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김신록
각각의 심장이 연결되는 순간을 위해
김신록은 경계를 자유자재로 뛰어넘는 연기자다. 다양한 매체를 종횡무진 오가고,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지워버리고, 이성과 직관의 경계를 허무는 이 배우를 따라가다 보면 그에게 한계라는 게 있을지 궁금해질 정도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1인 16역의 모노드라마에 도전한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새로운 서술자로 합류한 김신록으로부터 또 다른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들어본다.
경계를 지우는 배우
우선 2022년 백상예술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 이후 개인적인 변화가 있었는지요?
마음이 더 편안해졌어요. 전에 두 번이나 후보에 올랐다가 상을 못 받았더니 재채기하려다 만 것처럼 약간 간질간질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에 상을 받고 나니까 후련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 외에는 특별히 달라진 건 없고 여전히 열심히 연습하고, 연기하고 있습니다.
요즘 연극과 드라마를 오가며 장르의 경계 없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예전에 동시에 여러 일을 할 때 힘이 난다고 말했던 적이 있는데, 어떤 시너지 효과가 생기나요?
저는 일을 순차적으로 하기보다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걸 좋아해요. 동시에 여러 일을 할 때 각각의 작업에 더 몰두하게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생기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연습을 시작하고 나니까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연기가 더 잘되더라고요. 두 작품이 서로 연결된다기보다는 물리적으로 연극 연습에 집중해서 몸의 에너지가 활성화되니까 다른 작업에도 영향을 주는 거죠.
각각의 매체에서 연기할 때 비중을 두는 지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궁금해요.
드라마는 확실히 재현의 세계에 가깝죠. 그래서 훨씬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인물을 세밀하게 재현해 내는 데 집중하게 돼요. 반면 연극은 단순히 인물을 연기하는 걸 넘어서, 무대 위에 어떤 구조와 에너지, 그리고 흐름을 구축해내는 복잡한 작업이죠. 그러다 보니 무대에서는 한 인물을 재현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작품을 관통하는 이미지나 반복되는 기호를 찾아내 서로 연결하는 작업에 집중하게 돼요. 두 매체 모두 성격이 다르지만, 각각의 매력과 어려움이 있죠.
각 장르의 작품을 선택할 때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늘 일정을 조율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스케줄만 맞는다면 고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다 하고 싶어요. (웃음) 다만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아무래도 동시대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감각할 수 있는 작품들에 더 마음이 끌려요.
새로운 도전의 무대 앞에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이하 살수선)> 재연에 새로 합류했어요. 배우로서 이 작품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나요?
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달라졌어요. ‘더 이상 개별 존재들의 조합만으로는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이 작품을 만났어요. <살수선>은 한 사람의 심장이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게 저한테는 ‘해체’와 ‘접속’에 대한 이야기로 와닿았어요. 그래서 감각적으로 확 끌리는 게 있었고, 또 좋은 동료 배우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어요.
대사 중심의 희곡과 달리 이 작품은 소설의 언어를 무대로 가져오다 보니 거의 독백에 가까운 긴말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실제 발화해야 하는 배우로서 어떤 어려운 점이 있을까요?
일단 대사를 외우는 게 너무 힘들어요. (웃음) 대사 하나하나에 몸동작을 만들어가면서 외우고 있어요. 전에는 들으면 바로바로 외우곤 했는데,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머리보다는 몸의 감각으로 외우게 돼요. 발화 방식은 아직 찾아가는 중이긴 하지만, 서술자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원작 소설에는 여러 인물과 함께 이들을 바라보는 전지적 시점의 작가가 등장하잖아요? 저는 어떻게 하면 서술자가 전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들과 거리를 두면서 또 하나의 인물로 존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모노드라마는 수십 년 경력의 배우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라 들었습니다. 100분간 오롯이 혼자서 무대를 이끌고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신가요?
예전에 <김신록에 뫼르소, 870×626cm> <위치와 운동>이라는 일인극을 해본 적이 있어서 모노드라마가 낯설진 않아요. 그런데 그때는 대사도 많지 않았고 작은 신촌극장 무대를 한 시간 정도 책임지는 것이었어요. 이번에는 대사량도 어마어마한 데다 무려 이해랑예술극장 무대에 선다고 하니 벌써부터 긴장이 되더라고요. 전쟁터에 잘못 들어간 느낌이에요. (웃음)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무대 위에서 주로 상대 배우를 향해 에너지가 나갔다가 들어온다고 했는데, 상대 배역이 없는 모노드라마에서는 어디서 에너지를 받나요?
저는 생각과 의식의 에너지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상상과 허구, 이미지라는 것도 내부에서 저절로 생성된다기보다는, 외부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보면 이 많은 독백도 이미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형성된 거겠죠. 덧붙여서 모노드라마는 상대 배역이 없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관객과 더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객석을 상대로 연기한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만큼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만큼 관객과 많은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멋진 기회이기도 하죠.
작품에서 서술자뿐만 아니라 병원의 인물들,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이식자의 가족 등 많은 인물을 연기하게 되는데, 혹시 그중 가장 공감이 가거나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요?
