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행 1년의 기억들
2022년 1월호로 재발행을 시작해 꼬박 12권의 잡지를 다시 세상에 내놓은 『더뮤지컬』. 기자들이 기억하는 지난 1년의 이야기를 모았다.
최영현
그렇게 문서 작성 담당이 된다
『더뮤지컬』의 재발행을 위한 준비는 2021년 5월부터 시작됐다. 배경희 편집장을 필두로, 론칭 멤버였던 나와 안세영 기자 셋이 몇 달 동안 새로운 시작을 위한 회의를 거듭했다. 다양한 아이디어 가운데 최종 발탁된 운영안을 회사에 보고해야 했는데… 아뿔싸! 우리 셋 중에 PPT에 능한 사람이 없지 않은가! 결국 그나마 컴퓨터와 친한 내가 보고용 문서 작업을 (울며 겨자 먹기로) 전담하게 됐다. 대학생 때 조별 과제로도 PPT 파일을 만들어본 적이 없던 나는 재발행을 준비하며 PPT는 물론 엑셀, 포토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섭렵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더뮤지컬』의 문서 작성 전담이 되었다.
오! 나의 후배님
재발행을 시작하고 후배들이 속속 입사했다. 후배 1호는 지난해 11월에 입사한 이솔희 기자. 붙임성 좋은 성격으로 금세 선배들과 친해졌다.내가 ‘솔희 씨!’ 하고 크게 부를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는 게 특징이다. 후배 2호는 『더뮤지컬』의 영상 콘텐츠를 전담하는 이정은 유튜브 PD. 촬영부터 편집까지 일당백으로 활약 중이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아이템을 많이 갖고 있는데 특히 스누피 관련 아이템이 많다. 후배 3호는 이참슬 웹 에디터. SNS와 웹사이트 운영을 맡고 있다. 마감에 찌들어 있는 선배들과 달리 의욕에 불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씩씩하게 대답하는 게 인상적이다. 그리고 안세영 기자. 같이 일하기 전부터 사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이라 후배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아무튼 후배 0호. 나의 부장님 개그를 받아주는 유일한 후배다. (감동) 모두 오래 함께합시다!
해가 떠오른다, 가자
직업 특성상 야근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보통 원고 마감 일주일 전부터 시작되는 야근은 마감일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길어진다. 야근의 정점은 원고 마감 후 디자인 작업이 완료된 인쇄용 데이터를 확인하는 날이다. 통상적으로 원고를 가장 늦게 마감하는 편집장님과 내가 마감 마지막 날을 지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딱 한 번, 8월호 마감 때는 편집팀 모두가 마감 마지막 날을 함께했다. 8월호는 준비 과정부터 조금씩 일정이 밀리더니 급기야 마감 마지막 날 철야 작업을 하게 됐다. 각자 마지막 원고를 작성하며 하얗게 밤을 지새운 우리는 전날 오전 10시에 출근하여 다음 날 새벽 6시 40분에 퇴근하는 기록을 세웠다.
안세영
부활을 위한 서류 모으기
재발행을 준비하면서 내가 가장 처음 맡은 일은 바로 ‘잡지 사업자 지위 승계 신고 및 잡지 사업 변경 등록 신청’. 간단히 말해 잡지의 발행처가 변경되었음을 구청에 신고하는 업무인데, 길고 복잡한 이름에 걸맞게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무려 열다섯 가지에 달했다. 관련 법률을 살펴보고, 구청에 전화를 걸고, 공증사무소를 찾아가고, 이전 발행처인 클립서비스와 새로운 발행처인 예스24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미션을 클리어해 나가는 동안 제때 신고를 마치지 못해 1월호를 발행하지 못하는 끔찍한 상상에 시달렸다. 마지막으로 구청에 서류를 제출하고 심사를 기다려 새로운 잡지사업등록증을 받았을 때 그 후련함이란! 다 이루었다!
출처는 에디터 소장품
대대로 맥시멀리스트였던 집안 내력 탓에 언젠가부터 우리 집은 『더뮤지컬』 촬영 소품 대여소가 되었다.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팬레터>의 주연 배우 이규형의 표지 촬영에는 예스러운 소품이 필요했다. 이때 집에서 공수해 온 찻잔은 1920년대부터 생산되어 1990년대에 단종된 영국 웨지우드사의 빈티지 제품이다. 세로쓰기로 인쇄된 빛바랜 책은 1955년 발행된 한하운 시인의 시집 『보리피리』 초판본으로, 당시 현장 스태프가 헌책인 줄 알고 찢으려는 걸 비명을 지르며 간신히 막았다. 강홍석 배우의 표지 촬영 때 쓰인 테디베어는 어릴 적 선물 받아 20여 년간 고이 간직해 온 인형이다. 우연히 스타일리스트가 준비한 카디건과 테디베어의 스웨터 색깔이 딱 맞아떨어져 깜찍한 사진이 탄생했다. 나의 물욕이 진가를 발휘한 순간이다.
