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소녀들
<마틸다> 임하윤·진연우·최은영·하신비
불공평하고 또 부당할 때 꾹꾹 참는 대신 맞서 싸우기를 선택한 똑똑한 소녀 마틸다. 이 비범한 소녀를 찾기 위한 여정은 2021년 9월부터 시작되었다. 약 900명의 지원자 가운데 3차 오디션을 통과한 임하윤(9세), 진연우(11세), 최은영(10세), 하신비(9세). 키 130㎝, 나이 10살 내외의 이 작은 소녀들은 무대 위에서 커다란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주에 모두 첫 공연을 마쳤는데, 관객들 앞에서 마틸다를 연기한 소감이 어땠어요?
진연우 한 장면을 마칠 때마다 관객분들이 박수를 엄청 쳐주셔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2막에서 웜우드 씨가 책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손 들어보라고 하잖아요. 손 든 사람 중 한 명을 골라 이름을 물어보는데, 첫 공연 날 그 장면에서 저희 아빠가 걸렸어요. 나중에 웜우드 씨 역의 서만석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깜짝 놀라셨어요!
하신비 처음에 무대에 올라갈 때는 떨렸는데 계속 박수를 받으니까 점점 자신감이 생겨서 중간부터 하나도 안 떨렸어요.
임하윤 커튼콜 때 관객분들이 다 같이 일어나서 박수를 쳐주셔서 기분이 좋고 힘이 났어요.
최은영 선생님들이 공연 때 이런 부분을 신경 써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 걸 잘 지켜서 뿌듯했어요. 우리 모두한테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어요.
혹시라도 무대에서 실수할까 봐 조마조마했던 장면이 있어요?
진연우 마틸다가 도서관 사서인 펠프스 선생님 앞에서 탈출마술사와 공중곡예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Library 2’ 장면이요. 등 뒤에 있는 영상에 맞춰 “1초, 2초…” 하고 대사를 쳐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칠까 봐 아찔했어요.
임하윤 저는 실수할까 봐 아찔했던 적은 없지만 첫 번째 공연보다 두 번째 공연이 더 떨렸어요. 첫 공연보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거든요.
최은영 드레스 리허설 때 제가 왼손을 들어야 하는 장면에서 오른손을 드는 바람에 상대 배우가 당황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공연 때는 손을 바꿔 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하신비 연출가인 닉 선생님이 저희에게 항상 하신 말씀이 있어요. “만약 실수를 해도 그냥 잊어버리고 다음 할 일에 집중해라. 실수한 건 다음 공연 때 더 잘하면 된다.” 그 말씀을 잊지 않으려고요.
<마틸다> 오디션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뭐예요?
진연우 저는 원래 영화 <마틸다>를 좋아했어요. 어린 아이가 초능력으로 나쁜 어른을 혼내 준다는 내용이 재미있었거든요. 그러다가 <마틸다>가 뮤지컬로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디션을 보기로 마음먹었어요. 어린이가 주인공을 맡을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잖아요.
최은영 초연 공연 영상을 보고 ‘나도 마틸다가 되어 저 무대에 서고 싶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마틸다> 오디션에 도전하면 경험이 부족해서 떨어질 확률이 높잖아요. 그래서 먼저 오디션 경험을 쌓으려고 <빌리 엘리어트> 오디션에 지원했는데 덜컥 붙은 거예요. <빌리 엘리어트>를 공연하는 동시에 <마틸다> 오디션을 봐야 했지만 열심히 한 만큼 보람이 있어서 힘들지 않았어요.
하신비 저희 언니가 <빌리 엘리어트>에 출연해서 공연을 보러 갔는데, 관객들이 노래가 끝날 때마다 큰 박수를 쳐주시더라고요. 저도 무대에서 박수를 받아보고 싶어서 <마틸다> 오디션에 지원했어요. 첫 공연 때 진짜로 큰 박수를 받아서 뿌듯해요. 언니도 저한테 잘한다고 해줬어요.
임하윤 동요 선생님이 <마틸다> 오디션에 지원해 보라고 추천해 주셨어요. 경험을 쌓는다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1차에 붙어서 “엥?” 했고, 2차에 붙어서 또 “엥?” 했어요. 최종 오디션에 붙었을 땐 정말 기뻤어요. 이렇게 멋진 뮤지컬에 주인공으로 합류할 수 있어서 영광스러워요!
얼마 전에 외국인 연출가, 안무가 선생님과 작별 인사를 했잖아요. 오랫동안 선생님들과 함께 연습했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예요?
