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파라다이스 스퀘어> 아쉬움이 남는 흑인과 이민자의 하모니 [No.215]

글 |여태은(뉴욕통신원) 사진 | 2022-10-13 532

<파라다이스 스퀘어>
아쉬움이 남는 흑인과 이민자의 하모니

 

<파라다이스 스퀘어>는 남북전쟁 당시 새로운 징병제에 반대해 일어난 ‘뉴욕 징병 거부’ 사건의 이면을 아일랜드계 이민자와 흑인의 시선으로 그려낸 팩션 뮤지컬이다. 인종 간의 반목과 대립이 날로 심각해지는 요즘, <파라다이스 스퀘어>가 전하는 연대와 화합의 메시지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단한 인생들의 안식처, 파라다이스 스퀘어


<파라다이스 스퀘어>의 배경은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슬럼가인 뉴욕 맨해튼의 파이브 포인츠다. 가난과 범죄로 악명 높은 이곳에는 아일랜드계 이민자들과 미국 남부에서 탈출한 흑인들이 모여 산다. 파이브 포인츠의 중심에 있는 ‘파라다이스 스퀘어’라는 술집의 주인인 넬리는 노예에서 해방된 자유인이다. 그녀는 시누이 애니와 그의 남편 샘과 함께 술집을 운영하며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애니의 조카 오웬이 기근에 시달리는 아일랜드를 떠나 미국에 오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샘은 남부에서 도망친 노예 워싱턴 헨리를 도와준다. 동시에 파라다이스 스퀘어에 신세를 지게 된 오웬과 워싱턴 헨리는 누가 더 쓸모 있는 사람인지를 겨루기 위해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데, 뜻밖에 이 둘의 대결은 아일랜드계 이민자들과 노예 출신 흑인들이 흥겹게 어울리는 화합의 장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위태로운 평화도 잠시, 파이브 포인츠는 남북전쟁의 여파로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게다가 노예제도 폐지와 몰려드는 이민자 때문에 자신들의 이권이 줄어들 것을 염려한 백인 상류층 인사들이 파이브 포인츠와 그 중심에 있는 파라다이스 스퀘어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온갖 훼방을 놓기 시작한다. 영업 정지를 피하고자 넬리와 애니는 파라다이스 스퀘어에서 댄스 경연 대회를 열기로 하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 300달러를 상금으로 내건다.


남북전쟁이 격화되자 백인 젊은이들이 징집 대상이 되고, 이제 막 미국에 도착한 오웬도 전쟁터에 끌려갈 위기에 처한다. 징집을 면하는 유일한 방법은 300달러를 벌금으로 내는 것뿐이다.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벌금을 마련해야 하는 오웬과 도망자 신세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워싱턴 헨리는 댄스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두 사람이 각자의 살길을 위해 최선을 다할수록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댄스 경연 대회는 어느덧 이민자들과 흑인들의 대결 구도가 되고 만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워싱턴 헨리가 농장 주인을 살해하고 쫓기는 중이라는 걸 알게 된 넬리는 그를 내쫓으려 하지만, 그의 연인인 안젤리나를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사실에 그를 끝까지 돕기로 한다. 하지만 파라다이스 스퀘어의 피아니스트인 밀튼이 이 사실을 누설하게 되고, 뉴욕 상류층의 지도자인 프레데릭이 댄스 경연 대회의 우승자인 워싱턴 헨리를 체포하러 나서면서 파라다이스 스퀘어에 위기가 닥친다.

 

오프오프브로드웨이에서 브로드웨이로


<파라다이스 스퀘어>는 2012년 오프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하드 타임즈>를 재창작한 작품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음악가이자 작가인 래리 키르완이 만든 <하드 타임즈>는 파이브 포인츠의 술집을 배경으로 미국 민요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티븐 포스터의 삶과 음악을 다룬 뮤지컬이다. <하드 타임즈>에는 스티븐 포스터의 음악을 편곡한 곡과 래리 키르완이 직접 쓴 곡이 사용되었다. 래리 키르완은 <파라다이스 스퀘어>의 극작, 작곡, 편곡 등 작품 전반에 참여했다. 래리 키르완과 함께 <라이트 인 더 피아자><파리의 미국인> <아멜리에> 등을 쓴 크레이그 루카스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흑인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전해온 크리스티나 앤더슨이 대본을 완성했다. 대본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스티븐 포스터에서 술집 주인 넬리로 바뀌었다.