월리… 아니, 테이블을 찾아라!
지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진행한 ‘가족사진관’ 이벤트. 행사 마지막 날인 일요일 오전에 행사 장소로 출근한 나는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한적했던 다른 날과 달리 그날은 장터가 열려 공원 가득 수많은 식료품 판매 부스가 늘어서 있었고, 전날 행사를 마치고 정리해 둔 우리 테이블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 정황상 장터 행사용 테이블에 섞인 듯했으나 모든 부스의 테이블이 비슷하게 생겨 무엇이 우리 테이블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사정을 들은 장터 주최 측에서 여분 테이블을 내주어 무사히 행사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수십 개의 테이블 사이를 황망히 헤매던 그날의 심정이란… 다시 떠올려도 아찔하다.
이솔희
Possible Dream
홍광호 배우는 나를 뮤지컬의 세계로 인도한 주인공이다. 몇 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만날 기회가 없어 내심 아쉬웠는데, 『더뮤지컬』의 구성원이 된 지 일주일 만에 그를 ‘영접하게’ 됐다! 뮤지컬의 매력을 알려준 배우를 『더뮤지컬』에 입사하자마자 만나게 됐다는 사실이 사소한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얼마나 가슴 벅찬 사건이었는지! 그래서 표지 촬영 날은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오페라의 유령> 콘셉트와 어울리는 검붉은 장미를 찾아 헤맬 때도, <데스노트> 무대에 있을 법한 새빨간 사과를 구하기 위해 마트를 순회할 때도, 심지어는 간식으로 제공할 참치 샌드위치를 판매하는 곳을 찾기 위해 길거리를 방황할 때도….
토끼 솜사탕, 햇빛 속으로
6월호 표지 촬영 전날, 편집장님이 나에게 귀여운 솜사탕을 공수해 오라는 특명을 내렸다. 촬영 콘셉트인 운동회 분위기를 한껏 살리기 위한 소품으로 솜사탕이 필요했는데, 마침 내가 사는 동네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에 솜사탕 장인(!)이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오전 나는 놀이공원에 놀러 온 아이처럼 레인보우 솜사탕과 토끼 모양 솜사탕을 양손에 들고 회사로 향했다. 하지만 5월 따사로운 햇살 아래 솜사탕은 빠른 속도로 녹기 시작했고 결국 토끼 솜사탕은 카메라 앞에 서기도 전에 운명을 달리했다. 다행히 레인보우 솜사탕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표지 모델 렌과 함께 6월호 B형 표지를 장식했다.
끝까지 끝은 아니야! 발전기의 난
5월에 열린 ‘가족사진관’ 이벤트 당시, 내가 맡은 업무 중 하나는 포토 부스 작동에 필요한 발전기 대여였다. 그때는 예상하지 못했다. 발전기가 이토록 큰 시련을 줄 거라고…. 고난의 시작은 발전기용 기름 20ℓ를 혜화로터리부터 마로니에공원까지 가져오는 것이었다.
시동을 거는 과정도 험난했다. 대여 업체에서 발전기에 기름을 넣고 손잡이를 빠른 속도로 잡아당기면 쉽게 시동이 걸린다고 했는데, 우리는 약 20분간 사투를 벌인 끝에야 ‘부르릉’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튿날에는 행사 시작과 동시에 포토 부스가 작동을 멈춘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금방 고쳐졌지만 포토 부스 관리자의 말로는 발전기가 기계에 영향을 끼쳤을 확률이 높다고. 그 후로도 발전기는 크고 작은 사고의 주범이 됐고, 그날부터 나에게 발전기는 금지어가 됐다.
이참슬
빗물 젖은 소품
<여신님이 보고 계셔> 10주년 팀과 함께한 영상은 내가 처음으로 기획에 참여한 작업이라 모든 순간이 생생하다. 영상에 등장하는 벌칙용 요정 날개는 이정은 유튜브 PD와 함께 만든 것인데, 날개 재료를 사러 나간 날은 도로에 물이 찰랑거릴 만큼 비가 많이 왔다. 황토색 바지가 진한 갈색이 될 정도로 비를 맞으며 사 온 재료로 소품을 완성했다. 그러니까 요정 날개는 빗물 젖은 소품인 셈이다. 신조어 게임을 할 때 배우들이 앵글 밖에서 옹기종기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문제를 풀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다소 미숙한 진행에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촬영에 임해준 <여신님이 보고 계셔> 배우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한다.
