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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지속 가능한 공연예술 ① - 공연예술계 기후행동 [No.213]

글 |최영현 사진 | 2022-09-28 2,441

공연예술계 기후행동

 

산업화 이후 지구 평균 온도는 계속해서 상승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지구온난화에는 가속도가 붙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멈추기 위한 즉각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 어느 때보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 다시 말해 기후행동이 필요한 때다. 공연예술계 역시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기후위기 시대에 공연예술이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고민 중이다. 국공립단체를 중심으로 국내 공연예술계의 기후행동에 대해 살펴봤다.

 

 

지금은 기후 비상사태


2019년 11월, 전 세계 153개국 11,258명의 과학자는 학술지 「바이오 사이언스」에 게재한 글을 통해 “지구가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에 직면했다는 것을 명백하게 선언한다”라고 했다. 같은 해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발간하는 옥스퍼드 랭귀지도 올해의 단어로 ‘기후 비상사태’를 선정했다. 옥스퍼드 사전은 기후 비상사태를 “기후 변화를 줄이거나 멈추고, 심각하고 영구적인 환경 피해를 막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으로 정의하고 있다. 1979년 제1차 세계기후회의에서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부정적 영향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은 지 꼭 40년 만에 기후 비상사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국제사회는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UN환경개발회의에서 세계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구온난화 방지 및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기후 변화협약을 체결하고, 기후 변화에 대한 범지구적 대응을 본격화했다. 가장 최근에는 새로운 기후 변화 대응 목표를 제시한 파리협정이 발효되었다. 파리협정은 산업화 이전 대비 온도 상승을 2℃ 이하로 유지하고 더 나아가 1.5℃까지 억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전 세계 각국이 적극적인 기후행동에 나서도록 촉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2년 기후 변화협약에 가입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2008년 ‘기후 변화대응 종합기본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2010년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2015년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법적, 제도적 체계를 마련했다. 또 2016년 국회는 파리협정을 비준하고 국제사회와 발맞춰 기후 변화 대응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국가적으로 기후 변화에 대한 다양한 법령과 제도가 마련되고 있지만, 공연예술 분야의 기후위기 대응에 관한 구체적인 가이드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공연예술계가 자발적으로 대응 방침을 마련해 기후행동에 나서고 있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공연예술계의 기후행동은 지금이 기후위기 시대라는 인식 아래 예술의 역할과 실천 방향을 탐색하는 것이 특징이다. 공연예술계가 기후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기후 변화를 주제로 하는 작품을 만들어 관객에게 기후위기 상황을 환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창작 과정에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미래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발전’을 말한다. 다시 말해, 제한된 자원으로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가 지속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발전 방향을 재정립하는 것을 말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예술 정책 탐색


그중에서 예술 정책 마련을 위한 활동이 눈에 띈다. 2021년 4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ARKO)는 정책혁신소위원회에 ‘기후위기와 예술 정책’ 워킹그룹을 발족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예술이 해야할 역할을 탐색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기 위함이다. ARKO는 예술지원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현장과의 소통을 제도화하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를 중심으로 소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중 정책혁신소위원회는 기관 현안, 중장기 대응, 사업 운영 개선 등 정책적인 부분을 논의한다.


정책혁신소위원회 위원 3인, 외부 워킹그룹 인사 1인, 사무처 직원 2인으로 구성된 ‘기후위기와 예술 정책' 워킹그룹은 문화와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탐색하고, 정책과제를 도출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기후위기 시대의 예술 정책과 관련된 국내외 동향 조사, 각 분야 전문가와 함께 기후위기 시대 문화예술의 의미와 역할을 설정하는 워크숍 개최, 국내 기후-예술 참여 동향 파악 및 기후위기 시대 창작 환경 조성을 위한 포럼과 토론회를 진행했다. 2021년 11월 개최된 ‘기후위기 시대의 예술을 말하다’ 포럼에서는 국내의 기후위기 대응 예술 활동을 소개하고, 예술의 역할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제도적으로 미미한 기후위기 시대의 예술 정책에 대한 논의도 펼쳤다.


