에 집중해 그의 삶을 정직하게 풀어냈다. 결과물이 다소 투박하긴 하지만, 작품을 향한 창작진의 진심이 느껴질 때 메시지 전달이 더욱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죽음으로 삶의 완성을 꿈꿨던 모순적인 이야기를 통해 생의 의지를 전달하려는 창작자의 신념과 예술가의 파멸을 무대에 쉽게 전시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돋보였다. <실비아, 살다>는 잘 가공된 보석보다 거친 원석에 가까운 작품이다. 실비아 플라스가 뒤늦게 예술성을 인정받은 것처럼 <실비아, 살다>도 여러 번 공연을 거듭하며 많은 관객에게 선택받는 작품이 되길 기대해 본다.
라이선스 뮤지컬
<데스노트>
4월 1일~6월 19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7월 1일~8월 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최영현
2017년 재연 이후 한동안 볼 수 없었던 <데스노트>가 새로운 제작사와 함께 5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초연부터 흥행에 성공한 <데스노트>는 원작 만화의 유명세에 기대지 않아도 될 만큼 대중성이 있는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새로운 프로덕션은 이야기와 뮤지컬 넘버는 그대로 사용하되 시각적인 면에서 대대적인 변신을 꾀했다. 무대 3면에 LED 디스플레이를 설치해 다채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보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작품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도 한몫했다. 빈틈없는 영상 때문에 상상의 여지가 줄어든 점, 이전 시즌에 무채색 톤의 미니멀한 무대가 만들어낸 시니컬한 분위기가 사라진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무대 영상 사용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작품과 시너지 효과를 낸 점에 박수를 보낸다.
이솔희
<데스노트>는 2015년 초연, 2017년 재연을 통해 흥행을 검증받았다. 하지만 새로이 제작을 맡은 오디컴퍼니는 기존 공연을 그대로 올리는 대신, 과감하게 새로운 모험을 감행했다. 바로 무대 연출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는 것. 초·재연 당시 심플한 디자인이 여백의 미를 남겼다면, 이번 시즌에는 LED 디스플레이를 무대 전면에 설치하는 획기적인 연출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공간 변화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신들이 벌이는 게임판 위에서 발버둥 치는 인간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대중이 대극장 뮤지컬에 기대하는 요소로 ‘화려한 볼거리’가 빠지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데스노트>의 새로운 프로덕션은 변화를 통해 작품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동시에 관객들의 기대감까지 충족시켰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8월 30일~11월 8일 샤롯데시어터
최영현
영화를 바탕으로 하는 뮤지컬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은 원작을 어떻게 무대로 잘 옮기느냐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두 장르의 문법이 다르니 원작을 그대로 옮겨도 문제고, 그렇다고 관객이 기대하는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1990년대 인기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나름의 절충안을 찾아냈다. 40대 남성이 70대 할머니로 변신하는 장면은 놀랄 만큼 영화와 비슷하게 구현하는 한편, 인물 설정이나 이야기는 지금 사정에 맞춰 조금씩 손봤다. 논레플리카 프로덕션이었던 이번 공연에서 큰 호응을 얻은 것은 번역 등 관객의 입맛에 맞춘 현지화다. 하지만 대사인지 애드리브인지 모를 말장난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 반복되어 어수선하게 느껴졌다. 농담에도 치고 빠지는 기술이 필요하다.
안세영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객석 분위기는 확실히 남달랐다. 숨소리를 죽이고 무대에 집중하는 대신 객석에서 마음껏 웃고 박수칠 때의 쾌감을 얼마 만에 느껴보았던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유쾌하고 대중적인 뮤지컬이 얼마나 귀해졌는지 역으로 체감한 순간이다. 특히 극 중 인물이 잘못 알아듣고 여장한 다니엘의 이름으로 착각하는 ‘Doubt fire’를 ‘다 오빠야’로 옮기는 등의 재치 있는 번역은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하지만 웃음이 필요한 순간마다 한국식 유행어와 유명 인사를 소환하는 방식은 즉각적인 호응을 끌어내기 쉬운 만큼 극을 산만하게 만들기도 쉽다. 다니엘이 변장을 통해 아내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낼 방법을 찾는 것이 초연이 남긴 숙제다.
2022 뮤지컬 리스트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9호 2022년 12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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