임하윤 첫 만남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선생님들이 저희를 반갑게 맞아주시고, 모르는 것도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거든요. 그때 저희가 어린 씨앗이었다면 선생님들이 물을 주신 덕분에 이렇게 잘 성장할 수 있었어요.
하신비 연기 수업 때 말고 쉬는 시간에 닉 선생님이 마틸다가 어떤 캐릭터인지 친절하게 알려주셨는데 그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진연우 저는 닉 선생님 생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를 준비했거든요. 저희 넷이 케이크를 들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면서 깜짝 등장했는데, 그때 닉 선생님 표정이 진짜 행복해 보였어요. 그런데… 사실은 저희가 더 재미있었어요!
최은영 저는 아직도 선생님들이 떠나던 날이 잊히지 않아요. 아기 새가 자라면 엄마 새가 “이제부터 너 혼자 힘으로 살아라” 하고 떠나잖아요. 제가 꼭 둥지에 남겨진 아기 새가 된 기분이었어요. 선생님들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이제부터 마틸다로서 공연을 이끌어가야 하니까 마음을 굳게 먹었어요.
연습 과정에서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상했던 적 있어요?
최은영 저는 표정 짓는 게 어려웠어요. 특히 ‘Naughty’를 부를 때는 엉뚱한 표정, 한심해하는 표정, 무서운 표정, 자랑스러운 표정을 다 지어야 해서 진짜 힘들었어요. 연습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계속 연구했어요.
진연우 마틸다는 슬프거나 기쁜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아이가 아니에요. 그래서 조금만 슬프게 연기해도 “너무 슬퍼!”라는 지적을 받고, 조금만 밝게 연기해도 “너무 밝아!”라는 지적을 받았어요. 딱 그 중간을 연기하는 게 어려웠어요. 발음을 고치는 것도 힘들었어요. 개막이 며칠밖에 안 남았을 때 자꾸 혀가 꼬여서 속상했는데, 그때 선생님들이 저를 안아주면서 말씀하셨어요. 오디션 때 제 반짝반짝한 눈빛에서 선생님들이 찾고 있던 마틸다를 발견했다고요. 그러니까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지 말라고 위로해 주셔서 이겨낼 수 있었어요.
임하윤 저도 발음이 어려웠어요. 예를 들어 ‘펠프스 선생님’ 같은 단어들이요. 그런데 계속 연습하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 보니까 방법을 찾게 되더라고요.
하신비 저는 도서관에서 마틸다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에서 발음이 잘 안 돼서 속상했어요. 하지만 대본을 천천히 읽고 또 읽다 보니까 점점 발음을 잘하게 됐어요.
<마틸다>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뭐예요?
진연우 마틸다가 부르는 노래 중에서는 ‘Naughty’가 가장 좋아요. 부당한 상황에 놓인 마틸다가 “옳지 않아”, “때론 너무 필요해, 약간의 똘끼”라는 가사로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곡이라서요. 허니 선생님이 작은 오두막에서 부르는 ‘My House’라는 노래도 좋아해요. 마틸다는 허니 선생님이 노래하는 모습을 앉아서 지켜보는데, 관객처럼 노래에 빠져들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돼요.
최은영 저도 ‘My House’를 좋아해서 혼자서 제 방에 있는 가구를 둘러보며 불러 봤어요. 근데 저는 방진의, 박혜미 선생님 같은 ‘아우라’가 안 나오더라고요. 그냥 애 같았어요, 휴! 웜우드 부인이 부르는 ‘Loud’도 좋아해요. 사실 ‘Loud’가 나올 때쯤이면 조금 힘이 빠지는데, 댄서분들이 춤추기 시작하면 갑자기 막 힘이 솟아서 저도 백스테이지에서 춤을 춰요.
임하윤 저는 ‘Naughty’, ‘My House’, ‘Loud’ 다 좋아해요. ‘Naughty’는 마틸다가 어떤 아이인지 알려주는 노래라서 좋고, ‘My House’는 슬프지만 멜로디가 고와서 좋고, ‘Loud’는 신나서 좋아요!
하신비 트런치불이 체력 단련 시간에 아이들을 괴롭히면서 ‘뺑뺑이’ 노래(원제 ‘The Smell of Rebellion’)를 부르잖아요. 제가 그걸 따라 한 적이 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선생님들도 재미있었는지 저한테 한 번 더 해보라고 하셨어요. 흐흐.
