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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어차피 혼자> 조정은·윤공주 - 때론 혼자, 때론 같이 [No.216]

글 |최영현, 안세영 사진 |김현성 Stylist |천유경 Hair |지니(모아위) Make-up |영란(모아위) 2022-10-14 1,692

<어차피 혼자> 조정은·윤공주
때론 혼자, 때론 같이

 

서로 다른 매력으로 무대 위에 섰던 조정은과 윤공주가 9월에 초연하는 <어차피 혼자>에 나란히 출연한다. <어차피 혼자>는 고독사를 소재로 타인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을 역설하는 작품이다. 조정은과 윤공주는 마흔 살 비혼 여성 독고정순 역을 맡아 혼자가 아닌 함께일 때 더 빛나는 삶의 가치를 일깨운다. 

 


알고자 하는 마음 
조정은

 

<어차피 혼자>와는 2013년 리딩 공연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죠. 당시 이 작품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뭔가요?
추민주 작가 겸 연출님의 작품이라 하고 싶었어요. 공연계에서 여성 창작자가 대본을 쓰면서 연출까지 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 전부터 함께 작업해 보고 싶었거든요. 사실 그때까지 저는 주로 시대극에 출연했던 터라 일상적인 내용의 작품에는 익숙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리딩 공연에 이정은 배우를 비롯해 <빨래> 출신의 연기 잘하는 배우가 여럿 모여서 연기에 대한 부담을 느꼈죠. 그래도 그 배우들과 함께하는 작업이 정말 즐거웠어요. 

 

정식 공연은 소속사 PL엔터테인먼트가 제작을 맡았어요. 리딩 공연에 참여했던 배우로서 대표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대표님께서도 리딩 공연을 보셨는데 그때 많이 울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속마음을 작품이 알아주는 기분이 드셨대요. 저도 작품에 대한 애정이 커서 본 공연이 올라가면 꼭 출연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뒤로 소식이 없어서 계속 궁금했죠. 그러다가 오랜만에 추민주 연출님과 연락이 닿아서 여쭤보니, 제작사를 찾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이후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어차피 혼자> 이야기가 나왔고, 새로운 콘텐츠를 찾고 계시던 대표님이 제작을 결심하신 거예요. 신기하게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졌죠. 저는 이 작품이 요즘 뮤지컬 트렌드를 쫓아 무리하게 스타일을 바꾸기보다는 원래 하고자 한 이야기를 오롯이 무대에 올리면 좋겠어요. 대표님도 저랑 같은 생각을 하신대요. 고독사를 소재로 하고, 40대 비혼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 이야기가 어쩌면 2013년보다 지금의 관객에게 더 와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2022년 이 역할을 다시 만나면서 새롭게 다가온 점이 있을까요? 
이제 제가 진짜로 40대가 됐잖아요. 실제 그 나이가 되어보니 작품 내용이 훨씬 쉽게 이해가 돼요. 대본에 쓰인 텍스트만 놓고 보면 독고정순은 그야말로 별종이에요. 아무도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일에 혼자서만 열심이고, 독설과 수수께끼를 입에 달고 살거든요. 그런데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에요. 다른 구청 직원들은 일을 그저 밥벌이 수단으로 대하는데, 정순이는 무연고 사망자와 그 가족에게 감정 이입을 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거죠. 추민주 연출님이 쓴 대본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텍스트 뒤에 숨어 있어요.

 

독고정순이 무연고 사망자의 가족을 찾아주려고 애쓰는 배경에는 고독사한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자리 잡고 있어요. 정순은 죽은 엄마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죄책감이에요. 엄마를 혼자 죽게 만든 데 대한 죄책감. 하지만 생전에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가 크기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고 해서 단번에 미움이 사라지고 미안한 감정만 남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움, 사랑, 후회 등등 여러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자기도 언젠가 엄마처럼 혼자 외롭게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을 테고요. 그 모든 감정을 똑바로 마주하는 게 고통스러워서, 마음 한구석에 꾹꾹 눌러 담아두고 일에만 몰두하며 살아온 게 아닌가 싶어요. 

