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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ENSEMBLE] <킹키부츠> 전호준, 열정으로 그린 삶의 궤적 [No.215]

글 |이솔희 사진 |원민화 2022-10-13 741

<킹키부츠> 전호준
열정으로 그린 삶의 궤적

 

비보이에서 경영학도로, 무용 전공자로, 뮤지컬배우로, 운동 지도자로. 전호준의 삶은 평범치 않은 궤적을 그려왔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를 향해 쉼 없이 비상한 결과다. 하지만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전호준은 자신의 근간이 뮤지컬 무대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15년 동안 흔들림 없이 무대를 지키고 있는 그는 <킹키부츠>의 엔젤로 또 한 번 관객을 만나고 있다.

 

 

심장의 떨림을 알려준 <킹키부츠>

 

10대 시절에는 비보이로 활동했고, 대학교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하다가 무용학과로 전과했다고 들었어요. 그 이후로 15년 동안 뮤지컬배우로 활동하고 있고요. 삶의 궤적이 굉장히 독특하네요.
중고등학생 시절에 춤을 정말 열심히 췄어요. 저희 동네에서는 춤으로 꽤 이름을 날렸죠. (웃음) 새벽까지 춤을 추고 학교에 가서 자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고등학생 때 본격적인 댄서의 길을 가려고 자퇴를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신문을 봤는데, 신문에 적힌 한자를 못 읽겠더라고요. 스스로 큰 충격을 받아서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부해서 대학에 가야겠더라고요. 그런데 춤추겠다고 학교를 자퇴한 지 얼마 안 돼 결정을 번복하는 거니까 부모님을 다시 설득할 용기가 안 생기는 거예요. ‘인생 10년 계획서’를 써서 책상 위에 두고 가출했다가 이틀 뒤에 제 발로 다시 들어갔죠. (웃음)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저를 흔쾌히 지원해 주시겠다고 하셨어요. 훗날 부모님이 말씀하시길, 우리가 우리 애를 안 믿어주면 누가 믿어주겠냐고 생각하셨대요. 그 말에 울컥했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공부를 다시 시작해서 중앙대학교 경영학과에 들어갔어요.

 

대학에 가서 뮤지컬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뮤지컬의 ‘뮤’자도 몰랐어요. 그런데 학교에 뮤지컬 동아리가 있더라고요. 호기심이 생겨서 동아리에 들어갔고, 뮤지컬의 재미를 알게 됐죠. 동아리 공연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데 모여서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게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개개인이 춤, 연기, 노래 등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는데, 그게 모여서 하나의 작품이 된다는 사실이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왔죠. 그때부터 뮤지컬배우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과를 무용학과로 옮겼어요. 사실 연극영화과로 전과하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배운 현대무용에 마음을 빼앗겼거든요. 돌이켜 보면, 호기심에 뮤지컬 동아리에 들어간 게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희열이 아직도 제가 뮤지컬 무대에 서는 원동력이 되어주거든요.

 

2007년 <노트르담 드 파리>로 뮤지컬에 데뷔한 후 <캣츠> <위키드> 등 대작에 연달아 참여했어요. 그러다가 2014년에 마치 운명처럼 <킹키부츠>에 출연하게 됐고요. <킹키부츠>는 어떻게 만나게 된 작품인가요?
2013년 <위키드> 초연을 함께했던 해외 안무감독이 남자친구가 출연 중인 공연이라면서 영상을 하나 보여줬어요. 요즘 제일 핫한 작품이라면서요. 그게 <킹키부츠>였어요. 감독님의 남자친구가 맡은 역할은 ‘엔젤’이었고요. 그때는 한국에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는 작품이었던 터라 그냥 멋있는 공연이라는 생각만 하고 넘어갔죠. 그런데 그 후로 몇 달 뒤에 <킹키부츠> 오디션 공고가 뜬 거예요. 제가 <킹키부츠> 무대에 설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오디션 준비를 위해 해외 공연 영상을 찾아 보는데, 여섯 명의 엔젤 중 핑크색 힐을 신고 백텀블링을 하는 배우에게 유독 눈길이 갔어요. 그 배우가 맡은 역이 제가 지금 연기하는 ‘폴’인데, 꼭 이 역할을 맡아야겠다는 생각에 오디션을 앞두고 리듬체조 레슨까지 받았어요. 최대한 엔젤처럼 보이기 위해 오디션장에 여장을 하고 갔고요. 아, 이제는 <킹키부츠> 오디션장에 엔젤처럼 분장하고 가는 게 당연한 일이 됐거든요? 그런데 초연 오디션 당시에는 여장을 하고 온 사람은 제가 유일했대요. (웃음)

