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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OLUMN] <배니싱> 의학도는 연구를 위해 시체를 해부해도 될까 [No.217]

글 |고봉주(변호사) 사진 |네오 2022-10-17 475

<배니싱>
의학도는 연구를 위해 시체를 해부해도 될까

 

 

시체 해부의 자격과 대상

 

<배니싱>은 1925년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의학도 의신과 명렬, 그리고 흡혈 인간 케이의 만남을 그린 3인극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 경성의학전문학교에 다니는 학생 의신과 명렬은 죽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체를 훔쳐 폐가로 가져온다. 시체 해부를 통해 인간의 몸과 병의 근원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학교에 해부학 수업이 있어도 실제 시체를 해부할 수 없어서 의학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식 의사가 아닌 의과생이 시체를 해부해도 문제가 없을까.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에서는 시체 해부자의 자격을 정하고 있다. 시체 해부에 대하여 해부학·병리학·법의학을 전공한 교수, 또는 종합병원 전문의로 5년 이상 재직한 사람은 소속 의과대학이나 종합병원에 설치된 시체해부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시체를 해부할 수 있다. 그 외에는 시체 해부 명령이나 형사소송법·검역법상 특별한 상황이 있는 경우에만 시체 해부가 가능하다. 의신과 명렬은 의학 지식은 갖췄지만 아직 학생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연히 시체를 해부할 자격이 없다. 

 

게다가 의신과 명렬이 해부하려고 한 시체는 시체 해부의 대상도 아니다. 시체를 해부하려면 원칙적으로 유족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망자 본인이 생전에 성명 및 연월일을 자서·날인한 문서로 시체 해부에 동의한다는 의사 표시를 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의신과 명렬은 시체 해부자의 자격도 없이, 시체 해부의 대상도 아닌 시체를 해부하려고 한 것이다. 이는 각각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위법 행위에 해당한다.

 

 

선배의 연구 일지를 훔쳐본다면

 

의신은 케이에 대한 비밀 연구를 시작하면서 연구 일지를 작성한다. 명렬은 의신의 연구에 대해 궁금해하지만 의신은 개인적인 연구라고 얼버무리면서 연구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의신이 연구 일지를 깔고 잠이 든 틈을 타서 명렬이 그의 연구 일지를 몰래 빼서 읽는다. 이처럼 타인의 연구 일지를 훔쳐보는 것은 범죄일까, 아니면 도덕적인 문제에 불과할까.

 

형법에는 비밀침해죄라는 범죄가 있다. 봉함 등 비밀 장치를 한 편지, 문서, 도화를 개봉하면 처벌하는 범죄다. 비밀침해죄의 대상이 되는 문서에는 일기장, 수첩 등이 있고 연구 일지도 이에 포함된다. 하지만 비밀침해죄가 성립하려면 앞서 설명한 것처럼 문서에 비밀 장치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자물쇠가 걸려 있는 일기장을 생각하면 되는데, 일기장, 편지 등을 서랍에 넣고 그 서랍을 자물쇠로 잠근 것도 비밀 장치를 한 것으로 본다. 

 

의신은 연구 일지를 명렬한테 보여주지 않고 숨겼지만 연구 일지 자체를 봉함하거나 서랍에 넣어서 잠그지 않았다. 그러므로 명렬이 그가 잠든 사이에 몰래 연구 일지를 빼서 읽었더라도 비밀침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덧붙여 비밀침해죄는 친고죄이므로, 설령 비밀침해죄가 성립한다 해도 의신이 직접 명렬을 고소해야만 처벌할 수 있다.

 

 

사건 현장에서 증거를 가지고 나오면

 

명렬은 힘 있는 아버지 덕에 총독부 의원이 된다. 하지만 의신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 의원 자리에 떨어지고 대신 동급생 마츠모토가 붙는다. 그즈음 사람들이 실종되었다가 피가 전부 빠진 모습으로 발견되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여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데, 마츠모토 역시 피가 빠진 시체로 발견된다. 헌병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한 의신은 마츠모토가 죽기 전 저항하면서 휘두른 메스에 혈흔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메스를 가지고 나온다. 그리고 혈흔 감식 결과 그 피의 주인이 케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마츠모토는 흡혈 인간 케이에게 피를 빨아 먹혀 죽은 것이다.

 

메스는 케이가 살인을 저지를 때 사용한 범행 도구는 아니지만, 그가 범인임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다. 그런데도 메스를 수사 권한이 있는 헌병에게 넘기지 않고 임의로 가지고 나온 의신의 행위는 증거인멸(은닉)죄에 해당한다. 이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범죄이다. 

 

여기서 하나 알아둘 점은 증거인멸죄가 타인의 형사 사건에 관한 증거를 숨기는 것을 처벌하는 범죄라는 점이다. 즉, 자신의 형사 사건에 관한 증거를 숨기는 것은 증거인멸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애초에 범인이라면 자기 죄를 감추기 위해 증거물을 숨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케이가 사람을 죽이고 그 현장에 있는 증거물을 가지고 갔다 해도 살인죄로 처벌받을뿐 증거인멸죄로 처벌받지는 않는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7호 2022년 10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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