 

괴로운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일에 매달리는 거군요. 
괴로운 일이 있을 때 가만히 멈춰 있으면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뭐라도 하려고 하고요. 정순 역시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거죠. 어쩌면 엄마를 혼자 죽게 만든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무의식 중에 스스로를 벌주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대본 첫머리에 적혀 있는 인물 소개를 보면 독고정순에 대해 ‘일에만 몰두하느라 자기 자신조차 돌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물’이라고 설명되어 있어요. 저는 이 말이 정순이 엄마의 죽음 이후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는 의미로 읽혔어요. 단순히 잘 먹고 잘 자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도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극 중에서 독고정순은 부하 직원 서산에게 “죽은 사람을 홀로 내버려 두면 안 되는 이유”를 맞춰보라고 수수께끼를 내잖아요. 정순이 생각하는 이 수수께끼의 답은 무엇일까요?
정순 자신도 정답을 알고 낸 수수께끼는 아닐 거예요. 처음에는 정순이 일부러 어려운 수수께끼를 던져놓고, 수수께끼를 못 풀면 그걸 빌미로 서산이 일을 그만두게 하려고 이러는 건가 싶었어요. 작가님께 여쭤보니 그게 아니라 정순의 번아웃 상태를 드러내는 대사라고 하더라고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고독사를 막지 못하고, 무연고 사망자의 가족들조차 시신을 찾아가려 하지 않는 상황 앞에서 정순은 화도 나고 무력함을 느꼈을 거예요. 그때마다 자기 자신이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묻고 또 묻지 않았을까요. 수수께끼를 못 풀면 일을 그만두라는 말도 실은 서산이 아니라 자신한테 하는 말 같아요. 번아웃으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서 괜히 서산에게 화풀이를 하는 거죠. 다른 장면에서 정순이 서산에게 “지금 어디다가 화를 내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화 좀 그만 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는데 실은 자기도 그러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서산과 끝내는 자신의 아픈 과거까지 털어놓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잖아요. 독고정순은 왜 서산에게 마음을 열었을까요?
정순은 늘 혼자 일해 왔잖아요. 다른 구청 직원들은 아무도 정순이 하는 일에 관심이 없어요. 그런 사람 앞에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그 존재 자체만으로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연습실에서 연출님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끈질기게 물어보다가 혼이 났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동료들이 “그냥 대본대로 해”라고 얘기하고 먼저 퇴근해요. 그런데 만약 그때 고민하는 제 옆에 남아 있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저라도 제 깊은 속내를 꺼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연대감이 쌓이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게 저와 서산 역할 배우들에게 주어진 숙제죠.

 

대본을 읽어보니 결말에서 등장인물의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데도 희망적인 느낌을 받았어요.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후반부로 가면 정순이 자기 자신을 마주할 수밖에 없도록 주변 상황이 점점 조여와요. 결국 숨기고 싶었던 개인사가 만인 앞에 폭로되는데, 저는 그게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까지나 상처를 외면하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다행인 건 그 힘든 과정을 통과하는 동안 정순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거죠. 마침내 정순이 서산에게 자신의 치부를 털어놓는 순간, 꽁꽁 걸어 잠가두었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어두운 방 안에 빛이 쏟아져 들어와요.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죠. 이후 정순은 엄마도 자신도 완전히 용서하고 마음의 짐에서 해방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전과 똑같이 무연고 사망 담당자로 일하더라도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굉장히 달라질 것 같아요.

 

서산도 독고정순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가 생겼겠죠?
제 생각에는 상처를 드러내고 마주하는 정순을 보며 서산도 아버지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꺼낼 용기를 얻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목은 <어차피 혼자>이지만 이 작품이 진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이런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어차피 혼자일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우리는 함께다.

