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가능성을 입증하는 방식
<마타하리> 김성식
“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김성식이 자신을 소개할 때 자주 하는 말이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지만, 이보다 김성식을 잘 설명하는 말도 없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조금씩 꿈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으니까.
긴 시간을 돌아 찾아낸 꿈
2017년 <레베카>로 데뷔식을 치렀어요. <팬텀싱어3>로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져 그런지 앙상블로 데뷔했단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팬텀싱어3>에 출연하기 전까지 두 편의 뮤지컬에 앙상블로 참여했어요. 말하자면 사회생활을 앙상블로 시작한 거예요. 제 데뷔작이 <레베카>가 된 데에는 사연이 있어요. <더 라스트 키스> 앙상블 최종 오디션에서 <레베카>의 대사 있는 앙상블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앙상블을 하면서 호리지라는 이름의 검사 역할도 하는 거였어요. 욕심이 생겨서 <레베카> 오디션을 봤죠. <레베카>에 이어서 <닥터 지바고>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연속으로 두 작품에 참여했어요.
<닥터 지바고>를 마지막으로 뮤지컬 무대에서는 볼 수 없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일부러 뮤지컬 오디션을 안 봤어요. 앙상블로 데뷔한 후에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뮤지컬을 더 좋아하게 됐지만, 뮤지컬이 아닌 다른 것에도 도전해 보고 싶더라고요. 이십 대를 온통 학교에서 보냈더니 뮤지컬 말고는 해본 게 없었거든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직접 발품을 팔아 매체 쪽에 프로필을 돌리러 다녔어요. 그러는 중에 <팬텀싱어3>를 만나 여기까지 온 거예요.
어렸을 때 꿈은 뭐였나요?
어렸을 땐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고, 노래를 잘한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거든요. 조금 더 자라서는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배우나 가수를 동경했던 것 같아요. 고3 때 담임 선생님이 연극영화과 진학을 추천해 주셔서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어요. 그때는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빠르게 단념했어요. 뭘 해야 할지 몰라 진학을 미루고 군 입대를 했죠.
그럼 언제 처음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우연한 기회에 안양대학교 학생들이 공연하는 <렌트>를 보다가 ‘이건 내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비로소 제 꿈을 찾았죠. 다시 입시 준비를 시작해서 한 삼 개월 정도 학원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진심으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 간절해지더라고요. 그렇게 동국대 연극학부에 들어갔는데 그때 제 나이가 스물다섯 살이었어요.
어찌 보면 남들보다 시작이 조금 늦었는데 조바심은 안 나던가요?
아니요, 전혀요!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았으니, 꿈을 이루기 위한 길만 쭉 따라가면 되잖아요. 뭘 해야 할지 고민할 때보다 마음은 편했어요. 입시 준비할 때 선생님이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당연히 다시 도전할 거라고 대답했어요. 제 꿈은 이거니까 다른 걸 할 수 없다고요. 저보다는 아버지께서 무척 걱정이 많으셨어요. 내색은 안 하셨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자리를 못 잡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셨겠어요. 그래도 저를 믿고 묵묵히 지켜봐 주셔서 감사했어요.
앞서 뮤지컬 오디션을 잠시 멈추고 매체 쪽에 프로필을 돌렸다고 했는데 <팬텀싱어3>는 어떤 계기로 도전하게 됐나요? 연기와는 또 다른 분야잖아요.
<레베카>에 같이 앙상블로 참여했던 임정모라는 배우가 <팬텀싱어2>에 출연했어요. 그 친구가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성장하는 걸 보니까 저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제 프로필을 돌리면서 이곳저곳 알아보고 있을 때, 마침 <팬텀싱어3> 오디션 공고가 떠서 지원하게 됐어요. <팬텀싱어3> 참가 목표는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스스로 제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에게 저를 알리는 거였어요. 적어도 TV에 얼굴을 한번 비쳤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갔는데,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었죠. 덕분에 좋은 팀도 만났고요. <팬텀싱어3> 출연 이후에 좋은 일이 많이 생겨서 저에겐 정말 고마운 프로그램이에요.
<팬텀싱어3>에서 매회 성장하는 모습을 선보이며 ‘성장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어요.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많은 것을 얻었을 텐데 뭐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좋은 사람들을 얻었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으니까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김성식이라는 사람이 성장할 수 있었어요. 모두 제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많이 도와주셔서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모든 사람이 저에게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노래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어요. 함께 노래하면서 많이 배웠지만 다른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게 많았어요. 출연자들의 전공이 다르니까 노래하는 방식도 다 달랐거든요. 다양한 노래 테크닉을 접하면서 음악적으로 많이 성장했어요.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비상
4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돌아오게 됐는데 소감이 궁금해요. 주역으로 다시 무대에 서니 어떤가요?