 

작품에 이렇게 진심이었다니 <킹키부츠>의 ‘엔젤’이 호준 씨의 대표 캐릭터로 꼽히는 이유를 알겠네요. 이번 시즌까지 벌써 네 차례나 작품과 함께하고 있는데, <킹키부츠>를 다시 만난 소감이 어떤가요?
사실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킹키부츠>를 놓아주려고 했어요. 저에게는 쉽지 않은 작품이거든요. 높은 음역대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점도 그렇고, 몸을 격하게 써야 한다는 점도 그렇고. 그리고 세 시즌을 함께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번에 오디션 공고가 뜬 걸 보는 순간 심장이 떨리는 거예요. 그리곤 혼자 생각했죠. ‘어떡하지? 뭘 어떻게 해 당연히 지원해야지!’ (웃음)

 

여섯 명의 엔젤은 각기 다른 매력을 자랑해요. 폴이란 캐릭터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부분이 있을까요?
초연부터 이번 시즌까지 꾸준하게 드래그 퀸 공연을 관람하고 있어요. 드래그 퀸으로 활동하시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영감을 많이 받거든요. 단순히 그분들의 행동과 말투를 따라하는 게 아니라,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에 이런 행동과 말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까 고민했죠. 그 기반에는 자기애와 자존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요. 엔젤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아는 인물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도 <킹키부츠>를 공연할 때 삶의 행복도가 가장 높아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지금을 돌아봤을 때, <킹키부츠>가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내게 딱 맞는 옷 같은 작품이요. 사람마다 자기에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 있는 것처럼, 전호준에게는 <킹키부츠>라는 작품이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엔젤로 무대에 서면 제 인생이 엄청나게 변할 줄 알았거든요? 배우로서 인지도도 높아지고. (웃음)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킹키부츠>를 만나기 이전보다 훨씬 큰 행복과 만족을 느끼고 있어요.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타이밍이 있으니, 조급하게 생각하기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때를 기다리자는 마음이에요.

 

 

나 자신을 향한 믿음

 

가장 애착이 큰 작품을 꼽을 때 <킹키부츠>와 함께 항상 언급하는 작품이 <시카고>예요. <시카고>도 10년 넘게 출연한 작품이죠.
<킹키부츠>와 <시카고>는 극과 극의 분위기를 지닌 작품인데, 둘 다 내 옷 같은 느낌이라 신기해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옷이지만, 갈아입을 때마다 나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쾌감이 있죠. <킹키부츠>도 그렇지만 <시카고> 역시 시즌을 거듭할수록 재미있는 작품이에요. 배우로서 많은 걸 배우게 해준 작품이죠. <킹키부츠>는 매 시즌 같은 역할을 맡아서 갈수록 깊어지는 느낌이 있다면, <시카고>는 매 시즌 맡은 역할이 바뀌다 보니 무대에 오르는 느낌이 매번 새로웠어요.