실제로는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에요? 마틸다랑 닮은 점이 있어요?
다 같이 흠흠. (헛기침)
최은영 솔직하게 대답해. 이건 우리 양심이 걸린 문제야.
하신비 저는 학교에서 조용한 편이에요.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시끄럽게 떠들 때도 저는 혼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놀아요. (그럼 학교에서 장난친 적 없어요?) 학교에서는 그런 적 없는데, 집이나 대기실에서는 쪼끔….
임하윤 저는 신비랑 성격이 완전히 반대예요. 쉬는 시간이 되면 무조건 자리에서 일어나서 친구들이랑 놀아요. 심한 장난을 친 적도 있어요. 근데 무슨 장난인지는 말해줄 수 없어요!
최은영 저는… 마틸다처럼 똑똑하진 않아요. (일동 웃음) 그래도 저희 반에서 MC를 맡고 있어요. 게임이나 발표 같은 걸 할 때 MC 맡을 사람을 뽑았는데 제가 10표 정도를 얻어서 MC가 됐어요. MC를 볼 때는 한 번씩 선생님 같은 말투를 써줘야 해요. “오늘 전시회를 보고 느낀 점에 대해 얘기해 볼 사람?” 이렇게요. 그럼 신기하게도 친구들이 잘 따라 주더라고요.
진연우 저는 마틸다와 달리 수학을 좋아하지 않아요. 절대! 네버! 그냥 음악, 미술, 체육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에요. 그런데 <마틸다> 덕분에 갑자기 인기가 많아졌어요. 다들 유튜브에 올라온 제 공연 영상을 봤나 봐요. 어떤 애는 영상에 댓글도 남겼어요. ‘저 얘랑 같은 반인데 사인받을 거예요’라고. 그리고 다음날 진짜로 한 남자애가 찾아와서 사인해 달라고 했어요.
결말에서 마틸다와 허니 선생님은 한 가족이 되잖아요. 성격도 다르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하신비 마틸다랑 허니 선생님은 좋아하는 게 똑같잖아요. 책! 그래서 마틸다는 도서관에서 허니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분이 내 구원자가 되어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진연우 두 사람 사이에는 책을 좋아한다는 것 말고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에게 구박을 받았다는 거요.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최은영 제 생각엔 허니 선생님도 마틸다처럼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인 것 같아요. 또 자기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서 마틸다와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임하윤 마음이 약했던 허니 선생님은 마틸다를 만나 트런치불과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얻어요. 어른들에게 무시당하던 마틸다는 허니 선생님을 만나 처음으로 사랑과 존중을 받고요.
뮤지컬에 나오는 대사처럼, 둘은 서로를 찾아낸 거예요!
마틸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하는 걸 좋아하잖아요. 마틸다와 허니 선생님이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해 본 적 있어요?
임하윤 나중에는 트런치불이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 것 같아요. 마틸다와 허니 선생님은 착하니까 트런치불을 용서하고 셋이 화목하게 살았을 거예요.
진연우 제 생각에 트런치불은 경찰에게 잡혀서 감옥에 갈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홀쭉해진 모습으로 감옥에서 나오는 거죠! 허니 선생님은 아빠가 물려준 집을 되찾았으니까 그전까지 살던 작고 허름한 오두막은 도서관으로 바꿀 것 같아요. 마틸다와 허니 선생님은 그 작은 도서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거예요.
하신비 트런치불이 교장일 때는 학교 생활이 힘들었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허니 선생님이 교장이 된 다음에는 학교가 더 밝고 재미있어질 것 같아요.
최은영 운동장에 꽃이 활짝 피고 귀여운 동물들이 뛰어다니는 풍경을 상상해 봤어요. 이건 순전히 제 상상인데, 학교 안에 머리를 땋아주는 기계도 있을 것 같아요. 아만다의 삐삐 머리를 포함해 원하는 머리 모양은 무엇이든 만들어주는 기계요! 모두가 다니고 싶어 하는 꿈의 학교가 되는 거죠. 그리고 허니 선생님에게는 편지 한 통이 도착해요. 탈출마술사와 공중곡예사가 죽기 전에 남긴 편지요. 거기에는 두 사람이 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적혀 있을 거예요.
진연우 이렇게? 사랑하는 우리 딸, 내가 죽으면 비밀번호 1234를 누르고 서랍을 열어보렴. 그 안에 초콜릿이 있을 거야. 너 다 먹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8호 2022년 11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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