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규
상상 그 이상
스물넷의 박완규는 믿음직스러운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집안의 천덕꾸러기였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던 그가 고민 끝에 밥벌이로 선택한 게 연극이었다.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더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한길만 걸었다. 그렇게 어느덧 21년이 흘렀고, 이제 그는 연극 좀 본다고 하는 사람들이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붉은 낙엽>으로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받으신 것을 축하드려요. 오래전부터 이 상을 받고 싶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상을 받고 백상예술대상 백스테이지 인터뷰 때 이야기했지만, 처음 극단에 들어갔을 때 피아노 위에 백상예술대상 신인 연출상 트로피가 있었어요. 그게 참 예뻐 보여서 받고 싶다고 했더니 연극 부문상이 없어졌대요. 그땐 아쉽다 하고 말았죠. 21년 전 얘기예요. 그러다 4년 전에 백상예술대상 연극상이 부활했어요. 제가 웬만한 연기상은 다 받았던 터라 백상예술대상 트로피도 가져와야겠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됐어요.
작년에는 <파우스트 엔딩>으로 연기상 후보에 올랐었죠?
그때 주변에서 “너 아니면 누가 받겠냐”라고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웃고 넘겼어요. 자꾸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세뇌된 건지 정말 상을 받을 거 같더라고요. 너무 웃기죠? 지금 생각하면 제가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들떠있었어요. 수상에 대한 기대가 정말 컸고, 저는 진짜 제가 상을 받을 줄 알았어요. (웃음) 근데 연기상 수상자로 다른 배우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저 자신이 너무 창피해서 표정 관리가 안 되더라고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천만다행이었죠.
올해도 수상에 대한 기대가 있었나요?
<붉은 낙엽>이 작품상 후보에 올랐더라면 기대했을지도 몰라요. <붉은 낙엽> 팀에서는 저 혼자만 후보에 올라서 아예 기대를 접었어요. 행사 전에 주최 측에서 사진하고, 작품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보내달라고 했어요. 후보자들한테는 다 요청했겠거니 생각하고 보내줬죠. 첫 수상자가 호명됐는데 상 받는 사람만 사진이 크게 나오더라고요. 그 밑에는 대사가 나오고. 그때부터 기대를 좀 하고 수상 소감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막상 수상 소감을 말할 땐 저도 모르게 울컥해서 제대로 말을 다 하지 못했지만요. 나중에 시상식 영상을 다시 봤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웃음)
앞서 입단하자마자 백상예술대상을 받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동아연극상, 히서연극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이런 상들은 연극인들만 아는 상이잖아요. 백상예술대상은 일반인도 아는 시상식이고요. 신입 단원 때는 연극인이라기보다 거의 일반인이었으니까 백상예술대상이 최고인 줄 알았죠. 근데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상이 없어졌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그 옆에 있는 트로피가 눈에 들어왔어요. 선배한테 이건 무슨 상이냐고 물어보니까 동아연극상이라고 연극계에서 최고로 알아주는 거래요. 아, 그러면 내가 열심히 해서 동아연극상을 받아야겠다고 목표를 바꿨죠.
본격적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수상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군요!
상을 받으면 남들이 나를 알아줄 거 아니에요? 그러면 나한테 좋은 역할도 줄 테고, 배우로 좀 더 인정받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상을 받고 싶었죠. 제가 상복이 좀 많은데, 2010년에 동아연극상, 히서연극상, 대한민국 연극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어요. 근데 기대했던 것만큼 하루아침에 뭐가 달라지진 않더라고요. (웃음)
상을 받으실 때마다 천의 얼굴, 팔색조 같은 수식어로 불리더라고요. 그 말에 동의하세요?
정말 동의합니다. (웃음) 저는 모든 사람이 팔색조 같은 모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든 상황이나 상대에 따라 돌변할 때가 있잖아요. 배우에게 팔색조의 매력을 끄집어내는 건 배우가 아니라 연출가나 캐스팅하는 사람들의 몫이에요. 하지만 대부분 모험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저 배우의 이런 모습이 좋으니까 자꾸 비슷한 캐릭터로만 캐스팅하려는 거예요. 배우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끄집어 내겠다는 용기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운 좋게도 제 안의 다양한 모습을 끌어내 준 작가, 연출가, 제작사를 만났어요. 덕분에 다양한 역할에 도전할 수 있었죠.
