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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리틀 프린스> 화려한 곡예로 브로드웨이에 착륙한 어린 왕자 [No.212]

글 |여태은(뉴욕통신원) 사진 | 2022-09-23 709

<리틀 프린스>
화려한 곡예로 브로드웨이에 착륙한

어린 왕자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와 다른 행성에서 온 어린 왕자의 만남을 그린 『어린 왕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다. 프랑스 출신 비행사 겸 작가 생텍쥐페리가 글을 쓰고 삽화를 그린 이 소설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책으로 꼽힌다. 『어린 왕자』는 뉴욕과도 인연이 깊다. 생텍쥐페리가 이 소설을 뉴욕에서 집필해 1943년 뉴욕에서 영어판과 프랑스어판을 동시에 첫 출간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어린 왕자가 이번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에 착륙했다. 음악과 미디어아트, 아크로바틱, 현대무용, 공중곡예가 어우러진 <리틀 프린스>로 말이다. <리틀 프린스>는 두바이에 본사를 둔 브로드웨이 엔터테인먼트 그룹과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재단이 공동 제작하여 파리, 두바이, 시드니를 거쳐 브로드웨이에 온 인터내셔널 투어 프로덕션이다. 대다수 브로드웨이 공연이 오픈런을 지향하는 것과 달리, 지난 3월 29일 맨해튼의 브로드웨이 시어터에서 프리뷰 공연을 개막한 <리틀 프린스>는 개막과 동시에 폐막일을 8월 14일로 발표했다.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극적 경험


<리틀 프린스>는 음악적 요소가 있는 극적 경험을 표방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을 뮤지컬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내레이터가 부르는 노래 두 곡을 제외하면 대부분 댄서와 곡예사의 움직임에 따라 극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리틀 프린스>를 이끄는 연출가 겸 안무가 앤 투르니는 현대무용에 공중곡예를 접목해 새로운 차원의 안무를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이력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라스베이거스 인기 공연 <르 레브>와 마카오에서 공연된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다. 연출가 프랑코 드라곤과 함께 작업한 두 작품 모두 거대한 수조와 공중곡예를 이용해 현란한 쇼를 보여준다. 앤 투르니는 이후에도 중국과 아랍에미리트를 오가며 화려하고 큰 규모의 공연에 참여했다. <리틀 프린스>의 작사와 공동 연출을 맡은 크리스 머론, 작곡을 맡은 테리 트럭 또한 앤 투르니와 함께 아크로바틱 중심의 공연을 만들어온 창작진이다. 크리스 머론은 내레이터로 이 공연에 직접 출연하기도 한다.


<리틀 프린스>가 공연 중인 맨해튼의 브로드웨이 시어터는 1,700석이 넘는 규모로 브로드웨이 극장 중에서도 큰 편에 속한다. 하지만 <리틀 프린스>의 출연자 수는 20명이 채 안 되고, 대부분의 장면이 10명 이하로 구성된다. 극장에 비해 공연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휑한 무대를 채우는 데 프로젝션 영상이 막중한 역할을 한다. 이 공연의 프로젝션 영상 디자이너인 마리 주멜랑은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발레, 패션쇼 등 다양한 분야의 비디오 디자인을 맡아왔다. 그는 무대 뒷벽과 바닥에 프로젝션 영상을 투사해 어린 왕자가 사는 소행성 B-612와 그가 방문한 여러 별, 비행사를 만나는 지구의 사막 등 다양한 공간을 구현했다. 그리고 장면 전환을 마치 책장을 넘기면 다음 장이 나오는 것처럼 표현했다. 마리 주멜랑의 초현실적인 표현 방식은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특히 기발했던 것은 2막에서 지구인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영상을 활용한 장면이다. 사람들 속에서 움직이는 어린 왕자의 모습을 모션 트래킹 영상으로 벽면에 크게 띄우고 세 명의 무용수가 그 움직임을 따라하는데, 각자 다른 타이밍에 움직이기 시작해 끝내 소통하지 못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지구의 도로, 산과 들을 표현한 장면은 조악한 게임 화면을 보는 듯해 조금 실망스러웠다.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퍼포먼스