워킹그룹은 1년간의 활동을 바탕으로 지난 4월, ARKO 정책혁신소위원회 정책 제안 포럼에서 ‘기후위기 시대의 문화예술 정책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워킹그룹은 기후위기와 생태문화 관점에서 안전한 예술 창작 환경을 만들기 위한 ‘문화정책 중장기 비전·로드맵 수립’을 제안했다. 그중 몇 가지 구체적으로 제시된 내용을 살펴보면, 기후위기와 지속 가능성 관점에서 문화영향평가제도 보완 및 활성화 추진, 기후-예술 사업을 추진하는 전담 조직 마련, 예술 창작 활동과 단체 운영의 녹색화 지원 방안 등이 있다. 워킹그룹은 6월 최종적으로 결과 보고서를 발간하고 활동을 마무리한다.


ARKO는 지난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문화예술 정책 제안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면, 올해는 창·제작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문화예술부문의 지속가능 가이드북’을 제작한다. 문화예술 및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워킹그룹으로 참여하는 가이드북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획일화된 탄소중립 실천 방안이 아니라 장르별로 창·제작 단계를 나누고, 단계별로 지속 가능한 요소와 탄소중립 실천 방법을 공유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ARKO는 공공 예술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공공 예술도 지원한다. 2021년 6월 진행된 <기후시민 3.5> 캠페인이 바로 그 예다. <기후시민 3.5>는 전면적인 기후행동을 촉구하는 대규모 공공 예술 프로젝트로, 예술가, 환경 연구가, 국내외 시민 단체, 환경 단체, 연구 기관 등이 협업하여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기후위기 대응 행동을 제시하고,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다. 올해는 빈곤 퇴치, 성평등, 기후 변화 대응 등 지속 가능 발전을 실현하기 위한 인류 공동의 목표를 담은 ‘UN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주제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제고하는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지원할 예정이다.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극장


2021년 1월, 국립극단의 김광보 예술감독은 향후 3년간 주요 운영 방향 세 가지를 발표했다. 공공성 강화,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 보장, 적극적인 기후행동이 그것이다. 국립극단이 기후행동을 단체 운영 방침으로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후행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제작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공공 극장 모델 개발,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최소화, 소비재 사용 감축, 공유 가치 활성화 등이다. 김광보 예술감독은 “실천 가능한 행동을 통해 지구를 보호하고 환경을 아끼는 연극 문화를 만들어보겠다”라고 전했다.


이에 발맞춰 국립극단은 2021년 11월 기존에 출시한 기념품 중 불용품을 활용한 새활용 기념품을 출시했다. 공연 제작 과정 중 발생하는 탄소 줄이기 노력의 일환이다. 이밖에 공연 중에 사용했던 소품이나 의상 등을 민간단체에 나누는 ‘나눔장터(가칭)’도 계획하는 등 지속해서 기후행동을 실천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또 동시대 창작극 개발을 목표로 연출가와 협업하는 ‘창작공감: 연출’의 주제로 ‘기후위기와 예술’을 정했다. ‘창작공감: 연출’은 날로 심해지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연극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으로 공연을 완성한다. 올해 개발되는 작품은 2023년 국립극단 무대에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지역 기반의 공공 단체 중에서는 다분야 창작자들의 창작 및 제작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원의 활동이 눈에 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아시아문화원의 환경 관련 프로그램 중 주목할 만한 것은 ‘ACC 소셜디자인 랩’ 프로젝트다. ACC 소셜디자인 랩은 문화, 예술, 디자인의 관점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보는 프로젝트다. ACC 소셜디자인 랩은 행사 후 버려지는 다량의 폐현수막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18년부터 친환경 타이벡(Tyvek) 현수막을 실내 행사에 사용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고 있다. 이를 계기로 창작 과정에서 버려지는 지원의 새활용과 에너지 절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고, 일회성 캠페인이 아닌 하나의 프로젝트로 논의를 펼쳐보기 위해 ACC 소셜디자인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ACC 소셜디자인 랩은 2020년과 2021년 두 차례 진행됐다. 2020년에는 <버려진 자원의 쓰임과 재발견>을 주제로 버려진 자원을 새활용하여 새로운 가치와 쓰임을 갖게 되는 과정을 조명했다. 새활용으로 창작이나 사업 활동을 하는 네 팀을 선발해 새활용 문화상품을 기획, 제작, 판매했다. 관객들이 직접 새활용 제품을 만들어 보는 워크숍을 운영해 새활용 제품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겨 보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2021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작과 제작 과정에서 예술과 환경이 공존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1년 소셜디자인 랩 <지구를 위한 창작 백신>에서는 온오프라인 강연과 체험형 워크숍을 통해 창작 과정에서 지속 가능성의 실천과 환경 보전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또 호남·제주권 10개 대학 학생들과 연계하여 환경을 보호하고 자원을 절약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했다.