저는 작품에서는 모든 사람을 균등하게 다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혹시라도 기능적으로 쓰인 인물은 없는지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어요. 연극에는 소위 주연과 조연 캐릭터가 있는데, 이 작품은 주조연이 나뉘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물론 등장 분량 같은 물리적인 차이는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각각의 인물들이 모두 비등한 비중을 지닐 수 있도록, 어떻게 하면 잠깐 등장하는 인물들의 존재감도 확실히 드러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시몬 랭브르와 그의 부모가 전형적인 환자와 환자의 유가족으로 낭만화되지 않고 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인물로 그려졌으면 좋겠어요.
1인 16역은 그 자체로 배우에게 큰 도전일 것 같습니다. 각기 다른 인물의 변화를 무대에서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해요.
그걸 고민하느라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어요. 일인 다역을 할 때 무대 위에는 여러 인물의 몸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만나는 배우의 몸만 있어요. 즉, 나라는 배우와 수많은 인물이 만나는 거죠. 무대 위에서 각 인물의 에너지와 내 몸이 어떤 방식으로 만날 수 있을지, 연결과 접속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전부터 저는 인물이라는 건 하나의 개별자가 아니라 그 사람이 만나는 세계의 총체라고 생각해 왔어요. 이번에도 각 인물이 어떤 세계에 의해 지어진 캐릭터인지 연구를 많이 하려고 해요.
김신록의 해석이 더해진 <살수선>을 통해 관객들이 무엇을 느끼고 가져가길 기대하나요?
아직은 연습 중이라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에는 분명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무대 위에 살아있는 심장의 박동을 전달하는 배우가 서 있고, 그 심장과 연결된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객석에 전달되고, 그 이야기가 객석에 앉은 관객의 심장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각각의 심장들이 연결되어서 서로의 에너지를 체험해 내는 일. 만약 객석에 있는 누군가와 무대 위의 제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다면 그 관객 역시 스스로 16명의 심장을, 그리고 발화하는 배우의 심장을 감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극 속에서 뇌가 멈춘 순간과 심장이 멈춘 순간 중 어느 것이 진짜 죽음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음고민하면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데 그냥 감각적으로 막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하자면 저는 뇌인 것 같아요. 저 스스로가 생각이 많고 의식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그럴 거예요. 그리고 이 작품을 연습하면서 ‘뇌사’라는 말을 많이 듣고 말하다 보니 그 개념에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언제 가장 심장이 살아있음을 느끼는지요?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때요. 그 사랑스러운 모습이 어떤 구체적인 행위로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불쑥 다가올 때가 있어요. 비록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지만, 그럴 때 저는 제 감각이나 기분이 무한의 시간으로 연결되는 걸 느껴요. 맛있는 음식의 향과 맛이 순간적으로 입맛을 돌게 하고 미각을 깨우는 것처럼,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통해 저 자신의 감각이 문득 깨어나고, 그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곤 해요.
지금까지 작업했던 작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로 <비평가>와 <마우스피스>를 꼽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비평가>는 제게 여러모로 남다른 의미를 남긴 작품이에요. 배우로서 그렇게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역할도 처음 맡아봤고, 젠더프리로 시도한 첫 작품이었어요. 대사량도 상당히 많아서 힘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이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단단해진 게 분명히 있었어요. 그리고 <비평가>는 현대 사회에서 연극과 관객이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새로운 깨달음을 준 작품이기도 해요. <비평가>를 본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었는데, 단순한 팬클럽이 아니라 주체적인 비평 집단 같은 그룹이었어요. 거기서 만난 관객들이 자체적으로 작품에 대해 리뷰하고 인물을 분석하면서 자신들의 감정과 사유를 제게도 전해줬는데, 그게 참 신기하고 감동적이었어요. 예전에는 그런 건 관객과의 대화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이제 공연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 자체가 훨씬 확장된 느낌이에요.
<비평가> 관객들의 활발한 활동에 대해서는 저도 익히 들은 바가 있어서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마우스피스>는 어떤 점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인가요?
제가 작품을 직접 만들어서 올린 적이 몇 번 있었어요. 그렇게 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그즈음 읽은 대본 중 제가 감각하고 사유하는 세계를 제대로 그려낸 텍스트를 못 찾았기 때문이었어요. <마우스피스>는 당시 제가 예술과 예술가의 윤리에 대해, 그리고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사유를 확장시켜 준 웰메이드 희곡이었어요. 그리고 올해 다시 무대에 오르면서는 초연 때보다 더 많은 걸 느끼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무대에서 기능적으로 성취하는 것들에 대한 부담에서 풀려나니까 작품과 더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작품이라면 언제든 또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연습 중인 <살수선>도 비슷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그동안 주로 단단하고 강한 캐릭터들을 맡아왔는데, 앞으로 꼭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제 안의 다양한 결 중에서 그동안 무대 위에서 드러내지 못한 것들을 한번 시도해 보고 싶어요. 부드럽고 섬세하고 따뜻하고, 누군가를 품어주고 돌보고 살리는 그런 인물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4호 2022년 7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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