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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퍼니 걸> 스타의 삶과 사랑 [No.217]

글 |여태은(뉴욕통신원) 사진 | 2022-10-18 821

<퍼니 걸>
스타의 삶과 사랑

 

196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퍼니 걸>이 무려 60여 년 만에 첫 리바이벌 무대로 브로드웨이에 돌아왔다. <퍼니 걸>은 1920년대 보드빌 코미디언으로 활동했던 실존 인물 패니 브라이스의 삶과 그의 두 번째 남편이었던 도박사 닉 언스틴과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번 리바이벌 공연은 <킹키부츠>의 작가 하비 피어스타인이 각색을 맡았으며, 지난 4월 어거스트 윌슨 시어터에서 개막했다. 

 

©Matthew Murphy

 

코러스 걸의 성공과 좌절


<퍼니 걸>은 화려한 모피 코트를 걸친 주인공 패니 브라이스가 분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Hello, Gorgeous”라는 말을 건네며 시작한다. <퍼니 걸>이라는 유쾌한 제목과 달리 슬픈 얼굴로 거울 속 자신을 다독이는 패니의 모습은 이 작품이 단순한 쇼 뮤지컬이 아님을 암시한다. 패니는 거울 앞에 앉아 ‘Who Are You Now(지금 넌 어떤 사람이니)’를 부르며 성공한 스타가 되기까지 걸어온 길을 회상한다. 

 

작은 벌레스크 극장에 코러스 걸로 취직한 패니는 뛰어난 유머 감각과 노래 실력을 갖췄지만, 촌스러운 외모 때문에 무대에 서보지 못하고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그녀의 재능을 눈여겨본 극장 안무 감독 에디의 도움으로 무대에 오른 패니는 특유의 자신감으로 무대를 압도한다. 패니의 공연을 인상적으로 본 도박사 닉 언스틴은 극장주에게 패니를 스카우트하러 왔다고 거짓말한다. 덕분에 패니는 잘리기는커녕 거액의 개런티를 약속받고 계속 무대에 설 수 있게 된다. 패니는 자신을 도와준 닉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전 세계를 떠돌며 생활하는 닉은 홀연히 떠난다. 시간이 흘러 패니는 당대 최고의 연출가 플로렌즈 지그펠드의 러브 콜을 받아 인기 쇼 <지그펠드 폴리스>에 출연하게 된다.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마친 패니 앞에 닉이 나타나고,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확인한다. 이후 패니는 <지그펠드 폴리스>의 간판스타로 투어 공연을 떠나는데, 닉이 그녀를 다시 찾아온다. 또다시 닉을 떠나보낼 수 없던 패니는 투어 공연을 포기하고 닉을 따라나선다.

 

패니와 닉은 결혼 후 롱아일랜드에 정착한다. 닉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패니와 달리, 도박사로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던 닉은 자신만 바라보는 패니가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게다가 패니는 결혼 후에도 배우로 승승장구하지만, 닉의 도박 운은 점점 바닥을 친다. 패니는 어떻게든 닉을 도우려 하는데, 닉은 패니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급기야 횡령죄로 감옥에 가게 된 닉은 패니의 도움 대신 감옥살이를 택한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더 이상의 결혼 생활은 상처가 될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별을 고한다. <퍼니 걸>은 패니와 닉의 만남, 연애, 결혼, 그리고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펼쳐보이며, 오프닝 장면처럼 패니가 분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마주 보는 것으로 끝난다.

 

오리지널과 리바이벌 프로덕션


<퍼니 걸>의 음악은 <집시>의 작곡가·작사가 콤비 줄 스타인과 밥 머릴이 맡았고, 대본은 이자벨 레너트가 썼다. 이자벨 레너트는 <퍼니 걸>에서 재능 있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 주인공 패니 화이트를 탄생시키며, 뮤지컬 속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패니 브라이스는 <퍼니 걸>에서 그려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능 있고 개성 넘치는 배우였다. 그는 1920~1930년대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플로렌즈 지그펠드의 <지그펠드 폴리스>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지그펠드 폴리스>는 화려한 무대와 의상, 늘씬한 몸매의 쇼걸이 수십 명씩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패니 브라이스는 남다른 연기력과 노래 실력으로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초연 당시 큰 성공을 거둔 <퍼니 걸>은 1968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뮤지컬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영화에도 출연했고, 당대 인기 영화배우였던 오마 샤리프가 닉 언스틴 역에 캐스팅됐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뮤지컬과 영화 제작자가 다름 아닌 실제 패니 브라이스의 사위 레이 스타크였다는 것이다. 그는 패니 브라이스와 그의 세 번째 남편 빌리 로즈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퍼니 레이디>도 제작했다. <퍼니 레이디>의 주요 음악은 <카바레> <시카고> 등을 함께 쓴 작곡가 존 칸더와 작사가 프레드 앱 콤비가 맡았다.

