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연결되는 마음
< KPOP > 극작가 제이슨 김
컬럼비아대에서 극작을 공부하고 드라마 <걸스> <그레이스포인트>의 대본을 쓴 제이슨 김. 뉴욕대에서 뮤지컬 작곡을 공부하고 <넥스트 투 노멀>의 작곡가 톰 킷의 조수로 활동한 작사·작곡가 헬렌 박. 두 창작자의 공통점은 바로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낯선 세계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한 이들은 K팝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미국 시장에서 K팝을 소재로 한 공연을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이슨 김 저는 어린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어요. 그때는 아이폰, 유튜브, 틱톡 같은 게 없을 때라 카세트테이프와 CD로 한국 가수의 음악을 들었죠. K팝은 저를 고향과 연결해 주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을 주었어요. 그래서 저는 언제나 음악이 사람들에게 정서적·정신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탐구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어요.
헬렌 박 2014년 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미국에서 K팝은 이국적이고 특이한 장르로 여겨졌어요. 대부분의 미국인이 K팝이라고 하면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떠올렸죠. 제가 한국에서 자라면서 접한 가요, 특히 여러 춤과 음악이 기발하게 어우러진 중독성 강한 장르인 아이돌 K팝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아는 K팝을 미국 관객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은 관객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K팝 아이돌의 트레이닝 과정을 지켜보는 형식으로 진행됐다고 들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제이슨 김 작품을 쓰기 위해 기획사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대해 조사했지만, 단순히 현실을 묘사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거나 K팝 산업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치는 게 목적은 아니었어요. K팝이라는 소재를 통해 더 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죠. 고향과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통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지 이야기하고자 했어요.
음악을 만들면서 K팝의 장르적 특색을 살리기 위해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헬렌 박 K팝의 특징은 한 곡 안에 여러 비트와 그루브가 어우러져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하나의 장르에 집중하는 대신 여러 장르의 음악을 활용했어요. 예를 들어 하우스(House)로 시작한 곡이 댄스 브레이크에서는 덥스텝(Dubstep)으로 바뀐다든가, 트랩(Trap)에서 하우스로 넘어갔다가 마칭 밴드(Marching band) 드럼 비트로 마무리되는 식으로요. 전체적으로 제가 프로듀싱한 전자 음악이 주를 이루고, 여기에 피아노, 키보드, 드럼으로 이루어진 라이브 밴드의 연주가 어우러져요. 전자 음악이라도 선율과 화음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자라면서 즐겨 들은 1990~2000년대 한국 가요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전통적인 뮤지컬 넘버와 K팝의 특성이 달라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나요?
헬렌 박 전통적인 뮤지컬 넘버는 가사를 통해 많은 양의 정보를 전달하고, 캐릭터의 감정 변화를 쉽게 보여줄 수 있게끔 구조화되어 있어요. 하지만 K팝은 퍼포먼스 위주로 음악적 구조가 짜여 있고, 곡 전체가 특정한 감정을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죠. 그래서 저는 가사로 감정을 표현하고, 연출가, 디자이너와 협업해 캐릭터의 감정적 여정을 펼쳐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어요.
아직 작품을 접하지 못한 한국 관객을 위해 의 대표곡을 하나 꼽아주신다면요?
헬렌 박 ‘This is My Korea(우리 이야기)’라는 오프닝 넘버를 대표곡으로 꼽고 싶네요. 13명의 아시아인 배우들이 멋진 안무와 함께 당차게 저희 쇼를 소개하는 노래거든요. K팝과 브로드웨이식 뮤지컬 음악을 잘 융합해서 만든 곡이라고 자부해요.
공연이 초연한 2017년과 달리 현재는 BTS, 블랙핑크 등 K팝 가수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브로드웨이 공연을 준비하며 변화된 사회 분위기가 작품에 반영됐을까요?
제이슨 김 2017년 초연 당시에는 관객에게 K팝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지금은 K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니 관객들에게 이 장르의 정당성을 설득할 필요가 없어졌죠. 그래서 더 깊고 대담하게 주제에 접근할 수 있었어요. 작가로서 이건 대단히 자유로워지는 경험이에요.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토니 모리슨은 종종 자신의 인종을 대변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저는 그에게서 예술가는 열등감을 가지고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얻었어요. 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면서 우리 모두는 자유롭고 당당한 태도로 아시아인을 대변하려고 노력했어요.
작품 속에서 아시아인을 향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꼬집기도 했는데, 미국에서 창작자로 활동하면서 겪은 고충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헬렌 박 브로드웨이에는 여성 작곡가가 굉장히 드물어요. 더군다나 유색 인종 여성 작곡가는 브로드웨이 역사상 그 존재를 찾아보기 힘들죠. 저는 또래 백인 남자들 사이에서 작곡가로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어요. 그 과정에서 여성과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성과를 얻으려면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죠. 그러한 편견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지만, 다음 세대에는 더 많은 여성, 동양인, 한국인 작곡가가 활약하길 바라요.
제이슨 김 미국 매체를 통틀어 활발히 활동하는 아시아계 배우와 창작자는 극히 드물어요. 제가 지금까지 작업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저는 그 팀에 존재하는 유일한 아시아인이었어요. 그래서 다음 세대의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를 위해서라도 제가 기회의 문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마지막 날 찾아온 한국인 소녀가 떠오르네요. 그 소녀는 아버지 어깨에 올라탄 채로 공연을 보면서 활짝 웃고 있었어요. 모든 창작진이 그 소녀를 기쁜 마음으로 바라봤죠. 우리 모두 울면서요.
이 한국에서 공연된다면 어떨지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한국 관객들에게 이 작품이 어떻게 다가가기를 바라나요?
헬렌 박 한국에서 저희 작품이 공연된다면 정말 꿈만 같을 거예요. 한국인이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기 때문에, 한국에서 공연을 올린다면 작품을 완성한 것에 큰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
제이슨 김 이 작품을 쓸 때 제가 의도한 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고전 뮤지컬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영향력 있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이요. 국적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이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8호 2022년 11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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