한 글자의 행복
11월호 표지 촬영은 서울을 벗어난 야외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차로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촬영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방목된 닭들이었다. 그렇게 크고 자유로운 닭은 처음 봤다. 그 닭들의 정체는 뭐였을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심상치 않은 광경을 뒤로하고 시작된 사진 촬영은 한나절 동안 이어졌다. 하루를 꽉 채운 일정에 지칠 법도 하건만 활기차게 영상 촬영을 진행하는 박강현 배우를 보고 역시 프로는 다르다고 느꼈다. 촬영 중간에 그가 록을 ‘눌’이라고 뒤집어 읽는 바람에 카메라 뒤에서 동료들과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가 잡히지 않아 밤늦게 귀가했음에도 그날은 ‘닭’과 ‘눌’이 떠오르는 즐거운 날로 남아 있다.
라이브의 묘미
생생한 공연 현장을 취재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나의 업무지만, 때로는 기사에 글로 다 담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다. 최근에 열린 <물랑루즈!> 기자 간담회에서 음악 슈퍼바이저 저스틴 르빈이 즉흥 연주를 펼쳤던 일이 그중 하나다. 기자 간담회의 사회자가 저스틴에게 행사장에 있는 피아노로 연주를 해줄 수 있냐고 요청하자, 그는 흔쾌히 “물론!”이라고 답했다. 음악감독이 직접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작업 방식을 설명해 주다니! 낯설지만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간담회가 열린 곳은 재즈 바처럼 꾸며진 공간이었는데, 행사를 마치고 나올 땐 마치 극장에서 한 편의 공연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정은
최고의 인터뷰
5월호 가정의 달 특집호에서 뮤지컬배우 다섯 가족을 만났다. 그중 반려견 가족이었던 조형균 배우와의 영상 인터뷰는 떠올릴 때마다 웃음이 난다. 사실은 조형균 배우와 밤라요가 함께하는 인터뷰를 기획하면서도 과연 생각대로 진행할 수 있을지, 밤라요가 인터뷰를 어떤 자세로 임해줄지 많이 걱정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할 만큼 밤라요는 적당히 얌전하며 적당히 활기찬, 그야말로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밤라요가 촬영장을 탈출하려 할 때마다 우리 팀의 반려견 전문가 이솔희 선배가 고구마로 시선을 끌어준 덕분에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영상 인터뷰가 끝난 후 얼굴에 생기가 사라진 채 주저앉았던 조형균 배우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최고의 V-log
김수하 배우의 호주 콘서트 일정을 브이로그로 담아보자는 기획으로 출장을 제안했으나 가뿐하게(?) 반려되고, 대신 김수하 배우가 셀프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 보내주기로 했다. 김수하 배우의 시선으로 바라본 호주의 풍경도, 쉽게 공개되지 않는 백스테이지 풍경도 기대됐다. 어떤 영상이 올까 궁금했는데, 전달받은 촬영본은 장장 4시간이 훌쩍 넘는 분량이었다! 아득한 영상 길이에 잠시 당황했지만, 정성스럽게 찍어준 영상들을 차근차근 보다 보니 랜선 호주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 재밌는 영상을 알차게 담아 와준 김수하 배우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내년에는 호주에 가서 ‘수하 로드’를 따라가 보겠다는 야심 찬 결심도 해본다.
최고의 프레스콜
‘정말 좋아하는 뮤지컬의 프레스콜에 가면 떨려서 제대로 촬영할 수 있을까?' 『더뮤지컬』의 팀원이 된 후 줄곧 이런 행복한 상상을 했다. 그리고 그 상상은 금세 현실이 되었다. 정말 좋아하는 뮤지컬 <마틸다>의 프레스콜 소식을 들은 날부터 시작된 설렘은 프레스콜 당일까지 이어졌다. 나는 최애 뮤지컬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번 시즌 배우들의 모습을 잘 담아서 역사에 길이 남을 자료를 만들겠다는 결의에 불탔고, 예습과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듭한 끝에 (스스로는) 제법 만족스러운 영상을 남기게 되었다. 'Revolting Children' 장면 시연 때는 차오르는 눈물에 흐려지는 시야를 이겨내며 촬영에 집중하려 애써야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9호 2022년 12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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