<리틀 프린스>는 원작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대부분 그대로 따른다. 막이 열리면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하는 인물은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빠져나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비행사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공중에 매달려 빙글빙글 도는 비행사의 모습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놀라운 공중곡예로 공연의 포문을 연 비행사는 커튼콜 때도 객석 1층 위를 날아다니며 환상적인 순간을 선사한다. 이어지는 어린 왕자의 등장은 실로 기발하다. 어린 왕자 역을 맡은 리오넬 잘라샤는 연출가 겸 안무가 앤 투르니와 <르 레브>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를 함께한 공중곡예 전문가인데, 자그마한 체구의 그는 소행성 B-612의 주인답게 공 위에서 발을 구르며 나타난다. 비행사와 어린 왕자가 함께 춤추는 동안 그들의 대화는 내레이터가 대신 전한다. 어린 왕자가 비행사에게 양을 그려달라 요청하자 벽면 가득히 여러가지 모습의 양이 투사되고, 양 코스튬을 입은 댄서들이 장난스럽게 곡예를 부리며 웃음을 유발한다.


원작에서 장미꽃과 어린 왕자의 관계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공연에서도 이 둘의 퍼포먼스가 돋보인다. 장미꽃이 처음 등장할 때 입고 있는 소매가 넓은 상의는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를 연상시키고, 붉은 스커트는 움직일 때마다 꽃잎처럼 하늘거린다. 마침내 활짝 피어난 장미꽃과 어린 왕자는 공중에 매달려 함께 춤추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서툰 애정 탓에 결국 장미꽃을 떠나는 어린 왕자의 모습 역시 공중곡예로 표현된다.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이 무대 저 높이 매달렸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곡예사의 모습은 위태롭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다.


어린 왕자가 자신의 행성을 떠나 방문한 첫 번째 별의 주인은 늙은 왕이다. 연출가가 중국에서 활동한 경험을 살린 것인지, 이 왕은 흡사 중국 황제처럼 표현된다. 의상과 프로젝션 영상은 황금색과 붉은색으로 꾸며지고, 왕과 신하들은 중국풍 멜로디와 징 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 다음으로 모자를 쓴 허영심 많은 남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계속해서 관객의 박수를 유도하다 싱겁게 퇴장한다. 이는 뒤이어 술꾼 장면에서 보여줄 묘기와 노래를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끄는 장면에 지나지 않는 듯했다. 술에 취해 해롱거리는 술꾼의 모습은 커다란 링에 올라탄 채 빙글빙글 돌아가는 곡예로 표현된다. 줄곧 영어로 대사를 이어가던 내레이터가 이 장면에서 처음으로 프랑스어 노래를 하는데, 그 내용인즉슨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라는 것이다. 술꾼의 말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어린 왕자는 그 별을 떠나 사업가의 별로 이동한다. 이곳에는 자신이 소유한 별을 세며 허송세월하는 사업가가 살고 있다. 여기서 어린 왕자는 처음으로 소유의 의미와 그에 따르는 책임에 대해 생각한다. 원작에서는 어린 왕자가 지리학자와의 대화를 통해 장미꽃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깨닫지만, 공연에서는 조금 더 일찍 그 사실을 깨닫는 셈이다.


1막은 가로등을 켜는 사람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 작은 별은 자전 시간이 너무 빨라 30초에 한 번씩 가로등을 켜거나 꺼야 한다. 그때마다 곡예사가 공중에 매달린 가로등을 오르내리는 모습은 눈으로 봐도 믿기 어렵다. 마치 몸에 와이어라도 연결돼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하루가 고작 1분이다 보니 가로등 켜는 남자와 어린 왕자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30일이나 흘러버리는데, 그동안 이들은 인터내셔널 투어 프로덕션답게 각국의 언어로 인사말을 건넨다. 가로등 켜는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반짝이는 별의 춤이 이어지고, 어린 왕자는 그 별들을 따라 지구로 향한다.