 

 

정은 씨도 독고정순처럼 일에 몰두하느라 자기 감정을 돌아보지 못한 경험이 있나요?
그럼요. 한참 분주할 때는 자기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모르다가 잠깐 여유가 생기면 눌러두었던 감정이 불쑥 솟아오르기도 하잖아요. 저는 주로 운전을 하거나 주차하고 차 안에 앉아 있을 때 그런 순간이 찾아와요. 온전히 저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시간에요. 그때 갑자기 눈물이 나서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 근데 그걸 모르고 있었구나’ 깨닫고는 해요. 그럴 때는 잠시 저를 가만히 내버려 둬요. 그 감정을 억지로 다른 걸로 대체하려고 하면 역효과만 나더라고요. ‘이러면 안 되지’ 같은 생각도 접어두고 그냥 ‘지금 내 감정이 이렇구나’ 하고 받아들여요.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는 거. 그게 저한테는 가장 효과적인 충전 방법이에요.

 

사실 ‘배우 조정은’ 하면 시대극 속 우아한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서 현실에 치여 살아가는 괴팍한 성격의 독고정순과 선뜻 겹쳐지지 않았어요. 자신과 독고정순 사이에 닮은 점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해요?
음… 일을 진심으로 하는 거요.

 

그렇다면 극 중 서산이 독고정순에게 했던 질문을 빌려 물어볼게요. 이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뭐예요?
이 일이 제일 재미있으니까요. 무언가 때문에 슬프기도 하고 화도 나는 건 그만큼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뮤지컬이 저와 안 맞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이 일에 너무 진심이라서 그런 거였어요. 저는 작품 속 인물이 왜 이 장면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무대에 서는 게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해”라는 말을 싫어해요. 저는 ‘그냥’ 연기하는 게 안 되더라고요. 그때마다 ‘나는 왜 이럴까, 배우로서 재능이 없구나’라는 생각에 그만둬야 할까 고민했죠. 하지만 지금은 ‘누가 뭐래도 난 알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그러면서부터 연기가 재미있어졌어요. 그전까지는 잘해내야 한다는 책임감만 있었거든요. 제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하고 계속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죠.

 

초연 창작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연습 과정에서 창작진이나 동료 배우와 의견을 나눌 기회가 많겠어요. 
맞아요. 저희는 역할에 구애받지 않고 본인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눠요. 연출님도 동료 배우들도 그걸 실례라고 여기지 않는 분위기예요. 그래서 연습실에 가는 게 굉장히 즐거워요. 저는 원래 연습실에서 말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지금은 말을 많이 해요. 그동안 이런 작업에 목말라 있었나 봐요. 계속해서 작품에 좋은 아이디어가 더해지는 걸 보고 있으면 모두가 집단 천재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배우 경력 22년 차인데, 여전히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있나요?
모든 면에서 자연스러우면 좋겠어요. 고여 있지 않되, 변화를 주기 위해 저를 맞지 않는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고 싶지는 않아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가운데 조금씩 발전하고 싶어요. 공연을 할 때마다 저는 제 자신을 그 작품을 이루는 하나의 조각이라고 생각해요. 저라는 조각을 통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오롯이 전달된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나를 닮은 사람
윤공주

 

얼마 전에 <아이다>를 마친 소감이 어떤가요?
<아이다>는 정말 사랑하는 작품이지만 체력적으로, 감정적으로는 너무 힘든 작품이에요. 하지만 이번 무대가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에 한 회 한 회가 너무 소중했어요. 매회 있는 힘을 다해 무대에 섰죠. 배우라면 다 그렇겠지만 한 작품이 끝나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공허함이 몰려와요.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도 아쉬움이 남고요. 평소라면 허전한 마음을 달래느라 애를 먹었을 텐데 <어차피 혼자> 덕분에 조금 빨리 극복하고 있는 것 같아요.

