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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OCUS] 무대에 선 로봇, 창작하는 AI [No.216]

글 |안세영 사진 | 2022-10-14 565

무대에 선 로봇, 창작하는 AI

 

로봇과 인공지능이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 활용되면서, 인간과 닮은 모습에 인간처럼 사고하는 안드로이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또한 늘어나고 있다. 인간에게 버려진 로봇끼리 사랑에 빠지는 <어쩌면 해피엔딩>, 독거노인과 도우미 로봇의 유대를 그린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인간과 로봇이 함께 우주를 여행하는 <로빈>에 이어 9월에는 주인을 살해하고 법정에 선 로봇이 등장하는 <인간의 법정>이 개막을 앞두고 있다. 물론 이 작품들 속 로봇은 모두 인간이 연기한다. 언젠가는 진짜 로봇이 무대에서 연기하는 날이 올까? 어쩌면 아주 엉뚱한 상상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 배우를 대신해 로봇이 무대에 서거나, 인간 창작자를 대신해 인공지능이 공연을 만드는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싸구려 인조인간의 노랫말2(로보트 야상곡)(2020) ⓒ박태호

 

SF소설 속 상상이 현실로


2017년 장강명 작가가 발표한 SF 단편 소설 「당신은 뜨거운 별에」에는 금성 지표 탐사 로봇을 이용한 무용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로봇은 안무가의 움직임을 따라 일상적인 탐사 작업에서는 취하지 않는 자세를 취한다. 나아가 인간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기묘한 동작을 구현해 낸다.
 
그 간단한 자세만으로도 로봇은 더 이상 인간을 모방해 만든 기계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에 없이 세련되고 우아해 보였다. (…) 눈앞에 있는 로봇의 형상은 애초에 인간과는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 고대 신화 속의 반인반수처럼 보였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답고, 동시에 무척이나 강한 힘을 지녔을 듯한.
 
그런데 이 SF소설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2020년 연말, 현대차 그룹은 보행 로봇 개발 기업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인수한 뒤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특별한 홍보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을 재생하면 먼저 힘없이 어깨를 떨구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모습이 보인다. 곧이어 컨투어스의 노래 ‘Do You Love Me’ 전주에 삽입된 음성이 들려온다. “넌 내가 춤을 못 춘다는 이유로 내 마음을 아프게 했어. 심지어 내가 네 곁에 있는 것조차 싫어했지. 자, 이제 내가 몸 좀 흔든다는 걸 알려주려고 돌아왔다!” 이 발칙한 선언을 시작으로 로봇은 음악에 맞춰 신나게 팔다리를 휘젓고 뛰어다닌다. 이어서 강아지를 닮은 사족 보행 로봇 ‘스팟’, 바퀴 달린 물류 이송용 로봇 ‘핸들’까지 합세해 한바탕 춤판이 벌어진다. 로봇의 움직임이 어찌나 유려하고 리듬감이 넘치는지 보고 있는 ‘사람’도 절로 몸이 들썩일 정도다. 이 영상은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계속해서 로봇이 방탄소년단의 음악에 맞춰 칼군무를 추거나, 인간과 짝을 이뤄 춤추는 영상을 선보였다. 예상을 뛰어넘는 로봇의 아름다운 움직임은 놀라움을 안겨주고, 진심으로 음악과 춤을 즐기는 듯한 모습은 자연스레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물론 이는 로봇의 뛰어난 성능을 알리는 홍보용 영상이지만, 실용적인 목적으로 개발된 로봇이 예술의 영역에서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로봇, 그 낯선 존재와의 만남

지난 8월에는 실제로 춤추는 로봇이 대학로 무대에 올랐다.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공연한 <싸구려 인조인간의 노랫말2 (로보트야상곡)>이라는 작품을 통해서다. 2018년부터 직접 설계한 로봇으로 전시 및 공연 작업을 하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권병준이 각본과 음악, 연출을 도맡았다. 1990년대에 밴드 삐삐롱스타킹, 원더보드 등에서 보컬로 활동한 그는 그 시절 인디 음악 신을 추억하며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늦은 밤 지하 클럽에 모여 함께 노래하고 연주하던 동료들을 떠올렸다. 주류 사회에 섞이지 못하는 우리는 이방인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합을 맞춰 하모니를 이루고, 서로를 빛나게 해주었다. 그 모습을 로봇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무대에는 12대의 외팔이 로봇이 등장한다. 로봇의 머리에는 조명이 달려 있고, 이 조명으로 서로를 비추며 춤추고 노래한다. 권병준 작가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로봇은 매끄럽고 날렵한 춤사위를 자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칭을 벗어난 형태와 투박한 몸짓이 어딘가 애처롭고 그것들이 조명을 받아 드리우는 그림자는 묘한 위엄이 있다. “반쪽짜리 로봇의 그림자가 합쳐지면 하나가 된다. 우리 모두는 반쪽이고, 서로를 비추며 함께 어울려 살아갈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권병준 작가의 설명이다. 