아르망이라는 큰 역할로 무대에 설 수 있어서 감사해요. 하지만 저의 부족함을 잘 알기 때문에 자만하지 않고 성실하게 무대에 임하려고요. 여전히 배우로서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여기까지 열심히 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기도 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무대에 서는 마음은 똑같아요. 제게 무대는 늘 신성한 곳이에요. 거짓이나 요령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래서 무대에 서는 건 늘 부담스럽고 어렵지만, 그만큼 보람과 기쁨도 있죠.
<마타하리>에서 마타하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르망 역할을 맡았어요. 아르망은 다정하면서도 강단 있는 인물인데, 실제 성격이 아르망과 비슷한가요?
아르망처럼 다정다감한 성격은 아니에요. 실제로는 무심하게 챙기는 편에 가까워요. 예를 들어 마타하리의 과거를 알게 되었을 때 아르망은 다정하게 “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저는 좀 단호하게 “그게 뭐가 어때서!”라고 말하는 사람이에요. 연기를 하다 보면 가끔 제 성격이 묻어 나올 때가 있어요. 주변에서는 괜찮다, 잘한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저는 지금보다 더 아르망에 가까워지고 싶어요. 연출님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떻게 하면 더 아르망다워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아르망은 감정의 변화가 커서 연기하기가 까다로운 인물이에요. 게다가 이번 공연에서는 지난 공연보다 비중도 커졌고요. 어떻게 준비했나요?
가장 먼저 대본을 읽은 다음에 제 나름대로 캐릭터를 분석하고 파악했어요. 하지만 연습할 때는 제 해석보다는 연출님의 의견을 많이 따르려고 했어요.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신인이기 때문에 제 생각을 내세우는 게 최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연출님이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좋은 도화지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연습에 참여했어요. (웃음) 하지만 연출님이 생각하시는 그림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만 해도 제겐 큰 노력이 필요한 도전이었어요.
아르망을 연기하는 배우가 모두 네 명이에요. 연출님이 특별히 성식 씨에게 주문한 것이 있나요?
이 질문엔 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저는 제 자신에 대한 판단 기준이 굉장히 높아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제 눈에는 항상 모자란 게 보여요. 그래서 스스로를 다그치면서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에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필요 이상으로 겸손해질 때가 있어요. 게다가 아르망을 연기하는 배우 중에 제가 제일 무대 경험이 적어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연출님이 항상 더 과감하게 해보라고 말씀하셨어요. 오버해도 좋으니까 더 과감해지라고요. 그런데 사람이 단번에 변하기가 어렵잖아요. 제가 갇힌 틀을 깨는 데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다행히 연출님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잘 끌어주신 덕분에 처음보다 과감해졌어요.
그런 것치고는 실제 무대에서 꽤 과감하게 보였어요.
모두 연출님 덕분입니다. (웃음) 제가 무대 체질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대에 올라가면 평소 안 하던 것도 하게 되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께서 연습 때 안 보여주고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연습 때부터 실전처럼 보여주면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 옳은 말씀이에요. 이건 제가 앞으로 꼭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연습실에서부터 잘하는 배우가 되도록 진짜 많이 노력해야죠.
이번 <마타하리>를 공연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나요?
첫 공연이요. 저에게는 매 공연이 첫 공연처럼 긴장되긴 하지만, 진짜 첫 공연 때 굉장히 많이 떨었어요. 대사를 틀리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던 기억이 나요.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나서는 굉장히 감격스러웠어요. 그날 최민철 선배님과 얽힌 특별한 기억이 있어요. 선배님과는 <레베카> <닥터 지바고>에 함께 출연했고 그때부터 사적으로 가까워졌어요. 평소에는 형, 동생 하는 사이예요. 첫 공연 날 선배님하고 같이 공연했는데, 커튼콜 때 저를 보고 울컥하셨다더라고요. 저를 앙상블일 때부터 보신 분이라 그런지 감회가 남다르셨나 봐요. 선배님의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제가 더 울컥했던 기억이 나요.
벌써 <마타하리>가 개막한 지 한 달이 되어가는데, 본인에게 점수를 준다면?
100점 만점에 80점. 조금 더 냉정하게 하면 60점. (자신에게 정말 박하네요.)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가 많아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100퍼센트 아르망이 되지 못한 것과 무대에서 아직도 과감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는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무대는 항상 라이브잖아요. 100점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100점을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죠.
공연이 끝나면 99점까지 갈 수 있을까요?
솔직히 못 갈 거 같아요. 아, 저의 이런 태도 때문에 연출님께 많이 지적받았어요. “할 수 있다고 해야지!” 항상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거든요. (웃음) <마타하리> 아르망을 하면서 좋은 배우가 되겠다는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거 같아요.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더 노력하려고요. 앞으로는 매체든, 뮤지컬이든 다양한 작품으로 계속해서 인사드리고 싶어요. 물론 그전에 지금 공연하는 <마타하리>를 잘 마치는 게 지금 저의 최우선 목표입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4호 2022년 7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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