2010년에 <잠 못드는 밤은 없다>와 <안티고네>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두 작품에서 전혀 상반된 인물을 연기했는데 둘 다 호평받았죠.
두 작품을 불과 한 달 간격으로 연이어 공연했어요. <잠 못드는 밤은 없다>에서는 부드럽고 섬세한 연기를 했고, <안티고네>에서는 강하고 센 연기를 했어요. <잠 못드는 밤은 없다>의 박근형 연출님이나 <안티고네>의 김승철 연출님이 제 안에 있던 모습을 잘 끌어내 주셨죠. 그 후로 작품마다 상반된 역할을 맡아 연기할 수 있었어요. 나중에는 한 작품 안에서 상반된 성향을 보여주기도 했어요. <국물 있사옵니다> <괴벨스 극장>이 그랬고, 최근에는 <파우스트 엔딩>과 <붉은 낙엽>이 그런 작품이었죠. <국물 있사옵니다>의 김상범은 처음엔 비실이로 나오는데 출세하면서 싹 바뀌는 그런 인물이었어요. 이런 역할들을 제가 소화해 낼 수 있었던 건 결국 제 안에 다양한 모습을 끄집어내 주셨던 분들이 계셔서 가능했던 거예요.
여전히 성장 중인 21년 차 배우
<붉은 낙엽>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뿐만 아니라 서울연극제 연기상도 받았어요. <붉은 낙엽>은 어떤 작품인가요?
동명 소설을 각색한 연극으로, 제가 맡았던 역할은 주인공 에릭이었어요. 이 남자는 작은 마을에 집을 짓고 정착해요. 그 집에서 행복하게 살길 바라면서요. 그런데 사건이 터지죠. 아들이 전날 돌봐준 아이가 실종된 거예요. 남자는 아들을 믿어보려 하지만 의심을 떨칠 수 없어요. 의심이 의심을 낳고 남자는 주변 사람들을 계속 의심해요. 결국 산더미처럼 커진 의심 때문에 남자는 모든 걸 잃고 말아요. 의심이 어떻게 한 가족을 파국으로 몰아가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붉은 낙엽>은 우란문화재단의 공연예술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됐는데, 처음부터 참여하셨죠?
극단 배다의 이준우 연출가가 신작을 위해 소설을 각색하는 중인데 같이 작업해 보고 싶다고 연락을 줬어요. 마침 다른 일정이 없던 때라 흔쾌히 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첫 리딩에 3~4시간짜리 대본을 가져왔더라고요. 게다가 그 방대한 분량이 거의 다 주인공의 독백으로 되어있었어요. 독회가 끝나고 입에서 단내가 났죠. (웃음) 원작이 심리 추리소설이라 독백극처럼 대본을 쓴 게 이해가 되긴 했지만, 분량을 대폭 줄이고 독백은 되도록 대화로 풀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근데 작가하고 연출가가 쉽게 수정을 못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2시간 내로 분량을 줄일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생각이 있대요. “어? 그래? 그럼 내가 도와줄게!” 하고 제 독백을 다 없앴어요. 저도 살아야 하니까요. (웃음) 그렇게 대본 작업부터 이것저것 참견하면서 작품을 완성했죠.
함께 작품을 만들면서 특별히 느끼신 바가 있나요?
