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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LETTER] 최선의 기준이 비슷한 동료들을 만난다는 건 정말 행운인 것 같습니다 [No.212]

글 |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가 사진 | 2022-09-23 233

최선의 기준이 비슷한 동료들을 만난다는 건

정말 행운인 것 같습니다

한정석 × 이선영 네 번째 편지

 

 

나의 오리지널 파트너 이선영 작곡가님께
지난 금요일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쯤에는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아니 꼭 그렇게 되길 바랐는데, 막상 공연이 올라가니 연습 때보다 훨씬 더 싱숭생숭합니다. 열심히 했다는 마음과 그럼에도 아직 부족하다는 마음 사이에서 매일 방황하는 기분입니다. 


생각해 보면 <여신님이 보고 계셔>도 <레드북>도 시작 때는 늘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라 모든 것이 불안했고, 모두에게 큰 빚을 질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심지어 ‘내가 왜 이런 글을 써서 여러 사람을 고생시키나?’ 하는 후회도 많았고요. 그래서 종종 혼자 작업하는 창작자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혼자 시작하고, 혼자 완성해서 바로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들면 스트레스가 덜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모를 세간의 혹평도 혼자 짊어지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았고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연습 때부터 종종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료들이 제가 쓴 글을 각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표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어느 때보다 즐거웠습니다.


‘네불라, 제자리에서 천천히 뛰어오른다.’


이 짧은 지문 하나를 위해 수많은 고민과 성의가 동원됩니다. 배우와 스태프들은 여러 실험 끝에 가장 적당한 것을 골라내고, 그것들이 서로 어울릴 수 있도록 애를 씁니다. 


“그냥 옆에 있을게요. 혼자 두긴 좀 그렇잖아요.”


대사는 동일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배우의 연기는 매번 달라지고, 매일 깊어집니다. 제가 혼자 글을 쓰며 예상했던 그림들은 동료들을 만나 하나씩 부서지고, 조금은 다른, 보다 더 나은 모양들로 채워집니다. 그렇게 저의 작고 비루했던 세계가 조금씩 넓어짐을 느낍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책임감으로 가득한 연습실 안에서 저는 제가 이 작품의 일부여서 진심으로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쇼맨>이 끝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연습실에서 얻은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불안을 잘 다독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바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더 많은 애정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외면하고 침묵하는 것으로는 그 무엇도 나아지지 않는다. 온전한 나로서 사유하고, 또 주변의 또 다른 나를 주체로서 일으켜 세워야 한다.” ― 김민섭 『대리사회』 중에서


작품의 출발을 함께한 위 구절을 되새기며 이 이야기를 선택한 것에 책임을 잘 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추신: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전화 통화에 익숙한 우리라서 편지로는 별로 할 말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동안 매달 이렇게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는 게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속 깊은 마음을 꺼낼 수 있게 귀한 지면을 허락해 주신 배경희 편집장님과 『더뮤지컬』 관계자님들, 함께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2022.04.10.
작가 한정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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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리지널 파트너 한정석 작가님께
4월 호 연재를 한 번 건너뛰어서 그런지 정말 오랜만에 작가님께 편지를 쓰는 느낌이네요. 지난 한 달, 저는 제 인생에서 이렇게 밀도 있는 시절이 있었나 싶을 만큼 정신없고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저 역시 공연을 올리기만 하면 해방된 기분이 들 거라 생각했는데, 첫 공연을 올린 날 밤 집에 돌아와 너무나 큰 허탈함을 느꼈습니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전작들을 올렸을 때의 기분과는 사뭇 달라서 이 감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곰곰이 생각했으나 끝내 밝혀내진 못했습니다. 최선을 다한 뒤에 오는 공허함이었을까? 휴식을 충분히 취하지 못해 번아웃이 온 걸까? <쇼맨>에 나오는 뮤지컬 넘버 ‘인생은 내 키만큼’의 가사처럼 계속 가라앉는 상태로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회복 중입니다. 뻔한 얘기긴 하지만, 작업자에게 있어서 작품을 열심히 만드는 것만큼, 자신을 잘 돌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저에게 그리고 동료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정석 작가님은 편지에서 가끔 혼자 작업하는 작가들이 부럽다고 하셨죠. 그래도 이번 <쇼맨>을 하면서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것이 즐거우셨다니, 이번 과정은 성공적이라고 얘기해도 될까요? 최선의 기준이 비슷한 동료들을 만난다는 건 정말 행운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팀은 저에게 기적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어느 누구 하나 빠짐없이 작품에, 그리고 서로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이 느껴졌으니까요. 뮤지컬은 너무 많은 파트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작업이라 힘들기도 하지만, 또 그것 때문에 힘을 낼 수 있는 거 같습니다. 누군가 넘어졌을 때 손잡고 일으켜 세워줄 동료들이 많으니까요. <쇼맨>의 마지막 곡 ‘누군가는’에는 “서로를 비춰준다”라는 가사가 나오죠. 작가님과 함께 ‘비추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비추다 [동사] 
빛을 내는 대상이 다른 대상에 빛을 보내어 밝게 하다.


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열심히 비춰줬던 거 같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스스로에게, 또한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칭찬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가끔 우스갯소리로 “우리가 쓴 작품의 인물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산다.”라는 농담을 주고받곤 하지요. 실제로 저는 작품 속 인물들보다 부족한 제가 그들 마음에 대입해서 곡을 써도 될지 고민했던 적도 있습니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순호’처럼 용기가 있지도 않고, <레드북>의 ‘안나’처럼 자신을 솔직하게 얘기하지도 못하고, <태일>의 ‘전태일’처럼 정의롭고 따뜻하지도 못하고, <섬: 1933-2019>의 ‘마리안느’나 ‘마가렛’처럼 사랑이 많지도 않아서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조금 달랐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네불라’와 ‘수아’에게 이상하게 갈수록 비슷한 온도를 느낍니다. 완전하게 정의롭고 올바르지 못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계속 애쓰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작가님과 저, <쇼맨>의 스태프들과 배우들, 관객들 모두에게 계속 함께 뛰어오르면서 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키만큼 깊은 바다에서, 가끔은 서로를 응원하면서 뛰어오르자고요.


그동안 저희 편지 연재를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과 『더뮤지컬』에 감사를 보내며, 마지막 편지를 마칩니다.


2022.04.11.
작곡가 이선영 드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2호 2022년 5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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