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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내 인생의 한 단락, <여신님이 보고 계셔> 박정원 [No.218]

글 |최영현 사진 |표기식 2022-11-23 2,217

내 인생의 한 단락 
<여신님이 보고 계셔> 박정원

 

배우 박정원은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각별한’ 작품으로 꼽는다. 이 작품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배웠고,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통해 10년이라는 배우 인생의 한 단락을 완성했다.  

 


특별한 인연 

 

2013년에 초연한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올해 10주년을 맞았어요. 10주년 기념 공연에 참여하게 된 소감이 궁금해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배우 박정원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리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에요. 제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의 10주년 기념 공연에 함께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쁘죠. 하지만 처음에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출연하겠다는 말이 쉽게 안 나왔어요. 예전보다 순호를 더 잘 연기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한참 고민했는데 마음 가는 대로 하자는 결론에 도달했죠. 지금이 아니면 순호를 다시 못 할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10주년 기념 공연이잖아요. 특별한 무대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영광이다 싶어서 참여를 결심했어요.  

 

한 작품이 10년 동안 사랑받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작품에 참여한 배우로서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첫 번째 비결은 작품성에 있고, 두 번째 비결은 ‘팀워크’예요. 어떤 작품이든 함께 공연하면 팀워크가 생기기 마련이지만,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팀워크는 좀 남다른 데가 있어요. 창작진부터 스태프, 배우 간의 인간적인 유대감이 단단하죠. 극 중에서도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남한군과 북한군이 특별한 유대감을 쌓아가잖아요. 실제로도 그래요. 중요한 건 팀워크가 친목에 그치지 않고 작품의 주제와 일맥상통하면서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거예요. 탄탄한 팀워크 덕분에 작품의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하게 되고, 그걸 관객 여러분이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요.  

 

앞서 순호 역할을 더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고 했는데 연습해 보니 어때요? 여전히 걱정되나요? 
조금요. 제가 처음 순호를 연기한 건 2013년 <여신님이 보고 계셔> 재연 때예요. 뮤지컬에서 이름 있는 역할을 맡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경험이 거의 없는 신인이라 본능적으로 연기를 했죠. 그 후로 10년 동안 배우로서 경험과 경력이 쌓이니까 연기할 때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예를 들어 대본에 ‘웃는다’라는 지문이 있으면 예전에는 바로 ‘하하’ 웃었는데, 지금은 웃음의 맥락과 상대와의 호흡을 고려하게 되는 거예요. 배우로서 테크닉이 늘어난 만큼 날것의 매력은 잃어버린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처음 순호를 맡았을 때로 돌아가서 신인의 자세로 연기해 보려고요. 지금의 저에겐 새롭게 성장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배우 박정원의 시작점과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맞아요. 2006년에 <화성에서 꿈꾸다> 앙상블로 데뷔했지만, 졸업 전까지는 줄곧 학교 공연만 했어요. 그러다 2013년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배우 활동을 시작했죠. 사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초연 때, 학교 선배인 박소영 연출님이 오디션을 보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근데 그때 저는 연극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거든요. 언젠가 실험극 극단을 만들어서 연극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귀여운 발상인데, 그 당시에는 꽤 진지했어요. 그래서 연출님께 “저는 연극으로 세상을 바꾸겠습니다!” 하고 오디션 제의를 거절했죠. (웃음)  

 

그러다 뮤지컬배우로 방향을 바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연극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던 것뿐이지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늘 갖고 있었어요. 대학교 1, 2학년 때는 노래 부르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군대에서 성대가 많이 상하면서 노래에 흥미를 잃었어요. 그 대신 연기에 재미를 붙이면서 연극에 관심이 커졌던 거예요. 그러다 졸업을 앞두고 뮤지컬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여신님이 보고 계셔> 재연 오디션을 보게 됐고요. 지금까지는 뮤지컬과 인연이 더 많았지만, 연극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도 늘 있어요.  

 


10년의 시작과 끝 

 

<여신님이 보고 계셔> 오디션에 합격한 기분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내가 합격했다고? 왜?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웃음) 그러다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죠.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초연부터 호평과 함께 굉장히 주목받은 작품이잖아요. 초연을 마치고 두 달 후에 재연을 올렸으니까 사람들의 관심이 작품에 쏠려 있을 때 출연하게 된 거예요. 신인 배우로서 그렇게 주목받는 작품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부담과 압박을 느꼈죠. 잘 해낼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순호라는 역할 자체에 대한 부담도 있었죠? 과거 인터뷰를 찾아보니 순호를 처음 맡았을 때 너무 힘들었다고 몇 차례나 언급했더라고요.  
우선 순호는 저랑 성격이 정말 달라요. 게다가 당시에 저는 좀 염세적인 편이었어요. 모든 일에 비판적이기도 했고. 그래서 연극으로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웃음) 그런 사람이 순수한 순호를 연기해야 하니 너무 어려웠죠. 연습에 매진하면서 제 모습은 덜어내고, 빈자리에 순호를 조금씩 채워 넣었어요. 그 과정을 거치고 나니까 나중에는 성격도 순호에 가깝게 바뀌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연습만이 답이라는 걸 몸소 깨달았어요. 지금은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땐 정말 말도 못 할 정도로 힘들었죠.  