권병준 작가의 로봇을 이용한 전시 및 공연 작업은 ‘이방인’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난민과 다문화 가정의 현실을 반영한 미디어아트 작품을 만들면서 그는 이질적인 존재를 향한 한국 사회의 편견과 배척에 주목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이방인을 대변할 수 있는 완전히 낯선 존재를 사람들 앞에 들이밀어 보자는 생각으로 로봇을 만들었다. “2018년 <클럽 골든 플라워> 전시를 통해 관객을 향해 손을 내미는 로봇을 선보였다. 낯선 존재가 손을 내밀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손을 내미는 로봇에 어떤 사람은 당황하고, 어떤 사람은 그 손을 잡아주더라. 로봇을 통해 각자가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가 드러난 셈이다.”


2020년에는 국립현대무용단이 권병준 작가의 로봇을 활용해 문화비축기지에서 촬영한 네 편의 댄스 필름을 공개했다. 권병준 작가가 직접 연출을 맡아 세기말 홍대 클럽에서 테크노 음악에 맞춰 춤추던 청춘들의 모습을 로봇의 군무로 재현한 <입 닥치고 춤이나 춰>, 딱딱한 로봇과 부드러운 인간의 신체를 대비하여 각각의 고유성을 탐구한 예효승 안무가의 <재생:능력>, 서로 다른 신체를 지닌 인간, 이물, 로봇의 여행을 그린 이민경 안무가의 <삼물기>,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을 그린 조희경 안무가의 <풍경>이 그것이다. 네 작품은 현재 국립현대무용단 온라인 상영관 '댄스 온 에어'와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인공지능 창작의 가능성과 한계


권병준 작가는 2021년 남산골한옥마을을 배경으로 <유령극단 “심각한 밤을 보내리”>라는 관객 참여형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관객들이 위치 인식 헤드폰을 쓰고 어둠이 내린 남산골한옥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로봇의 퍼포먼스를 감상하는 공연이었다. 권병준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과거에는 망자의 혼이 산 사람의 몸에 빙의했다면, 미래에는 기계에 빙의하는 기술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기계식 영매 접합술’이 시행되어 로봇이 혼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설정이 녹아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때 관객들이 헤드폰을 통해 들은 음성은 인공지능이 작성한 대본을 배우들이 낭독한 것이다. 권병준 작가가 먼저 시간 여행, 유령 등을 키워드로 삼아 텍스트를 작성하고 인공지능이 이를 이어받아 내용을 완성했다. 여기에는 인공지능 연구소 OpenAI가 개발한 AI 언어 모델 GPT-3가 이용됐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언어 구조를 학습한 GPT-3는 주어진 단어에 대해 통계적으로 가장 어울리는 다음 단어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인공지능이 쓴 대본은 완벽한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그 모호함이 마치 과거에서 온 유령 혹은 미래에 올 로봇의 속삼임을 듣는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권병준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기발한 대본에 놀랐다며 “미래에는 더 많은 예술가가 AI를 창작 파트너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2020년 인간 무용수가 인공지능이 만든 안무에 맞춰 춤추는 공연 <비욘드 블랙>을 선보였다.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춤추는 인공지능 ‘마디Madi’를 활용하고, 신창호 안무가가 협업했다. 작업 방식은 이렇다. 먼저 크로마키 앞에서 무용수 8명의 움직임을 촬영한 뒤, 그 데이터를 마디에 입력했다. 마디는 입력된 정보를 점과 선으로 코딩해 단순화하고, 이를 독특한 방식으로 재배열하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새로운 안무를 고안했다. 총 256분 분량을 학습하여 1000분 분량의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비욘드 블랙>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면 공연이 아닌 실황 영상을 통해 공개되었다. 마디의 안무는 무대에서 무용수들의 몸을 통해 재현되었으며, LED 패널을 통해 인간의 이미지를 입힌 마디가 춤추는 모습도 함께 보여주었다. 인공지능의 안무는 유연하고 정교하지만 그 안에는 어떠한 의도나 감정이 담겨 있지 않다. 제환정 무용해설가는 인공지능 안무가의 등장에 대해 “인간만이 춤을 추고 만들 수 있는가, 춤의 의미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움직임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평했다.


