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롤로지> 오디오북 제작기
2018년과 2019년 국내 무대에 오른 연극 <킬롤로지>가 지난 2월 오디오북으로 재탄생했다. 내레이터가 책 내용을 읽어 주는 일반적인 오디오북과 달리 <킬롤로지> 오디오북은 실제 공연에 출연한 배우들이 실감 나게 목소리 연기를 펼치고, 공연 속 음악과 음향까지 그대로 재현해 익숙한 공연을 귀로 다시 만나는 색다른 감각을 선사한다. <킬롤로지>로 처음 오디오북 제작에 나선 연극열전으로부터 그 제작 과정을 들어 보았다.
연극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
연극열전은 지난 2021년부터 그동안 선보여 온 공연을 도서, 음반, 영상과 같은 다양한 매체에 담아내는 ‘연극열전 북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부가 상품을 통한 수익 창출뿐만 아니라 공연장 밖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2022년 3월 현재까지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OST와 DVD, 연극 <렁스> <마우스피스> <킬롤로지> 대본집이 발매되었다. <킬롤로지> 오디오북 역시 이러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특별히 오디오북이라는 매체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연극열전 측은 “DVD보다는 대사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오디오북이 확장성이 있으리라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오디오북으로 선보일 작품으로 <킬롤로지>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킬롤로지>는 폭력적인 게임을 개발해 성공을 거둔 폴, 그 게임과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당한 데이비, 폴에게 복수하려는 데이비의 아버지 알란이 등장하는 3인극이다. 하지만 1인극처럼 대화보다는 각자의 독백 위주로 흘러가는 것이 특징이다. 인물들이 저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형식, 그리고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진행되는 극의 특성상 특정 공간을 배경으로 삼지 않는 점이 오디오북으로 옮겨지기에 적합했다. 여기에 초연과 재연에 모두 참여한 출연진 김수현, 이율, 이주승과 박선희 연출가가 흔쾌히 참여를 결정하고, 희곡의 원작자 게리 오웬과 로열티 계약이 성사됨으로써 순조롭게 제작이 진행되었다.
오디오북 제작을 시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벽은 높은 제작비였다. 수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배우 캐스팅, 스튜디오 대여, 녹음 및 편집을 담당할 엔지니어 고용에 상당한 비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1 우수 오디오북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된 덕분에 이러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해당 지원 사업은 기존에 동일한 내용의 종이책 및 전자책으로 출간된 바 없는 고유한 콘텐츠에 한하여 오디오북 제작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단, 원작이 있는 콘텐츠라도 오디오북의 고유한 특성에 맞게 개작한 콘텐츠는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 신청이 가능했다. 국내 출판사 등록을 완료한 곳만 신청 자격을 얻는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연극열전은 대본집 출간을 염두에 두고 2012년 일찌감치 출판사 등록을 해 둔 덕분에 문제없이 신청할 수 있었다. 심사를 거쳐 총 15종의 지원 대상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 <킬롤로지> 오디오북은 1천만 원(창작 지원금 300만 원, 제작 실비 700만 원)을 지원받았다.
같은 듯 다른 공연과 오디오북
<킬롤로지> 오디오북의 총 재생 시간은 실제 공연 시간과 비슷한 2시간이다. 하지만 오디오북 유통 플랫폼에 녹음 파일을 올릴 때는 전체를 30분 이내 분량으로 나눠 올려야 했다. 희곡에는 인터미션 지점만 표시되어 있을 뿐 챕터가 구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박선희 연출가가 직접 전체를 8개 챕터로 나누었다.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비슷한 화제로 연결되는 내용끼리 묶어 각 챕터를 10~20분 분량으로 비슷하게 맞추었다.