 

2017년 <아리랑> 재연 이후 오랜만에 창작뮤지컬을 하게 됐어요. 어떤 계기로 출연을 결심했나요?
저는 저를 필요로 하거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이것저것 재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해요. <어차피 혼자>는 두 가지 조건에 모두 해당했어요. 게다가 제가 가장 믿고 따르는 저의 소속사 송혜선 대표님이 직접 제작하시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작품을 정할 때 다른 무엇보다 함께하는 사람에게 먼저 마음이 가나 봐요. 
작품을 고를 때는 마음을 따라가요. 다만 되도록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려고 해요. 이번에 클래식한 시대극을 했다면 다음에는 세련된 현대극을 하는 식으로요. 항상 바로 전에 했던 작품과 반대되는 성향의 작품에 마음이 더 끌리더라고요. 그렇게 20년째 무대에 섰더니 할 수 있는 역할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져서 뭐든 할 수 있는 배우가 됐어요. <아이다>와 <어차피 혼자>는 여러모로 다른 결의 작품인데, 두 작품을 제가 모두 소화하잖아요! (웃음) 한때는 이런 제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어요. 저만의 색깔이 없는 게 아닌가 싶어서 고민도 많았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다채로움이 저의 색깔이더라고요. 

 

<어차피 혼자>는 고독사라는 다소 낯선 소재를 다루는 작품이에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처음에는 고독사보다는 엄마와 제가 먼저 떠올랐어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전부 다 말할 순 없지만 사랑하지만 동시에 미워할 수밖에 없는 독고정순과 엄마의 관계가 공감됐어요. 저뿐만 아니라 딸이라면 비슷한 마음일 거예요. 처음 대본을 읽으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독고정순의 감정에 곧바로 이입되더라고요. 대본을 다시 읽었을 땐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다음엔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고독사라는 소재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대본을 읽고 연습하면 할수록 등장인물이나 메시지는 많은 사람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겠다 싶어요.

 

이번에 연기하는 독고정순은 공주 씨와 또래예요. 실제 나이와 비슷한 인물을 연기하는 건 어떤가요?
독고정순은 구청 복지과에서 무연고 사망 업무를 처리하는 공무원이에요.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면 가족을 찾아 인계하고, 그게 여의찮으면 장례를 치르고 공고문을 내는 일을 해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일이지만 누구보다 진심으로 고독사한 사람들을 위해서 애써요. 혼자 사는 40대 여성인 데다가, 자기 일을 정말 열심히 하는 게 꼭 저를 닮았어요. (웃음) 아! 아침저녁으로 달리기를 하는 것도 저랑 같아요. 공통점이 많아서 독고정순을 만난 게 운명처럼 느껴질 정도예요. 

 

독고정순은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 같은 인물이에요. 배우들에게 물어보면 독고정순처럼 평범한 인물을 연기하는 게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특별히 더 어렵다고 느끼지 않아요. 어떤 역할이든 다 어렵거든요. (웃음) 아이다도, 독고정순도 똑같이 어렵게 느껴지죠. 작품을 할 때마다 쉬운 역할은 없다는 걸 체감해요. 하지만 창작 초연작이라는 점에서 배우가 채워가야 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 조금 더 걱정돼요. 그나마 독고정순과 공통점이 많아서 다행이에요. 앞서 이야기한 공통점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도 상당히 비슷해요. 어제 처음 1막 워크 스루를 진행하고 나서 저만의 독고정순을 어떻게 연기하면 될지 확신이 생겼어요.

 

공주 씨와 독고정순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닮았다니 의외인 걸요. 저는 공주 씨는 열정적인 반면, 독고정순은 미온적으로 보였거든요.
독고정순은 삶에 긍정적이거나 열정적인 사람처럼 보이진 않죠. 하지만 독고정순을 가만히 보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다만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20대의 제가 그랬거든요. 오디션을 볼 때마다 떨어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무 막막했어요.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연습뿐이었어요. 절실한 마음으로 연습하니까 조금씩 성장하게 됐고, 그 성장을 발판 삼아 지금까지 왔어요. 20대의 저는 독고정순처럼 치열하게 살았지만, 그게 삶에 대한 열정인지 몰랐어요. 오히려 저는 제가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독고정순을 더 이해하는지 몰라요. 실제 제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점을 독고정순을 통해 보여주면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특별한 사건이 있었나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점점 더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누구나 삶에 어려움은 있어요. 하지만 어려움이 나에게 찾아온 건 다 이유가 있어서예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담금질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 당장 눈앞에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절망하기보다 그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해요. 이 힘든 시기가 지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걸 알기 때문이에요. 제가 대단한 사람이라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고요. 저도 할 수 있으니까 여러분도 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짧은 삶을 걱정과 근심으로 흘려보내지 마세요. 주어진 시간을 마음껏 누리셨으면 좋겠어요.  