 

이번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프로덕션에는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토니 어워즈 연출상을 받은 마이클 메이어가 참여했다. 무대 디자인은 <스폰지밥 스퀘어 팬츠>의 무대와 의상을 디자인한 데이비드 진, 의상 디자인은 <위키드>의 수잔 힐퍼티가 맡았다. 이 작품에는 <지그펠드 폴리스> 공연 장면을 비롯해 앙상블이 등장하는 장면이 많은데, 그때마다 수잔 힐퍼티가 디자인한 화려한 무대 의상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 의기투합했음에도, 올해 토니 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 한 개 부문밖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뛰어넘어


<퍼니 걸>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가수로 활동을 시작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1962년 <아이 캔 겟 잇 포 유 홀세일I Can Get It for You Wholesale>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당시 열아홉 살이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데뷔작으로 토니 어워즈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성공적인 뮤지컬 데뷔 이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선택한 두 번째 뮤지컬이 <퍼니 걸>이었다. 그는 탁월한 연기와 노래로 패니 브라이스를 더없이 훌륭하게 소화하며 다시 한번 토니 어워즈 여우주연상 후보에 지목된다. 아쉽게도 토니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4년 뒤 영화 <퍼니 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자신의 첫 영화 <퍼니 걸>의 큰 흥행으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단숨에 대중적인 인기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니 패니 브라이스라는 역할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는 독이 든 성배나 다름없다. 

 

리바이벌 프로덕션의 패니 브라이스 역에 이름 올린 이는 비니 펠드스타인이다. 비니 펠드스타인은 주로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동 중인 배우로, 뮤지컬 무대 경력은 2017년 <안녕, 돌리!>에 참여한 것이 전부다. 그래서 캐스팅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았고, 개막 이후에도 대체로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비니 펠드스타인이 건강상의 문제로 무대에 오르지 못했을 때 언더스터디 줄리 벤코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며 더 주목받았다. 줄리 벤코는 비니 펠드스타인이 하차한 후 잠시 <퍼니 걸>을 홀로 이끌었으나, 저조한 티켓 성적으로 아직 주연을 맡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평을 들었다. 

 

비니 펠드스타인의 하차 이후 패니 브라이스 역할은 레아 미셸에게 돌아갔다. 레아 미셸은 <퍼니 걸> 리바이벌 프로덕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패니 브라이스 역할로 가장 많이 언급된 배우다. 레아 미셸은 브로드웨이에서 데뷔한 후 인기 드라마 <글리>의 레이첼 베리 역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연기한 레이첼 베리는 뮤지컬배우 지망생으로, <퍼니 걸>의 패니 브라이스를 꿈의 배역으로 꼽는 역할이었다. 레아 미셸은 드라마와 2010년 토니 어워즈 무대에서 <퍼니 걸>의 대표곡 ‘Don't Rain On My Parade(내 앞길을 막지 마)’를 불러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많은 이의 기대 속에 무대에 오른 레아 미셸은 기대에 보답이라도 하듯 더없이 완벽한 ‘Don't Rain On My Parade(내 앞길을 막지 마)’를 선보였고, 공연 중 관객의 기립박수가 끊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다소 밋밋한 조연 캐릭터


<퍼니 걸>에는 유독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 배우들이 많이 출연한다. 닉 언스틴 역은 라민 카림루가 맡았다. <오패라의 유령>의 유령,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으로 유명한 라민 카림루는 한국에서 몇 차례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라민 카림루는 패니가 사랑에 빠질 만큼 멋진 외모와 사업 수완을 가진 닉 언스틴을 소화하기에 적격이었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연기력과 노래 실력을 무대에서 확인하기에는 닉의 뮤지컬 넘버가 너무 적었다. <퍼니 걸>의 주옥같은 노래는 대부분 패니의 솔로 곡이고, 패니와 닉이 함께 부르는 듀엣을 제외하면 닉의 유일한 솔로 곡은 ‘Temporary Arrangement(임시 협정)’뿐이기 때문이다. 라민 카림루는 빠른 재즈 리듬으로 편곡된 곡에 맞춰 박력 있는 춤을 추다가 곡 마지막에 파워풀한 가창력을 선보이며 제 기량을 뽐냈다.