주인공 에릭의 심리극이기 때문에 에릭이 극을 80퍼센트, 어쩌면 100퍼센트 끌어가는 작품이에요. 하지만 주인공의 비중이 큰 작품이라 해도 주인공을 만드는 건 결국 주변 인물이에요. 예를 들어 <안티고네> 의 크레온 왕의 카리스마를 만들어주는 건 왕을 두려워하는 시민들의 리액션이죠. 크레온이 난리를 쳐도 시민들이 아무 반응이 없으면 왕의 카리스마가 살지 않아요. <붉은 낙엽>도 마찬가지예요. 에릭을 완성한 건 동료 배우들이었어요. 덕분에 제 역할이 더 돋보였던 거고요. 연극을 하면서 동료 배우들이 중요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됐죠. 그리고 제 나이쯤 되면 꼰대 소리 듣기 쉽거든요. 이 작품을 하면서 후배 창작자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생각도 많이 젊어졌고요. 마지막으로 ‘나 잘한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자기 입으로 잘한다고 하기 쉽지 않은데….
제가 잘났다는 말은 아니에요. 독자들이 오해할 수 있으니까 잘 써주셔야 해요. 예전의 저와 지금의 저를 비교했을 때 성장했다는 걸 느꼈다고 할까요. 나 정말 배우구나. 집중력 있게 한 작품을 끌어나갈 능력이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붉은 낙엽>은 김도영 작가와 이준우 연출가의 역할이 큰 작품이지만, 저를 포함해서 참여했던 배우들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작품을 완성했거든요. 협업 과정에서 배우 박완규가 자기 몫을 하더라고요. (웃음) 자아도취 절대 아니고! 저 스스로에 대한 응원의 의미로 잘한다고 한 거죠.
살면서 한 번이라도 ‘나 연기 좀 하네?’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나요?
대학생 때 영어 동아리에서 영어 연극을 했는데, 그때는 제가 정말 연기를 잘하는 줄 알았어요.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하면서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생각해 보니 연극을 하면 되겠더라고요. 재미도 있고, 잘하기도 했으니까. (웃음) 연극을 하려고 무작정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 길로 운 좋게 극단 백수광부에 입단해서 연극을 시작했죠. 극단에 들어가면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요. 연기를 너무 못해서 자괴감에 빠졌어요.
그래도 도망은 안 가셨네요?
입단하고 일 년 정도 됐을 때 있었던 일인데 술을 마시고 늦잠을 자는 바람에 다음 날 공연에 지각한 적이 있어요. 최악의 실수였죠. 그때 정신을 차렸어요. 진지하게 연극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죠. 앞으로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국은 해야겠더라고요. 그때부터 한눈팔지 않고 지금까지 왔죠. 자존심이 있으니까 오기로 버텼어요.
연극배우로 데뷔한 지 벌써 20년이 지났어요. 그동안 연극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요?
2001년 2월에 극단 백수광부에 입단했으니까 올해 딱 21년 차네요. 연극을 계속하는 이유 첫 번째는 무대에 대한 열정이고, 그다음은 성취감인 것 같아요. 극단 백수광부 이성열 연출님이 한번은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완규야, 너는 점점 좋아지는 게 눈에 보여. 난 네가 열심히 하면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그 말에 용기를 얻어서 더 잘해야지, 더 나아져야지 다짐했어요. 그러니까 배우로서 조금씩 성과가 생기더라고요. 극단에 입단해서 주연급으로 캐스팅되기까지 10년 정도 걸렸어요. 작든 크든 배우로서 쌓은 성과들이 그 10년을 버티게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고요. 그래서 계속 잘하고 싶고, 더 나아지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바람이나 계획이 있나요?
대중적인 배우가 된 다음에 연극판에서 티켓 파워를 가져보고 싶어요. 예전에는 연극판을 지키는 게 연극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언제부턴가 이곳에서도 대중적 인지도를 무시할 수 없게 됐거든요. 저를 ‘믿보배’라고 불러주시고 제 작품을 꾸준히 찾아주시는 관객분들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앞으로는 대중매체에도 도전해 보고 좀 더 대중적인 배우가 돼보려고요.
21년 차 배우 박완규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저는 아직도 제가 배우로서 뭘 해낼 수 있을지가 너무 기대돼요. 21년 차 배우로서 나름대로 성과는 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보다 더 많은 걸 이룰 수도 있잖아요? 배우로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그러니 끝까지 한번 가보자. 완규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3호 2022년 6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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