<킬롤로지> 오디오북은 희곡을 거의 각색하지 않고, 공연에 사용된 음악과 음향을 재사용해 최대한 공연과 비슷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마치 공연 실황을 녹음한 것처럼 들리지만, 오디오북에는 지문(희곡에서 인물의 동작, 표정, 심리, 말투 따위를 지시하거나 서술하는 부분)이 들어간다는 차이가 있다. 소리만으로 전달하기 힘든 배우의 행동을 지문으로 처리하여 낭독한 것이다. 그렇다고 오디오북에 희곡의 모든 지문이 사용되는 건 아니다. 처음에는 지금보다 많은 양의 지문을 녹음하였으나, 편집 과정에서 대사의 내용과 말투, 음향을 듣고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은 가능한 생략하여 실제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전달되도록 만들었다. 또한 지문 낭독은 여성 배우 김유진이 맡아 배역을 연기하는 남성 배우들의 목소리와 확연히 구분되도록 했다.
오디오북을 만들 때도 공연 때처럼 연습이 필요했다. 배우들은 녹음에 앞서 연출가와 서너 시간씩 일대일 연습 시간을 가졌다. 공연 때 이미 캐릭터를 구축해 두었지만, 무대에서 발성하는 게 아닌 만큼 대사를 할 때 목소리의 크기와 톤을 조정하는 게 중요했다. 녹음 과정에서도 배우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대부분의 대사가 독백이고 코로나로 인해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었던 터라, 녹음은 일부 장면을 제외하면 배우별로 혼자 진행되었다. 이 때문에 배우들은 상대역과 호흡을 맞출 수 없는 상황에서 연기해야 하는 고충이 있었다. 또한 대사를 먼저 녹음하고 효과음과 배경 음악을 나중에 편집으로 입히는 오디오북 제작 시스템상, 실제 소리를 들으며 연기했던 무대에서와 달리 이쯤에서 소리가 날 거라는 상상에 의존해 연기해야 했다.
이러한 녹음 환경 때문에 배우들 곁에서 대사의 타이밍을 알려 주고, 세 배우의 목소리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를 수 있도록 톤을 잡아주는 연출의 역할이 무척 중요했다. 또 공연 때는 음향 오퍼레이터가 타이밍에 맞춰 배우의 목소리에 음향 효과를 넣거나 음악의 볼륨을 조정하지만, 오디오북은 연출가가 엔지니어와 소통하며 새롭게 소리를 믹싱해야 했다. 이렇게 수개월에 걸쳐 공들인 끝에 오디오북이 완성되었다.
오디오북 유통 플랫폼의 선택 기준
현재 <킬롤로지> 오디오북은 오디오북 전문 플랫폼 ‘윌라’와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를 제공하는 네이버 플랫폼 ‘오디오클립’에서 감상할 수 있다. 윌라는 월 9,900원을 지불하면 플랫폼 내 모든 콘텐츠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반면 오디오클립은 콘텐츠별로 개별 이용료를 지불한다. <킬롤로지> 오디오북은 소장용 구매 시 22,000원, 90일 대여료는 11,000원이다. 연극열전 측은 평소 오디오북을 즐겨 듣는 층과 기존 공연에 관심이 있는 층, 두 가지 타깃을 모두 고려해 유통 플랫폼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윌라는 대표적인 오디오북 플랫폼이기 때문에 <킬롤로지>가 많은 회원들에게 어느 정도 어필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오디오클립은 회원 가입을 하지 않아도 네이버 아이디만 있으면 이용 가능하고, 원하는 콘텐츠만 개별 구매 및 대여가 가능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킬롤로지> 오디오북은 2월 22일 출시 후 한 달간 윌라와 오디오클립 양쪽에서 3,000회 내외의 재생 수를 기록했으며, 특히 기존 공연을 좋아했던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이끌어 냈다. 연극열전 측은 공연을 오디오북이라는 또 다른 매체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앞으로도 각 공연 작품의 특색에 맞는 다양한 부가 콘텐츠를 제작해 나갈 의사를 내비쳤다.
>> SPECIAL① 오디오 콘텐츠의 가능성
>> SPECIAL② 귀로 듣는 무대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1호 2022년 4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