 

연습만으로는 부담을 떨쳐내기 어려웠을 텐데요.  
연습 중에 연출님이 저를 조용히 부르신 적이 있어요. “정원아, 왜 그래? 말해봐” 그러시는데, 그 순간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줄 때가 있잖아요. 연출님의 말이 저에겐 “정원아, 많이 힘들지?”처럼 들렸어요. 고마움에 눈물이 마구 나더라고요. 사실 모두가 저를 말없이 챙겨주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어요. 제가 힘들어한다는 걸 아는 체하면 더 부담스러워할까 봐 다들 티 내지 않으면서 배려하고 도와준 거죠. 타인의 어려움을 마음에 담아두고 자기 일처럼 신경 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 따뜻한 마음들이 큰 힘이 됐어요. 그때부터는 어려운 게 있어도 형, 누나들을 믿고 똥강아지처럼 연습실을 뛰어다녔죠. (웃음) 

 

힘들게 준비한 만큼 결과가 좋았어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 순호로 관계자와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으니까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2013년에 마지막 공연을 마친 후에 한정석 작가님이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순호가 순하지만 호랑이 같은 면이 있었으면 하고 지은 이름인데, 제가 그걸 잘 표현해 줘서 고맙다고요. 정말 감동이었어요.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노력한 보람이 있었죠.  

 

최고의 칭찬 아닌가요? 굉장히 뿌듯했겠어요.
그때는 정말 뿌듯했죠. 그런데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고 보니 그 칭찬이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연기하는 인물을 완성해 주는 건 함께 무대에 서는 배우들이거든요. 어떤 배우도 자신이 맡은 역할을 100 퍼센트 혼자 표현할 수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순호라는 인물을 만들어놓으면,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영범이나 창섭이 채워주는 거예요. 그러면 순호가 완성되는 거죠.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진정한 의미의 협업이 무엇인지 이제야 깨달아가는 것 같아요. 돌이켜 보면 작가님이 저의 순호를 칭찬하신 건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때 함께했던 배우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10주년 기념 공연에서는 배우들끼리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무척 기대돼요. 

 

2013년, 2015년 공연에 이어 오랜만에 순호를 연기하는데 이번 공연에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기본적인 인물 해석은 달라진 게 없어요. 워낙 탄탄한 대본이라 대본에 쓰인 대로 충실히 연기하면 돼요. 다만 이번 시즌에는 순호의 양면적인 모습을 잘 표현하려 해요. 조금 더 깊이 있게 인물을 이해하고 연기하고 싶기도 하고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함께하는 배우들과 함께 후회 없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마지막이라뇨. 15주년, 20주년 기념 공연을 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순호는 확실히 다시 못 할 것 같고. (웃음) 나중에 다른 역할로 출연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제가 참여하지 못한대도 괜찮아요. 예전에는 제가 아끼는 작품에 다시 참여하지 못하면 속상했어요. 괜히 그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한테 질투도 났고요. 그런데 저랑 친한 (김)국희 누나가 그러는 거예요. “정원아, 그렇게 좋은 작품에 다른 배우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니? 너는 한 번 해봤으니까 다른 배우도 경험하면 좋잖아.”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어요. 이제는 제가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공연이 다시 올라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요. 많은 배우가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 참여해서 저처럼 많은 걸 느끼고, 배우면 좋겠어요. 그만큼 이 작품이 오래 공연되길 바라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배우 박정원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요? 
이 작품을 통해 배운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지만, 딱 하나면 꼽자면 ‘사람’이에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통해 소중한 사람을 얻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많이 배웠죠. 이번에 연습하면서 <여신님이 보고 계셔> 팀이 얼마나 특별한지 새삼 깨달았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진짜 친한 친구는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사이처럼 느껴지는 거. <여신님이 보고 계셔> 팀이 그래요.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익숙하고, 편안한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이 들더라고요. 오랫동안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에요. 그리고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10년 배우 인생’이라는 제 인생의 한 단락을 완성해 줬어요. 글을 쓸 때 단락 첫머리는 한 칸 들여쓰기 하잖아요. 2013년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바로 그 들여쓰기였다면, 이번 10주년 기념 공연은 그 단락의 마침표 같아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로 시작을 잘했으니, 마무리도 잘하고 싶어요. 그리고 또 새로운 단락을 시작해야겠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8호 2022년 11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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