 

극 중 안무 감독 에디는 영화 <스윙 키즈>에서 탭 댄스를 가르치는 미군 잭슨을 연기했던 자레드 그라임스가 연기했다. 에디는 패니를 좋아하지만, 결국 좋은 친구로 그녀의 곁에 남는 인물이다. 이야기 진행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비중이 적은 캐릭터임에도 자레드 그라임스는 이 역할로 올해 토니 어워즈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이는 탭 댄스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자레드 그라임스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장기인 탭 댄스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멋진 장면을 만들어냈다. 

 

패니 엄마는 드라마 <글리>에서 괴팍한 체육 선생님으로 인기를 끌었던 제인 린치가 맡았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해도 딸의 재능을 믿고 지지하는 역할이다. 극 중에는 패니 엄마와 동네 친구들이 포커 게임을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짧게 등장하여 무대 전환이 이루어지는 동안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했다. 

 

©Matthew Murphy

 

당당한 여성 캐릭터의 아쉬운 선택


<퍼니 걸>이 만들어졌던 1960년대에는 별 무리 없이 통용되었을지 몰라도, 여성을 외모로 판단하고 성공한 여성을 반기지 않는 남성의 모습은 요즘 관객에게는 다소 불편한 지점이다. 1막 초반에 패니의 엄마와 친구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If a Girl Isn't Pretty(여자가 예쁘지 않으면)’는 제목 그대로 여자가 예쁘지 않으면 쇼 비즈니스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모든 사람들이 외모를 지적하며 만류하는 중에도 패니는 자신의 재능을 믿고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패니의 굳은 의지는 ‘I'm the Greatest Star(대단한 스타)’에 잘 드러난다. 이 곡의 멜로디 일부는 1막 마지막에 패니가 자신의 결심을 확신하며 부르는 ‘Don't Rain On My Parade(내 앞길을 막지 마)’에서 다시 반복된다. 

 

패니의 자신감과 결단력은 <지그펠드 폴리스>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장면에서 더욱 돋보인다. <지그펠드 폴리스>의 리허설을 하던 패니는 자신이 “거울에 비친 아름다운 내 모습”이라고 노래하면 사람들이 비웃을 것이라며 다른 노래를 부르겠다고 한다. 쇼 비즈니스계에서 신적인 존재인 플로렌즈 지그펠드는 패니의 당돌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노래를 부르지 않을 거면 나가라며 고압적인 태도를 취한다. 패니는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서지만 기지를 발휘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보석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여성들이 등장해 ‘His Love Makes Me Beautiful(그의 사랑이 날 아름답게 만들어)’을 부르는 가운데, 피날레에 등장한 패니는 순백의 웨딩드레스 안에 쿠션을 넣어 만삭의 신부의 모습으로 노래를 이어간다. ‘그의 사랑이 날 아름답게 만들어’라는 가사와 대비되는 패니의 모습에 관객은 큰 호응을 보내고, 패니는 배우로서 입지를 더욱 굳힌다. 

 

항상 자기주장이 강하고 당당한 패니는 단 한 사람, 닉 언스틴에게만은 속수무책이다. 무명의 코러스 걸 시절부터 <지그펠드 폴리스>의 간판스타가 될 때까지 줄곧 웃긴 역할로 인기를 끈 패니에게 항상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닉밖에 없다. 패니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닉에게 무심한 척 농담을 던지지만, 닉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결국 패니는 ‘People(사람들)’을 부르며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이라는 말로 에둘러 사랑을 고백한다. 결국 패니는 <지그펠드 폴리스>의 투어 도중 닉을 따라가기로 결심하는데, 이때 부르는 노래가 1막의 마지막 곡인 ‘Don't Rain On My Parade(내 앞길을 막지 마)’다.

 

1막이 패니가 무명에서 스타로 발돋움하는 과정과 닉과 사랑을 키워가는 이야기를 다루며 제목처럼 줄곧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이어진다면, 2막은 패니가 성공할수록 닉과 멀어지는 과정을 그려 성공한 여자가 감당해야 하는 못난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 끝에 닉과 이별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Finale(피날레)’는 닉이 부르는 ‘You're a Funny Girl(당신은 재밌는 여자야)’로 이어지며 둘의 관계도, 공연도 끝맺는다. 

 

결국 퍼니 걸, 패니 브라이스를 정의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사랑과 관심이 아니라 그녀가 사랑하는 단 한 사람, 닉 언스틴의 말 한마디였다. 엔터테이너로서 패니 브라이스의 성공과 한 여성으로서 사랑에 실패한 모습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녀의 얼굴 위로 비슷한 사연을 가진 여러 여성 엔터테이너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성공한 여성들의 삶에서 무탈하게 그들을 지지하는 남성 파트너의 이야기를 하루빨리 무대에서 보고 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7호 2022년 10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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