이러한 질문을 이어받아 국립현대무용단은 또 한번 인공지능을 활용한 새로운 시도에 나선다. 9월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 오르는 <넌댄스 댄스>는 인공지능이 춤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만의 춤을 찾는 공연이다. 본 공연에 활용되는 ‘구글 비디오 AI’는 카메라를 통해 수집한 영상에서 2만 개 이상의 객체, 장소, 동작을 인식해 낸다. 무용수는 이 인공지능이 지켜보는 가운데 춤을 춘다. 인공지능이 무용수의 움직임을 춤으로 인식하는 순간에는 조명이 어두워진다. 즉, 관객은 인공지능이 춤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춤 ‘넌댄스 댄스Non-Dance Dance’만을 보게 된다. 국립현대무용단 측은 무용수의 움직임과 더불어 무대, 조명, 의상 등의 요소도 인공지능의 춤 인식에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무용수의 양말 색깔만 달라져도 인공지능이 예민하게 포착해 결과값에 영향을 준다. 무용수가 다양한 요소에 변화를 주며 인공지능이 인식할 수 없는 춤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무대 위에 펼쳐질 예정이다.” 관객은 인공지능과 함께 같은 시공간에서 공연을 관람하며, 인공지능의 인식과 인간의 인식 사이의 간극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춤이란 무엇인가’, ‘인간만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사유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이 작품의 의도이다.

 

비욘드 블랙(2020) ⓒ황승택

 

새로운 기술이 던지는 질문


춤추는 인공지능 마디를 개발한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는 올해 시 쓰는 인공지능 ‘시아SIA’를 새롭게 선보였다. 카카오브레인의 초거대 AI 언어 모델 KoGPT를 기반으로 한 시아는 1만여 편의 시를 읽고 작법을 배웠다. 주제어와 명령어를 입력하면 정보의 맥락을 이해하고 순식간에 시를 짓는다. 슬릿스코프는 지난 8월 시아의 시 53편을 선정해 시집 『시를 쓰는 이유』를 출간하고, 수록된 시들을 활용한 시극 <파포스>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올렸다. 슬릿스코프의 김제민이 직접 연출을 맡은 이 공연에서 배우들은 시아의 시를 읊으며 다양한 방식의 발화와 움직임으로 시를 읽은 소감을 표현했다. 공연 제목 ‘파포스’는 그리스 신화 속 조각가 피그말리온과 조각상 갈라테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의 이름에서 따왔다. 김제민 연출가는 이번 공연에 대해 “인간과 인공지능이 함께 만든 파포스 같은 존재”이자 “인공지능이 쓴 무의미한 텍스트에 시심詩心을 담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2023년 <부재(不在)>라는 제목으로 로봇이 지휘하는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공연에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에버6Eve-R6’가 사용된다. 이보다 앞선 버전의 로봇 에버5는 2018년 대구오페라하스에서 성악가 마혜선의 목소리와 제스처를 담아 오페라 공연 <완벽한 로봇 디바, 에버>를 선보인 바 있다. 이번에는 모션 캡쳐 기술로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김성진의 지휘를 본떠 에버6의 동작으로 변환한다. 단순히 동작을 흉내내는 것을 넘어 지휘자의 표정과 감정까지 인식하고 재현할 계획이다. 김성진 예술감독은 “로봇이 지휘자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을지, 아니면 지휘자의 부재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 존재를 열망하게 될지 질문을 던지는 공연이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오랫동안 예술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며 이러한 믿음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역설적으로 예술이란 무언인가, 인간의 존재 가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라는 해묵은 질문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로봇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공연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설령 그러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찾아야 할 답에 한 발짝 다가갈 수는 있을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6호 2022년 9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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