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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실비아, 살다> 죽음으로 불멸을 얻은 삶과 예술 [No.214]

글 |김주연(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 2022-10-11 410

<실비아, 살다>
죽음으로 불멸을 얻은 삶과 예술

 

예술가 중에는 종종 작품보다 인생이, 삶보다 죽음이 더 널리 알려진 이들이 있다. 실비아 플라스도 그중 하나다. 실비아는 죽음에 이르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시를 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통해 그녀의 삶과 예술은 불멸이 되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중 한 명인 실비아 플라스. 하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그녀를 이야기할 때 삶보다는 죽음을 먼저 떠올린다. 아까운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예술가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에는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강렬하고 애틋한 무언가가 있다. 두 아이의 잠자리를 둘러보며 이불을 덮어주고, 아이들이 아침에 먹을 토스트와 우유를 준비해 머리맡에 놓아두고, 행여 가스가 새어 들어갈까 방문 틈새를 수건과 테이프로 꼼꼼히 막고,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이들 방 창문까지 열어놓은 그녀의 마지막 행위는 아이들에 대한 지극한 걱정과 보살핌으로 가득하다. 이렇듯 끔찍하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엄마가 어떻게 그들을 두고 바로 옆방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토록 사랑하는 아이들마저 삶을 지탱해 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절망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새삼 느끼게 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주 자살을 생각하고 각종 자살 방법을 연구했던 실비아는 이미 두 번이나 자살 시도를 한 경험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고, 스무 살 무렵에는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 쓰러진 그녀를 가족이 발견해 응급 처치한 덕분에 간신히 살아났다. 그리고 1963년 2월 유난히 추운 밤, 실비아는 부엌문 가장자리를 수건과 테이프로 꼼꼼하게 붙인 채, 가스 오븐에 머리를 집어넣어 자살했다. 그녀의 나이 갓 서른이었다.

 

이르게 꽃피고 너무 빨리 지다


실비아가 남긴 글과 그림, 그리고 생전에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면 빛나는 재능과 눈부신 미모에 놀라 아까운 생각이 들곤 한다. 이토록 찬란한 재주와 아름다움을 지녔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가 둘이나 있던 그녀는 대체 왜 그토록 강하게 죽음에 사로잡혔던 걸까. 실비아 플라스는 1932년 생물학 교수인 아버지와 문학교사 어머니 아래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으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녀는 불과 여덟 살에 「보스턴 헤럴드」지에 시를 발표할 만큼 특출난 소녀였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은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무너뜨렸고, 이때부터 실비아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남모르는 깊고 어두운 심연이 생겨났다. 실비아는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종종 자신을 깊숙이 끌어내리는 심연에 저항이라도 하듯 엄청나게 많은 글을 써냈다. 그리고 장학금을 받고 떠난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그녀의 인생을 뒤흔들 운명의 남자, 테드 휴즈를 만난다. 뛰어난 재능과 자신감, 특유의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이 남자에게 실비아는 정신없이 빠져들었고, 두 사람은 만난 지 세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한동안 실비아의 우울한 심연은 사라진 듯했다. 테드와 실비아는 마치 하나의 영혼이 나뉜 두 개의 몸처럼 서로를 원했고, 삶과 창작의 동지로서 행복한 신혼 생활을 누렸다. 이에 힘입어 테드는 날개를 단 것처럼 시인으로서의 행보를 쭉쭉 이어나갔고 금세 영국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다. 남편의 성공은 실비아에게 기쁨이면서 동시에 슬픔이었다. 실비아도 열심히 글을 써서 이곳저곳에 보냈지만 이렇다 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두 사람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생계 전선에 뛰어든 그녀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남편을 내조하는 데 힘을 쏟았다. 사랑의 결실인 두 아이가 차례로 태어났지만 부부 사이는 점점 더 위태로워졌다. 실비아는 자신이 잘나가는 남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위축되었고, 점점 더 남편에게 매달리고 의존했다. 반면 테드는 집착에 가까운 그녀의 애정을 버거워하면서 다른 여자들과 데이트를 시작했다. 모든 것을 내던진 채 매달린 사랑은 자신에게나 상대에게나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두 사람은 결국 테드가 아시아 웨빌이라는 여인과 불륜에 빠지면서 파탄에 이른다. 실비아는 테드와 별거 후 다시 깊은 심연 속에 빠져들었지만, 인생을 통틀어 가장 창조적인 시간을 보낸다. 두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밤이면 밤마다 식탁에 앉아 글을 썼다. 모두가 잠든 새벽이면 시상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고 그녀는 동이 틀 때까지 쓰고 또 쓰면서 집필 활동에 매달렸다. 여성으로서나 엄마로서나 가장 힘겨웠던 이 시기에 실비아는 예술가로서 가장 찬란한 시절을 맞이했고, 인생의 마지막 몇 달간 가장 많은 창작물을 생산했다.

 

고통을 연료 삼아 불사른 예술


비극적인 죽음 이후 실비아의 유고 시집이 출판되었고, 그녀는 사후에 퓰리처상을 받은 최초의 시인이 되었다. 사람들은 실비아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녀의 시와 소설을 읽고 연구하면서, 그녀를 20세기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서른 해의 짧은 생애 동안 그녀는 시집 『거대한 석상』 『아리엘』, 소설 『벨 자』 그리고 일기와 그림책 등 다채로운 글과 그림을 쏟아냈다. 대부분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비아의 작품들은 그녀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한 중요한 지표다. 실비아의 글에는 극도의 나약함과 예민함, 그러면서도 강건한 의지와 에너지가 혼재한다. 화려하면서도 초라했던 그녀의 삶과 절망을 생각하며 작품을 읽다 보면, 피를 토하고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언어와 내면의 소리에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 예민하게 삶의 고통을 감각하고 감지했던 그녀는 사실 너무나 살고 싶었기에, 정말 제대로 살고 싶었기에 있는 힘을 다하여 글을 써 내려갔던 것이다. 이른 나이에 찬란하게 꽃피었던 실비아의 인생은 상처 입은 영혼과 고독, 그리고 깊은 절망으로 점철되었고, 이 거대한 고통의 심연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실비아는 자신의 고통을 연료 삼아 생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불사른 예술가이기도 했다. 죽음에 이르지 않기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글을 썼으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삶과 예술 모두 불멸이 되었다니, 참으로 슬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참고 문헌 
『신이 내린 광기』 제프리 코틀러 저, 황선영 역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실비아 플라스, 박주영 역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4호 2022년 7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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