20분의 인터미션 후에 시작되는 2막은 지구에 도착한 어린 왕자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2막을 여는 첫 장면은 어린 왕자와 뱀의 대화다. 피리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공중에 매달린 곡예사가 몸에 감긴 줄을 풀며 순식간에 떨어지는 모습은 영락없이 뱀을 연상케 한다. 1막에서 감동을 준 장미꽃의 아름다운 의상과 춤은 2막에서 모든 남녀 무용수에 의해 재현된다. 사방에 핀 장미꽃을 보고 자신의 장미꽃이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어린 왕자의 당혹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장면이다. 2막은 어린 왕자가 대화를 통해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곡예의 비중이 현저히 줄고 안무 위주로 극이 진행된다. 다만 어린 왕자의 마지막 퇴장만은 공중곡예로 꾸며져 깊은 인상을 남긴다.

 

 

모든 인물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내레이터


<리틀 프린스>에서 어린 왕자가 자신의 행성을 떠나 만나는 모든 인물과 그에게 깨달음을 주는 장미꽃, 여우, 뱀까지 다양한 캐릭터와의 대화는 모두 내레이터의 목소리가 대신한다. 하지만 첫 장면이 비행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고 해서 내레이터를 비행사와 동일시했다가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내레이터의 역할은 무성 영화 시대의 변사를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내레이터는 어린 왕자의 여정을 함축한 내용의 샹송 스타일 노래를 부르고, 노래가 끝나면 어린 왕자는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자신의 별로 떠난다.


인터내셔널 투어 프로덕션답게 내레이터의 모든 대사는 영어로 진행되며 스크린을 통해 자막을 제공한다. 하지만 네 개의 스크린 모두 무대 크기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작고, 객석에서 보기 힘든 위치에 배치되어 관람에 큰 도움이 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브로드웨이 극장들은 청각 장애인을 위한 보청 장치와 자막·수화 서비스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고,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갈라 프로(Gala Pro)’라는 모바일 앱을 통한 번역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리틀 프린스>의 비효율적인 자막 스크린 서비스는 이러한 브로드웨이의 흐름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어른에게도 여전히 영감을 주는 이야기


어린 왕자가 상자 그림을 보고 그 속에 있는 양을 상상하며 행복해한다거나, 장미꽃에 대한 서툰 애정 때문에 넓은 세상을 탐험하러 떠나는 모습은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모든 사람을 자기의 신하로 생각하는 늙은 왕, 오직 자신만 알고 박수받기를 원하는 허영심 많은 남자, 술을 마시며 부끄러움을 잊으려 하는 술꾼, 소유에만 집착하는 사업가, 명령에 복종하는 가로등 켜는 사람의 이야기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어른들의 이상한 면모를 돌아보게 한다. 이 인물들은 조금 과장되게 표현되었을 뿐 모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모를 익숙한 모습이다.


어린 왕자와 장미꽃, 여우와의 관계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장미꽃이 특별한 존재인 줄 알았던 어린 왕자는 지구에 만발한 장미꽃을 보고 혼란을 느낀다. 이전에는 자신을 부자처럼 느끼게 해준 장미꽃이 더 넓은 세상에 나와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자각이 그를 괴롭힌다. 이러한 혼란과 고민은 우리 일상에 늘 존재한다. 남이 가진 것을 보고 내가 가진 것을 보잘것없게 느끼거나,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잊고 바깥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던 적이 있다면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이후 어린 왕자는 여우와의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건 익숙해지는 걸 넘어 기쁨과 슬픔을 주는 행위라는 걸 배운다. 자신이 길들인 존재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깨달은 어린 왕자는 장미꽃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는 철학적인 이야기야말로 원작 『어린 왕자』의 힘이자, <리틀 프린스>를 단순한 서커스가 아닌 극적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2호 2022년 5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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