 

올해로 데뷔 15주년을 맞았는데, 15년을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눈을 감았다 뜨니까 15년이 지난 기분이에요. 전 아직도 스스로에게 ‘배우 고시생’이라는 표현을 써요. 고시생은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잖아요. 저도 배우로서 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여전히 매일 노래와 연기 레슨을 받아요. 사실 앙상블 배우들은 ‘외’의 인생을 산다는 말을 하곤 해요. 주연 배우 ‘외’에 속하는 배우라는 뜻이죠. 15년 동안 ‘외’의 인생을 살았지만 저는 아직도 제 자신을, 제 노력을 믿어요. 지금까지의 15년은 뮤지컬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의 15년이 정말 기대돼요.

 

앞으로의 15년 동안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랭구아르와 <킹키부츠>의 롤라를 무대에서 꼭 한번 연기해 보고 싶어요. 제가 노래 레슨을 꾸준히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데뷔작인 <노트르담 드 파리>에 잊지 못할 기억이 있기 때문이에요. <노트르담 드 파리>는 댄서와 싱어 포지션이 분리되어 있는데, 저는 댄서 포지션이었지만 코러스 녹음에도 참여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노래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실력이 많이 부족했을 텐데 말이에요. 심지어 음악감독님이 ‘목소리가 좋으니 더 노력해 보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시는 거예요. 그 칭찬 한마디 덕분에 제가 지금까지 노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발성법을 바꿨어요. 그러면서 롤라도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웃음) 언젠간 제게 기회가 올 거라 믿어요.

 

배우 생활 중 잊을 수 없는 사고를 겪기도 했죠. 2016년 <맘마미아> 공연 당시 부상을 겪었던 일이요. 그런데 오히려 그 사건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요.
십자인대가 파열됐는데, 걷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공연에서 하차하게 됐죠. <맘마미아> 공연이 끝나면 <킹키부츠> 재연에 들어가기로 돼있었는데, <킹키부츠>도 할 수 없게 됐고요.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뮤지컬배우를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고민 끝에 이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얻게 됐어요. 부상을 극복해 내서 뮤지컬배우로서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거든요. 그때부터 건강 관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어요. 재활 치료 과정에서 처음 접한 필라테스에 빠져서 필라테스 지도자 자격증을 땄고요. 그 후로 요가, 역도, 기능성 트레이닝 등 다양한 분야의 운동 능력을 키웠어요.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해질 거라 생각했거든요. 또 책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서 1년에 100권 이상 읽은 적도 있어요. 요즘도 꾸준히 책을 읽고 있고요.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고 할 수 있죠. 운동과 책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 이후로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많이 바뀌었어요.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고, 어떤 삶이든 맞다, 틀리다로 판단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죠.

 

호준 씨는 필라테스, 요가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하이힐을 신고 활동해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워킹 클래스 ‘힐신남’을 개설했고, 개인 유튜브 채널도 꾸준히 운영 중이죠. 배우 활동을 제외하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활동은 어떤 건가요?
음…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렸을 때부터 내가 모르는 분야에 도전하는 걸 좋아했어요. 이미 다양한 분야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을 탐험할수록 아직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색다른 영감과 호기심을 얻고, 그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또 다른 탐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최근 저의 가장 큰 호기심은 몸과 건강을 향해 있고요.

 

그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호기심, 재미, 그리고 간절함. 저는 자신이 속한 공간과 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 그리고 만나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한 사람의 삶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믿거든요. 저는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닮고 싶은 사람, 내가 속하고 싶은 공간을 끊임없이 찾아다녀요. 그 호기심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재미를 얻게 되고요. 그런데 계속해서 호기심과 재미를 추구하는 이유는 결국 뭔가를 해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배우가 아닌 인간 전호준은 앞으로 어떤 길로 나아가고 싶나요?
모든 사람에게 삶은 딱 한 번 주어지잖아요. 저는 어떤 목표이든 스스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이룰 수 있다고 봐요. 사람마다 결과물을 완성하는 시기는 다르겠지만, 노력하면 언제가 됐든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죠. 내면의 흐름을 따라가며 계속해서 도전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그게 제 목표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5호 2022년 8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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