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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웨이스티드> 브론테가 사람들 - 한 예술가 집안의 빛과 그림자 [No.219]

글 |김주연(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 2022-12-05 720

<웨이스티드> 브론테가 사람들
한 예술가 집안의 빛과 그림자

 

브론테 자매로 불리며 영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한 샬럿과 에밀리, 앤. 그리고 한때 예술가를 꿈꾸었던 그들의 남자 형제 브랜웰. 이들의 예술적 재능은 타고난 것이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함께 키워나간 것이기도 했다.

 

△브랜웰이 그린 브론테 자매 초상화

 

하워스의 아이들 


목사 패트릭 브론테에게는 다섯 딸과 한 명의 아들이 있었다. 이 중 첫째 딸과 둘째 딸은 어릴 적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남은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하워스란 곳의 목사관에서 짧은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다. 요크셔 북서부 고지대의 황야에 위치한 하워스는 황량한 곳이었다. 가파른 언덕에는 울퉁불퉁한 바위들 사이로 히스가 빽빽하게 자라났고, 주위로는 온통 황야가 펼쳐져 있었다. 이처럼 고립된 곳에 동떨어져 있는 목사관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브론테가의 아이들은 밖에 나가 뛰어놀기보다는 집안에서 자기들끼리 인형 놀이, 연극 놀이를 이어갔고, 그 속에서 남다른 상상력을 꽃피우고 풍부한 이야기꾼의 재능을 길러갔다. 때로 아이들은 바깥으로 산책을 나갔다. 거센 바람이 부는 언덕과 거친 땅. 남매 중에서도 에밀리는 유독 이 황야를 사랑했고 이러한 그의 애정은 『폭풍의 언덕』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워스의 자연환경은 아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하기에는 좋은 조건이었으나, 거센 바람과 차가운 습기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브론테가 사람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이곳에서 어머니인 브론테 부인이 세상을 떠났고, 결핵성 체질을 물려받은 자녀들 역시 병마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브론테 목사만을 남겨둔 채, 브론테가 남매는 꽃다운 나이에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생활고와 재능 사이  


어릴 적부터 글을 짓고 연극을 만들고 함께 성장해 간 브론테가 자녀들은 자신들의 지성과 교양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학교를 설립하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의 수입만으로는 생활을 이어가기도 빠듯한 상황이었다. 샬럿과 앤은 가정 교사로 취직해 살림에 힘을 보탰고, 에밀리는 집안일과 바느질 등을 맡아 생계를 이어나갔다.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상주 가정 교사는 그리 우아한 직업이 아니었다. 교육받은 중산 계급 여성이 품위를 지키면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라 늘 공급 과잉 상태였고, 그로 인해 월급은 낮고 대우는 점점 나빠졌다. 가정 교사는 아이들의 교육뿐 아니라 일상 예절과 생활 전반을 지도해야 했고, 때로는 바느질 같은 가사 노동도 했다. 당시 가정 교사로서 그들이 겪은 어려움은 앤의 소설 『아그네스 그레이』에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맏딸 샬럿은 집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정 교사로 여러 집을 전전해야 했다. 누구보다 예민하고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가난으로 인한 생활고와 밥벌이의 고충을 겪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더욱 넓힐 수 있었다. 세 자매는 고된 일상을 잊기 위해서라도 더욱 글쓰기에 매달렸고, 동생들의 시를 보고 감명받은 샬럿의 제안으로 그동안 세 자매가 쓴 시를 모아 첫 시집을 발간했다. 필명으로 발간한 첫 시집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고, 세 자매는 다시 자신들의 소설을 모아 출판사에 보냈다. 이즈음 아버지 브론테 목사의 눈병이 심해지면서 샬럿은 아버지의 병 수발을 도맡게 되는데, 이때 쓴 소설이 『제인 에어』였다. 원고를 보내자마자 단번에 출판된 『제인 에어』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덩달아서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도 함께 출판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생기듯 그토록 원하던 문학적 명성을 얻은 이들에게는 행운과 불운이 함께 따라왔다.  

 

네 남매라는 축복이자 저주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네 남매는 혼자서는 어려웠을 상상의 놀이를 함께하면서 서로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었고, 서로의 재능에 자극받아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토록 재능과 우애가 넘치는 남매였기에 따라오는 불행도 피할 수 없었다. 서로 깊게 연결되어 있다 보니 하나가 죽으면 그 영향을 받아 또 다른 형제가 죽는 비극이 이어졌다. 가장 먼저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것은 브랜웰이었다. 외아들로서 온 가족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고, 성숙한 여자 형제들 사이에서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유년기를 보냈던 그는 글과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기대를 많이 받은 탓인지, 남다른 재능의 누나와 여동생 사이에서 갈 길을 잃은 것인지, 브랜웰의 행보는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학업도 실패하고, 역장으로 취직한 뒤에도 술과 직무 태만으로 면직당했으며, 어렵게 따낸 가정 교사 자리는 여주인과의 불륜으로 해고되고 말았다. 다른 자매들은 누리지 못한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만큼 탁월한 예술적 결과를 내지 못한 브랜웰은 거듭된 실패와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절망에 빠졌고, 결국 술과 마약으로 황폐한 삶을 전전하다 젊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비극은 계속되었다. 오빠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극도로 몸이 약해진 에밀리가 그해 겨울에 눈을 감았고, 막냇동생 앤 또한 폐결핵으로 이듬해 2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불과 8개월 만에 세 명의 동생을 차례로 떠나보낸 샬럿의 슬픔과 외로움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간신히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샬럿은 이후로도 작품을 몇 편 쓰고 늦은 나이에 결혼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할 듯 보였으나, 감기로 시작된 합병증으로 인해 서른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듯이, 브론테가 네 남매의 재능과 질병, 꿈과 절망, 우애와 고독은 네 사람 모두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강렬한 삶의 아이러니를 만들어냈다. 한 가문에서 무려 세 명의 위대한 작가가 배출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타고난 재능을 펴보지도 못한 채 사라진 무명의 형제가 있었고, 당대의 사회상과 여성의 초상을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 뒤에는 생활고로 끊임없이 노동해야 했던 세 자매의 애환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림자가 짙다고 해서 빛을 탓할 수는 없다. 브론테가의 비운은 한편으론 그들의 비범한 재능을 더욱 환하게 비춰주는 그림자였고, 그들 모두는 각자의 그림자 속에 살았기에 더 눈부신 예술을 꿈꾸며 이룰 수 있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9호 2022년 12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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