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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LETTER] 서로의 말에 닿는 이야기를 찾는 여정 [No.215]

글 |오세혁 작가, 다미로 작곡가 사진 | 2022-10-13 578

서로의 말에 닿는 이야기를 찾는 여정

오세혁 × 다미로 세 번째 편지

 

내 인생은 친구와 동료가 전부야.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져서 끊임없이 대화거리를 찾아. 내 머릿속의 생각과 내 마음속의 꿈을 통째로 꺼내서 보여주고 싶어져. 하지만 언제나 언어로는 한계가 있지. 그럴 때는 어떻게든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몸부림을 치는 거야. 한 곡의 음악을 틀어놓고 함께 듣기도 하고, 한 점의 그림을 띄워놓고 말없이 바라보기도 하지. 한 편의 연극과 영화를 같이 보기도 하고, 하나의 풍경을 보기 위해 나란히 길을 나서기도 해. 그 모든 형태의 수단으로도 전하고 싶은 말이 닿을 수 없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말과 가장 닮은 사람을 찾아가서 서로 소개해 주고 밤새 술을 마시기도 해. 그럼 어느새 서로의 생각과 꿈이 가까이 닿는 순간이 탄생하지. 서로의 언어가 관통하는 순간. 그때의 울컥함은 그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어. 그 완벽하게 울컥한 순간을 위해 친구와 동료를 계속해서 찾아다녔어. 그중에는 창작자도 있었고 배우도 있었고 관객도 있었지.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어. 사람에게는 누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이 존재한다는 거야. 어떤 생각, 어떤 꿈, 어떤 고백, 어떤 비명, 어떤 몸부림, 종류는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그 말이 있었어. 나는 어떻게든 그 말을 꺼내고 싶어 했고,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닿길 원했어.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관통하고 싶어 했지. 어느 날 갑자기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혔어. 이 과정 자체를 공연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아직은 세상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만의 어떤 언어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누군가가 만나는 이야기. 서로의 말에 닿는 이야기. 하지만 이야기를 떠올리기엔 사막 한가운데에 서있는 것처럼 막막했어.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나는 찾고 싶었어. 자신의 태어나지 못한 언어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진실로 갈구했던, 세상에 정말로 존재했던 어떤 사람을.


아르토가 쓴 고흐의 에세이를 처음 읽었던 순간이 기억나. 그 에세이는 아주 짧은 한 권이지만, 한 줄에서 다른 한 줄로 쉽게 넘어갈 수가 없었어. 아르토가 쓴 한 줄 한 줄은 바위에 새긴 상형문자처럼 단단하고 강렬했어. 펜이라는 쇠망치로 나의 뇌를 사정없이 두들기며 한 땀 한 땀 조각하는 느낌이었어. 고흐가 죽고 난 후에 아르토가 태어났고, 아르토는 잠시 병원을 벗어나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봤을 뿐이지. 그 그림을 통해 에세이를 썼을 뿐이야. 하지만 그 한 줄 한 줄은 틀림없이 말하고 있었어. 아르토의 눈에 고흐가 실제로 보였다는걸. 아르토는 관통한 거야. 고흐의 그림 속에 담긴 어떤 말을, 생각을, 꿈을, 고백을, 비명을, 몸부림을, 자신의 글로 한 줄 한 줄 관통해 나간 거야. 그리하여 마침내 어떤 완벽한 울컥함에 도달했겠지.


아르토는 고흐의 그림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믿었어. 그 이해가 누군가의 오답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 ‘완전히’가 아니라 ‘온전히’니까. 고흐는 생전에 끝없이 갈구했거든. 자신의 그림을 단 한 번이라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어떤 사람을. 비록 같은 시간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고흐의 그림이 그 무수한 시간을 견뎌냈고, 마침내 그 온전한 이해의 순간이 태어난 거지. 어쩌면 고흐도 꿈속에서 한 번쯤은 보지 않았을까. 먼 훗날의 시간에, ‘고흐’라는 언어 그 자체를, 온몸으로 읽어내고 있는 어떤 사람을. 그렇다면 고흐도 그 꿈속에서 만날 수 있겠지. 자신만의 연극 언어를 찾고 싶어서 끝없이 방랑하고 끝없이 갇혀있던, ‘아르토’라는 이름을. 그리고 분명히 고흐는 관통할 거야. 아르토의 연극 속에 담긴 어떤 말들을, 생각을, 꿈을, 고백을, 비명을, 몸부림을, 자신의 물감으로 한 줄 한 줄 관통해 나가겠지. 그리하여 마침내 두 사람은 어떤 완벽한 울컥함에 도달하겠지. 그 순간은 마치, 너무 눈부셔서 눈물이 나는, 아침의 태양 같을 거야.


2022.07.20.
세혁 보냄

 

*


인생을 살면서 가장 기쁜 순간은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는 순간인 거 같아. 순간적으로 입에서 나온 단어들이, 문장들이 온 마음을 표현할 수 없을 때 그게 음악으로 만들어져 왔어. 네가 말한 것처럼 음악이 때론 백 마디, 천 마디 설명보다 더 많은 것을 표현해 주곤 하니까. 가끔 작곡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회의감이 들 때, 거대한 벽을 만나 엄청난 압박감이 나를 둘러쌀 때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고 힘을 내곤 해. 음악을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인데 이런 사람들이 옆에 있다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끊임없이 지우고 써 내려간 피아노 위의 수백 곡, 수천 곡들이 결국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받고 싶어서 끊임없이 발버둥 친 결과 아닐까. 


아르토가 증명해 내고 싶었던 것이 뭐였을까? 그리고 왜 하필 고흐였을까. 아주 잠시 고흐의 그림을 봤을 뿐인데 말이야. 처음엔 고흐가 부러웠어. 자신만의 색조와 강렬한 붓 터치로 전 세계에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는 명작을 탄생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귀를 자르는 행위조차 미치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존재했기 때문이야. 아르토는 고흐를 이해하고 있었어. 하지만 음악을 쓰고 연습을 진행하면서 아르토가 부러워졌어. 짧은 내 삶에 있어서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해 봤을까? 그리고 그가 써 내려간 에세이에서 난 아르토가 고흐를 봤다는 걸 믿게 되었어. 얼마나 그를 온전히 이해했기에 그림을 통해 그 사람의 인생을 보게 됐을까. 고흐는 그림으로 자신의 삶을, 아르토는 글로 자신의 삶을 증명해 낸 거야. 고흐는 분명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해 냈고, 아르토는 그 보이지 않는 세계에 들어가 그를 이해했던 것 같아. 그들은 꿈에서 혹은 환상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교류하고 이야기를 나눴을 거야.


네가 처음 이 작품을 만들자고 나에게 쉴 새 없이 이야기했던 그날 밤 눈빛이 기억이 나. 사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어.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없는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든다고 했을 때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 먼저 들었으니까. 여느 작품을 할 때 느끼는 부담감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어. 너는 말로 전달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음악으로, 움직임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했지. 연습을 진행하면서 깨달았어. ‘아, 오세혁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런 거구나. 이 친구는 또 나보다 앞서가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싶었던 거구나.’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서 나만의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 때론 사랑이 담겨있을 것이고 때론 기괴할 수도 있겠지.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몸짓과 선율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너는 그 언어를 이해해 주길 바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 너와 내가 우리가 되고, 우리의 말이 모두 함께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지금 나의 꿈이야. 마치 고흐와 아르토처럼.


22.07.21.
자네의 생각은 늘 틀리지 않았다고 증명하고 싶은 다미로 씀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5호 2022년 8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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