 

매 순간 삶에 긍정적일 수 있는 비결이 뭘까요?
사람이 어떻게 매 순간 긍정적일 수 있겠어요.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거죠. 저는 지금도 일주일에 두어 번은 슬럼프에 빠져요. 그럴 땐 친구에게 힘들다고 말하죠. 제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달리기! 나를 컨트롤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이에요. 달릴 때는 온전히 저에게 집중할 수 있어요. 나 자신과 소통하면서 부정적인 감정들을 털어내는 거죠. 목표한 만큼 달리고 나면 세상 모든 일을 다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 힘으로 또 하루를 열심히 사는 거죠.

 

다시 작품 이야기를 해볼게요. 초연 창작뮤지컬을 준비할 때 연습하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편인가요?
저는 의견을 제시하기보다는 제게 주어진 범위에서 답을 찾아가는 타입이에요. 저희 작품에 나오는 “인생은 수수께끼”라는 대사처럼 작품을 할 때마다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대본에 충실하려고 하고, 연출가의 지시를 잘 따르려고 해요. 제가 생각하는 배우는 작가나 연출가가 원하는 그림을 표현하는 사람이거든요. <어차피 혼자>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기보다는 연출가가 원하는 답을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연습 중에 틈틈이 다른 배우나 스태프와 주고받았던 이야기, 제가 고민하면서 연기했던 독고정순의 어떤 부분이 작품이 반영되기도 하죠. 

 

<어차피 혼자>가 지금의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뭐라고 생각해요?
독고정순이 극 초반과 후반에 “죽기밖에 더 하겠어”라는 말을 반복해요. 그런데 뉘앙스가 전혀 달라요. 처음에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체념하는 느낌이라면, 후반에는 현실을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져요. 두 대사 사이에 정순은 많은 일을 겪으면서 변해요. 자신을 옥죄던 감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거든요. 독고정순이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건 ‘사람’ 때문이에요. <어차피 혼자>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서로서로 위로해 주는 삶을 살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통해 나와 내 주변 그리고 내 삶을 한번 되돌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연습하면서 저도 참 많은 위로를 받아요. 

 

언젠가 공주 씨의 인터뷰에서 작품을 할 때마다 성장한다고 말 한 적이 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무엇을 배울 것 같아요?
무엇이든지요! 연기나 노래 같은 기술도 될 수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어요. 아, 배우로서 무대에서 섰을 때 관객과 교감하며 배우는 것도 있어요. 이번처럼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정말 오랜만이라 배울 것이 더 많을 것 같아요. 워낙 다재다능하고 열정적인 분들과 함께하게 되어 무대에서 좋은 시너지가 기대되고요. 무엇을 배우든 중요한 것은 전보다 나은 배우,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 작품이 끝난 후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해 있을 미래의 윤공주가 기대돼요. 

 

여전히 자신의 성장을 기대하나요?
성장은 제 삶의 원동력이에요. 조금씩 성장하는 제 모습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요. 성장이라는 게 거창한 건 아니에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차곡차곡 쌓이면 성장의 밑거름이 돼요. 몇 년 전만 해도 몇 미터를 뛰는 것도 힘들어했던 제가 이제는 20킬로미터를 거뜬히 뛰는 것처럼요.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한 저를 만나게 되니까 재미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기대되고요. 저는 늘 다음이 궁금한 배우, 궁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6호 2022년 9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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