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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OLUMN]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작가 이름을 잘못 표기하면 저작권 침해일까 [No.211]

글 |고봉주(변호사) 사진 |쇼노트 2022-09-14 1,019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작가 이름을 잘못 표기하면 저작권 침해일까

 

 

내 소설이 남의 이름으로 출간된다면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는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그의 주치의 존 폴리도리 사이에 벌어진 소설 저작권 논란을 소재로 한 2인극이다. 1816년 어느 폭풍우 치던 밤, 별장에 발이 묶인 바이런은 일행들에게 재미 삼아 무서운 이야기를 써 보자고 제안한다. 일행 중 한 명이었던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걸작을 탄생시키지만, 정작 바이런은 죽지 않는 인간에 대한 소설을 구상하고 끝맺지 못한다. 대신 바이런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존 폴리도리가 단편 소설을 완성한다. 3년 후 존의 소설은 『뱀파이어(The Vampyre: A Tale)』라는 제목으로 문학 잡지에 발표된다. 문제는 이 소설이 존의 허락 없이 출간된 데다 작가 이름도 바이런으로 표기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현행법상 어떤 처벌이 가능할까?


우선 소설은 어문저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다. 저작권이란 저작자가 그 자신이 창작한 저작물에 대해서 갖는 권리로,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면 저작물이 될 수 있다. 법에 규정된 저작물의 예시에는 어문저작물, 음악저작물, 연극저작물, 미술저작물, 건축저작물, 사진저작물, 영상저작물, 도형저작물,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이 있다. 이외에도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등의 방법으로 작성한 ‘2차적 저작물’, 편집물로서 그 소재의 선택, 배열 또는 구성에 창작성이 있는 ‘편집저작물’ 역시 독자적인 저작물로 인정된다.


저작권은 저작물을 창작한 시점부터 발생하며 어떠한 절차를 이행해야만 얻어지는 게 아니다. 작가는 출간 여부와 상관없이 소설을 쓴 즉시 그 소설에 대해 저작권을 가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저작자가 누구인지 명백하지 않을 경우 등을 대비하여 법은 저작자 추정 규정을 두고 있다. 소설에 작가로 실명이나 널리 알려진 이명(예명·아호·약칭 등)이 표시된 자는 그 소설의 저작자로 추정된다. 법에서 ‘추정’이란 ‘간주’와 구별되는 개념이다. ‘간주’는 반증이 있어도 효과를 번복할 수 없는 반면 ‘추정’은 반증이 있으면 그 효과를 번복할 수 있다. 따라서 소설에 작가로 표시되면 일단 그 소설의 저작자로 추정되지만, 실제로 다른 사람이 작가라는 증거가 있으면 저작자를 번복할 수 있다. 극 중 바이런은 『뱀파이어』가 자신이 아닌 존이 쓴 소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존은 진짜 저작자로서 작가 이름 정정을 요구할 수 있다.


뮤지컬에서 존은 『뱀파이어』가 발표되자 바이런이 직접 출간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지만, 바이런도 자신의 이름으로 소설이 출간되리란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밝혀진다. 즉, 제삼자가 존의 허락 없이 그의 소설을 출간하는 동시에 바이런의 허락 없이 그를 작가로 내세운 것이다. 저작권법에 의하면 저작자는 저작물의 공표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있는데 이것을 공표권이라고 한다. 존은 공표권 침해를 이유로 제삼자에게 위자료 청구가 가능하다. 만약 존이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도 가능하다. 또한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표시해서 저작물을 공표하면 저작권법에 의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다만 저작권법 위반은 친고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저작자인 존의 고소가 필요하다. 한편 바이런은 저작권법 위반에 대해서는 고의가 없으므로 처벌받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허락 없이 도용한 것에 대하여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주장하면 소설을 출간한 제삼자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가 가능하다.

 

 

타인의 아이디어를 도용해 소설을 쓴다면


이번에는 바이런에게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쓴 존을 무죄라고 할 수 있을지 살펴보자. 바이런은 죽지 않는 뱀파이어는 원래 자신의 아이디어였는데, 존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쳐 소설을 썼다고 주장한다. 만약 바이런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아이디어를 도용한 것도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할까? 앞서 설명한 대로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가리키기 때문에 단순한 아이디어는 저작물로 보호받지 못한다. 판례를 살펴보면 “아이디어나 이론 등의 사상 및 감정 그 자체는 설사 그것이 독창성, 신규성이 있다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되지 않는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뱀파이어가 바이런의 아이디어였다 해도 그것이 표현되지 않은 아이디어 상태에 불과했다면, 존이 뱀파이어를 소재로 소설을 쓴다 해도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


하지만 존에게는 여전히 다른 혐의가 남아 있다. 존은 바이런의 주치의로 고용되었을 때 그의 사생활에 관하여 누설하지 않기로 약정하였다. 그런데 존은 바이런의 방탕하고 잔인한 면모를 뱀파이어에 빗대어 소설을 썼다. 극 중에서 바이런이 존에게 화를 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고용계약에서 정한 비밀 누설 금지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해서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계약상 의무 위반이라는 민사상 책임(결국 손해배상으로 귀결된다)을 지는 데 그칠 뿐이다. 다만 존이 묘사한 뱀파이어가 누가 봐도 바이런을 모델로 한 게 분명하고, 그 내용이 바이런의 외적 명예를 훼손할 정도에 해당한다면 존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죄책을 당할 수 있다.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피해자인 바이런의 고소가 없어도 존을 기소할 수 있지만, 바이런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존을 기소할 수 없다. 즉, 존의 처벌 여부는 바이런의 결정에 달려 있는 셈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1호 2022년 4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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