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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BOOK] <팬레터> 마음을 담은 편지의 힘 [No.210]

글 |김슬기(매일경제신문 기자) 사진 | 2022-09-02 1,040

<팬레터>

마음을 담은 편지의 힘

 

2년 만에 돌아와 팬들의 마음을 흔드는 창작뮤지컬이 있다. 바로 이상, 김유정, 김기림 등 경성을 주름잡던 문인들이 속했던 ‘구인회’를 모티브로 창작된 <팬레터>다. 작가 지망생 세훈이 존경하는 소설가 해진에게 보낸 팬레터 한 장으로 시작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공연을 보고 난 후 함께 읽으면 좋을 다정한 편지를 묶은 서간집을 소개한다.

 

『A가 X에게』
존 버거 지음 | 김현우 옮김 | 열화당


존 버거가 소설로 쓴 이 연서는 문학사상 가장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이 이야기는 약제사인 아이다가 반정부 테러 조직 결성 혐의로 이중종신형을 선고받고 독방에 갇힌 자신의 연인 사비에르에게 쓴 편지와 메모로 이뤄진다.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지도 모르지만, 결혼한 사이가 아니므로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기에 소통의 방법은 편지뿐이다. 아이다는 매일매일 자신에게 있었던 일과 위협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의 소식을 편지에 담아 사비에르에게 보낸다. 소설은 연인들의 애틋한 편지면서 동시에 이 세계의 무자비함과 불평등, 자본주의와 현 제국주의가 지닌 폭력성을 고발하는 묵직한 펀치이다. 아이다와 사비에르가 만났는지,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증을 품게 하는 이 소설은 긴 여운을 남긴다.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마종기, 루시드폴 지음 | 문학동네


세훈과 그가 흠모하는 해진의 관계는 뮤지션 루시드폴과 마종기 시인의 관계와 닮았다. 서정적인 가사로 이름난 뮤지션과 원로 시인은 벌써 두 권의 서간집을 펴냈다.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은 그들의 두 번째 서간집으로, 2013년 봄부터 1년여간 오간 마흔 통의 편지를 묶었다. 첫 책 『아주 사적인, 긴 만남』에서 편지로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던 두 사람은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에서 음악, 문학, 가족, 여행 등 삶 전체를 아우르는 따뜻하고도 속 깊은 대화를 나눈다. 마 시인은 이런 말을 건넨다. 자신에게 루시드폴은 무척 얘기를 해 보고 싶었던, 그리워하던 스타일의 사람이었다고. 어릴 때부터 시를 써온 의사 시인에게 공학 공부를 한 예술가를 만나는 건 드문 일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소통하면서 혼자만의 고립된 시간을 넘어선다.

 

 

『가장 사소한 구원』
라종일, 김현진 지음 | 알마


<팬레터>에서도 그랬듯이 편지는 불가능해 보이는 소통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가장 사소한 구원』에서도 70대 노 교수와 30대 여성 작가 사이의 불가능해 보이는 만남이 편지를 통해 이뤄진다. 국가안보보좌관과 주영대사, 주일대사 등을 역임한 국가 공인 엘리트 라종일과 자칭 집도 절도 없는 도시 빈민이자 비정규직 노동자 에세이스트 김현진은 서로에게 서른두 통의 편지를 보냈다. 2009년 김현진이 쓴 책을 보고 라종일이 먼저 연락을 하면서 시작된 인연은 ‘선생님께’와 ‘현진에게’로 시작되는 편지로 이어졌다. 차가운 현실주의자 라종일과 뜨거운 이상주의자 김현진은 삶, 사회, 역사에 대해 발랄하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마지막 편지를 보내면서, 서로가 주고받은 편지들이 구원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남궁인, 이슬아 지음 | 문학동네


“저는 선생님이 쓰는 사랑 편지가 느끼합니다!” “닷새 안에 답장이 없으면 절교하자는 뜻인 줄로 알겠습니다.” 훈훈한 인사말 대신 옹골찬 ‘선빵’부터 날리는 편지만 보면 연인인지 원수인지 알 수 없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과 『일간 이슬아』의 작가 이슬아,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이 책은 분류하기가 참 난감하다. 둘은 성별도, 나이도, 인생 궤적도, 작가로 데뷔한 방식도 너무나 달라서 도리어 서로 할 말이 없을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고 긴 편지를 서로에게 보낸다. 연애편지도, 문학비평, 신변잡기도 아니지만 두 사람은 진지하게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 보이고 포복절도할 재미까지 안겨준다. 이슬아의 마지막 편지인 ‘남궁인밖에 모르는 남궁인 선생님께’는 남성 작가의 비대한 자아를 꼬집는 통계학적 분석으로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0호 2022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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