<파라다이스 스퀘어>의 음악은 제이슨 하울랜드가 맡았다. <레 미제라블> <지킬 앤 하이드> <스칼렛 핌퍼넬> 등의 작품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던 경험 때문인지, 드라마틱하고 유려한 선율의 음악으로 작품을 채웠다. <파라다이스 스퀘어>에도 원작과 마찬가지로 스티븐 포스터의 곡이 사용되었다. 오웬과 이민자들이 징집 대상으로 뽑히고 나서 부르는 노래 ‘Why Should I Die in Springtime?(봄날에 내가 왜 죽어야 하나?)’는 스티븐 포스터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민요 ‘I Would Not Die In Spring Time(봄날에 죽지 않으리)’을 편곡한 곡이다. 이 밖에 ‘Gentle Annie(사랑스러운 애니)’와 ‘Angelina Baker(안젤리나 베이커)’도 스티븐 포스터가 만든 동명의 곡을 편곡한 곡이다. 무대 디자인은 오프브로드웨이의 비영리 극장과 대형 오페라 극장을 오가며 다양한 무대를 선보였던 앨런 모이어가 맡았다. 작품의 주 배경인 술집 파라다이스 스퀘어는 턴테이블 무대 위에 올려진 2층짜리 구조물로 표현했다. 구조물은 계속 움직이면서 바 공간을 포함한 술집과 건물의 뒷문, 때로는 파이브 포인츠의 뒷골목으로 탈바꿈한다. 측면에 자리한 3층짜리 나무 골조 무대는 술집의 일부였다가 맨해튼의 다른 공간이 되기도 한다. 턴테이블 무대가 회전하는 동안 그 위의 구조물을 앞뒤로 움직이게 해 무대 공간을 더욱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게 한 점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연출은 작가이자 연출가로 활동 중인 모이세스 카우프먼이 맡았다. 그는 연극 <33개 변주곡>으로 토니 어워즈 작품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는 데다가, 또 그의 다른 연극 <라라미 프로젝트>는 미국 전역에서 자주 공연되는 연극 중에 하나로 꼽힌다. 작가로서 인정받은 인물이지만 연출가로 참여한 <파라다이스 스퀘어>에서는 깊이가 부족한 캐릭터와 장황한 스토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진부한 연출로 아쉬움을 남겼다.

 

 

의미 있는 이야기, 아쉬운 캐릭터


<파라다이스 스퀘어>의 주인공 넬리는 흑인이고, 그녀의 남편은 아일랜드인이다. 넬리의 시누이 애니의 남편 샘은 흑인이다.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의 역사를 지닌 미국에서 백인과 흑인이 조화롭게 살아간다는 <파라다이스 스퀘어>의 설정은 마치 판타지처럼 보인다. <파라다이스 스퀘어>의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그 바탕에는 역사적 사실이 깔려있다. 실제로 파이브 포인츠는 일부이지만 아일랜드 이민자들과 흑인들이 나름의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곳이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백인 남성들에게 징집령이 내려졌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미국에 온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전쟁터에 끌려가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더욱이 징집 대상을 백인과 이민자들로 한정하는 한편, 벌금을 내거나 대신 전쟁에 나갈 사람을 구하면 징집을 피할 수 있다는 제도를 만들어 가난한 이민자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이들의 분노는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징집 대상에서 제외된 흑인들에게 향했다. 게다가 전쟁터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이민자들이 흑인들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지면서 흑백 갈등을 부추겼다.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기보다 엉뚱한 곳으로 불만과 분노가 향하는 상황은 비단 1863년 뉴욕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전 세계가 공포에 떨었던 팬데믹 초기에 미국 전역에서는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 또한 전쟁에 대한 공포만큼 많은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미디어에서는 주로 흑인이 아시아인을 폭행한 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아시아인 혐오의 출처를 유색인종, 주로 흑인 커뮤니티로 돌렸다. 하지만 통계상으로는 백인이 아시아인을 폭행한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 미디어가 흑인과 아시아인의 갈등을 조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약 160년의 세월 차가 존재하지만, <파라다이스 스퀘어>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파라다이스 스퀘어>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 역사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어냈으나 극작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남북전쟁 징집으로 촉발된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의 분노와 노예제도 때문에 고통받는 흑인들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전체적인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캐릭터의 입체감이 다소 부족하다. 예를 들면 농장주를 살해한 워싱턴 헨리와 엔젤리나에게 너무 쉽게 면죄부를 준다. 또 ‘Angelina Baker(안젤리나 베이커)’라는 곡을 계속 리프라이즈하며 안젤리나를 강조하는 듯하지만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딱히 하는 역할이 없다. 게다가 안젤리나를 돕는 인물로 레즈비언 커플을 갑작스럽게 등장시켜 당황스럽게 한다.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스티븐 포스터는 파라다이스 스퀘어의 피아니스트 밀튼으로 등장한다. 극 중 밀튼은 이기적인 기회주의자로 그려지는데, 작품에 스티븐 포스터의 음악을 여러 번 차용한 점, 또 미국인이 사랑하는 음악가를 모티프로 한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아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주·조연의 서사도 부족하다. 주인공 넬리는 어쩌다 남편 윌리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어떻게 파라다이스 스퀘어의 주인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창녀였던 애니와 목사 샘은 어떻게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는지도 불분명하다. 여러 부분에서 설명이 부족하지만, 넬리와 애니의 관계 설정에는 꽤 공을 들였다. 이분법으로 사람들을 갈라놓고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바쁜 세상 속에서 단단한 결속을 보여주는 두 여인의 우정은 숭고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들의 듀엣 ‘Someone to Love(사랑할 누군가)’는 끔찍한 세상이지만 사랑할 사람만 있다면 우리 삶은 살 만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돋보이는 안무, 주목할 만한 배우