ACC 소셜디자인랩은 행사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창·제작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ACC 그린뉴딜가이드북』(2020)과 『지속가능한 ACC 콘텐츠 창제작 가이드라인』(2021)을 발간했다. 이 발행물들은 콘텐츠 창제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 문제를 제시하고,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제안했다. 『ACC 그린뉴딜가이드북』은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이는 방법을 공유했는데 실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실천했던 사례를 소개해 이해를 도왔다. 『지속가능한 ACC 콘텐츠 창제작 가이드라인』은 콘텐츠 창제작 과정을 단계별로 나누고, 각 과정에서 최소화, 재사용, 재활용 전략을 제안했다.

 

 

공연예술 축제 속으로 들어온 기후위기 대응


공연예술 축제에서도 환경과 예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오는 6월 10일 개막하는 제21회 의정부음악극축제는 ‘거리로 나온 음악극, 지구를 노래하다’라는 주제로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는 축제를 진행한다. 이를 위해 지속가능성 감독과 환경예술 감독을 위촉했다. 공연예술 축제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일회성 조치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축제를 만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의정부음악극축제는 지속가능성 감독과 환경예술 감독의 활동을 바탕으로 기후위기 시대의 공연예술 축제가 지향해야 하는 이슈들을 살피고 조처함으로써 미래 세대를 위한 축제를 만들어간다는 게 목표다.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지속가능성 감독은 지속 가능한 이벤트 매니지먼트를 계획·실행하고, 모니터링하는 역할이다. 여기서 지속 가능한 이벤트 매니지먼트란 사회적, 환경적으로 부정적 혹은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을 탐색하고 대처하는 일을 말한다. 단순하게는 일회용품을 사용 금지하는 것도 지속가능 이벤트 매니지먼트에 해당한다. 정헌영 지속가능성 감독은 아직까지 국내에는 지속가능성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며, 이번 축제가 지속가능성 감독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또한 의정부음악극축제가 지속 가능한 축제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주체들과 협력 채널을 만들겠다고 전했다. 환경예술 감독은 환경 관련 전시를 기획하고, 시민과 함께하는 환경 워크숍을 진행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안선화 환경예술 감독은 환경 문제가 우리 일상 가까이에서 일어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예술을 통해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계획이다.


오는 10월 개최되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이하 SPAF)는 향후 5년간 ‘동시대적 관점과 시대적 가치를 담아내는 국제 공연예술제’를 새로운 비전으로 설정했다. 최석구 신임 SPAF 예술감독은 앞으로 예술의 다양성과 포용성, 예술과 기후위기, 예술의 새로운 이동성 등 다섯 가지 관점을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해 관객에게 선보인다는 계획을 밝혔다. 예술과 기후위기에 관해서는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예술 활동을 지향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 일환으로 예술가들의 기후 변화 대응 프로젝트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기후 변화’와 협력하여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김보람 연출가의 <움직이는 숲>을 선보인다.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기후 변화’를 통해 소개된 <움직이는 숲>은 보드게임 형식을 빌려 기후위기로 위험에 처한 숲을 구하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이와 함께 예술과 기후 변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라운드 테이블과 콘퍼런스도 함께 진행한다.

 

>> 지속 가능한 공연예술 ② - <기후비상사태: 리허설> 국립극단의 저탄소 공연 제작기
>> 지속 가능한 공연예술 ③ - 영미권 공연예술계가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법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3호 2022년 6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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