극작의 아쉬움을 상쇄하는 것은 빌 T. 존스가 맡은 안무다. 그는 이전에도 몇 편의 뮤지컬에 참여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2007년 토니 어워즈에서 안무상을 받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다. 빌 T. 존스는 흑인 노예들이 들판에서 일하던 모습에서 착안한 움직임을 춤으로 승화시켜 고단한 노동 현장과 폭발적인 감정을 격렬한 몸짓으로 표현했다. 그는 올해 토니 어워즈에 다시 한번 후보에 올랐으나 아쉽게도 수상은 불발됐다.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추는 아이리시 댄스와 힙합과 아이리시 댄스가 혼합된 해머스탭 안무에는 안무가 가렛 콜먼과 제이슨 오레머스가 참여했다. 두 사람은 앙상블로도 출연해 파워풀한 해머스탭을 선보이며 흥겨운 분위기를 돋웠다. 특히 세 사람의 안무는 흑인들과 이민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노래하는 ‘Turn My Life Around(내 인생을 바꿀 거야)’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흑인들과 이민자들이 각각 발을 활용한 춤을 번갈아 추다가 나중에는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는데, 30여 명의 앙상블이 등장해 장관을 이룬다.


배우들의 호연도 인상적이었다. 아일랜드 이민자를 대표하는 오웬 역은 에이제이 쉬블리가, 흑인을 대표하는 워싱턴 헨리 역은 시드니 듀폰이 맡아 연기했다. 두 사람은 이번 토니 어워즈에서 나란히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을 만큼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다. 특히 시드니 듀폰은 <파라다이스 스퀘어>로 조연에 데뷔한 신예인데, 노래와 춤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배우는 주인공 넬리 역의 호키나 칼루캉고다. 그녀는 넬리 역으로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와 토니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칼루캉고는 토니 어워즈에서 솔로곡 ‘Let It Burn(불태워)’을 부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Let It Burn’은 이 작품의 마지막 노래로, 폭도들이 파라다이스 스퀘어를 비롯해 모든 곳을 공격하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어디 한번 다 불태워 봐라, 그래도 우리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넬리의 강인한 의지가 돋보이는 곡이다. 넬리의 강인함은 극 안에서도 빛난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상황에서도 ‘Heaven Save Our Home(하늘이여 우리를 구하소서)’을 부르며 다른 이를 돕는 넬리의 모습은 심금을 울린다. 절망의 상황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이 여성이며, 흑인이라는 점이 감동을 더했다.

 

작품을 둘러싼 잡음과 조기 종연


<파라다이스 스퀘어>는 개막 전부터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던 작품이었다. 공연 투자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받았던 캐나다 출신의 프로듀서 거스 드라빈스키의 브로드웨이 복귀작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공연이 제대로 제작될 수 있겠냐는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파라다이스 스퀘어>는 2022년 토니 어워즈에 작품상을 비롯해 주요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성과를 냈지만, 저조한 티켓 판매 성적과 작품을 둘러싼 법적 분쟁으로 7월 17일에 막을 내렸다. 개막 초기에는 학생 단체 관람을 관리하던 세일즈 에이전트가, 최근에는 배우 조합과 무대 디자이너 조합이 임금 체불을 이유로 제작사를 고소했다. 배우 조합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거스 드라빈스키를 블랙리스트에 올릴 것이라는 입장문까지 발표했다. 인종 간의 화합을 노래하며 시작한 <파라다이스 스퀘어>는 아이러니하게도 불신과 분란 속에 씁쓸한 끝을 맺고 말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5호 2022년 8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